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문학/나의 산문

팔려온 나무

설정(일산) 2009. 7. 3. 18:03

팔려온 나무


   지 성 찬


도심의 큰 빌딩의 한 구석에는 정원수가 자리를 잡고 길가에는 가로수들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군인들처럼 보초를 서고 있는 것은 고정된 하나의 풍경으로 자리를 잡았다.

어느 때 어느 곳에서 살다가 지금의 자리로 옮겨졌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거리를 활보하는 사람들도 이 나무들처럼 어디로부터 흘러서 왔는지 그 근본을 찾을 길이 없다.

그런 정원수들과 건물들과는 잘 어울리는 것 같이 보이지만 결코 어울릴 수 없는 모습이다.

나무들이 건물의 삭막함을 완화시켜주는 역할을 하지만 정작 나무들은 결코 건물들과 어울릴 수 없는 생체적 본능을 갖고 있다. 그렇게 호화스러운 나무들이지만 새 한 마리 둥지를 틀 수 없는 곳이고 새의 울음소리도 결코 들을 수 없는 곳이다.

높은 건물에 가리워져 하늘과 햇볕을 볼 수 없으니 항시 핼슥한 모습으로 겨우 생명을 유지할 정도이고 소음과 먼지들로 항시 더러운 몸을 가져야 하는 형편이다. 겨울에는 어디 의지할 곳도 없이 추위에 떨어야만 한다.

그러고 보니 살아있기는 하여도 핏기가 없고 꽃은 피어도 생기가 없다.

때를 따라 부는 신선한 바람과 흡족하게 쏟아지는 햇볕을 받으며 본래의 습성대로 살아가야 할 나무들이 고층빌딩의 틈바구니에서 겨우 뿌리를 박고 연명하며 고생을 한다.

적절한 공간확보를 하지 못한 나무들은 그 자체가 고통일 따름이다.

본래 사람도 나무들처럼 적절한 자연공간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데 빌딩 숲에 뿌리 박고 사는 나무들처럼 도심 속에서 시들어 가고 있다. 산업화가 이루어 놓은 재앙이다.

그러한 나무들에게 사람들은 재화로서의 가치를 매겨서 매매하는 물건으로 전락시켰다.

나무들이 생각하기에 자기들이 재화로서 매매가 되는 상품이 되리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을 것이다. 살아있는 나무가 사람들의 치부의 대상이 되고 돌과 물도 하나의 재화로서 등장한지 오래되었다.

그러한 것들이 사람의 눈에 재화로 보일지라도 그 자체는 아무 변화가 없다.

그런 나무들처럼 사람도 하나의 재화의 가치로서 평가되는 것이 도시화가 가져다 준 하나의 기현상이다.

그 사람의 소득이 그 사람의 가치를 판단하는 척도가 되고 그 사람이 소유한 재산이 그 사람의 가치를 평가하는 잣대가 되었다.

나무나 사람이나 다 같이 도심으로 팔려온 물건이다. 무엇 때문에 이 도심으로 팔려온 것일까? 편리함을 추구하는 인간의 속성이 인간을 속박하는 쇠사슬이 되었고 스스로의 무덤을 파고 들어왔다. 도심의 발달은 인간멸망의 종착역이 될 것이다. 편해지려는 속성이 결코 사람을 편하게 할 수 없었다. 돈 놀음을 하다가 사람이 죽으면 그 육신은 땅에 묻히고 없어질 뿐이다. 죽는 시점에서 모든 사람은 모두 평등해진다. 썩어질 육신에 금칠을 하고 보석을 박은들 무슨 소용이 있는가?

묻힌 육신은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육신이 누운 땅속은 깊고 무거운 적막이 있을 뿐이며 육신이 묻힌 땅 위에는 오직 풀만이 자랄뿐이다.

하지만 내일도 태양은 이 땅을 비추고 밤에 별은 항시 빛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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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느닷없이 고향의 뿌리가 뽑혀지고

도시의 최신형 빌딩 한 구석에 버려진 후

여기에 서 있는 까닭을 나는 아지 모른다


핏줄로 이은 뿌리는 끊겨져 아픈 자리

낯 설은 도시 풍물을 익혀가고 있을 즈음

여름내 그 상처에는 빗물이 스며들었고


나로 하여 찬탄하는 수많은 사람들도

가까이 다가와서 놀아주지 않았느니

거기엔 넘을 수 없는 철책이 놓여졌고


어디서 오는 걸까, 자꾸만 쌓이는 먼지

매일 같이 씻어내도 몸은 더 더러웠으니

하늘이 뵈지 않는 까닭을 그제서 알듯 했다


거기에 그럴듯한 나무들만 모였는데

이상한 일이었다, 새들의 소식이 없는....

통신이 발달한 요즈음, 전할 수 없는 우리의 얼굴


내 비록 금싸라기 땅에 묻혀 있을지라도

버려진 비산비야(非山非野), 넉넉함이 부러웠다

사들인 돌틈 사이에 또 나무를 끼우는데


돌과 모래까지도 매매하는 신경제론(新經濟論)

혹여 사람일랑 거래하는 일 없으렸다

하늘도 사들일 사람들, 정말 큰 일 내겠다.

    (“팔려온 나무” 전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