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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미의 해탈 외 1편

설정(일산) 2010. 6. 4. 15:32

해 탈 외 1편


 


                                        박상미


 


성자의 몸을 베듯

조갯살을 파낸다


살은 부드럽다


나는 탐닉(耽溺)한다

나는 탐닉(耽溺)한다


향은 피어오르고


나는 끽연(喫煙)한다

나는 끽연(喫煙)한다


노승은 가고


산허리 위로 안개는 피어오르고


산 길 굽이굽이 때 아닌

봄눈이 쌓이고


봄 눈 녹고 나면

흙구덩이 속으로

굿뱀들이 부글대겠다












얼음 상자





공중전화 부스를 뒤집어서 바닥에 탁 !

내리치면 부스만한 얼음 떨어져 내린다


그 안으로 들어가 누우면 금세 도시의 소음은 사라지고

따뜻한 관이 된다

이부자리도 필요 없다


도시의 외곽

오래된 부스 안엔

한밤중 취객들이 세상에 대해 소변을 갈겨대도

노숙자들에게 잠자리를 제공하는 일은

이 따뜻한 관의 몫이다


차디찬 공기로 각을 떠서

기다란 정육면체의 안식을 주는 일

사람이 포기한 일들을 냉동고에 보관하듯

말없이 삼키고 있는 시간


버스 한두 정거장마다 있는 얼음 상자

옆에는 플라타너스도 길게 누웠다

비둘기도 두 서넛 자리를 잡고 졸음을 부른다




박상미 약력:

1974년생 

2000년 계간 <창조문학>으로 시부문 등단

2001년 시집 <수목원에서 온 편지> 발간

2001년 계간 <창조문학>으로 비평 등단

2010년 시집 <비눗방울성운> 출간

 

출처: 스토리문학 6월호, 201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