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문학/나의 산문

그릇(시가 있는 에세이)

설정(일산) 2009. 7. 1. 09:06

월간 에세이 95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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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에세이

 

그릇

 

지성찬(시인)

 

너무 크면 채울 수 없고

작고 보면 넘친다네

 

조금은 크더라도

넉넉함이 나으리라

 

깨끗한 그릇이라면

더 더욱 좋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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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끗한 그릇

 

일상생활에서 그릇은 긴요한 물건이면서도 그 쓰임새의 편리함을 느끼지 못한다.

재질과 모양, 색상과 무늬 등에 있어 그 종류를 헤아리기 어렵다.

값진 그릇에서부터 헐값의 플라스틱, 토기제의 그릇에 이르기까지 그 계급의 격차 또한

헤아릴 수가 없다.

값진 그릇은 과연 무엇일까?

쓸 수 있는 그릇은 무엇일까?

어느 때 어느 그릇을 쓸 것인가?

주인이 쓸 수 있는 그릇은 재질과 모양이 훌륭한 그릇이 아니라 깨끗한 그릇이다.

깨끗한 그릇에 깨끗한 음식을 담을 수 있다. 재질과 모양이 훌륭한 그릇일지라도

불결하면 사용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재질과 모양을 자랑할 것이 아니라 깨끗하게 잘 준비된 그릇을 자랑해야 한다.

우리는 깨끗한 그릇보다는 값비싼 그릇에 눈길이 간다.

또한 그릇은 용도에 따라 그 크기가 적절해야 한다. 내용물보다 큰 그릇을 대하고 보면

민망스러울 때가 있다.

또한 작은 그릇에 넘치도록 많은 음식물을 담는 것을 보기도 한다. “적당”하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릇은 항상 깨끗하게 준비되어 있어야 쓸 수 있다. 요즈음 우리 주변을 보면 질박하지만

깨끗한 그릇도 많고, 좋은 그릇이지만 쓸 수 없는 오염된 그릇도 많이 볼 수 있다.

신문의 어지러운 사회면 정치면의 기사를 대할 때면 “깨끗한 그릇”이 절실하게 요구되는

때이다.

나라의 장래를 위하여 교육과 사회, 문화의 정책방향도 이 사회가 요구하는 쓸모 있는 그릇을 준비하는 데에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이다.

오늘의 나의 그릇은 깨끗한 그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