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문학/나의 시와 시조
지성찬의 <다시 삼강주막에서
설정(일산)
2010. 3. 21. 09:43
*다시 삼강주막三江酒幕에서
지 성 찬
수많은 민초들이 밟고 간 삼강三江나루
그 때 그 풀빛은 오늘도 푸르른데
역사는 흙에 묻힌 채 흰모래만 곱구나
님을 기다리며 낡아가는 세월 속에
빈 나루에 작은 배가 밧줄로 묶여 있네
가끔씩 먼지바람에 풍문風聞만 쌓여가고
회화나무 가지 사이 하늘은 한 없이 높고
긴 세월에 남은 것은 썩은 가지뿐이네
육중한 몸으로 하는 말, 눈빛으로 알겠네
봄은 꽃을 들고 문 밖에서 기다려도
회화나무 검은 가지는 내다보지 않는구나
한 줄금 비라도 와야 문을 열고 나오려나
칠흑 같이 어두운 밤, 등잔불도 약해지면
주모酒母는 열사흘 달을 가슴으로 퍼 담으며
그 밤에 홀로 떠난 님을 물 위에 그려 보네
그을린 부엌에는 무쇠솥이 걸터앉아
주인을 땅에 묻고 홀로 남아 무엇 하나
언제쯤 새 주모酒母를 만나 한 세상을 끓여보나
거덜 난 팔자 같은 타다 남은 숯검뎅이
인생은 타고 또 타는 기름 같은 장작 같은
모두가 타버리고도 아쉬움은 재가 되고
감히 인생을 안다고 말하지 마라
그대 가는 길을 안다고도 말하지 마라
술에나 취하지 않고는 이 강을 건널 수 없네
여기 삼강三江나루 쉬어가는 나그네여
사랑은 풀꽃 같은 것, 풀꽃처럼 떠나셔도
천여 필 옥색 비단을 끊고 갈 순 없겠네
*낙동강과 내성천, 금천의 세 강줄기가 몸을 섞는 삼강.
(미래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