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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위숙의 순대 외 1편

설정(일산) 2009. 8. 28. 20:26

순대

 

김 위 숙

 

순대아줌마

잘못 썰은 순대 두 개

도마에서 튕겨져 도르륵 제 몸 굴리고 있다

굴린다굴린다바퀴처럼바퀴처럼

리어카 밑으로 들어간다

야! 그 놈 참 맛있겠네

침 흘리는 바퀴 밑으로 제 몸 숨긴다

텅 빈 창자 빵빵하게 채운 순대가

둥근 바퀴 바닥 빠져나간다

 

오늘 하루

어둠을 둘둘 말아 넣은 순대 같았다

에워싼 순대 속 같이 어둠에 가려진

나날들 굴리며 간다

등산화 한 짝, 파르르 떠는 비닐봉지, 콘돔까지

모든 벗어던진 것들로 가득찬 거리

먹이 찾아 나서는 들쥐가 거리를 뜯어먹는다

온갖 것 가득 집어넣은 세상에서

나는 나물 한 잎

순대 속에서 삐져 나온다

누군가의 꽁꽁 감춰진 아픈 생애도

순대터널을 빠져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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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은지, 아버지

 

김 위 숙

 

바깥마당

한 해 익은

묵은지 항아리

시큼한 냄새 밴 뚜껑 열리면

비질한 마당 위로 발갛게 떨어지던 묵은지 냄새

되새김에 취한 황소도 그 냄새 맡으며 콧구멍 벌름거리면

아버지, 막걸리 한 통 들고 윗파람으로 가셨지

가을 들판 닷 마지기 논에 누런 이삭들 넘늘거리면

줄줄이 논고랑 헤집으며

고개 숙인 나락보다 더 등 구부리던 아버지

왜낫에 한 줌씩 베어 넘기던 벼이삭

아아, 소출 나겠다야

 

아버지, 살찐 가을날 닷 마지기 꿈을 실어오던 달구지엔

맵싸한 하늘과 한 입 베어 먹힌 낮달이 걸려있었지

깊어가는 마당은 노랗게 가을이 쌓여가고

그때마다 잘 삭은 묵은지 뚜껑 열며

군침부터 꿀꺽 삼키시던 아버지

허방에 흔들리면서도 볏단만은 꽉 잡던 그 착한 시선

때깔 좋은 묵은지 한 가닥 길게 들어 올리셨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