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문학/나의 산문

남은 꽃씨를 심어주고 가소서*

설정(일산) 2009. 7. 3. 17:45

남은 꽃씨를 심어주고 가소서*

-유동선생님의 영정에

 

 지 성 찬


한 인생에서 가장 많은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이 부모와 스승일 것이다.

문학으로 인하여 인연을 맺게 된 분이 이우종 선생님이시다.


안성 안법중학교에 입학을 하여 만난 분이 이우종 선생님이시다. 그리하여 시와 시조를 쓰게 되었고

오늘날 시인이 되게한 분이셨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국어과목을 이 선생님으로부터 배웠고 시 시조를 지도 받게 되어 정부주최 제3회 전국백일장에 유일하게 고등학생으로 참가하는 영광을 갖게 되었고  그 후에 각종 문학행사에서 많은 상을 받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본래 미술과 문학에 소질이 있었으나 당시의 상황은 6.25 사변 직후로 경제사정이 매우 어려웠던 시절이라  예술을 전공할 입장이 아니어서 상경대학으로 진학을 하게 되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1960년에 이 선생님이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탑이 당선되어 문단활동을 시작하셨고 1961년 여름에 진명여자고등학교로 전근을 하셨다.

대학을 졸업한 후에 섬유수출 회사에서 근무하면서 문학과는 담을 쌓고 살았지만 가끔씩 이 선생님을 만나곤 하였다. 1970년대 후반에 이 선생님이 시창작을 권유하여 창작에 뜻을 두게 되어 오늘까지 시를 써오고 있다.

사실 이 선생님의 권유가 없었으면 문학에의 입문은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1980년대 초에 이 선생님께서 나에게 설정(雪庭)이라는 호를 내려주셨다. 瑞雪이 하얗게 내린 정원이라는 뜻인데 미당 서정주 선생님께서 매우 좋아하셨다고 하셨다.

집안 일을 비롯한 대소사들을 부족한 저에게 의논하시며 사랑을 주셨던 분이 갑자기 이생을 마감하시니

그 아쉬움을 이루 말할 수 없다. 인생은 그렇게 갑자기 막을 내리는 것이었다. 평생을 시조 하나를 붙잡고 사셨고 시조를 목숨처럼 생각하고 살아오셨다. 이 얼마나 허망한 일인가 말이다.

평생을 가난과 싸우시면서 마음 편히 지내지 못하셨으니 더욱 그러하다.

이 생을 마감하시기 몇 개월 전에 일산 백마에서 뵈었던 것이 선생님과 나눈 마지막 사제간의 자리였다.

가시는 선생님에게 24수의 장시조 “남은 꽃씨를 심어주고 가소서”를 드렸다.

이 시조가 선생님의 업적을 돋보이게 하는 데 조금은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남은 꽃씨를 심어주고 가소서

 

-유동선생님의 영전에

 

지 성 찬

 

동방의 빛이 내려 한 나무를 세웠나니

황토에 발을 묻고 큰 나무로 서기까지

비 바람 아픈 세월도 하늘 바라 재우면서

 

젊어선 시골 학교 안성의 안법에서 (안법은 작자의 모교)

시심에 불을 당겨 제자를 모으시고

송강의 관동별곡에 흥을 돋워 주시던 일

 

뜰 아래 은행나무 단풍물이 찬란했던

명륜당 백일장엔 월탄도 놀랐거니 (월탄은 박종화 선생의 호)

서울행 시골 버스에 꿈도 싣고 시도 싣고

 

효자동 진명에서 효녀들을 길렀거니

은장도 날빛처럼 엄했던 스승의 길

삼십년 그 긴 세월이 봄꿈이란 말입니까

 

뿌리가 뿌리를 내려 한 세계를 열었나니

그 가을 홀로 서서 황혼 빛을 뒤로 하고

어여쁜 어린 싹들을 어루만져 주셨거니

 

여의도 달이 뜨면 모여들던 얼굴이여

몸으로 불을 밝혀 창 밖이 환하더니

어둠이 다시 온다면 누가 불을 밝히리까

(여의도 소재 동아일보 문화센타에서 후학 양성하셨음)

 

양지 바른 고향으로 편지 한 장 써 놓고서

미루고 미루다가 못 부치신 고향의 꿈

지금은 주소를 몰라 띄울 수가 없습니다

 

 

 

늦가을 하루해가 이렇게 잘렸구나

가는 사람 많았어도 오는 길은 모르더라

하늘에 한 조각 구름, 머물 곳이 없어라

 

천적으로 달라붙던 무서운 가난으로

뻗어갈 그 나무를 키울 수 없었으니

자하문 걸린 햇살이 너무나도 짧습니다.

 

부암동 고개에서 북한산이 머리를 드네

둥지의 꽃가지에 봄은 아직 아득하고

금이 간 높은 축대엔 겨울 빛이 차가워라

(부암동은 생전에 거처하시던 곳임)

 

좋은 날 좋은 날만 기다리며 살아온 날

무인년 대한일에 길을 바꿔 가오시니

시간이 멈췄습니다, 산이 무너졌습니다

 

시들지 않는 꽃을 꺾으러 가신다며

새벽부터 부지런히 신발 끈을 매시더니

돌아온 이름 석자는 이승에단 못 걸겠네

 

백이요 천일러라 두고 가는 인연의 끈

그 끈이 끊겨지던 절망의 벼랑에서

마지막 유언 한 마디 남기지도 못하셨네

 

설정 아호를 내려 이끄시던 자비의 손

앉으셨던 그 자리가 만평쯤은 적막하네

얼만큼 세월이 흘러야 그 자리를 메웁니까

 

일산의 백마에서 들려주던 모국의 노래

그 밤에 쥐어 주던 마지막 말씀들이

가슴에 바늘로 돋아 천번 만번 찌릅니다

 

조금은 이즈러진 윤이 나는 항아리에*

아직도 익지 않은 국화주는 어쩝니까*

차갑고 어두운 땅에 묻어 둬야 합니까

 

아직은 두메산골 덜 익은 가을인데*

사랑이 응어리로 터져 오는 밤을 두고*

그 어진 산처를 두고, 버려두고 가십니까

(산처는 산골에 사는 시골티 나는 아내를 뜻함)

 

아들 딸 손자하며 친지며 후학들은

이 겨울 찬바람을 막을 수가 없습니다

하늘로 가시는 길에 차표 한 장 뿐이오니

 

진시황의 만리장성 쌓아서 무엇하리

제갈량의 동남풍은 얘기 속에 흘러가도

피처럼 끓는 사랑은 시가 되어 살아오네

 

안법의 아들이여 진명의 딸들이여

기억하라 묵도하라 가슴에 새기거라

살과 뼈 모두 사루어 한 평생을 주었나니

 

흙을 보며 생각했네 한 줌 흙인 인생임을

오는 봄에 심을 씨앗 남겨 두고 가는 이치

그 씨앗 생명의 뿌리, 세세토록 뻗으리니

 

자유의 학이 되어 날아가신 빈 둥지에

아픔만 남겨 주고 정은 가져 가십니까

둥지에 빠진 깃털을 눈으로는 볼 수 없네

 

어느 해 어느 봄 날 뜻이 있고 길이 있어

이 땅에 다시 한 번 들르실 때 있으시면

갖고 간 남은 꽃씨를 심어 주고 가소서

 

고뇌의 옷을 벗고 일손도 놓으소서

생로병사 다시 없는 영원한 나라에서

님이여, 하나님 품에서 쉬시리라 믿습니다.

 

 

비고: *표는 유동 선생님의 "산처일기"중의 글귀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