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홍의 가울 단풍 외 1편
가을 단풍 외 1편
김 기 홍
여순사건이 끝나고 남북전쟁도 끝이 나자 예쁜 여자들 튼실한 남정네들 철삿줄에 손 묶이어 숲 속으로 끌려간 뒤 소식이 없었다.
살이 붙은 뼈들을 개가 물어 갔다 하고 백녀시가 물어 갔다 하는데 아랫마을 주막에선 폣병쟁이가 가져갔다가 갈아먹고 몸이 나았다고 소문이 났다.
사실 꿈을 버리지 못한 영혼들은 나무 속으로 들어가 나뭇잎으로 피어 일 년에 한 번 쯤은 꼭 소원을 외치며 몸을 던진다. 붉게 타 들어간 심정으로 골짜기를 꽉 채워 흐르며 소리 없이 외친다.
연약헌 당신한테 어린 새끼들만 냄겨 놓고 가서 미안허네. 내 몸 붉은 단풍으로 떠내려가면 무명바지 적삼 두들기데끼 방망이로 내 흔적 다 없아지도록 뚜드려 패 주소.
내 기언씨 평화통일 이루어 놓고 말랑께 나 원망허지 마씨요, 이. 내 뱃속에 든 애기 단풍나무 씨앗 보듬고 바람개비로 노니께 그 나무 아래 가거든 날 보듬떼끼 꽉 한 번 보듬아 주쑈.
----------------------------------------------------- 본능
그 해 2년 전이었다. 창원시 신덕 뒷산 소나무들은 따개비처럼 솔방울을 달고 아무 여자에게나 하얀 정액을 뿌려댔다.
그 마을 따개비처럼 들어앉은 블록담 속 어느 셋방에선 밤마다 비명이 세어 나왔다. 벽을 할퀴는 암코양이와 엄청난 소나기를 퍼부을 것 같은 숫소의 끓는 신음 뒷날엔 언제나 빈 소줏병 몇이 문 밖에서 바람을 채우고 있었다.
무지하게 썩은 냄새가 진동하던 마당 시궁창에 발이 빠진 그날 밤 빨랫줄에 걸어놓은 오징어가 사라진 그날 밤
내 옆집에선 비명 아닌 비명이 벽을 할퀴며 들려왔다. 한 번 하자. 안 돼. 한 번만 하자. 안 된다다니까.
귀와 눈을 막았던 누더기를 풀고 나온 새벽 옆집 열린 문 앞에선 겨울 햇발처럼 향이 타고 있었다. 예전엔 잘 나가던 노가다 미장이였는데 어쩌다보니 폐결핵에 걸려 술로 살다가 그래도 씨앗이라도 뿌리고 싶었는데 그 원도 풀지 못해 소줏병 움켜잡고 또 다른 길을 걷고 있었다.
굴삭기 앞세워 사복경찰과 용역 깡패들 폭풍처럼 들어 친 날 신도시 앞 마을 슈퍼 평상에서 신덕마을 젊은 느티나무 몇 훌쩍이고 마을 가운데 가중나무 내려와 오십년 세월을 폭 끓인 죽처럼 설움을 게워 냈다.
흔적도 없이 사라진 마을 내려다 보던 비음산 너들겅 옻나무들 바람 없어도 가슴 쥐어뜯으며 발갛게 저물어갔다 핏빛으로 타오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