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문학/나의 산문

씨암탉을 잡아먹다

설정(일산) 2009. 7. 3. 17:35

씨암탉을 잡아먹다 


(꽃 같은 젊은이를 보면 눈물이 난다)


              지  성 찬 (池聖讚)

                


어제 밤에는 꿈에 한 요정이 나타나서 다음과 같은 재미있는 이야기를 생생하게 전해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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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옛날 아무것도 없는 찢어지게 가난한 어느 농가(한국)에서 어떻게 운 좋게 돈을 빌려서(차관) 씨암탉(공장/기업)을 몇 마리 샀습니다. 그래봤자 나오는 계란은 몇 개 안되어      온 식구가 골고루 나누어 먹지 못했지요. 권위적인 가장인 아버지(군사정권: 박정희-전두환)는 장남(기업가/재벌)이 집안의 기둥이라고 특별히 장남에게만 계란을 먹이고 나머지 계란은 모두 시장에 팔아(수출) 씨암탉 수를 늘려만 갔습니다. 먼저 씨암탉수가 늘어야만 나중에 모두가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면서(선성장/후분배). 그렇게 해서 씨암탉 수가 늘어났는데도 아버지는 계란을 동생들에게는 계속해서 별로 나눠주지 않았습니다(권위주의의 지속). 반면 장남은 닭고기도 맛있게 먹을 수 있었지요. 항의하는 동생들에게 회초리만 때릴 뿐이었습니다(유신/5.18). 그러던 중에 아버지가 불의의 사고로 죽고(10.26,79/87년) 동생들도 목소리를 높이게 되었습니다. 어찌 형만 계란을 먹을 수가 있냐고, 그래서 이제 숫적으로 우세인 동생들도 씨암탉에서 나오는 계란과 그로부터 나오는 수입을 마음껏 이용하게 되었고 급기야는 계란만으로는 성에 안차 씨암탉도 몇 마리 잡아먹었습니다(90년대초 임금상승). 어차피 늙은 씨암탉(저임금-수출산업)이긴 했습니다만. 이제 집안의 가장이 된 맏형은 동생들도 잘 먹여야 했기 때문에 더 많은 계란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새로 산 씨암탉에게 많은 모이를 주기 시작했습니다(부채비율 증가, 중복투자). 또한 오골계(烏骨鷄) 같은 새로운 품종도 빚을 내서 들여왔습니다(신규업종진출: 삼성자동차, 기아특수강, 한보특수강 등). 그런데 이 씨암탉들이 알을 더 낳기는커녕 영양과다에 따른 비만으로 쓰러져 죽는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오골계 같은 새로운 품종도 길러 본 경험이 없어서 그만 비실비실하게 만들었습니다. 거기다가 몇몇 닭은 병까지 들었습니다(1997년 기아, 한보 위기등). 이 사실을 안동네 빚장이들이 돈 돌려 달라고 난리가 났습니다(외환위기). 잘못하면 오래 살던 동네에서 쫓겨날 사태로 번지자, 어머니가 동네에서 제일 돈이 많다는 어떤 집(IMF)에 돈을 빌리러 갔는데, 그 집에서 와서 하는 말이, '닭을 잘못 길렀구먼, 우리가 시키는 대로 안하면 돈을 못빌려 주겠어요'라면서 '이 닭 저 닭 다 병들었으니 죽이라'는 것이었습니다(IMF에 의한 고금리 정책 및 일방적 구조조정 정책). 그래서 일부는 건강한데도 어쩔 수 없이 죽여야 됐고, 나머지 살아남은 닭들의 일부도 헐값에 팔아야만 했습니다(국부유출). 돈이 없어 모이도 변변히 주지 못하게 주니 일부 힘센 닭이 모이를 독차지했습니다(소수재벌의 성장). 너무 욕심을 부린 닭들은 죽고 말았지만(대우, 현대건설) 그래도 살아남은 힘센 암탉들(삼성, 현대차, LG)은 알을 잘 낳지만, 전 식구 생계를 책임지는 데는 한계가 있었지요. 더구나 어머니가 진 빚은 엄청나게 불어난 상태였습니다(공공부채). 그 상황에서 몇몇 부실한 닭(부실했던 사양업종 중소기업 및 대기업)을 어머니(정부-김대중)는 정성스레 길러서 어느 정도 건강하게 되돌려놓았습니다. 그런데 몇몇 철없는 동생들(노조)이 배고파서 이제는 더 이상 못 참겠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암탉이 낳은 알을 몰래 훔쳐 먹기도 하고, 심지어는 잡아먹게 해달라고까지 합니다. 하지만 너무 어린 막내 동생(청년실업/비정규직/비노조 노동자)은 그러지도 못하고 그냥 굶기만 하고 있습니다. 맏형(재벌-전경련)은 '너네가 계란 심지어는 씨암탉까지 잡아먹어 버려서 막내 동생에 주려고 해도 줄게 없다. 좀 작작해라'라고 말하지만 자기도 과거에 혼자만 닭고기를 맛있게 먹었던 적이 있고 몰래 계란을 먹은 적도 있고 집안에 곤란을 초래한 것도 본인이라 동생들에게 전혀 권위가 서지 않습니다. 오히려 동생들에게 자꾸 그러면 건강한 암탉을 데리고 자기 혼자 분가해서 다른 동네 가서 살겠다고 뻔뻔스럽게 위협만 합니다(해외이전). 동생들도 워낙 오랫동안 배고프다 보니 스스로 자제할 수가 없습니다. 더구나 먹을 수 있을 때 안 먹으면 다음에는 형 때문에 못 먹는다는 생각이 드니 말입니다. 맏형과 동생들 사이에 쌓인 갈등의 골은 너무나 깊어서 화해가 쉽지가 않습니다. 그런데 이런 아들들을 꾸짖거나 화해시켜야 하는 어머니(정부-노무현)는 그런 상황에서 도대체 누가 옳은지 알 수가 없습니다. 권위적이었던 아버지와 달리 인자하기만 한 어머니는 인자함의 도가 지나쳐서 그런지 그저 가정의 화목만 막연히 빌고 무대책으로 있을 따름입니다. 어떻게 하면 가족이 화목해질 수 있을지, 다 함께 잘 살 수 있을지에 대한 생각이 전혀 없을 뿐 아니라 그렇게 만들 능력도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냥 아들들의 의견을 다 들어주면 될 거라고 믿는 것도 같습니다. 동생들이 계란과 씨암탉을 모두 먹겠다고 하면 오냐오냐 그래라 합니다. 다른 한편으로 경제권을 쥔 맏아들이 밖으로 나가 따로 살림을 차려 혼자 살겠다고 할까봐 눈치를 봅니다. 아들들을 꾸짖지도 않고 화해시키지도 못하니, 남은 빈방에 사람을 월세로 들이려고 해도(외국기업유치) 집안의 불화가 온통 소문이 나서 아무도 들어오려고 하지 않습니다. 가정의 화목의 기미는 보이지 않고 분란만 일어나니, 동생들은 곧 있으면 계란 뿐 아니라 몇 마리 남지 않은 목숨과도 같은 씨암탉까지 몽땅 잡아먹을 태세이고, 맏아들은 몰래 계란과 씨암탉을 빼돌리거나 어디론가 도망칠 궁리만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편 차가운 그늘에서 막내 동생은 영양실조로 시들어가며 고통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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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한국경제의 닭장에는 아직도 적지 않은 닭들이 남아 있는데, 몇 마리는 건강한 알을 잘 낳고 있지만, 늙어서 폐기해야 할 닭, 병든 닭, 알을 낳지 못하는 닭, 먹이만 축내고 성장하지 않는 닭뿐입니다. 어미 닭으로 커야할 병아리가  없는 것도 이 닭장을 오래지 않아 철거해야 하는 원인입니다. 닭장을 철거해야할 처지가 되면 쓸만한 씨암닭을 모두 시장에 내다 팔아야 할 것입니다. 절대로 팔아서는 아니 되는 씨암닭을 시장에 파는 것은 절망입니다. 자기의 닭장이 없어지고 보면 남의 집 닭장을 거지처럼 기웃거릴 것이고, 배가 고프니 산으로 뿔뿔이 흩어져 풀뿌리나 캐고, 물로 배를 채울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어디선가 들은 얘기에 따르면 천국과 지옥 둘 다 똑같이 쾌적한 환경이라는 것입니다. 유일한 차이는 천국과 지옥에서는 숟가락이 팔꿈치에 붙어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절대로 자기 팔꿈치를 혀로 핥을 수 없다고 합니다. 거기에 붙어있는 숟가락으로 발을 먹는다는 건 어림도 없습니다. 그래서 천국과 지옥의 차이는 식사시간에 드러난다고 합니다. 천국에서는 서로가 서로에게 밥을 먹여주는데, 지옥에서는 자기 욕심에 제각기 밥을 먹으려고 해도 먹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지옥에 있는 영혼들은 항상 배가 고프다고 합니다. 한국도 이와 비슷합니다. 혹은 자기 욕심 때문에, 하지만 보다 더 중요하게는 권위주의 부패정치와 분배의 불평등으로 점철된 그간의 역사로 인해 생긴 서로간의 불신 때문에, 서로간에 자기가 먼저 상대방에게 밥을 떠 먹여줘도 상대방이 자기에게 밥을 떠 먹여주지 않을 거라는 상당히 근거 있는 불신 때문에 한국도 모두가 배고픈 지옥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혼탁한 사회에 매년 첫발을 내딛는 꽃 같은 젊은이 70여만 명은 오랜 시간 동안 정성을 들여 길러낸 우리의 꿈나무입니다.  70여만 명의 젊은이들에게 일자리를 줄 수 없는 상황은 오늘날 한국의 비극이요 미래의 한국에 대한 절망의 서곡입니다. 젊은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단순 노동으로만 가능한 서비스분야일 뿐이고 힘깨나 쓴다하면 조직폭력배밖에 될 수 없으니 필자는 우리 젊은이들이 너무 너무 불쌍하기 만하여 눈물이 납니다. 마음으로라도 이 젊은이들에 대하여 생각해 본적이 있으십니까? 사랑이 없는 세상은 사막이 됩니다. 종국에는 우리 모두가 죽음과도 같은 황폐한 그 사막에 살게될 것입니다.

사막화 되어가는 이 사회에 한 그루 사랑의 열매가 열리는 나무를 심어야 합니다. 한국의 정책입안자들은 땜질식 방안 모색에 익숙해 있고 또한 많은 사람들이 한국경제의 건강상태를 매우 좋은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점도 큰 문제 중의 하나입니다.

그러한 가운데서 적절한 정책을 수립하여 실천하려는 의지는 전혀 없고, 자유방임의 상태로 지금 한국경제는 정처 없이 떠내려가고 있음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몇 품목을 제외하면 한국경제는 매우 허약한 상태로 빈사상태를 헤매고 있음을 정책당국은 전혀 모르는 것인지 숨기는 것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알고 있다면 지금이라도 용기를 내어 알려주고, 몰랐다면 지금이라도 그에 대한 장기적 치유처방으로 이 나라를 살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암에 걸려 시한부 인생을 살아야 하는 환자에게 의사가 환자의 상태를 솔직히 얘기해 주는 것은 히포크라테스의 정신에 의한 의사로서의 사명을 다하는 일인 것과 같이, 국가의 경영을 책임진 당국자는 성실한 관리자의 자세로서 한국경제, 사회의 모든 상황을 스스로 확인 분석하여 객관적 결론을 도출하고 이에 대한 대처방안을 마련하여 즉시 실천에 옮겨야 합니다. 한국경제가 유기체로서의 생명을 상실하여 객관적으로 시체로서 확인되어 사망진단서를 발급해야 하는 시점에 근접해 가고 있지 않나 하는 두려움을 갖고 있습니다.


필자는 6-70년대에 섬유류 수출에 종사하여 꽃 같은 젊음을 다 바쳐서 많은 외화를 벌어드려 한국경제발전에 미력하나마 힘을 보탰던 사람들 중의 한 사람으로 한국경제 재건에 일조한 긍지와 보람을 갖고 살아왔는데 이제는 그 모든 것이 물거품으로 돌아가는 이 시점에서 매우 허탈하고 안타까운 심정은 마치 어둠의 장막이 서서히 내리려는 황혼 무렵의 핏빛노을을 바라보며 울부짖는 어느 드라마의 무대를 바라보는 느낌입니다.

그렇게 일시적으로 화려했던 한국경제 성장의 드라마는 서서히 막을 내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관객들은 다음에 막이 오를 희망찬 낙원의 드라마를 기대하지만, 그러한 드라마를 기획, 연출할 사람도 없고 유능한 배우도 없습니다.

희망은 절망의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이며 보람찬 내일에 대한 기대입니다. 현재의 상황이 그리 비극적이지는 않더라도 우리에게 내일의 희망이 없다면 우리는 이미 절망속에 있는 것입니다. 남미와 같은 유형의 “경제파탄”이 문 앞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있는데도 무대책으로 태평성대를 누리고 있으니 한심한 일입니다.

이미 십 수 년 전에 “경제파탄” 이라는 이름의 옥동자를 잉태하여 이제 그 출산을 눈앞에 두고 산모의 진통은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이것은 선량한 국민들에게 뼈가 으스러지는 아픈 교훈이 될 것이고, 돌이킬 수 없는 역사의 한 페이지로 기록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미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넜기 때문에 우리국민은 큰 고통에 시달릴 것이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러한 결과를 초래한 것은 낭비와 과소비도 한 몫을 하였으니 이번에 닥쳐오는 이 심한 불황의 깊은 절망의 늪에서 우리 국민들은 깊이 자성해야 할 것입니다.

한국에는 각 나라에서 많은 공부를 하고 박사학위를 가진 수많은 경제학자가 있고, 수많은 엘리트가 숲을 이루는 이 정부의 어느 누구도 깨어 있지 아니하고 모두 진시황의 아방궁 같은 단꿈을 꾸면서 화려한 높은 누각에서 달콤한 잠에 취해 있으니 매우 통탄할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현 정부는 너무 많은 숙제와 난제를 안고 있습니다. 화목하고 서로 합리적으로 타협-양보하는 노사관계, 그리고 생산적 기업체가 절대적으로 보호 육성되는 분위기와 정책이 없이는 어느 나라도 한국에 투자를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요즈음 소위 잘 나고 똑똑한 사람들은 우리나라와 같은 곳에서 골치 아프게 기업을 경영하려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당국자는 알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여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기업을 창업하여 많은 고용을 창출해야 할 사람들의 재화와 유능한 인력이 아파트 투기를 하고 땅 투기를 하는 수단으로 잘못 오용되고 있는 것입니다. 부동산 사업을 함에 있어서는, 호랑이처럼 무서운 노동조합에 시달리지 않고 당국의 시시콜콜한 시어머니 같은 간섭도 받지 않으니 이 보다 더 좋은 안식처가 어디 있습니까? 이 사회에서 가장 전망이 좋은 사업은 모텔 사업이 분명합니다. 그 이유는 해가 갈수록 이혼 가정이 늘어나니 자연히 시대적 특수를 누리며 번창하겠지요.

모텔이 날로 독버섯처럼, 악성종양처럼 돋아나서 화려한 황금시대를 구가하고서야 이 나라가 어떻게 온전할 수 있단 말입니까? 대낮에 일하지 아니하고 어린 소녀를 돈으로 사는 부도덕한 사회, 호화목욕탕이 점점 늘어가는 세태는 망했던 로마의 역사를 그대로 다시 옮겨 쓰고 있는 것에 다름 아니며, 소돔과 고모라도 이 보다는 훨씬 더 나았을 것입니다. 이 나라를 망치고 있는 원인은 “도덕과 윤리는 책 속에만 갇혀있고, 가끔씩 학생들의 시험문제에만 등장하기 때뿐입니다”. 이 시대에 도덕과 윤리를 얘기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 미친 사람으로 취급을 받는다면 너무 과장된 표현일까요? 물질만능, 물질숭배의 바이러스 균이 이나라를 병들게 하였습니다.  사탕발림식의 대통령의 말 한마디로 한국에 투자하는 어리석은 투자자는 이 세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숲이 좋아야 희망을 노래하는 새가 깃 들고, 물이 맑아야 은빛 물고기가 찾아옵니다. 이 혼탁하고 더러운 물에 싱싱한 물고기가 찾아오리라고 절대로 기대해서는 아니 되고 기대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먼저 사회의 혼탁하고 오염된 물을 깨끗하게 정화해야 합니다. 그래야 돌아갔던 물고기를 다시 불러올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한 책임은 모든 국민이 져야 할 것이지만 그 중에서도 저를 포함한 교회의 모든 성도들이 그 책임을 져야할 것입니다.

장로가 더 파렴치 하고 반도덕적이며 비윤리적이니 말입니다. 성직자가 어린이를 성폭행하는 저주 받은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러고도 어떻게 그 더러운 입으로 신령한 하나님의 말씀을 입에 담을 수 있단 말입니까? 하나님의 심판의 때가 찼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독사의 자식”, “양의 탈을 쓴 늑대”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교회가 독사와 늑대로 가득한 동물원이 교회가 되었다고 하나님이 질책하신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답해야 합니까?. 그나마 이 나라가 지탱하고 있는 것은 숨어서 눈물로 기도하는 많은 성도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예화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평생을 새벽기도에 참여하는 성도가 새벽에 기도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도중에 남의 집 울타리에 열린 호박을 무심코 따다가 착한 식구들의 식탁에 올린다는 이야기는 시사하는 바가 많습니다. 믿음의 모양은 있으되 삶이 없다는 예화입니다. 하늘나라에 가면 분명히 하나님이 문 앞에 서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른 모른다”고  부인할 것입니다. 매달 십일조에, 감사헌금에, 선교헌금에, 구제헌금에, 특별헌금에 주일헌금까지 내시고도 하나님이 여러분을 모른다고 하시면 너무 억울하지 않으십니까? 이윤이 많이 남는 장사를 하시기 바랍니다. 교회에 많은 물질을 바치고도 천국을 가지 못한다면 이 보다 더 밑지는 장사는 없을 것입니다.

부자집 문 앞에서 밥상에 흘려진 음식을 간절하게 기다리던 나사로를 아십니까? 그 나사로를 하나님이 사랑하신 것을 아십니까? 가난한 나사로를 왜 하나님이 사랑하셨습니까? 마음이 가난했습니다. 나사로와 같이 되지 아니하면 절대로 천국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부자로 지옥에 가시렵니까 아니면 나사로와 같이 마음이 가난하여 천국을 가시겠습니까? 마음을 비우십시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지금 이 순간 여러분의 마음을 투명하게 들여다보고 계십니다. 비밀은 없습니다. 하늘이 알고 땅이 압니다.

지금 여러분의 문 앞에 있는 “나사로”를 대접하지 아니하면 하나님은 “나는 너를 모른다” 고 부인하실 것입니다.

땅 투기 아파트 투기는 가난한 사람들을 살인하는 행위임을 왜 모르십니까? 이 땅의 법에 의한 부동산거래는 적법할 수 있어도, 하늘나라의 법으로는 사형으로도 부족한 중죄중의 중죄입니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는 것 보다 어렵다고 2천년전에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딸들이여! 재물은 근심의 시작이요 죄의 씨앗이며 재앙입니다. 사람을 병들게 하는 바이러스입니다.

필자가 알기로는 평생을 다 바쳐서 지은 빌딩을 하늘나라로 옮길 방법이 없고, 소유한 많은 돈을 하늘나라로 송금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 작은 몸으로 어떻게 수십만 톤의 빌딩과

수백 톤의 돈다발을 하늘나라로 옮기시려고 하십니까?

하늘나라로 가는 용달차도 없고, 가는 길도 없습니다. 갖고 가실 수 없는 돈이라면 살아있을 때 나누어주시기 바랍니다.

사람이 하늘나라에 갈 때는 오직 자기 이름만 가지고 갑니다. 사람은 좋은 이름이든 나쁜 이름이든, 오직 이름만이 자기의 소유입니다. 여러분의 묘비에 어떤 이름이 새겨지기를 원하십니까? “평생 더러운 방법으로 많은 돈만 벌면서 이웃을 괴롭히기만 하다가 하나님의 심판으로 죽은 사람을 여기에 묻었다” “이웃을 내 몸 같이 사랑하며 한 시대를 살았던 진실한 사람이 여기에서 천사처럼 승천하여 하늘나라의 품에 안긴 아름다운 곳이다” 예수님의 이름같이 아름다운 이름이 기록되기를 원하십니까? 아니면 가롯 유다와 같은 저주 받은 이름이 기록되기를 원하십니까? 예수를 재판한 빌라도는 그래도 자기의 잘못이나 알았지만, 많은 성직자들이 빌라도 보다 못한 것은 개탄할 일입니다.

2-3년 후에 이 나라가 혹독한 경제파탄과 사회혼란에 직면한다면 주권자 되시는 하나님은 반드시 하나님의 자기 백성들에게 하늘나라의 법으로 책임을 물을 것입니다. 이 글은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등기 속달로 보내는 내용증명입니다. 각자가 가지고 있는 모든 소유를 하나님 앞에 내놓고 회개하라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으십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고통의 아름다운 선물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얼마나 많이 하나님의 속을 뒤집어놓았습니까?

손에 든 냄새나는 떡, 썩어가는 떡을 놓으시고, 하나님의 영원한 진리의 말씀을 받으라고 재촉하십니다. 늦지 않았습니다.  즉시 그 명령에 순종해야 할 때입니다.

상대를 배려하며, 상대에게 양보하며, 상대를 도와주며, 사랑하는 사회, 도덕과 윤리가 가치관의 저울이 되어 우리들의 양심의 중량을 측정하는 사회가 되어야 합니다. 이기주의적 투쟁은 이 나라를 지옥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천국으로 가시겠습니까? 지옥으로 가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