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비밀스런 시창작 노트-이승현
자나 깨나 자식 생각에 한 평생 살다 가시는 우리들의 어머니
이승현 시인
“자나 깨나 자식위해 신령님전 빌고 빌며 학처럼 선녀처럼 살다 가신 어머니 이제는 눈물 말고 그 무엇을 바치리까.” (태진아의〈사모곡〉가사 일부)
이 땅의 모든 어머니는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자식에 대한 사랑만큼은 지대하다. 노랫말처럼 맑은 물 한 그릇 예사롭지 않게 떠 올려놓고 새벽이슬 맞으면서 서낭당에 빌고 또 빌면서 자식을 위해 혼신을 다 바치신다. 세월이 아무리 바뀌었다고 해도 지금의 어머니들도 자식에 대한 사랑만큼은 어느 시대에 못지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가끔 매스컴에서 보면 자식들을 내팽개치고 떠나는 어머니들에 대한 뉴스를 보지만, 그것은 아주 일부분일거란 생각이다.
며칠 전 어느 방송에서 〈용서〉라는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다. 어렸을 때 자식을 놔두고 집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어머니가 5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자식을 찾아 용서를 빌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오죽했으면 자식을 버리고 떠났을까? 그 프로그램에 나온 어머니 역시, 절박한 상황이 자식을 떠날 수밖에 없었을 거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우리가 사는 사회는 부모자식간이라도 떨어져 살 수밖에 없는 몹쓸 원인을 가끔은 수렁처럼 만들어 놓기도 한다. 지지리 못살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어떻게 부모가 자식을 버리고 떠날 수가 있냐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사회라는 제도와 틀이 주는 거역할 수 없는 장벽은 어떨 때는 그 부모자식 간의 사이까지 떼어 놓기도 한다. 그게 우리 인간이 만들어 놓은 덫일 수도 있겠다. 이념, 사상, 또는 제도라는 틀에서 오는 어쩔 수 없는 벽, 七去之惡이라는 규범의 틀, 이런 것들이 부모 자식 간을 떼어 놓기도 한다. 그것이 아니라면 어느 어머니가 자식을 내팽개칠 수 있을 것인가. 어찌 보면 모든 것들이 인간이 만들어 놓은 부조화의 수렁일 것이다. 그 장벽을 넘기 위해 잠시 자식 곁을 떠날 밖에 없었던 어머니, 자식을 평생 잊지 못하고 가슴에 묻고 있다가 이제 조금씩 세상일을 정리해야 하는 나이가 되어 깊은 한을 풀기 위해서 자식을 찾아보고 싶은 것이 우리의 어머니들이다. 누가 그 어머니의 눈물에 왈가왈부할 수 있을까? 이 땅의 모든 어머니들은 자식에 대해서 깊고도 깊은 저 우주와 같다.
결혼을 하고 한 3년 간 부모님과 함께 살았다. 그러다가 첫 직장이 지방으로 발령이 나는 바람에 분가해서 살게 되었다. 그렇게 살아 온 세월이 30년, 이제 어머니의 연세가 85세가 되었고, 당뇨에 혈압합병증으로 여러 해를 병고와 함께 살아 오셨다. 몇 해 전부터는 무릎관절합병증으로 거동조차 불편해 하셔서 생활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계신다. 그래서 아내와 상의를 거듭한 결과, 하던 일을 모두 정리하고 본가로 들어가 살기로 결심하고 올 초부터 서울에서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다. 그 때만해도 거동이 불편한 어머니를 잘 모시고 살 거라는 안일한 생각을 했다. 그러나 살아 보니까 여전히 부모님의 사랑이 더 커서 효도를 할 거라는 앞선 생각을 접어야 했다. 오히려 어리광을 부리고 어머니 젖도 슬쩍슬쩍 만지며 어린애처럼 하는 것이 진정 어머니가 원하고 좋아하는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식이 아무리 부모님을 모시고 잘 한다고 해서 그게 부모님의 사랑보다 크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가고 있는 중이다. 잘 하려는 자식의 마음과 도리와 효도는 부모님의 내리사랑에 비하면 작은 일부분 밖에 될 수 없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는 순간이다.
요즘은 어머니와 참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있다. 매일 똑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지만 그 말씨의 높낮이와 말의 토씨까지 하나도 틀리지 않는다. 어쩜 그리도 선명하게 기억하시는지… 참으로 놀랍다. 명색이 시인이라는 나도 시를 하나 외우는데 고심에 고심을 하며 외우는데, 아니 외운 것을 매일 반복하지 않으면 곧 잊어 안 보고 낭송하는 것이 불가능한데, 어머니는 젊었을 때 외운 금강산 타령의 긴 노랫말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읊어내신다. 그럴 때면 어머니 그 총기 저 좀 더 주시지 않고 혼자만 갖고 계신다고 욕심쟁이라고 하면 손사래를 치시며 웃곤 하신다.
그러시는 어머니가 매일 한두 번은 꼭 하시는 이야기가 있다. 내가 태어나기 전 생후 5개월 만에 잃은 첫 자식 이야기를 아직도 생생하게 하신다. 아이를 낳고 잘 나오던 젖이 갑자기 뚝 끊기며 젖이 안 나오는 일이 생기셨다고 한다. 어머니 말씀으로는 “개부정을 탔다”라고 말씀하시지만 그 때는 지금처럼 의술이 있는 시절도 아닌 해방 직후의 시대 상황으로써는 그런 진단이 가능하던 때였다. 약이 있을 수 없고 하루하루 보리쌀 찧어 먹던 시절에 쌀알도 귀했을 뿐만 아니라 우유는 생각지도 못했던 시절이라고 한다. 쌀알을 씹어서 뱉은 다음 미음을 끓여 먹이는 것이 약이 된다는 말에 어머니는 산후조리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매일 쌀을 씹어 미음을 끓여 먹였다고 한다. 그렇게 하기를 5개월,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첫 아들을 잃고 말았단다. 그 이야기를 하시며 지금 살았으면 노무현 전 대통령과 동갑이란다. “그 놈이 노무현이랑 동갑이래”, 늘 그 말씀을 하시며 그 때 부은 몸으로 생쌀을 씹어 뱉느라 이가 다 망가져 지금 이가 하나도 없이 이렇게 밥을 먹으려면 고생이라며 애꿎은 틀니만 달그락거리신다.
그 말씀을 귀가 닳도록 들었는데, 어느 날 틀니라는 시제가 갑자기 목덜미를 치는 것이다. 아 맞아, 어머니가 하시는 말씀이 ‘틀니가 달그락 거리며’ 내게 하는 말이었어, 그렇게 해서 쓰게 된 시가 바로 「틀니가 하는 말」이다.
허기져 우는 아이 열이 달아 오를까봐
찔레꽃 조각빛으로 앞섶에 품어 안으며
흰 쌀알 씹어 놓느라 어금닌 맷돌이 된다
젖이 말라 안 나오면 먹일 게 없던 그 시절
생쌀 씹어 먹이는 게 약이란 말 한 마디에
뽀얀 젖 입에 물리 듯 햇살 담아 갈아먹였지
입에서 입으로 전한 온기가 여전히 남아
격랑이 굽이치는 길 예까지, 예까지 왔다며
어머니 둥치 빠진 빈집에 딸깍대는 틀니소리
-「틀니가 하는 말」 전문
어머니의 말씀이 그대로 시가 된 형국이다. 이 시에서 주목해야할 부분이 있다. 어머니의 경험에서 나온 이야기는 결국 아들을 잃은 내용이었다. 그렇다면 셋째 수에 나오는 이야기는 내용상 맞지 않는다. “입에서 입으로 전한 온기가 여전히 남아/ 격랑이 굽이치는 길 예까지, 예까지 왔다며” 하시는 말씀의 상황은 맞지 않는다. 여기에 바로 시적 묘미인 시인의 상상력이 들어간 부분이다. 첫 아들은 죽었지만 지금 이 이야기는 바로 그 다음에 태어난 둘째 아들이었던 내게 하시는 말이기 때문에 이 이야기를 내 것으로 환치한 것이다. 내가 그 씹어 주는 쌀알의 온기를 받아먹고 어렵지만 지금까지 살아오고 있는 것으로 상상의 나래를 펼쳐놓는 것이다.
이 졸시는 결국 어머니의 殺身成仁하는 그 사랑이 아들을 키워왔다는 위대한 사랑을 표현하고자 한 작품이다. 어머니의 사랑은 저 무한한 우주의 깊고 깊은 하늘빛보다도 더 깊은 사랑이다. 틀니를 달그락 거리며 말씀하시는 말씀 속에는 우리가 도저히 넘을 수 없는 어머니의 내리 사랑만이 있을 뿐이다. 어머니 앞에서 아니 그 어느 자리에서도 어머니께 “효도할 게요”란 말을 해서는 안 될 것이다. 부모님이 살아 계실 때 효도하라는 말은 틀린 말이다. 효도는 있을 수 없고 어머니가 주는 그 내리 사랑을 잘 받아들이는 자식이 효도하는 것이다. 오늘도 어떻게 하면 어머니가 즐겁게 자식에게 사랑을 베풀어 줄 수 있게 할까라는 것이 내 화두다. 난 어떻게 하면 그 사랑을 맛있게 잘 받아먹을까 하는 게 요즘 고민이라면 고민이다. 난 참 행복한 사람이다. 그저 어머니, 아버지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시는 게 바람이라면 바람이다. 오늘 아침에도 어머니 젖가슴을 슬쩍 매만지고 나왔다.
이승현
충남 공주 출생. 2003년 유심신인상 등단, 2009년 나래시조문학상 수상. 작가회의회원, 시조시인협회회원, 시조시인회의회원. 나래시조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