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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남의 해변을 떠나면 외 1편

설정(일산) 2010. 6. 4. 15:34

해변을 떠나며 외 1편

 

정 일 남

 

멀리 보이는 것은 아름답다

내가 갈 수 없는 곳

북두처럼 멀리 있는 것

수평선아, 너도 썩 아름다운 것이다

내 손이 한 번도 미치지 못한 곳

나로부터 멀리 있는 섬들아

내가 갈 수 없으니 섬은 도원으로 부상한다

여기 해변에도 바람은 짜다

소금으로 짠 것은 부패하지 않는다

부패하지 않는 것은 오래 살겠다

오래 살면 섬이 되지 않을까

해당화가 왜 해변이 아니면 피지 않는 지

그 까닭에도 전설이 있다

말 못할 사랑의 옛날이 있다

아름다운 꽃은 울음이 거쳐 간 얼룩이 있다

섬을 보다가 섬에게 누가 되지 않을까

나는 마음을 고쳐먹어야겠다

아름다운 것은 시대를 초월한 것

 

그리움의 본질은 옛날 같은 것이니

나는 손을 흔들며 꽃지를 떠난다

 

 

 

 

 

 

 

 

 

 

 

 

 

 

평행선

 

 

소년의 집은 철둑 밑에 있었소

철둑 밑에 사는 관계로 기차가 오고가는 미지의 세계를 꿈꾸었소

소년은 닳아서 반짝이는 철길에 귀를 대 보오

어디만큼 오는지 무쇠바퀴의 베어링 소리가 들렸소

드디어 기적이 울렸고

소년은 염통이 두근거렸소

기차는 번개 같이 스쳐갔소

나뭇잎이 흔들리고 꽃이 떨어졌소

그 많은 얼굴과 칸칸의 희망들

어디로 갔는지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소

 

침목은 레일을 꽉 잡고 놓아주지 않았으므로

기차는 마음 놓고 전속력으로 달릴 수 있었소

두 가닥 레일은 서로 떨어져 살았소

하지만 최종 목적지엔 같이 간 것이오

 

두 줄의 레일은 두 줄의 반짝이는 詩요

두 줄의 시로 이미 완성된 걸작이오

 

 

출처: 스토리문학 5월호, 201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