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문학/나의 시와 시조

지성찬의 일산선유음 -일산에서 부른 노래

설정(일산) 2010. 3. 30. 11:52

        일산선유음一山仙遊吟

                  -일산에서 부른 노래-


 

                       지성찬

 


            봄꽃이 지고 나니 허전한 오후였다

           맑은 호수라서 생각을 재울 수 없어

           갈대를 밀어 올리고 하늘만 바라본다.


           작은 물새 한 마리 오지 않는 호수가에

           적막의 시간 한 끝을 매어 둘 곳이 없는

           끊어진 가야금 줄처럼 누워있는 들풀이여


           같은 햇볕 아래 나무는 키가 다르고

           같은 물을 마시고도 꽃 빛은 사뭇 다르다

           세월이 오는 소리를 바람이 먼저 안다


           지난 밤 이야기는 한 점 이슬이구나

           해맑은 바람에는 들풀들이 눈을 뜨고

           가슴에 열리는 새 하늘을 귀를 세워 듣나니


           영마루 넘는 해는 발걸음이 더디구나

           돌아보는 지난날이 불꽃처럼 뜨거워라

           모두 다 타버린 후에도 불씨는 남았구나.


           비 맞은 풀잎들은 이미 가을을 생각하고

           나무는 키가 커서 바람에 시달린다

           이 밤에 벌레 소리는 이 호수를 다 덮느니


           호수에 해가 지면 먼 데 불빛이 다가와서

           조금은 서먹했던 그대의 손을 잡으면

           막막한 밤하늘에도 수많은 별이 뜬다


           낮이 가고 밤이 오면 호수는 혼란스럽다

           가슴에 묻어야 할, 수많은 이야기여

           그 누가 푸른 물빛을 곱다고만 하느냐


           길을 따라 호수가를 한없이 걷다보면

           시작은 어디이며 그 끝은 어디인가

           다 못 쓴 엽서 한 장을 걸어두고 가느니.


            아무리 풀은 자라도 나무가 되지 못한다

            사철 푸른 나무는 꽃을 피우지 못하지만

            생각은 외다리로 서서 힘겹게 땅을 짚네


            가을 밤 한 자락이 무서리에 젖어오면

            지난여름 푸른빛을 그 어디서 찾을 건가

            기억의 오솔길에선 잎이 지고 있었다.


            눈 내린 이 아침에 설록차가 따스하다

            철새들 몇 마리가 이 호수에 날아올 때

            소동파 시詩 한 구절을 입에 물고 오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