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개척하는 시인-생물(生物)로 움직이는 시 -김선우 시인 - 임영석
생물(生物)로 움직이는 시
-김 선우 시인
임 영석
시라는 것은 살아 있는 생물(生物)이어야 한다. 살아 있지 않고 생동감이 없다면 그 시는 기록에 불과한 언어 일뿐이다. 아무리 좋은 씨앗도 땅에 심지 않으면 씨앗의 구실을 못하는 것처럼, 시도 생각만으로 구성되어지는 것은 아니다. 어떠한 환경에서도 씨앗은 꽃을 피워 열매를 맺게 하는 자생력을 가져야 씨앗의 구실을 다하는 것이 된다.
시라는 것도 살아 있는 생물처럼 내 몸에서 나를 찾고자 할 때 내 몸을 비추어 줄 수 있는 거울이 되어야 한다. 거울도 없이 나를 찾고자 하는 시는 자신의 모습이 담겨 있지 않기 때문에 어떠한 모습도 바라 볼 수 없게 되어 있다. 시는 가장 먼저 자기 자신의 마음을 바라보는 거울이어야 한다. 그 마음의 거울을 닦는 수련을 통해 우리가 사는 세상의 모습도 담아내기 때문이다.
많은 시인들이 마음의 거울을 닦는 수련을 하지만 스스로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김 선우 시인은 여자로써 자기 자신을 가장 잘 바라보고 표현하는, 말 그대로 너무나 간절한 그리고 너무나 은밀한 감동을 주는 시인이다. 필자가 읽은 김 선우 시인의 시집 『내 혀가 입 속에 갇혀 있길 거부한다면 』, 『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 』는 내적인 나를 바라보기 위한 그의 시선이 여성으로써의 육체적인 범위를 뛰어 넘어 정신의 마음 길을 열었다는 것은 여성적 세계관, 우주관, 진리를 통해 우리가 사는 세상의 아름다움이 여성에게 얼마나 크게 담겨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내력
몸져누운 어머니의 예순여섯 생신날
고향에 가 소변을 받아드리다 보았네
한때 무성한 숲이었을 음부
더운 이슬 고인 밤 풀여치들의
사랑이 농익어 달 부풀던 그곳에
황토먼지 날리는 된비알이 있었네
비탈진 밭에서 젊음을 혹사시킨
산간 마을 여인의 성기는 비탈을 닮아간다는,
세간 속설이 내 마음에 천둥 소낙비 뿌려
어머니 몸을 닦아드리다 온통 내가 젖는데
겅성드뭇한 산비알
열매가 꽃으로 씨앗으로 흙으로
되돌아가는 소슬한 평화를 보았네
부끄러워 무릎을 끙, 세우는
어머니의 비알밭은 어린 여자아이의
밋밋하고 앳된 잠지를 닮아 있었네
돌아갈 채비를 끝내고 있었네
김 선우 시집 『내 혀가 입 속에 갇혀 있길 거부한다면 』,〈창작과비평사 〉에서
먼저, 이 시를 읽으면서 딸과 어머니의 사이, 그 사이의 관계에 설정된 참으로 따듯한 사랑을 느낄 수 있다. 딸이었기 때문에 몸져누운 어머니의 몸을 수발하며 애틋한 마음으로 어머니의 내력을 바라볼 수 있다. 사람은 누구나 생로병사의 길에 있다. 김 선우 시인은 몸을 가누지 못하는 어머니의 소변을 받아내며, 그리고 몸을 닦아드리며 어머니가 산비알처럼, 갈팍지게 살아왔다는 것을 느낀다. 어머니가 살아온 삶, 그 자체가 나를 바라보는 삶의 거울로 보인다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생각의 거울은 깨달음을 통해 바라보는 것이다. 시인의 시는 유언을 쓰듯 시를 써야 한다고 말한다. 자기 삶에 대한 확고한 뜻을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 하는 심오한 다짐을 유언이라 생각하며 써야 진솔한 고백을 할 수 있다고 본다. 시는 자기 고백이다. 내 몸 속의 언어가 살아서 이 세상에 존재하게 하는 이유는 깨달음을 주기 위한 거울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시인은 생물로 살아 있는 언어를 만들기 위해서는 언어의 씨앗을 내 몸에 심어 말의 씨를 꽃피워야 한다. 그 꽃은 행동 속에서 참 모습을 바라보고 살고자 하는 노력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그 노력이 사람이 살아가는 과정에서 이루어져야 가능한 일이다. 김 선우 시인의 「내력」은 어머니의 삶의 거울을 통해 한세상 살아가는 과정의 모습을 간절하게 담아내고 있기에 더 애틋하게 느끼게 해주고 있다고 본다.
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
그대가 밀어 올린 꽃줄기 끝에서
그대가 피는 것인데
왜 내가 이다지도 떨리는지
그대가 피어 그대 몸속으로
꽃벌 한 마리 날아든 것인데
왜 내가 이다지도 아득한지
왜 내 몸이 이리도 뜨거운지
그대가 꽃 피는 것이
처음부터 내 일이었다는 듯이.
김 선우 시집 『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 』, 〈문학과지성사 〉에서
김 선우 시인은「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를 통해 본질적인 삶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마음의 거울을 닦아 놓았다고 보인다. 내 몸속에 잠든 이는 “나” 뿐 이었을 것이지만, 내가 아닌 또 다른 나의 모습으로 꽃을 피워내는 몸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있다. 그것은 사람이 사랑하고 그 사랑에 열정을 다하고 함께 할 수 있는 대상이 있을 때 가능하다. 이는 김 선우 시인이 여성으로써 육체적인 삶과 정신적인 삶 사이의 생물(生物)의 본능을 완성 짓는 과정이라 생각되어 진다.
시어(詩語)는 시인의 삶의 크기를 나타내는 것이다. 때문에 시를 읽으면서 시인의 삶을 바라보게 되어 있다. 시인의 삶의 행동의 반경이 시 속에 잠재되어 있기 때문에 시의 무게는 삶의 무게로 비유된다. 김 선의 시인의 삶의 무게가 여성적이고 간절한 마음의 무게를 담고 있다는 것은 “그대가 꽃 피는 것이 / 처음부터 내 일이었다는 듯이”라며 한 마음을 내 몸이 아닌 또 다른 나의 마음에서 찾고 잇다는 것을 보며 느낄 수 있다.
돌에게는 귀가 많아
귀가 하나 둘 넷 여덟
나는 심지어 백 개도 넘는 귀를 가진 돌도 보았네
귀가 많은데 손이 없다는 게 허물될 것 없지만
길 위에서 귀 가릴 손이 없으면 어쩌나
나도 손을 버리고 손 없는 돌을 혀로 만지네
이 돌은 짜고 이 돌은 시네
달고 맵고 쓴 돌 칼칼한 돌 우는 돌
단 듯한데 실은 짜거나
쓴 듯한데 실은 시거나
혀끝을 골고루 대어보아야
돌이 자기 손을 어떻게 자기 몸속에 넣었는지
알 수 있네 무미무취라니!
무취한 사람이 없는 것처럼
귀가 많으니 돌이야말로 맛의 궁전이지
당신이 가슴속에서 꺼내 보여준
막 쪼갠 수박처럼 핏물 흥건한 돌덩이
맵고 짜고 쓴데 귀 가릴 손이 없으니
내 입술로 귀를 덮네
입술 온통 붉은 물이 들어
어떻게 자기 귀를 몸속에 가두는지 보라 하네
김 선우 시집 『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 』, 〈문학과지성사 〉에서
세속의 법이 아무리 크고 강해도 이 세상에 형성된 만물의 자연 이치는 뜨거운 분화구 속을 통과한 불덩어리였다는 사실이다. 그 불덩어리들의 아우성 친 흔적들이 돌이라 해도 무아(無我)의 세계 속을 영원히 들어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김 선우 시인은 그런 돌 속에서 귀가 열려 있음을 바라보고 있다. 말 못하고 움직이지 않는 돌의 귀가 무엇인지, 그 돌의 귀가 자신의 몸의 대상으로 비추어 지는 것을 만날 수 있다.
돌에는 생명이 없다. 즉 무노사(無老死:죽음도 늙음도 없다는 뜻) 많이 존재한다. 그런 돌에게서 세상의 말을 엿듣는 귀가 있다고 생각하는 시인도 돌처럼 움직이지 않고 자기 삶에 충실한 사람으로써의 한 곳에 정착을 하여 살고자 하는 마음이 깃들어 있다고 생각된다. 짜고 맵고 싱겁다는 말은 사람이 혀로 맛을 보아야 느끼는 것들이다. 그러나 사람의 삶을 비유하여 표현 할 때 짜고 맵고 싱거운 사실들이 사람의 내성과 연결 지어 진다. 그런 맛을 보는 입술들이 무아경 속에 깃들어 있는 돌을 구분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시인은 “내 입술로 귀를 덮네 / 입술 온통 붉은 물이 들어 / 어떻게 자기 귀를 몸속에 가두는지 보라 하네”라며 시선을 응시하게 한다. 이는 사람의 욕망이 얼마나 크고 무모하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김 선우 시인은 여성적인 몸을 통해 세상의 귀를 여는 생물적인 시인이다. 여성이 갖고 있는 육체적 본능 위에 삶이라는 또 하나의 세계를 구축하고 연결 짓는 고리가 남성의 삶과 동일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 만큼 우리 사회가 여성도 인격적이나 평등성에서 교두보를 확고히 다져가고 있다는 반증일 것이다. 과거, 가사 노동에 집중된 여성의 정체성이 이제는 사회적 참여를 통해 세상과 일체감을 가게 된 것은 산업의 발달과 함께 노동의 필요성에 의한 것이었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의 정신적 삶을 스스로 말하고 풀어갈 때 더 발전되어 진다고 본다. 김 선우 시인은 그런 여성적인 삶의 문제를 여성의 몸을 통해 생물적인 시를 통해 잘 보여주고 있는 시인이라 하겠다.
김선우
1970년 강원도 강릉출생, 1996년 『창작과비평 』 겨울호에 「대관령 옛길 」등 10편의 시를 발표 등단.
시집으로 『내 혀가 입 속에 갇혀 있길 거부한다면 』, 『도화 아래 잠들다 』, 『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 』가 있고, 2004년 현대문학상 수상, 시힘 동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