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문학/새책 또는 글 소개

미래를 개척하는 시인-하종오 (임영석)

설정(일산) 2009. 9. 6. 19:21

고등어 살 속에 염장을 지르는 시인-하종오 시인


    임 영 석



  세상을 살다 보면 논둑에 말뚝을 박아 놓아야 장마철이 와도 논둑이 무너지지 않는다. 그러나 마른 가뭄에 힘자랑만 한다고 빗대는 사람도 더러 있다. 보수와 진보라는 경계는 미래를 예측하는 관점의 차이에 있다고 본다. 보수는 현실에 안주하는 마음이 강하지만 진보는 미래를 지향하는 측면이 강하다. 현실과 미래라는 차이는 그렇게 크지 않다. 현실을 무시하고 미래가 담보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미래를 꿈꾸지 않고는 현실이 행복해질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진보와 보수의 끝없는 대립의 각이 너무나 크다. 현실의 모순을 지적한다는 것은 미래를 더 아름답게 꿈꾸는 것이지 현실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 사회는 현실의 모순을 지적하는 것을 부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측면이 강했다. 그것은 오랜 기간 동안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사람들의 술책이 현실의 모순을 지적하는 그 자체를 음흉하게 생각해 왔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우리네 삶은 언제나 미래를 지향해 왔다. 고등어 살 속에 염장을 지르는 것은 고등어가 더운 날씨에도 썩지 않게 하려는 방법이다. 김치를 담가 장독에 익혀 먹는 그 생활 습관은 긴 시간에 걸쳐 맛있는 김치를 먹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유독 우리 사회는 이러한 철학이 몸에 배어 있는 것을 억제하는 측면이 강했다.


필자가 생각하는 하종오 시인은 현실의 모순을 지적함으로써 미래에 다가올 부정적 상황을 예측 가능하게 한 시인이 아닌가 생각한다. 아래 시들을 읽어보면 현실의 모순을 제거하지 않으면 미래의 삶이 불행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느끼게 해 준다.



밥 한 끼 같이



부모 삼년상을 다 치르고 난 다음해부터

형제들 소식이 멀다가

한 사람이 병 깊다는 전갈이 왔다


더운 여름날 내내 저마다 땡볕을 피해

남의 원두막 지키기도 하고

강에서 멱을 감기도 하고

소나무 그늘 아래서 낮잠 자기도 하다가

해질 무렵에 슬금슬금 두레밥상에 모여들던

어린 시절의 마음으로 돌아왔는지

저마다 처자식만 챙기다가

형제들 중 먼저 떠나려는 분 있어

밥 한 끼 같이 먹었다


왔던 순서대로 가는 순서가 정해지지 않는다고 위로하고

잘살고 못살고는 지 할 탓 아니라고 자위하고

핏줄에 갈래가 많아서 엉뚱한 후손이 나온다고 염려하고

이미 할아버지가 된 형들은 손자들 버릇을 자랑하고

아직 아버지의 동생들은 자녀들 나이를 걱정했다


식사를 끝내고도 일어서지 않는 까닭을

형제들은 알고 있지만

냉방 잘된 뷔페에서 너나들이가 끝없었다

누구는 부모님 덕분에 장가 잘 들었다고

누구는 부모님 성화에 높은 공부 했다고

누구는 부모님 봉양하느라 고생했다고


하종오 시집 『지옥처럼 낯선 』,〈랜덤하우스중앙〉에서


 「밥 한 끼 같이」를 읽어보면 현실 그 자체가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을 보는 듯하다. 아마 대가족의 구성원들이 모여 밥 한 끼 먹는 것도 마지막 삶의 풍경으로 다가오는 모습이 아닌가 한다. 우리나라는 출산율이 OECD 최하위라 한다. 노령화 인구가 증가하면서 젊은 층이 상대적으로 적어져서 오는 사회적 손실이 큰 재앙처럼 기다리고 있다. 농경 사회에서는 자식을 낳으면 그 자식들의 일손이 농사를 짓는 도구와 수단이었기 때문에 제 먹을 것은 갖고 나온다는 말이 성립되었다. 하지만 지금 우리 사회는 과학 문명사회를 살다 보니 밥벌이하는 일이 쉽지 않다. 하종오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의도는 우리 사회가 가족의 구성이 해체되어 간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그나마 마지막 생존의 형제들끼리 밥 한 끼 먹으면서도 부모 밑에서 사랑받고 자란 추억을 그리워하는 것이 아니라, 누가 더 부모의 덕을 보며 자랐느냐는 물질적 문제 만을 거론하고 있다는 것이다.

세상이 물질적 재산만 최고의 가치로 여기기 때문에 발생하는 모순이라 생각한다. 선비 정신 하에서 굶어도 책을 읽고 정신을 흐트러지지 않게 살아야 한다는 장점을 이어가지 않고, 가난을 물려주지 않아야 한다는 것만 강조된 세상이 되었기 때문에 온 병폐가 아닌가 한다. 현실에서 가난도 물려주지 않아야 하겠지만, 정신적 가난도 물려주어서는 안된다는 선비 정신을 이어가지 않았기 때문에 오는 우리 사회의 또 다른 모순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 밥 한 끼 같이 」는 선비 정신의 고갈에서 오는 우리 사회의 또 다른 모순임을 지적하는 대목이다

헌옷 도독



골목 모퉁이에 놓여 있는 헌옷 수거함은

뚜껑 잠긴 채 투입구만 뚫려 있었다

겨우내 헌옷만 입고 다니던 나는

이따금 갇힐까 싶어 종종걸음쳤다


평일 밤에는 슬그머니 긴 집게를 넣어

투입구로 몇 벌씩 빼내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층 어패럴 공장에서 일하는 파키스탄 남자들은

긴 바지와 셔츠만 골라서 가져가고

지하 어패럴 공장에서 일하는 필리핀 여자들은

예쁜 속옷만 골라서 가져갔다

빈국으로 수출한다는 수거업자는

주말 낮에만 와서 자물쇠 풀어 뚜껑 열고

그들이 남긴 옷가지만 트럭에 실으면서

나에게 오며 가며 잘 지켜봐달라고 부탁했다


단 한 벌도 쑤셔 넣어본 적 없는 내가

헌옷 수거함에 갇히고 싶도록 남루하던 날

얼른 투입구에 손을 넣었다가 뺐다

내가 입은 옷보다 새것 한 벌이 잡혀 나왔고

그 하루가 싱긋 웃으면서 지나갔다


하종오 시집 『지옥처럼 낯선 』,〈랜덤하우스중앙〉에서


필자가 하종오 시인을 『고등어 살 속에 염장을 지르는 시인 』이라 말하는 것은 하종오 시인이 부단하게 바라보는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값싼 노동을 제공하는 목적으로 와서 일하며 그들이 받는 인권적 문제, 생활고, 삶의 문제 등등을 시로 표출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그들 외국인 노동자의 삶이 부패하지 않아야 우리 사회가 더 건강한 미래를 지향하기 때문이다.

글로벌 시대라고 말로만 외치지 말고 세계적으로 동일한 노동 조건을 제공하자는 것이  세계노동조합의 기치다. 오늘날과 같이 이동 수단이 발달하여 어느 나라든 하루 이틀이면 가서 일하게 되어 있는 현실에서 외국인에 대한 차별은 미래의 또 다른 갈등을 불러온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나라가 일제 강점기에 받았던 강제노역 등 수많은 인권 침해와 박해를 생각한다면, 지금 우리 사회에서 외국인에 대한 차별도 일제 강점기의 차별과 무엇이 다른가를 생각하게 한다. 우리는 과거를 통해 미래를 지향하는 진보적 사고를 창출해야 한다.

「 헌옷 도독 」은 한 푼이라도 아끼기 위해 헌옷 수거함에서 옷을 훔치는 외국인의 생활상을 그리고 있다. 우리가 입다가 버린 옷들이 헌옷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외국인 노동자에게는 한 푼을 아껴 가족의 행복을 지켜야 한다는 절실함이 있다. 6.25  전,후로 우리나라도 미군의 옷을 주워 입지 않았던가. 가난이 죄는 아니라고 했다. 열심히 노력해 사는 그 모습속에서 행복은 추구된다. 헌옷 도둑은 마치 우리 사회가 풍부함을 가진 것처럼 보이지만, 6.25를 격은 사람들의 눈으로 바라보면 근검하게 살아가지 않는 모순이다. 이를 외국인 노동자가 대신 기억을 재생산할 뿐이다.

우리는 현실의 모순을 진보적 생각으로 재생산하는 기억을 해야 한다. 그것이 미래의 가치를 더 아름다운 삶으로 이끌어 내는 에너지가 되기 때문이다. 선비정신을 일하지 않고 가난의 대물림이라 생각했던 것은 시대적인 큰 착오였다. 정신적 가난을 대물림하지 않은 유대인의 탈무드는 세계적으로 많은 사람에게 삶의 지침서가 되어 있다.  우리는 진보가 현실을 부정한다는 시각부터 버려야 한다. 진보라는 것은 고등어 살 속에 염장하여 오래 보관하는 방법이라 여겨야 한다. 또한, 보수는 많은 물고기를 잡을 수 있는 그물을 만드는 것이다. 진보와 보수의 경계는 없다. 다만, 정신의 가치와 물질의 가치가 동등한 삶을 추구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많은 양의 수확에만 의존하여 부를 창출하는 시대는 지났다. 이제는 선비적 정신이 결합한 사고의 재창출만이 미래의 삶을 행복하게 할 수 있다.


글로벌 시대에 노동자의 인권은 어느 나라에서나 동일한 조건으로 보장되어야 한다. 하종오 시인은 외국인 노동자의 현실을 통해 세계화의 근간이 무엇인가를 제시하고 있다. 아직은 우리 사회가 노동자의 삶에 보수적인 시각이 크다. 단순히 일만 열심히 해야 한다는 시각이다. 노동자는 일하는 기계가 아니다. 외국인 노동자라 하여도 예외일 수는 없다. 과거와 현재는 미래의 동력이다. 우리 사회의 모순을 통해 미래의 병폐를 예방하는 것이 현실적 대안이 아닌가 생각한다. 하종오 시인은 외국인 노동자를 통해 글로벌 시대의 삶이 어떻게 지향되어야 하는가를 말해주고 있다.

우리가 김치를 담가 먹는 것은 오랜 시간 숙성을 통해  삶의 맛을 익혀왔기 때문이다. 시라는 것도 미래의 삶을 예측하는 진보적 사고와 보수적 사고의 결합 없이는 한 치도 삶의 행복을 추구할 수 없다. 시는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삶의 행복을 추구하는 정신으로 다가설 수 있어야 한다. 하종오 시인은 그 정신을 독자들에게 숙성시켜 맛보게 하는 시인이라 말하고 싶다.

 

 

첨부파일 9월호-임영석-미래를 개척하는 시인〈8〉.hwp



하종오


1954년 경북 의성 출생. 1975년 <현대문학>을 통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1990년부터 '反詩' 동인으로 활동했고, 1983년 '신동엽 창작기금'을 수혜받음,2006년 한국불교문예 작품상 수상. 시집으로 <벼는 벼끼리 피는 피끼리> <사월에서 오월로> <분단동이 아비들하고 통일동이 아들들하고> <꽃들은 우리를 봐서 핀다> <정> <깨끗한 그리움> <님詩篇> <무언가 찾아올 적엔> <반대쪽 천국> <지옥처럼 낯선>등등이 있으며, 굿시집 <넋이냐 넋이로다>, 시극집 <어미와 참꽃>이 있다. 어른을 위한 동화로는 <도요새>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