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좋은 현대시-밥에 골똘해지다 - 권순진
내가 읽은 좋은 현대시
밥에 골똘해지다 - 권순진
올해 쌀농사도 지난해에 이어 대풍이다. 하지만 농촌에선 풍년가를 듣기 힘들다. 재고누적으로 인한 쌀값 하락이 농민들을 우울하게 했다. 쌀 소비가 준 가장 큰 원인은 역시 서구화된 음식 문화 탓이라 할 수 있겠다. 사람들의 생활이 바빠지고 시간에 쫒기면서 아침은 생략하고 점심은 대충 해결하는 경향이 짙어졌다. 맞벌이 부부의 증가로 밥을 대신한 간편식이 늘어나고 다이어트 열풍도 작용했을 것이다. 저녁이라고 해서 크게 다르진 않다. 그 옛날 가족들이 빙 둘러앉아 먹는 두레밥상을 구경하기란 쉽지 않다. 술자리에서 때우기도 하고 저녁밥은 살로 간다 해서 기피하는 풍조마저 있다.
이래저래 우리가 하루에 먹는 밥은 두 공기 정도에 불과하다. 그것도 옛날의 고봉밥 기준으로 계량하면 한 그릇도 채 안 되는 양이다. 그렇다면 쌀 소비의 촉진 방안은 있는가. 언론 매체를 통한 밥의 우수성 홍보나 캠페인을 전개하여 소비촉진을 기대하는 것은 그 효과가 불투명하기 그지없다. 다양한 쌀 가공제품을 개발하고 보급 확대하는 것도 방법이긴 한데 그것 역시 한계가 있다. 지금 농민들은 북한에다 쌀을 지원하라고 주장하며 나섰다. 심지어는 과거의 퍼주기를 비난하는 인사들까지 가세했다. 북한의 하는 짓이 예뻐서거나 동포애의 신념으로 그러는 건 물론 아니다. 쌀값 안정을 위해 그렇게라도 돌파구를 열어야 한다는 것이고, 근본적인 쌀값 안정책을 요구하는 목소리의 다름 아니다.
‘밥은 먹었느냐’는 말, 지금도 쓰고는 있지만 그 말의 온도는 예전의 그것과 사뭇 다르다. 그냥 건성으로 내뱉는 말이 아니고 밥물 끓어 넘치게 하는 더운 기운으로 건네는 말 ‘진지 드셨습니까?’ 지금은 거의 사라진 이 ‘말씀’만이라도 복원된다면 한결 농민들의 시름은 줄어들 것이다. 밥의 배분이 잘 되어 배 곪아 하늘이 노랗게 뵈는 사람만 없게 해도 볏단을 불태우는 일은 없으리라. 온 식구가 함께 모여 저마다의 밥숟가락으로 밥을 떠서 입안에 넣고 매매 씹어 달게 삼키기만 한다면 이 땅의 모든 쌀은 소화될 수 있으리라. '따뜻한 밥상' 하나 집집마다 장만하는 것으로도 농촌뿐 아니라 온 나라가 훈훈해지리라.
‘밥’의 의미는 무엇인가? 수운(水雲) 최제우 선생은 '밥은 하늘이다'라고 말했다. 불가의 공양(供養)이라는 말은 바치고 기른다는 의미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식사기도를 외며 서둘러 성호를 긋기도 하고 아무 생각 없이 밥을 먹기도 하는데, 부지불식간 그 의미를 새겨 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밥이 우리에게 말하는 그 의미를 새겨들어야 할 차례다. 특히 살아온 날이 살아갈 날 보다 많은 사람에겐 더욱 그렇다. 결국 한평생 산다는 것은 밥을 먹는 일이다. ‘사는 것이 목적인 삶'에 한 그릇의 밥은 얼마나 소중한가. 한 그릇의 밥을 얻기 위한 수고는 또 얼마인가. 무엇으로 밥을 구하고 어떻게 밥을 먹느냐 하는 것은 바로 한 인간의 삶을 규정하는 것이 된다.
‘내가 니 밥이가’ 이 말은 ‘친구’라는 영화 가운데 한 대사로서 밥이 말귀를 알아들었다면 아마 불편했을 법하다. 그러나 같은 말을 성직자가 한 경우도 있다. 누구와 더불어 밥을 먹는 것은 사실 엄청난 일이다. 그 순간만큼은 더 없이 소중하기 때문이다. 작가 황석영의 <오래된 정원>에서는 사람이 같이 밥을 먹으면 정이 들기에, 정들면 안 될 것 같은 남자와는 아예 같이 밥을 먹지 말라는 충고를 하는 대목이 있다. 이런 밥을 시인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단순히 먹는 것 이상의 중요한 의미를 갖는지, 밥을 통해 우리에게 말하려고 하는 것이 무언지, 밥이 주는 의미의 편차가 있다면 어느 만큼인지를 알아보기로 하자.
밥이라는... / 지 순
밥이라는 말 대신
진지라는 말 입에 달고 살아야겠네
진주알처럼 빛나는
희디 흰 밥 한 그릇 올린
밥상은 늘 진짓상으로 올리고
담백한, 담백해서 맛있던 밥이라는 말
이제 그 말은 야생의 맛이 나네
옷깃을 풀어 놓은 밥상 앞에서 서로 권하며 먹고 마시는
따뜻한 순간에도 먹고 먹히는
핏빛 바람이 달려와 먼저 수저를 드네
김수환 추기경님 돌아가실 때
나는 밥이라 하셨네
나는 그의 밥, 그는 나의 밥이 되면
생은 영롱한 진주처럼 네 목에 걸린다 하셨으나
나 자신 있게 밥을 말 할 수 없네
누군가 그의 밥이 되는 것이 내 꿈이라고
밥이라는 말 입에서 떼어내고
밥이라는 말 대신 진지라는 말 입에 달고
노래 부르고 싶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진지...진지... 진지 드세요
진지 잡수세요...
이제는 사라진 담백한 그 맛
어머니 무덤처럼 그 앞에 엎드려
울고 싶은 그 말
잃어버린 보석 같은
- 월간 <스토리문학>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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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먹는 밥이냐에 따라 밥의 이름이 달라진다. 왕은 '수라', 양반이나 윗사람은 '진지', 하인이나 종이 먹으면 '입시', 귀신이 먹으면 '메'라고 한다. 같은 밥인데 누구의 목구멍으로 넘어가느냐에 따라 언어의 대접도 다른 셈인데, ‘진지’란 말에는 밥을 귀하고 공손하게 여기는 공경의 의미가 담겨있다.
입시든 진지든 예전의 담백하고 지순했던 밥의 의미가 요즘엔 많이 달라졌다. 구체적인 밥의 양극화라고나 할까. 경제적으로 살만한 현대인에게 밥은 그저 생존의 최소 수단이거나 도락의 대상일 수 있지만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가는 이들에겐 삶의 전부가 밥이다.
이미 밥그릇을 몇 개씩이나 차고 있는 사람들끼리 더 많은 밥과 그릇의 쟁탈을 위해 다투는가 하면, 한편에선 일용할 한 주먹의 밥을 위해 목숨을 건다. 서민들 역시 배부른 게 장땡이다. 정의니 주의니 하는 거창하고 고상한 구호는 먹고 사는 데 전혀 도움이 안 되며 먹히지도 않는다.
보다 못한 추기경님께서 ‘너는 내 밥이다’라는 그 말씀 뒤집어쓰시고 스스로 밥을 자처하셨다. 사랑은 자신을 내어주는 것이라며 배고픈 자들의 허기를 채울 밥이 되시겠다는 말씀. 하지만 누구에게 더운 밥 한 그릇 되는 거. 내 몸 스스로 풀어지고 으깨어져 익지 않으면 불가능 일. 사람이 밥 되는 세상은 우리가 꿈꾸는 세상이지만 아랫목에 묻어둔 고봉밥처럼 숭고한 사랑과 진지의 ‘보석 같은’ 의미를 깨치지 않으면 다가설 수 없는 길.
밥 한 봉지/ 박경조
쉬이 뜸 들지 못한 또래들 표정에 섞여
뭉게뭉게 부푸는 목요일의 정오
큰 솥의 멸치다시국물 우려질 동안 깨순이며
참비름 살짝 데쳐 무치고
봄배추 삶아 된장국거리 버무려 놓고, 생고등어 한 상자
튀김옷 입히면
복지관 담장 따라온 해묵은 이팝나무도
갓 지은 100인분의 막막한 기대 뜸 들이느라 분주하다
자원봉사자가 수저와 배식판 한 순배 돌리는 사이
귀먹은 끝순할매 오늘도 잽싸게 다음 한 끼니의 밥덩어리
또래들의 눈치까지 덤으로
검은 비닐봉지에 꼭 꼭 감추는 거 훔쳐보고 말았다
살아가는 힘,
저토록 처절하게 감추는 거구나
끝내는 죽음과도 묶여야 할 맹렬한 저 매듭 옆에서
자꾸만 얼룩얼룩 뜨거워지는 내 목구멍
- 시집 <밥 한 봉지 / 2008, 시와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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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어느 날 동네 청년회에서 노인들을 초청해 밥 한 끼 대접하겠다며 여든셋의 어머니에게 초대장을 보내왔다. “가까운 학교 운동장에서 한다는데 가실 거죠?” “안가고 싶다 마” “왜요?” “지난번에도 보이 할마시들 까만 비닐봉다리 꺼내서 마른 음식들 쓸어 담는 데 창피해서 못 앉아 있겠더라” “그게 뭐 창피해요, 손주들 싸줄려고 그런 거겠지” “말은 그리 해싸도 아인갑더라, 저거 처물라꼬 그러지, 그 나이에 무신 짜드라 어린 손자가 있겠노” “어쨌든 연세 드셔가지고 그런 거 너무 고깝게 여기지 말고 다녀오소” 대형마트의 시식코너에서 제공하는 이쑤시개 음식도 체면 없다며 외면하시는 어머니가 못 이긴 채 그날 행사에 다녀오셨다. “잘 댕기 왔능교?” “오늘 가만 보이 동네 영감 할마이들뿐만 아인갑더라, 이 동네 저 동네 돌아댕기미 밥 얻어묵고 그런갑더라, 그라고 인자는 영감탱이들까지 주무이에서 비닐 봉다리 꺼내데” “남으면 버려질 음식 아까워 그러겠지요.”
말은 그리해도 이쯤 되면 ‘살기 위해 먹느냐, 먹기 위해 사느냐’란 옛날에 많이도 들었던 그 진부한 순환론적 회의가 무색해진다. 박경조 시인의 ‘밥 한 봉지’에 담긴 비애는 이보다 훨씬 견고하다. 밥 한 ‘그릇’도 아니고 한 ‘봉지’라니. 아마도 끝순할매는 자기가 시의 주인공으로 등장했는지도 모르지 싶다. 나와서 ‘처절한 밥 감추기’의 날랜 액션을 통해 먹는 즐거움의 대상이거나 다이어트의 걸림돌 정도로 인식하는 현대인에게 ‘밥’대 ‘밥’의 아득한 거리를 일깨우고 보여주었다. 지겨울 겨를도 없이 목구멍을 넘겨야 하는 저 맹렬한 ‘살아가는 힘’ 앞에 먹기 위해서라거나 살기 위해서라는 질의와 대답은 얼마나 어리석고 되먹지 못한 사치인가. `밥벌레'는 되려하지 말라며 밥중독을 혐오했던 최남선이 추악한 지식인으로 전락한 것은 또 어떤 의미일까. 그런데 내 어머니의 사치스런 자존심도 실은 배를 곪아본 아득한 경험에서 비롯된 극기의 태도였음을 잘 안다.
혼자 먹는 밥/ 송수권
혼자 먹는 밥은 쓸쓸하다
숟가락 하나
놋젓가락 둘
그 불빛 속
딸그락거리는 소리
그릇 씻어 엎다 보니
무덤과 밥그릇이 닮아 있다
우리 生(생)에서 몇 번이나 이 빈 그릇
엎었다
되집을 수 있을까
창문으로 얼비쳐 드는 저 그믐달
방금 깨진 접시 하나.
- 계간 『詩向』 2006,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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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의 핵가족화와 가족 구성원 간 생활 시간대의 차이로 혼자서 밥을 먹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이 때 혼자 밥을 차려 먹는 게 귀찮아 대충 얼버무린다고들 많이 얘기한다. 하지만 또 어떤 이는 늘 혼자이기 때문에 밥이라도 제대로 챙겨야 자신이 살아있다는 걸 증명할 수 있을 것 같아 꼬박꼬박 정중하게 밥을 챙겨 먹는다는 사람도 있다.
혼자서 하는 일이 대체로 쓸쓸한 것이어서 밥을 먹는 게 유난히 쓸쓸하다고 할 수는 없다. 혼자서 뒹구는 잠, 혼자 챙겨먹는 알약, 혼자 보는 텔레비전 까지도 쓸쓸하기는 매한가지다. 물론 그 가운데 밥을 혼자 먹는 것은 조금 더 쓸쓸한 일이기는 하다. 그래서 우리는 집으로 돌아간다. 혼자 밥 먹기 싫어서다. 혼자 밥 먹고, 자고, 혼자 울고, 웃다가 혼자 고꾸라지는 게 싫어서 사람들은 집으로 돌아간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가도 혼자인 사람은 마냥 쓸쓸하기만 해야 할까. ‘방금 깨진 접시 하나’처럼 덩그러니 그믐달로 걸려있어도 좋단 말인가. 생각해 보면 누구나 빈 그릇의 생이지만 혼자라고 빈 그릇에 금이 더 많이 가고, 빈 그릇에 담긴 비애가 큰 건 아닐 것이다. 혼자면 또 혼자 나름의 삶의 양식이 존재하여 그걸 수용하고 즐길 수만 있으면 되는 것 아닌가.
몇 년 전 일본에서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를 올해 한국판으로 만든 ‘결혼 못하는 남자’의 남자 주인공 또한 그렇다. 남자뿐 아니라 여자도 마찬가지다. 언제나 마음대로 떠날 수 있고 시간과 노동에 쫓기지 않으며 무엇보다 자신에게만 충실할 수 있는 점은 독신생활의 매력이기까지 하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몇 가지 선행조건이 있다. 우선 경제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주위의 친구들은 결코 가난한 독신을 좋아하지 않는다. 다음으로 외로움에 특히 강해야 한다. 걸핏하면 우울해지는 성격으로는 오래 버틸 수 없다. 그리고 한없이 너그럽고 느긋해야 한다. 주위의 시선이나 호기심에 쉽게 흔들리지 말아야 함은 물론이다.
그러나 이 모든 조건을 충족하였다고 해서 혼자의 삶이 가족과의 오순도순 누리는 삶보다 결코 나을 수는 없다. 아무리 결혼은 신이 결정한 제도가 아니라 하더라도 독신은 정상적이지 못하고 자연에 반하는 것이다. ‘밥 먹자’ 이 방 저 방에 대고 소리치고, 몇 개의 그릇이 딸그락거리며 서로 부딪치는 그 ‘소리’가 들리는 가정 보다 나을 리는 없다.
밥 / 정진규
이런 말씀이 다른 나라에도 있을까
이젠 겨우 밥이나 좀 먹게 되었다는 말씀, 그 겸허, 실은 쓸쓸한 安分,
그 밥, 우리나란 아직도 밥이다 밥을 먹는게 살아가는 일의 모두, 조금 슬프다
돌아가신 나의 어머니, 어머니께서도 길 떠난 나를 위해 돌아오지 않는 나를 위해
언제나 한 그릇 나의 밥을 나의 밥그릇을 채워놓고 계셨다 기다리셨다
저승에서도 그렇게 하고 계실 것이다
우리나란 사랑도 밥이다 이토록 밥이다 하얀 쌀밥이면 더욱 좋다
나도 이젠 밥이나 좀 먹게 되었다 어머니 제삿날이면 하얀 쌀밥 한 그릇 지어올린다
오늘은 나의 사랑하는 부처님과 예수님께 나의 밥을 나누어 드리고 싶다
부처님과 예수님이 겸상으로 밥을 드시는 모습을 보고 싶다
그분들은 자주 밥알을 흘리실 것 같다 숟가락질이 젓가락질이 서투르실 것 같다
다 내어주시고 그분들의 쌀독은 늘 비어 있었을 터이니까 늘 시장하셨을 터이니까
밥을 드신 지가 한참 되었을 터이니까
- 한국시인협회가 펴낸 ‘사화집(1986년)’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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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둥시계의 동력을 공급해 주는 일, 태엽을 감아주는 동작이 밥을 준다는 말과 동의어임을 우습고 의아하게 생각했던 옛 기억이 있다. 그 후 별 의심 없이 그 말은 우리의 보편적 감성에 편입되어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되어 왔는데,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넘어 요즘엔 밥 먹는 시계는 거의 사라진 것 같다.
근거 있는 관찰일지는 모르겠으나 우리말에 중요한 사물일수록 한 음절로 되어있다는 것, 땅 밥 잠 옷 물 불 돈 똥 해 달 별 눈 코 귀 입 손 발 꽃 새 밤 낮 잠 길 비 눈 빛 말 ....이것들 가운데서도 으뜸은 밥이 아닐까 생각한다. 김지하 시인 말마따나 인류활동의 모든 것은 '제사'와 '식사'인데, 제사가 식사이며 식사가 바로 제사로서 이는 '밥'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활동이라 할 수 있겠다.
정진규 시인의 이 시에서도 그런 분위기를 엿볼 수 있고, 특히 부처님과 예수님이 겸상 하시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대목에서 21세기의 인류문화사적 중요 과제 가운데 하나인 종교와 종교 간의 화해가 염원되고 있음을 읽을 수 있다. 그런 대동화해가 실현된다면 우리는 인류 평화의 9할은 족히 획득할 수 있으리라.
남북통일도 그렇다. 김일성이 패기 넘칠 때 '인민들에게 이팝 같은 쌀밥에 소고기국을 날마다 먹일 수 있도록 하는 게 최대의 소원이며 과제'라고 자주 말했던 것과는 달리 지금의 북한 현실은 그것과 너무 먼 거리인 반면에 남쪽에는 남아도는 쌀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형편이다.
밥 줄 시계는 사라지고 없어도 우리는 밥이란 에너지원을 섭취해야하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먹어야할 밥이다. 그리고 밥이 남는다면 부처님과 예수님의 빈 쌀독도 채워드리고, 다시 그 쌀독에서 사랑이 넘쳐났으면 좋겠다. 적어도 이 땅의 모든 동포가 밥 한 공기 거르지 않고 마음 놓고 먹을 수 있는 날, 동서남북 좌우상하 그 통합도 당겨지리라.
긍정적인 밥/ 함민복
詩 한 편에 삼만 원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
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되네
시집 한 권에 삼천 원이면
든 공에 비해 헐하다 싶다가도
국밥이 한 그릇인데
내 시집이 국밥 한 그릇만큼
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덮여 줄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아직 멀기만 하네
시집이 한 권 팔리면
내게 삼백 원이 돌아온다
박리다 싶다가도
굵은 소금이 한 됫박인데 생각하면
푸른 바다처럼 상할 마음 하나 없네
- 시집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1996,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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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이야기를 하면서 함민복의 ‘밥’을 빼놓을 수 없어 그의 ‘긍정적인 밥’ 앞에 다시 섰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근사한 일은 함민복을 읽는 일'이라고 했던 소설가 박민규의 말이 문득 생각났다. 이 시가 실린 시집이 나올 무렵 그는 강화도의 한 폐가를 보증금 없이 월10만원에 세 얻었다. 그것도 마누라와 자식도 없이 혼자서 고욤나무가 서 있는 마당에다 살림을 부렸다.
그곳에서 그는 긍정적인 밥의 힘으로 적지 않은 시를 썼다. 뻘에 말뚝을 박으려면 힘으로 내려 박는 것이 아니라 ‘뻘이 말뚝을 품어 제 몸으로 빨아들일 때까지/ 좌우로 또는 앞뒤로 열심히 흔들어야 한다’는 것도 배웠고, 그물 매는 것을 배우러 나갔다 배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 ‘경진 아빠 배 좀 신나게 몰아보지/ 먼지도 안 나는 길인데 뭐!’ 농담도 할 줄 안다.
그의 시는 어렵지 않으면서 따뜻하고, 허황되지 않으면서 사는 냄새가 물씬하여 특히 가난한 사람들에게 많은 위로가 되었다. 솔직히 시의 값이야 수요와 공급의 시장경제 원리대로라면 그저 내놔도 팔려나가기 힘든 세상이긴 하다. 실제로 시 한편 써서 쌀 두 말과 바꾸어 본 시인이면 그런대로 이름값을 하는 시인이고, 그렇지 못한 시인도 수두룩하다.
그래도 시집 한 권의 값이 국밥 한 그릇과 맞먹는 사실에 분통을 터트리지는 않는다. 오히려 ‘국밥 한 그릇만큼/ 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덮여 줄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아직 멀기만 하다고 여기는 사람이 시인이다. 시인이 아무리 정신의 풍요를 선택한 사람이라 해도, 정직한 사람들의 숭고한 노동과 그 노동으로 얻는 밥 한 공기 앞에 가끔은 부끄러워지기도 하는 것이 시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