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문학/새책 또는 글 소개

나의 비밀스런 시창작 노트-우은숙

설정(일산) 2009. 9. 6. 19:00

 

사랑은 그래서 아프다

우 은 숙

 

강은 나에게 있어 안식처다. 춘천에 사는 동안 강이 있어 행복했음은 말할 것도 없다. 틈만 나면 강엘 갔다. 비가 오면 비오는 강을 보기 위해, 아침이면 안개 낀 강을 보기 위해, 시를 쓰고 싶을 때는 시심을 건져 올리기 위해, 우울하면 강과 우울을 이야기하기 위해 등등 가지가지 이유도 많았다. 심지어는 ‘그냥’이라는 이유도 있었다. 내 나름대로 이유를 갖다 붙이다 마땅히 붙일게 없으면 ‘그냥’인 것이다. 이렇게 난 시도 때도 없이 강을 찾았고, 그 때마다 강은 반갑게 나를 맞이해 주었다.

수원으로 이사를 오고 난 후 나는 심한 몸살을 앓았다. 그렇게 별별 이유를 대면 수시로 찾아가던 강이 수원에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긴, 강이 없다는 이유로 주말부부로 4년을 살았지만 더 이상 주말부부는 안 된다는 남편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사를 온 터였다. 처음엔 강을 보기 위해 무작정 차를 몰고 춘천을 다녀오기도 했다. 하지만 쉬운 일은 아니었다. 따라서 나에겐 강을 대신할 그 무엇이 필요했다. 그래서 찾은 것이 호수였다. 수원에는 강이 없는 대신 저수가가 여러 곳 있다. 서호를 비롯해 원천호수, 일왕저수지, 일월저수지 등이 있고, 수원 근교에도 백운호수, 신대저수지, 보통리저수지, 왕송저수지 등이 있다.

그 중 왕송저수지는 의왕에 있지만 우리 집에서는 불과 10분 거리밖에 되지 않는다. 강 대신 틈만 나면 왕송을 찾기 시작했다. 왕송은 수면이 넓어 춘천 호반의 모습은 아니지만 강의 정취를 그대로 느낄 수 있어 좋았다. 뿐만 아니라 주변의 다른 호수들보다 개발의 흔적이 없고, 청둥오리·왜가리·두루미· 원앙 등 각종 철새들도 많아 갈수록 정이 깊어지는 곳이었다.

어느 겨울날, 뉴스의 서두에 오르내릴 만큼 추운 날이 여러 날 계속되고 있었다. 칼날 같은 날씨 속에서도 맑은 햇빛이 너무 좋아 나도 모르게 왕송을 찾게 되었다. 왕송은 안도현 시인의 시처럼 흰 눈을 받기 위해서인지 제 몸을 서서히 얼리고 있었다. 며칠 후 강현덕 시인과 함께 다시 왕송을 찾았다. 왕송 저수지 가운데는 조그만 섬 하나가 있다. 보통 때는 철새들의 보금자리였다. 그런데 기온이 며칠째 직립하강으로 내려간 때문인지 얼마 전 찾았을 때 얼기 시작하던 호수가 사람이 건너가도 좋을 만큼 두껍게 얼어 있는 것이었다. 강현덕 시인과 난 호기심에 그 섬엘 가보기로 했다. 둘이 손을 꼭 잡고 조심조심 건넜다. 금방이라도 얼음이 깨지면 우리는 빠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호기심과 두려움으로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마치 미지의 섬을 정복하는 느낌마저 들었다. 그 섬에 거의 도착하려던 순간! 내 눈을 강하게 끌어당기는 장면이 있었다. 그것은 꽝꽝 언 얼음 사이로 그 얼음보다 더 얼음이 된 물고기 한 마리가 배를 내밀고 있는 것이었다. 그 뿐이었다면 가슴을 덜 쓸어내려도 좋았을지 모른다. 그런데 그 물고기의 배는 갈라져 있었고, 허연 살점들이 뜯겨져 있었다. 얼음 속에 박혀 있는 고기의 살점을 새들이 먹잇감으로 먹은 것이다. 아니, 내가 보기에는 물고기가 새들의 먹잇감으로 자신의 배를 열어놓고 있는 것이었다. 가슴이 먹먹해 왔다. 햇살을 핥아 먹던 그 섬에 나무들도 순간 몸을 정지시켰다. 흰 보석 같은 빛 조각을 쏟아내는 햇빛도 순간 멈칫했다.

먹먹한 가슴을 어쩌지 못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올려다 본 하늘에는 어머니의 모습이 오버랩되고 있었다. 어머니는 늘 얼음 속에서도 자신의 배를 갈라 새들의 먹이가 되어 주는 물고기처럼 우리 4남매에게 모든 것이 내어 주셨다. 4남매 중 특히, 나는 막내라는 이유로 그 살점을 조금이라도 더 먹겠다고 안간힘을 썼다.

 

 

 

꽝꽝 언 왕송저수지에 얼음썰매 타면서

호기심에 건넌다

무언가 툭! 발에 채인다.

 

얼음 틈,

보시의 배를 내민

물고기 한 마리.

 

여몄던 단추 풀고 겨울 철새 허기 위해

풍장으로 누워 있는 물고기의 허연 살점

 

총·총·총

새들의 발자국

빙판위에 바쁘다.

 

숨 가쁘게 살아왔을 물고기 한 생이

물감처럼 번져 와 하늘 한번 쳐다보니

 

그 속에

낯익은 미소로

웃고 있는 내 어머니.

 

새 먹이 된 물고기처럼 몸을 비운 내 어머니

그 살점 뜯어먹기 위해 안간힘을 쓴 나에게

 

이제는

탄력도 없는 가슴

오늘도 저리 내민다.

 

- 졸시「사랑은 그래서 아프다」 전문

 

 

 

졸시 「사랑은 그래서 아프다」는 이렇게 탄생되었다. 얼음 틈에 누워 있는 물고기와 이제는 빈 가슴이 된 어머니가 어쩌면 이렇게 닮아 있을까.

 

 

 

 

 

 

 

 

약력 / 우은숙

 

정선 출생

1998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2007년 제26회 중앙일보시조대상 신인상 수상

시집 『마른꽃』(2001, 동학사) 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