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수의 내가 읽은 좋은 현대시 -새와 자궁과 인큐베이터라는 실존의...
내가 읽은 좋은 현대시 15회(4월호)
새와 자궁과 인큐베이터라는 실존의 처절한 몸부림!
장인수
‘새’를 소재로 쓰여진 송재학 시인과 임화수 시인의 작품을 감명깊게 읽었다. 새는 인간의 욕망이나 우주 에너지와 밀접한 관련성을 지니고 있다. ‘새’는 인간이 알지 못하는 영역을 알고 있는 것도 같고, 인간이 감지하지 못하는 미세사를 살아가는 것도 같고, 인간이 도달하지 못하는 영역을 들락이는 것도 같다. 새의 눈빛은 측정 불가인 것도 같고, 새의 근육은 인간의 근육과는 다른 조직을 지니고 있는 것도 같다. ‘새’가 속한 영토에 어떤 진리와 진실이 있을 것 같다. ‘자궁(또는 인큐베이터)’을 소재로 하여 쓰여진 유홍준과 조광현 시인의 작품도 눈에 확 들어왔다. 자궁은 생명의 근원이며, 생존의 처절한 사투가 벌어지는 공간이며, 생물학적이면서도 실존적이고 인문학적인 공간일 수밖에 없다. 이들의 작품은 소름이 돋을 정도로 감동적이고 눈물겹다. 그리고 스토리문학에 발표한 유용선 시인의 「시를 위한 덕담」을 매우 재미있게 읽었다. 이런 덕담은 처음 받아봤다. 우리 모두 덕담을 들어보자.
공중 / 송재학
허공이라 생각했다 색이 없다고 믿었다 빈 곳에서 온 곤줄박이 한 마리 창가에 와서 앉았다 할딱거리고 있다 비 젖어 바들바들 떨고 있다 내 손바닥에 올려놓으니 허공이라 가끔 연약하구나 회색 깃털과 더불어 뒷목과 배는 갈색이다 검은 부리와 흰 뺨의 영혼이다 공중에서 묻혀온, 공중이 묻혀준 색깔이라 생각했다 깃털의 문양이 보호색이니까 그건 허공의 입김이라 생각했다 박새는 갈필을 따라 날아다니다가 내 창가에서 허공의 날숨을 내고 있다 허공의 색을 찾아보려면 새의 숫자를 셈하면 되겠다 허공은 아마도 추상파의 쥐수염 붓을 가졌을 것이다 일몰 무렵 평사낙안의 발묵이 번진다 짐작하자 면 공중의 소리 일가(一家)들은 모든 새의 울음에 나누어 서식하고 있을 게다 공중이 텅 비어 보이는 것도 색 일가(一家)들이 모든 새의 깃털로 바빴기 때문이다 희고 바래긴 했지만 낮달도 선염법(渲染法)을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공중이 비워지면서 허공을 실천중이라면, 허공에는 우리가 갖추어야 할 것들이 있다 바람결 따라 허공 한 줌 움켜쥐자 내 손바닥을 칠갑하는 색깔들, 오늘 공중의 안감을 보고 만졌다 공중의 문명이라 곤줄박이의 개체수이다 새점을 배워야겠다
- (『문학동네』2009년 겨울호 )
박새는 사람을 잘 따르는 새다. 청계산 청계사 주변에는 낮은 가지에 앉았다가 아무런 의심도 없이 사람의 손바닥으로 내려와 땅콩을 낚아채가는 박새(곤줄박이) 수십 마리가 살고 있다. 분당의 영장산 정상에도 사람을 전혀 무서워하지 않는 수십 마리의 박새가 살고 있다. 공간이 텅 빈 것을 허공(虛空)이라고 한다. 허공은 숫자에서 유래한 말로 10-²¹을 뜻하는데 이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작은 수이다. 허공은 사물과 마음의 모든 법을 받아들이는 공간을 뜻한다. 즉 허공은 무수한 것들이 잠재하고 있는 공간이다. 허공은 구름도 생겼다가 소멸하고, 바람도 일었다가 사라지고, 폭풍우와 천둥 번개가 일기도 하면서 생멸유무의 현상이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는 공간이다. 그곳 무한 허공 속에서 가시적인 영역이 공중이라고 할 수 있다. 그곳에 하나의 티끌처럼 포르릉 부단히 움직이는 곤줄박이가 살고 있다. 무에서 작은 시공간이 열리고, 그곳에서 물질과 에너지가 쏟아져 나와 지금 우주를 이루었는데 박새는 물질이며 에너지의 존재태에 해당한다. 박새의 깃털과 부리와 눈동자의 색깔은 공중에서 묻혀온, 공중이 묻혀준 색깔이다. 박새의 파닥임과 할딱거림은 허공의 날숨이 되고 입김이 된다. 공중의 소리 족속은 박새의 울음에 서식한다. 박새는 붓이 되어 공중에 글씨를 쓰고 먹물을 찍는다. 박새는 공중의 화선지에 붓질을 하는 화기이며 문필가다. 박새는 물감이 되어 공중의 안감에 색칠을 하는 존재가 된다. 박새의 다양한 실천이 공중을 양성하고 부양한다. 박새는 공중의 문명을 담당하는 존재다. 박새는 허공을 생성하고 허공을 발아하는 허공의 생명이며 감각이다. 박새는 공중의 경영자이며, 노동자이며, 예술가다. 박새는 공중의 혈통이다. 박새는 공중의 파장이고, 공중의 신체 기관이다.
지도를 접다 /임화수
새가 지도를 보고 싶을 때
둥지에서 제 몸을 날려 십만 분의 일로
세상을 축소시킨다
오늘도 칠암동 교보생명 영업소 가는 길을
공중으로 물어 올리며 나는 새가 되었다
멀리서 보면 애처롭고 고와 보이는 것들을 보기위해
갈치비늘처럼 비린 불빛을 떠나고
직물 공장에서 퇴근한 아내를 떠나고
보험 하나 들어 줄 위험도 없는 지상을 떠난다
깜깜한 시간의 지도 위에 생의 지형지물을 표시하며
알알이 밝혔던 땀방울들이 조도를 낮추고
출혈 뒤의 졸음처럼 아득하게 멀어진다
착륙은 새가 지도를 접는 일이다
만 분의 일로 축소되었던 꿈에 몸을 포개고
십만 분의 일까지 구겨지고 구겨져서
안주머니로 돌아가는 일이다
한없이 작아진 발을 돌부리 위에 벗어두고
뜨듯한 창자에 주둥이를 파묻고
갓 잡은 벌레의 뱃속으로 들어가는 일이다
타 먹은 보험 증서처럼 지상에 닿아
붉은 인주를 빗물에 섞으며 불어터지는 일이다
지도 한 장처럼 얇은 바람에도
찢어질듯 펄럭이던 세상을 잠시 고정시키는
한 알 압정의 몸무게로 지상에서 뽑히는 일이다
-(『시와 경계』2009년 겨울호)
독자분들이여, Google 어스를 들여다 본 적이 있으신가? Google 어스를 들여다보면 우주 공간의 은하에서부터 바다 속 협곡에 이르기까지 지구상의 어느 곳이든지 이동하여 위성 이미지, 지도, 지형, 3D 건물을 감상할 수 있다. Google 어스는 방대한 콘텐츠를 자랑하는데 이과수 폭포를 찾으면 이과수 폭포와 관련된 위성사진과 항공지도, 지형 및 위치 정보, 3D 영상 및 역사적 이미지와 해설, 길 찾기와 차량 이동 정보를 정밀하게 확인할 수 있다. 뉴욕의 특정 주소를 입력하면 그 주위의 가로수 및 공중전화까지 위치 파악이 되고 자동차와 사람들까지 자세하게 보인다.
오늘날 우리는 지도를 손쉽게 구입할 수 있다. 공간 위치 파악과 이동 경로 파악은 아주 쉽다. 그런데 Google 어스를 들여다 보면 철새들의 이동이나 풍속이나 풍향을 실시간으로 볼 수는 없다. 몇 달 전 또는 몇 년 전에 위성이나 항공기가 찍어놓은 정밀 사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네비게이션으로 실시간 지상의 도로 상황을 알 수 있기는 하나 조류의 비행을 알려주지는 않는다.
삶은 현재형이다. 지금의 움직임을 포착했을 때 현장감이 느껴진다. 우리 인간은 시간차가 존재하는 지도를 보고 있다. 그런데 새들은 날면서 지금 현재의 지도를 끊임없이 그리는 존재다. 철새는 세상을 십만 분의 일로 축소시키는 지도를 그리며 평생을 살아가는 측량기사이며, 살아있는 위성이며, Google 어스이며, 네비게이션에 해당한다.
그러면서 새는 착지해서 배고픔을 채우고, 사랑을 나누고, 둥지를 짓고, 알을 낳으며 살아가야 하는 생명체다. 새는 안주머니를 지닌 존재이며, 땀방울을 흘려야 하는 존재이며, 출혈과 졸음을 감내하는 존재이며, 벌레를 잡아 굶주린 배를 채워야 하는 존재이며, 찢어질 듯 펄럭이는 세상을 잠시 압정처럼 고정시키는 임무를 수행하는 존재다. 십만 분의 일까지 구겨지고 구겨져서 지상에 착지했다가 다시 삶의 지도를 그리기 위해 한 알 압정의 몸무게로 지상에서 뽑히어 다시 훨훨 날아올라야 하는 고단한 존재다. 날개와 깃털을 지니고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새는 고달픈 생을 살아내야 하는 것이다. 위 시는 <시와 경계> 신인상을 받은 작품인데 읽을수록 사유와 형상화의 깊이가 놀랍다.
어머니의 자궁을 보다 /유홍준
일흔네 살
어머니가 자궁을 들어냈다
수술용 장갑을 낀 젊은 의사가 냉면그릇 같은 데 담아들고 와서 보여주었다
마음이 참, 지랄 같았다
스텐 그릇 안의
어머니의
계란, 자궁을 본다는 것
끼니때가 되어
어머니 뉘어놓고 길 건너 추어탕 집에 가서 한 그릇 밀어 넣었다
요때기마다 자궁 들어낸 여자들이 누워있는 방으로 돌아와
등을 붙이면
따뜻하다 야근에 지쳐
졸음이 쏟아지는 몸이여
문득 어디 생리 중인 여자가 있어 울며 그녀와 살 섞고 싶다는 생각
-(애지』2010년 봄호)
생물학적인 의미에서 생명 탄생의 근원지는 어머니의 자궁이다. 세상의 모든 암컷은 아기주머니를 지니고 있고, 그곳에서 알이나 새끼가 잉태되고 태어난다. 생물학적으로는 지극히 당연하고 아무렇지도 자연 법칙이다. 인문학적인 의미가 부여되면 상황은 달라진다. 인륜, 천륜, 모성, 효심, 본성, 존재의 근원이나 실존의 궁극적 의미 등등의 인문학적 의미가 어머니의 자궁에서 시작되었음을 뜨겁게 성찰할 수 있는 것이다. 자궁은 윤리와 본성과 생명의 발원지에 해당한다. 비밀스러운 존재이며 성스러운 존재다. 여자가 자궁을 드러낸다는 것은 이제 여자로서의 기능을 상실하는 것을 의미하고, 자식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수원(水源)이 영원히 소멸되는 것을 의미한다. 못쓰게 된 병든 자궁은 생물학적인 의미에서 도려내야 할 병균 덩어리요 해로운 고깃덩어리에 불과하다. 자신의 소중한 수원(水源)이 해로운 고깃덩어리가 되어 칼로 도려내어지는 상황을 맞았을 때의 기분은 최악이었을 것이다. 구역질이 났을 것이다. 그래서 ‘마음이 참, 지랄’같았을 것이다. 마음이 지랄 같을수록, 슬픔을 겪을수록 사람의 마음은 역작용이나 역반응을 일으키기도 한다. 심각한 스트레스에 직면하거나 감정적인 상처와 수치심을 입게 되면 이상한 행동을 함으로써 불안함 감정을 해소하고자 하는데, 그것은 살고 싶은 욕구이며 슬픔을 이겨내는 방법이기도 하다. 추어탕을 한 그릇 비우는 행위와 생리 중인 여자와 살을 섞고 싶은 강한 욕망을 드러내는 역반응은 지랄같은 자신의 상처와 수치심을 상쇄시키기 위한 행위일 것이다. 한치의 거짓이나 가식이 없는 진솔한 심리적 상태를 그려낸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 조광현
태생의 바다에서 헤엄치던 물고기
겨우 5백 그램으로 태어나
출생신고도 하지 못한 작은 생명
어머니 자궁 같은 인큐베이터 속에서
아직도 아가미 숨을 헐떡이고 있다
인큐베이터 옆구리 창으로 손 밀어 넣어
지저귀를 바꾸는 간호사의 여린 손이
간간히 떨리고 있다
간호사 손바닥 보다 작은 아이
혹 실핏줄 하나 다칠까 봐 망설인다
그래도 가슴 팔딱이는 걸 보면
그래도 살아 있는가 보다
혹 살이라도 미어질까 봐
옳게 잡을 수가 없다
몇날 며칠 지나
오, 간신히 참새의 눈물만큼
우유를 빨고 있는 저 아이
언제 2.5 킬로그램 고개를 넘어갈까
지구의 일점 일각에서
어린 물고기 하나 살아나서
고물고물 손가락을 움직이면
덩달아 중환자실에 환호성이 울리고
그 소리에 놀라
지난(至難)의 터널을 지나가던 사람들은
돌아와 제 자리에 앉는다
이제 가슴을 풀어헤친 엄마의 젖을 물고
네 유유히 대기를 호흡할 때
6십 킬로그램 대어(大漁)의 꿈을 이루리
사람들은 착각도 유분수라고 머리를 흔들지만
신생아중환자실에는
도무지 풀리지 않는 생명의 신비가 있다
우리네 삶에
때론 절망이 바닥을 치면
살포시 희망이 떠오르고
끈질긴 사역(使役)으로 갈아 누이면
척박한 밭에도 열매가 맺힌다
보라, 오늘도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생존을 위한 미숙아의 무거운 몸부림을 싣고
항상 피 묻은 낙타의 발들이
사하라 사막을 지나간다
-(『미네르바』2010년 봄호)
조광현 시인은 현재 부산 백중앙의료원 흉부외과 의사이고, 사랑의 장기기증운동 부산본부 운영이사다. 병원은 삶과 죽음이 시시각각 실재적으로 진행되는 공간이다. 태어나는 사람과 죽어가는 사람이 한 건물 안에 공존하는 병원은 생존의 사투가 긴박하게 벌어지는 공간이다. 심장이 뛰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낯설고 너무 긴장된 공간이다. 생명의 폭풍이 일고, 생명의 흙비가 쏟아지고, 생명의 지진과 해일이 덮치는 공간이다. 또한 병원은 혼신을 다하여 피를 공급하고 가느다란 봉합사의 닻줄로 조난당한 위급한 생명을 구조하는 공간이다. 조광현 시인은 메스와 핀셋의 사투를 매일 치르는 사제이며, 집도의 순간은 순교의 시간에 해당한다. 스스로 박해받는 고난의 길을 선택한 시인이다.
인큐베이터는 미숙아들의 인공 자궁이다. 엄마의 생물학적인 자궁 환경을 닮은 인큐베이터 안에 있는 미숙아에게는 인위적으로 세심한 치료를 가해야 한다. 잘못 만지면 실핏줄이 터져서 그로인해 사망에 이를 수 있는 미숙아는 우리 시대의 가장 처절한 자화상이다. 병원은 이 세상의 축소판인지도 모른다. 엘리어트는 '세계는 병원이고 인류는 치료되어야 할 환자' 라고 말했다. 미숙아는 이 세상에서 가장 나약한 존재다. 자본주의 사회의 승패 논리로 패자라고 규정지울 수 없는 그 이전의 근원적인 실존주의적인 존재다. 생존의 사역(使役)을 담당하는 체험적인 기록은 우리 현대시의 영역을 한층 깊은 영역으로 확장시키는 작업이다.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다.
시를 위한 덕담 / 유용선
어느 젊은 시인이
문예지에 시를 하나 싣는데
그쪽 사정 봐준답시고
고료를 받지 않았다나 봐.
그랬더니 이번엔
또 다른 어느 젊은 시인이
너는 자존심도 없느냐
타박을 놓았던 게지.
편당 3만원 때문에
의좋았던 두 사람 쌈질을 하였는데
고료 받아야 시 파는 놈이나
고료 안 받고 시 내놓는 놈이나
시 팔 놈
시 팔 놈
판 놈은 더 많이 팔고
못 판 놈은 앞으로는 꼭 팔라고
시 팔 놈
시 팔 놈
마주보며 덕담을 하더란다.
-(『스토리문학』2010년 3월호)
재미있는 시다. 따지고 보면 시는 정신적 노동이나 유희의 산물이어서 화폐로 환산하는 것 자체가 적절하지 않다. 따라서 시인은 원고료와 무관하게 의무적으로 고뇌하며 시를 쓰고 시를 발표해야 한다. 그런데 시를 발표하는 행위에는 어쩔 수 없이 경제논리가 개입된다. 시의 사용가치를 교환가치로 환산했을 때 원고료는 얼마가 적정선이겠는가? 문예지가 얼마나 많이 유통되고 팔리는가가 객관적인 잣대가 될 것이다. 팔리지 않거나 적자를 보는 문예지라고 한다면 당연히 원고료는 지불할 수 없을 것이다.
사용가치는 '쓸모있음의 가치'다. '쓸모' 있음의 가치는 삶의 태도나 삶의 양과 질에 의해서 가감된다. 교환가치의 증가는 사용가치의 증가에 의한다. 사용가치의 증가는 문화의 발전과 궤를 같이 한다. 그런데 오늘날 문화의 발전은 경제의 발전이 선제 조건인 경우가 많다. 경제발전은 수요창출이 과제다. 수요가 있어야 공급이 있고, 공급이 있어야 산업이 있고, 산업이 있어야 고용이 있고, 고용이 있어야 소비력이 있기 때문이다. 수요의 확대는 인구증가, 소비증가, 수요를 창출하는 신상품 등등 양적 및 질적인 성장을 도모해야 가능하다.
경제문화논리로 살펴보면 우리나라에는 문예지가 참 많다. 문예지들이 질적인 성장을 이룬다면 금상첨화요 원고료도 덩달아 상승할 것이다. 시인들도 질적 향상을 이루는 작품을 부단히 써야만 한다. 그래야 원고료 얘기를 당당하게 꺼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동안 원고료를 주는 문예지에도 시를 발표했고, 원고료를 주지 못하는 문예지에도 아무런 불평 없이 시를 발표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3만 원의 원고료를 주는 문예지는 나름대로 시인을 대접하는 문예지에 속할 것이다.
유용선 시인의 여러 작품을 읽어보니 시를 쉽고, 재미있고, 짧고, 명징하게 쓴다. 언어를 절약할 줄 알며, 언어의 맛을 살려 쓸 줄 안다. 언어를 가지고 놀 줄 안다. 농담을 진담처럼, 진담을 농담처럼 그 경계를 살짝 허물면서 시를 쓴다. 술술 힘들이지 않고 가벼운 필체로 삶의 재미와 사회구조의 모순을 예리하게 간파한다.
시인들은 시 팔 놈, 시 벌 놈의 사이에서 키득대며 아파하는 존재들이다. 시인 면허증을 지니고 취중 농담을 뱉을 때 촌철살인의 취중 진담이 될 수 있음을 유용선시인은 알고 있다. (끝)
장인수
2003년 <시인세계> 등단. 시집 『유리창』,『온순한 뿔』
su031777@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