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교 상의 낙원상가 근처
낙원상가 근처
이 교 상
날마다 오고 가는 길이지만,
늦은 밤 골목에서 나는 자주 길을 잃는다
퀴퀴한 냄새 먹고 사는 고양이가 숨어 있는지, 혹은 내가 알지 못한 만신萬神의 집이 있어 아무도 몰래 향을 피우고 촛불 켜 놓고 있는지, 오늘도 길게 길게 숨 몰아쉬고 있는가, 술렁이는 불빛들 마치 신들린 무당이 토해놓은 향기 없는 꽃밭 같다
누가 이 골목 저 골목 흔적 없이 지울 수 있는지, 희미한 밤길 어슬렁거리는 사람들 불 밝힐 수 있는지, 그림자 위에 아무렇게 널브러진 얼굴 없는 사랑 모두 날려 보낼 수 있는가, 어둠이 잡아먹는 흐릿한 시간의 초침 소리가 지루하고 덤덤하다
날마다 눈이 충혈 되어서
허공을 걸어가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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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소화에 대한 기억
담벼락 아래 굵고 붉게 떨어진 눈물을 본다
사내는 방파제 끝으로 걸어가 굳어버린 몸을 벼린다 한 때 고래가 유영했던 바다, 시퍼렇게 날선 등짝에 사라진 수평선이 다시 아득히 떠오른다 바람에 헝클어진 한 여자의 모습이 연신 파도로 밀려와 유리의 파편처럼 공중으로 날아오른다
말없이 절벽에 앉아 울음을 음각하는 사내
이교상
경북 김천 출생. 2004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 연구서『현대시조의 형식 연구』등과, 시집『긴 이별 짧은 편지』등이 있음. <영언> 동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