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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이상학적 시적표현과 형이하학적 시적표현

설정(일산) 2009. 7. 1. 13:41

형이상학적 시적표현과 형이하학적 시적표현

-시조세계 2003년 봄호의 작품을 중심으로-

 

지성찬

 

시창작에서 있어서 중요한 두 가지 요소는 소재와 표현방법이다. 표현방법은 소재의 종류에 따라 달라지게 마련이고, 작자가 소재를 선택하게 되는 기준은 작자의 생각과 성품에 기인한다.

작자의 생각과 성품이 작품에 그대로 나타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고 필연적인 결과일 수 밖에 없다.

그러한 작품의 경향이 좀처럼 바뀌지 않는 것은 작자의 생각과 성품이 좀처럼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작품의 소재는 형이상학적인 것과 형이하학적인 것으로 크게 대별할 수 있는데, 그러한 시적 소재로서의

가치는 인생의 삶이 얼마만큼 잘 투영되어 있는가 하는 결과에 달려있다. 인생의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체요 원동력은 “사랑” 이다.

사회생활에서 사람이 사람을 만나고, 인연을 만들어 가면서 두 가지 결과를 얻게 된다. 하나는 사랑이요

다른 하나는 “사랑의 없음”이다. “사랑의 없음” 은 바로 증오이다. 인생에서 추구하는 것은 넓은 의미에서 사랑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사랑으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기뻐하고 슬퍼하고 낙심하고 좌절을 한다.

그런 것들이 잘못 발산되어 욕망의 불을 지피고, 질병을 일으키고, 폭력과 살인을 유발하고 전쟁을 일으킨다.

그런 사랑에도 많은 색깔의 그림이 있는 것이 사실이고 그 그림에 따라서 많은 감동을 유발한다.

바꾸어 말하면 시의 그림에서 사랑의 맛과 냄새를 맡을 수 없다면 작품으로서 존재가치를 이미 상실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넓은 의미의 사랑은 “삶에 대한 따뜻한 사랑의 인식과 접근”을 의미한다.

따라서 단순히 자연의 아름다움을 찬양하고 즐기는 투의 글이라면 거기에 인생의 삶이 투영되어 있지 아니하기에 시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오늘날 아직도 많은 시조에서 보게되는 음풍농월류의 글은 작품으로서의 존재가치를 확보할 수가 없다.

 

암솔(雌松)이

별의 정(精)을 받아 잉태한

송이버섯

 

슬그미

산을 들치고

물소리에 젖노라다

 

아, 그만

천기(天氣), 천향(天香)을

바람결에 들켜라.

(허일 시인의 경이(驚異) -송이(松栮))

 

허일 시인의 경이(驚異)는 형이하학적인 소재이면서도 그 품격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종장에서 분위기를 반전시킨 시적표현에 기인한다. 이 시조를 읽는 독자는 유머스런 표현에 한 번쯤 웃게 될 것이고 어떤 이는 화장실을 가게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육감적 감성에 의지한 표현이상의 것을 제시하지 못한 것은 그소재의 한계성에 있다고 할 것이다. 별, 천기(天氣), 천향(天香)의 언어로서 시적분위기를 잘 조성한 기교는 높이 살만하다.

다른 작품 “메아리가 떠난 마을”은 황페한 우리의 환경을 “까치가 울지 않는 마을”로 적확하게 표현하고 있는데 꿈을 잃어가는 우리의 모습을 다시 확인하게 해준다. “울다” 라는 언어가 너무 많이 사용된 것은 재고할 필요가 있지 않나 생각된다.

 

사실적 표현으로 표현한 허일 시인과는 달리 신웅순 시인은 멀리 우회적으로 숨어서 암시하는 표현으로

자기의 사랑을 전하고 있다.

 

불빛은 무얼 하는지

밤새 켜져 있고

바람은

무얼 하는지

밤새 창을 흔든다

 

어둠은

무얼 하는지

밤새 문을 기웃거리고

(신웅순 시인의 내사랑은 30 전문)

 

이 작품의 표현 기법은 제3자적 입장에서 자기를 조명하고 있는 것이 특이하다.

자기의 얼굴과 내면을 철저히 감추고 그 결과만을 독자에게 제시하고 있다.

초장은 작자의 불면의 밤을, 중장은 작자의 아픈 마음을, 종장은 고독하고 절망스러운 시간을 암시하고 있다.

굳이 아쉬운 점이 있다면 종장에서의 반전효과가 약하다는 점과 조금은 독자에게 자기의 일부를 노출시켜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소시집으로 11편의 작품을 발표한 이한성 시인은 역작들을 독자들에게 선사하였다.

11편의 작품중에서 성을 주제로 한 3편의 작품이 섞여있는데 *미성년의 성, *성숙한 젊음의 성, *보다 성숙한 성을 다루고 있다.

 

가)

그 봄날 키득거리며 몸 섞을 땐 좋았던가

젖도 떨어지지 않는 것 그냥 내버려 두었구나

요즈음 젊은 것들이 화근이다 화근이다.

 

누가 저 겁 없는 10대들을 잠재울까

대책 없는 사랑 놀음, 피도 살도 다 태운

덜 여문 빈 젖꼭지만 콩알처럼 까맣다

(이한성 시인의 풋감 떨어지다의 첫째, 둘째수)

 

나)

길을 잃은 바람처럼 넋을 놓고 보고 있다

꿈꾸듯 출렁이며 연꽃처럼 떠오르는

숯처녀 은밀한 그곳, 금가락지 끼고 있다

 

간밤에도 참대숲은 잠 못들어 뒤척였다

서로의 몸 비비며 물안개를 휘어 감고

젖은 속 아픔만 남아 시퍼렇게 멍들었다

 

발자국 하나 없이 하늘 길을 걷고 있다

비가 되어 말문을 연 먹구름도 뒤로하고

노총각 타는 가슴을 숯이 되게 놓아두고

(이한성 시인의 달무리 전문)

 

다)

꽃이 진 민대궁도 향은 늘 남아 있다

덜 익은 나팔 주둥이 숭숭 뚫린 게 구멍에

게 대신 들락거리는 일벌,

노동이 한창이다.

 

쭉 뻗은 빨대 구멍 물오르는

가쁜 소리

온몸을 떠는 연잎

지금은 간음(姦淫)중

진흙뻘

물 밑 속에서

실 뿌리가 팽창한다.

 

이한성 시인의 위의 세 작품은 결과적으로 성을 표현한 작품으로 형이하학적 시적표현으로 분류할 수 있을 것이다. 가)는 미성년의 성을, 나)는 성숙한 젊음의 성을, 다)는 보다 성숙한 성을 다루고 있다.

하지만 단순히 성만을 주제로 한 것이 아니라 거기에는 또 다른 내용을 함축하고 있다.

가)의 풋감 떨어지다 에서는 10대들의 사회현상을 풋감으로 환치시키는데 성공하였는데 그 중에서도 “덜 여문 까만 젖꼭지” 와 “풋감”의 이미지가 교묘하게 합치하여 효과를 얻어내었다.

 

나)의 달무리에서는 노골적 표현에 가까운 성적표현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이 시를 받치고 있는 버팀목이 되어준 시적표현은 “발자국 하나 없이 하늘 길을 걷고 있다”인데

형이상학적 표현으로 끌어올리는 효과를 가져오면서 시의 품격을 높이고 있다.

이 작품의 표현의 특징은 회화적 아름다운 세계로 독자를 안내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의 연지(蓮池)는 나)에 비하여 보다 적극적이고 노출적인 성적표현을 하고 있다. “물밑 속에서 실 뿌리가 팽창한다” 는 표현은 이 시의 백미였다. 나) 의 분위기는 보다 고상한 젊은이들의 상상적인 성의 표현이라면 다)는 알 것을 다 알아버린 달인들의 성을 표현한 것으로 보여진다.

그것은 나)의 분위기는 하늘 이었고 다)의 분위기는 질척한 뻘밭인 것이 이를 말해주고 있다.

위의 3편의 작품들이 감각적인 시적표현에서는 성공한 것으로 보여지지만 행간에 숨겨진 깊은 맛을 곁들이지 못한 아쉬움이 있기는 하지만 시의 한 영역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어서 언급을 하였다

 

이한성 시인의 다른 작품 “깊은 산도 길은 있다” 는 또 다른 분위기를 독자에게 선사하고 있다.

 

잡풀만 키를 재는 깊은 산도 길은 있다

춘설차 따르는 소리

적막(寂寞) 속에 길을 내듯

계곡의

흰 물소리가

길을 내기 때문이다.

(이한성 시인의 “깊은 산도 길은 있다” 의 전문)

 

적막 속에 길을 낸다는 발상도 기발하거니와 그 길을 내는 것은 “춘설차 따르는 소리” 로 시작하여 “흰 물소리”가 길을 낸다는 새로운 표현도 놀랍다.

스스로 노력한다면 길이 없어 보이는 깊은 산에도 우리는 길을 낼 수 있고 우리가 가고자 하는 목적지를 향하여 전진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춘설차 따르는 소리”가 “적막 속에 길을 낸다”는 표현은 초현실의 세계에서 느껴지는 형이상학적 영역의 표현이라 할 것이다.

 

백이운 시인의 “고요에 기대어”는 난해한 선(禪)의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등 굽은 소나무 아래

찻잔 하나 놓인 찻상

탕관에 물 끓는데

손님이 왔나보다

주인이 자리 뜬 사이

천년 가고 천년 오고

(백이운 시인의 “고요에 기대어”의 전문)

 

이 시를 감상하기 위해서는 깊이 생각하면서 글의 행간의 뜻을 살펴야 한다.

이 글의 소재는 하나의 그림에서 얻어진 것으로 보여지는데 상황 설정에 있어서 “등 굽은 소나무”가 하나의 열쇠를 제공한다. 그 소나무는 등이 굽은 상태여서 오랜 세월을 간접적으로 암시하고 있으며, 찻상을 준비하고

탕관에 물을 끓이고 있는 것을 보면 손님을 맞이할 준비를 완벽하게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에 손님은

단순한 의미의 손님이 아니라 주인이 가장 존경하는 존귀한 분으로 인식할 수 있다. 이 세상에서 나의 존재는

주인일 수도 있겠으나 잠시 다녀가는 손님일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의 생각에 따라서 천년을 거슬러 올라가기도 하고 천년을 보낼 수도 있을 것이다. 한 편으로 천년이란 세월도 긴 세월 속에서는 순간일 수도 있을 것이다. 찻상을 준비하고 탕관에 물을 끓이는 마음은 절대자를 향한 수도자의 자세라고 볼 수 있다.

선(禪)의 세계를 잘 표현한 형이상학적 수작이었다.

이 작품과 같은 계열의 작품이 “시인의 방”으로 볼 수 있다.

 

촉 굵은 만년필을 생일선물로 받아들고

짙고 푸른 잉크 넣어 이름자를 써본다

무딘 손 막힌 기(氣)도 돌아 새로 피는 매화잎.

 

아, 이 얼마 만인가 새 촉의 서느런 촉감

등을 타고 흐르는 안도의 따듯한 숨은!

몸 풀고 향기로 남아 고매( 古梅)같은 어머니 곁

(백이운 시인의 “촉, 눈뜨다” 의 전문)

 

백이운 시인의 “촉, 눈뜨다”는 일상에서의 평범한 일을 매우 신선하게 표현한 작품이었다. 과거의 정서를 환기시키면서 따스한 사람의 정을 솟게하는 수작이다. 펜촉에서 나오는 글씨가 새로 피는 매화잎으로 변환시키는

작가의 놀라운 기교가 돋보인다.

이 작품에서 다시 한 번 시창작에 대한 교훈을 얻어야 한다.

이 작품에서와 같이 *시의 소재는 일상의 주위에서 찾아야 하며, *사용하는 언어는 일상적 언어로서

쉽게 표현해야 하며 *표현은 쉽게 하되 내용은 뜻이 깊어야 하며 *시에 이야기가 있으며 *따듯한 정서가

시의 행간에 흐르고 있으며 *문장의 흐름이 유연하여 막힘이 없고 *시적 분위기를 해치는 언어가 없이 모든 언어가 서로 조화를 이루어 전체문장의 분위기를 잘 조성하고 있는 점이다. 시는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분위기로 표현되어한다는 것을 잘 보여준 작품이다.

시의 맛을 아는 훌륭한 독자는 바로 시인이다. 훌륭한 독자가 되지 않고는 훌륭한 시인이 될 수 없다. 시의 맛을 모르는 사람은 절대로 좋은 시를 쓸 수 없고 시의 맛을 아는 시인만이 좋은 시를 쓸 수 있다. 맛의 비결을 모르고 맛을 낼 수 없기 때문이다. 예술 활동이 다 그러하지만 유행을 따라가지 말아야한다. 유행을 따라가다 보면 유행시기가 지나면 아무 쓸모가 없게 되거니와 결국에는 자기의 개성까지도 잃게된다.

시조세계의 많은 작품들이 시를 설명으로 전개하고 있음을 보았다. 그림으로 분위기를 그려나가는 기법을 터득하는 것이 올바른 시창작의 방법이며, 좋은 시를 항시 음미하고 연구하는 것은 시창작의 능력을 배가하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항시 새로운 시적표현으로 독자에게 신선함을 보여주는 송선영 시인의 작품을 눈여겨 봐주기를 바라고

시적 열정을 가지고 시창작에 임하는 신인들이 날로 성장 발전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