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문학/나의 시론

장문 시인의 시집 해설

설정(일산) 2009. 12. 4. 22:02

넓은 상상의 세계에서 이미지의 축약과 확대를 그리는 정통시인

지 성 찬

 

 

장문 시인은 그의 삶이 시창작이고 시창작은 신앙과 같은 것이다. 다시 말하면 그의 인생을 오로지 시창작에 걸었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시창작에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있는 시인도 그리 흔하지 않다.

팔자에 없는 목수가 되어 건설현장에서 땀을 흘리며 치열하게 살아가는 장문 시인은 “뜨거운 삶의 경험”을 갖고 있다. 이 경험이 시창작에서 매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고, 그의 시가 독자에게 진한 감동을 주고 있으며 장 시인만의 특유한 시의 맛을 내고 있다.

그는 현대시만을 쓰고 있었으나 필자를 만나 시조에 심취하게 되었고, 그의 시창작에 시조의 아름다운 율격을

가미하게 되어 시의 미학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계기가 되었다.

이번 시집에서는 시조와 현대시를 함께 묶어서 보여주게 되었는데 이만한 작품의 무게라면 쉽게 만날 수 있는 시집이 아니며, 결코 가볍게 읽어버릴 작품집은 아니라고 확신한다.

장시인에게는 시가 종교와 같은 절대적인 존재이듯이 시창작에 대한 열정과 욕구는 타시인과는 확실히 다른 면이 있다.

이러한 열정과 욕구는 현실에서 만나는 큰 장벽을 허물고 해결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현실적 상황과도

무관하지 않다. 그가 접하고 있는 현실을 그의 작품 “무제無題”에서 만날 수 있다.

 

객관식 하나 없는 문제들을 받았었다

시름을 낳다 보니 不惑불혹도 넘었는데

백지에 낙서만 가득해라 지우개를 갖고 싶다

 

사는 건 시험試驗같아 날마다 숙제였다

참고서 하나 없는 처음 본 문제들을

어떻게 풀어야 좋을 지 알 수 없는 윤회생사輪廻生死

(無題무제 전문)

 

매일 만나는 일들이 마치 “시험을 보는 것 같은 시련과 같기도 하고, 풀기도 쉽지 않은 문제들”이라는 이 작품에서 사용하는 시간만큼 유용한 소득도 없이 낙서 같은 일들로 채워져 있다고 고백하고 있다. 그렇게 시간들이 흘러가고, 또 인생도 흘러가는 것이니........

하지만 결코 그가 보낸 시간들이 헛된 것만이 아님을 우리는 알 수 있다. 그런 아픔과 좌절들이 시창작에서

좋은 재료가 되어 좋은 글로 생산되었으니 결코 헛되게 보낸 시간만은 아리라고 할 수 있다.

장 시인의 다양한 경험들은 다양한 시창작의 형식과 함께 새로운 시적표현의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이런 시창작의 새로운 도전과 실험은 그가 열망하는 새로운 시세계를 열고자 하는 데에 닿아 있다. 이러한 새로운 실험과 도전으로 창작된 그의 작품의 경중輕重에 대하여는 차후에 저울질 될 것이고, 작품 그 자체만으로도 존재 의의를 둘 수 있을 것이다.

“어떤 대화 2007”, “불깡통 앞에서”, “명절 전야”, “수원아리랑”, “꿈에 쓴 일기”등이

이에 속하는 작품이다.

 

원산지: 전북 김제군 금구면 옥성리 율산 마을

수  령: 96년

종  류: 노목 암컷

병  명: 악성 외로움

처  방: 영양주사 장시간 투여

효  과: 갱사수명更賜壽命

 

최고급 영양제들이 기관차량에 실려 철도 위를 달려가고 있다

(영양제명-아들 며느리와 그 자식들)

또 다른 영양제들이 고속도로 위에 진열되어 있다

(영양제명-딸 사위와 그 자식들)

 

할머니

금년까지만 용서하세요.

돈 많이 벌어 내년에는

갈게요

(“명절 전야” 전문)

 

시의 형식도 이채롭고 그 표현 또한 새롭다. 그러면서 독자에게 강렬한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다.

시골 고향에 사는 96세의 할머니의 삶을 상황 전개를 통하여 간접적 표현기법으로 잘 묘사하고 있다.

인생에서 가장 보람된 것이 피붙이를 거느리는 것이고, 그것이 삶의 원동력이 된다. 그런 피붙이들이

고독을 치유하는 좋은 치료제가 되는 것이리라.

 

장 시인이 그러한 실험과 도전을 가능케 한 것은 어떤 치기에 의한 것이 아니라, 기본기가 잘 다듬어졌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기본기가 다듬어지지 아니한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실험과 도전은 단지 치기에 끝날 수 있지만 기본기에 충실하고 이를 바탕으로 원숙한 시창작의 경지에 이른 장 시인의 경우는 매우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시의 소재에 따라 자유자재로 시의 형식을 채택하고 그 표현기법을 적절히 조정 조율하고 변용하는 그의 시적능력을 그의 작품에서 볼 수 있다. 아주 작은 형식으로 축약 축소하기도 하고, 풀어헤쳐 확대하여 활기차게 독자 앞에 진열하는 그의 솜씨가 크게 돋보인다. 그러면서도 시가 갖추어야 할 운율을 타고 흐르는 시의 감각은 독자를 끌어안기에 충분하다 할 것이다.

 

6월의 집

-수국과 장미그녀가 

웃음을 터트렸다

 

옆에 있던 女人들이

덩달아 웃기 시작했다

한번 터져버린 웃음이

전염병처럼 번졌다

 

女人들은

배꼽이 드러나는 줄도 모르고 웃는다

녹색, 치마끈이 풀리는 줄도 모르고 웃는다

 

무슨 일일까 몰려나온 장미들이

그 모습을 보았다

 

‘저런, 얌전치 못하게 시리….’

 

구경하던 장미들의 얼굴이

새빨갛게 물든다(“6월의 집- 수국과 장미” 전문)

수국과 장미의 모습을 분위기적 표현을 통해서 이만큼 묘사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의 감각 또한 수준급이다.

장미가 사실은 수국보다 얌전하다고 할 수 없으되, 아이러니하게도 이 작품에서는 그 반대로 표현하고 있어

표현을 극대화하고 있다. 시원하게 풀리는 시의 맛을 독자에게 주고 있다. 마치 텔레비전으로 현장을 생중계하는 그런 느낌을 이 글에서 받는다. 이런 정도의 시가 되어야 독자에게 시를 읽어달라는 부탁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래의 작품 “사랑-연과 얼레”는 장 시인의 축약하는 시적표현의 기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짧은 글 속에 인간의 사랑에 대한 본질을 잘 그려내고 있다. “사랑은 감당할 수 없는 바람”이라고 하면서

그 “바람”의 정체는 무엇이냐고 화두를 던져주고 있다.

감당할 수 없는 바람이었다

얼레에는 더 이상의 연줄이 남아 있지 않았다 돌아올 수도 다가갈 수도 없는 거리를 두고 엉성한 매듭만이 마지막 희망이었다

 

바람의 정체가 무엇일까한 순간에 마음을 흔들어 버린

 

서로에게 변명하기 좋은 날

툭!

연줄이 끊겨나간다(“사랑-연과 얼레” 전문) 장 시인의 시창작의 능력을 잘 보여주는 20여자로 된 단 두 줄의 시를 몇 편 보여주고 있다.

그렇지만 그 짧은 행간에 많은 것을 숨겨두고 독자에게 그 숨겨둔 것을 찾아보라고 권한다.

능소능대의 능력을 보여주는 그의 작품 “봄.1”의 전문은 아래와 같다.

 

가만히 겨울붕대를 풀어본다

이젠 눈이 멀어도 좋으리

(“봄.1"의 전문)

 

단 두 줄의 글로서 화려하게 부활하는 봄, 꽃이 만발하는 봄의 향연을 이만큼 표현하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러한 짧은 시의 형식이 가능한 것은 넓은 시적 상상력으로부터 오는 것이다. 결코 작은 상상력으로는 이런 글이 창작될 수 없다. 다시 말하면 할 말이 없어서 시가 짧아진 것이 아니라, 많은 상상력으로부터 건져진

삶의 진한 엑기스인 것이다. 솜씨 없는 무능한 시인들이 장황한 설명으로 시를 풀어간다. 시는 장황한 설명으로 씌여지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시인들이 이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사실 시가 길어질 이유가 없다.

 

그의 작품 “겨울 속 두 사람”에서는 그의 예리한 관찰력을 볼 수 있다.

 

한 사람은 뼈 밭에서 덜덜 떱니다

한 사람은 꽃 밭에서 신났습니다.

(“겨울 속 두 사람”의 전문)

 

눈에 덮인 나무들을 보면서 한 사람은 눈 속의 나무가 뼈와 같다고 보았고, 한 사람은 눈 속의 나무가 마치 꽃이 피었다고 보았습니다. 장 시인의 지적능력과 통찰력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현실을 보는 관점에 따라서 그 차이가 매우 큼을 볼 수 있다. 문제를 푸는 해답은 문제 속에 그 답이 있다고 하였다. 즉 문제를 알면 그 문제 속에 답이 있다는 말이지요. 현실의 상황을 알게 되면 그 현실의 문제를 타개하는 방법을 거기에서 찾을 수 있다.

 

다음의 작품들을 통해서 이를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읽을수록 맛이 나는 짧은 시를 만나는 것은 큰 기쁨이다.

 

들어오는 문도 나가는 문도 없는데

내 가슴에 머물다 가는

(“가을”의 전문)

 

바다 앞에서 길을 잃었습니다

나 이제 어디로 가야 합니까

(“정동진”의 전문)

 

사당역 지나면서 사당祠堂을 모르듯

한 해를 지나면서 내가 한 것 없습니다

(“불변”의 전문)

 

단지 하늘을 바라본 것 뿐인데

돌아가는 길을 잊었습니다

(“가을밤에”의 전문)

 

장 시인의 이런 성과물은 그가 시조를 창작함으로써 얻어진 수확이라고 확신한다. 그가 시조를 창작하지 않았다면 이런 큰 성과물을 획득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가 시조를 만난 것은 큰 행운이었다고 생각한다.

시조가 가지고 있는 가락과 내용을 축약하는 표현기법을 시조창작에서 터득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두 줄짜리 짧은 시를 쓰는 장 시인이 9수의 긴 연시조를 쓴 호흡도 보여주고 있다.

 

노동수첩․137

 

 

한때 연못에는 송사리가 살았었다

물방개 소금쟁이 다 함께 동무하며

태극기 휘날리던 곳 희망의 터전에서

 

문명의 비가 왔다 쉬지 않고 쏟아졌다

어디서 어디까지가 연못인 줄도 모른 채

모두가 헤매는 사이 바다가 되어 갔다

 

짜디 짠 물속에서 하나 둘 씩 쓰러졌다

게 중에 강한 것들은 변신을 거듭하더니

얼마의 세월 뒤에는 송사리가 숭어 되고

 

체질이든 사상이든 독하지 못한 것들

진실만을 고집하며 신앙처럼 믿는 사이

가족은 영양실조에 악성빈혈로 헤매고

 

거짓말도 세뇌 되면 사실처럼 믿게 되듯

될 수 없는 숭어의 삶을 송사리는 꿈꾸더니

어느 날 들여다 본 거울 속엔 제 모습도 잃었더라

일용할 양식 위해 어디로 가야 하나

가끔은 희망마저 놓고 싶은 날 있다

바다의 어떤 법 안에서도 보호되지 않을 땐

 

구호를 외쳐 보고 머리띠를 두른다고

눈 하나 깜짝해 줄 바다가 아니란다

내 일이 아닌 이상엔 메아리뿐인 이질성(異質性)

 

엎친 데 덮친 듯이 황사(黃砂)가 달려든다

창과 화살 말발굽 보다 잔인하고 가혹함,

바다가 딴청을 피우는 사이 주인이 되어 간다

 

시나브로 죽어가도 못 느끼는 죽음 있다

네가 사는 물 온도가 백도까지 올라가도

일도씩 살점 익히다 그 순간이 오기까진

(“노동수첩.137”의 전문)

 

“노동수첩.137”에서 생경한 표현들이 눈에 띄기는 해도 그가 이만큼의 긴 호흡으로 시조를 풀어갔다는 것은

예사 일이 아니다. 그가 일상 접하는 노동의 현장에서 일어나는 일 속에서 얻어진 사건과 현상들을 재구성하여 보여주는 현실감 있는 표현들은 높이 살만한 일이다. 음풍농월식이 아닌 일상에서 우리가 대하는 절실한 문제들을 짚어보고 고발하는 자세가 시인들이 지녀야 할 덕목들이다. 아파트 현장에서 목수로서 일을 하는 장 시인이 쓴 “목수와 아파트”는 그가 아끼는 작품 중의 하나로 여겨진다.

 

목수와 아파트

 

누군가의 고향故鄕을 지우러 가는 길은

인적이 아주 드문 새벽길이 제격이다

사는 게 급하다 해도 편치만은 않아서

 

선택된 골조물이 하늘로 솟는 동안

이웃 집 논밭에는 금화가 익어갔다

꽝꽝꽝 새 떼를 따라 망치소리 달려가고

 

최신식 고려장을 외면이야 하겠는가

쉬이는 썩지 않을 견고한 무덤인 걸

못이야 충분히 박지 천 년도 갈 명작이네

(“목수와 아파트”의 전문)

 

아파트 건축에서 가장 중요한 공정이 골조를 올리는 것이고, 이 골조를 올리는 작업에서 목수는 절대적 역할을 한다. 평화로운 시골에 아파트가 들어서고 보면, 고향은 없어지고 그 자리에 쉬 썩지도 않을 그런 건축물이 들어선다. 시골 어디를 가도 고층아파트가 자리하여 경관을 해치고 자연의 아름다움이 손상 되어 감을 목격한다. 아파트라는 괴물이 많은 것을 삼켜가고 있다. 이러한 고층 아파트를 올리는 노동의 질은 힘들고 험하다고 할 수 있다. 춥고, 덥고, 비가 오고, 바람 불고, 눈이 오고.

노동의 조건 또한 녹녹하지가 않다. 든든한 아파트 골조가 세워지기 위해서 목수는 단단한 못을 수 없이 때려 박아야 한다. 그러나 어쩌랴. 모든 것을 인내하며 주어진 시간 안에 수행해야 하는 일들. 못 대가리를 망치로 치듯이 그렇게 가슴에 못질을 하는 것이 인생이다. 장 시인 자신도 자신의 가슴에 수많은 못질을 하였다. 하도 많은 못을 박았기에 이제는 못을 박을 자리가 없는 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제는 인생에 도통을 했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그의 글을 보면 인생의 깊은 내면에 이미 닿아 있기 때문이다.

 

 

재산목록 선두였던 너를 기억한다

안방 명당자리 당당하게 차지하고

아무리 세월이 가도 불변일 줄 알았던

 

현실을 인정하고 체념한 듯 보였다

밖으로 퇴출당한 자개장을 보면서

왜일까, 버티고 있는 자신이 용한 것은

(“폐 가구”의 전문)

 

폐 가구를 보면서 자신을 돌아보는 장 시인을 만난다. 아직까지 현장에서 일 하면서 현실과 맞서서 나아가는 자신이 어쩌면 대견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는 아직까지 자신감을 가지고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결코 실망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새로운 마음과 각오를 충전하면서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다. 그를 지탱하는 것은 그가 아직 미실현의 희망이 있기 때문이며, 그 희망은 완성을 향해 달리는 시창작이다. 시창작의 불길이 그의 가슴에 뜨겁게 타오를 때 까지 그는 열심히 뛰고 또 뛸 것이다. 오늘 보다 내일이 더 발전된 모습이라면 그 인생은 희망이 있다. 장 시인이 시창작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정진하여 날로 발전된 모습을 보여준다면

그는 분명 시의 높은 정상에 올라설 것으로 믿는다.

그리하여 미래의 장 시인에게 미리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