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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석의 대 숲에 들면

설정(일산) 2009. 10. 26. 17:12

대(竹) 숲에 들면  

   임 영 석

 

대숲에 들면 꾸물거리는 것이 없다

모두가 시원한 자세다

몸을 텅 비우고 살아 온 세월 만큼

속이 시원한 자세를 하고 있다

애초, 쪼개면 쪼갤 수록 종종걸음치던 삶

하얗게 뿌리 속에 감추고

푸른 분노가 허공을 타 올라

죽창이 되어 간다, 오늘

그대 무릎의 관절이 쑤시고 아플 때

얼마나 바르게 살았는지 생각해 보아라

저 허공을 시원하게 울리기 위하여

대나무는 속을 텅 비우고 허공을 먹고 산다

죽어서 허공을 눈물나게 울릴 수 있다면

그대 삶도 대나무였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온 몸이 갈기갈기 찢어져

단단한 다짐을 담아 놓을 그릇이 되거나

분노를 삭힐 죽창이 되어 갈 것이다

대숲에 들면 허공을 울리겠다고

끙끙 다짐하는 신음 소리만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