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위숙의 순대 외 1편
순대
김 위 숙
순대아줌마
잘못 썰은 순대 두 개
도마에서 튕겨져 도르륵 제 몸 굴리고 있다
굴린다굴린다바퀴처럼바퀴처럼
리어카 밑으로 들어간다
야! 그 놈 참 맛있겠네
침 흘리는 바퀴 밑으로 제 몸 숨긴다
텅 빈 창자 빵빵하게 채운 순대가
둥근 바퀴 바닥 빠져나간다
오늘 하루
어둠을 둘둘 말아 넣은 순대 같았다
에워싼 순대 속 같이 어둠에 가려진
나날들 굴리며 간다
등산화 한 짝, 파르르 떠는 비닐봉지, 콘돔까지
모든 벗어던진 것들로 가득찬 거리
먹이 찾아 나서는 들쥐가 거리를 뜯어먹는다
온갖 것 가득 집어넣은 세상에서
나는 나물 한 잎
순대 속에서 삐져 나온다
누군가의 꽁꽁 감춰진 아픈 생애도
순대터널을 빠져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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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은지, 아버지
김 위 숙
바깥마당
한 해 익은
묵은지 항아리
시큼한 냄새 밴 뚜껑 열리면
비질한 마당 위로 발갛게 떨어지던 묵은지 냄새
되새김에 취한 황소도 그 냄새 맡으며 콧구멍 벌름거리면
아버지, 막걸리 한 통 들고 윗파람으로 가셨지
가을 들판 닷 마지기 논에 누런 이삭들 넘늘거리면
줄줄이 논고랑 헤집으며
고개 숙인 나락보다 더 등 구부리던 아버지
왜낫에 한 줌씩 베어 넘기던 벼이삭
아아, 소출 나겠다야
아버지, 살찐 가을날 닷 마지기 꿈을 실어오던 달구지엔
맵싸한 하늘과 한 입 베어 먹힌 낮달이 걸려있었지
깊어가는 마당은 노랗게 가을이 쌓여가고
그때마다 잘 삭은 묵은지 뚜껑 열며
군침부터 꿀꺽 삼키시던 아버지
허방에 흔들리면서도 볏단만은 꽉 잡던 그 착한 시선
때깔 좋은 묵은지 한 가닥 길게 들어 올리셨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