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문학/새책 또는 글 소개

이승하의 현대시=상처 외

설정(일산) 2009. 12. 30. 02:43

상처 / 이승하

 

산 개미가 죽은 개미를 물고
어디론가 가는 광경을
어린 시절 본 적이 있다

 

산 군인이 죽은 군인을 업고
비틀대며 가는 장면을
영화관에서 본 적이 있다

 

상처입은 자는 알 것이다
상처입은 타인한테 다가가
그 상처 닦아주고 싸매주고
그리고는 벌떡 일어나
상처입힌 자들을 향해
외치고 싶어지는 이유를

 

상한 개가 상한 개한테 다가가
상처 핥아주는 모습을
나는 오늘 개시장을 지나가다 보았다

 

 

 

 

 

어머니가 가볍다 / 이승하

 

  아이고―
  어머니는 이 한마디를 하고
  내 등에 업히셨다

 

  경의선도 복구 공사가 한창인데
  성당 가는 길에 넘어져
  척추를 다치신 어머니

 

  받아내는 동안 이렇게 작아진
  어머니의 몸 업고 보니
  가볍다 뜻밖에도 딱딱하다

 

  이제 보니 승하가 장골이네
  내 아픈 니를 업고 그때……

  어무이, 그 얘기 좀 고만 하소

 

  똥오줌 누고 싶을 때 못 눠
  물기 기름기 다 빠진 70년 세월 업으니
  내 등이 금방 따뜻해진다.

 

 

 

                                                              

 

아버지의 성기를 노래하고 싶다 / 이승하
 
 
볼품없이 누워 계신 아버지
차갑고 반응이 없는 손
눈은 응시하지 않는다
입은 말하지 않는다
오줌의 배출을 대신해주는 도뇨관(導尿管)과
코에서부터 늘어져 있는
음식 튜브를 떼어버린다면?

 

항문과 그 부근을
물휴지로 닦은 뒤
더러워진 기저귀 속에 넣어 곱게 접어
침대 밑 쓰레기통에 버린다

더럽지 않다 더럽지 않다고 다짐하며
한쪽 다리를 젖히자
눈앞에 확 드러나는
아버지의 치모와 성기

 

물수건으로 아버지의 몸을 닦기 시작한다
엉덩이를, 사타구니를, 허벅지를 닦는다
간호사의 찡그린 얼굴을 떠올리며
팔에다 힘을 준다
손등에 스치는 성기의 끄트머리
진저리를 치며 동작을 멈춘다
잠시, 주름져 늘어져 있는 그것을 본다

 

내 목숨이 여기서 출발하였으니
이제는 아버지의 성기를 노래하고 싶다
활화산의 힘으로 발기하여
세상에 씨를 뿌린 뭇 남성의 상징을
이제는 내가 노래해야겠다
우리는 모두 이것의 힘으로부터 왔다
지금은 주름져 축 늘어져 있는
아무런 반응이 없는 하나의 물건

 

나는 물수건을 다시 짜 와서
아버지의 마른 하체를 닦기 시작한다.

 

 

 

 

 

김천 우시장 탁배기 맛 / 이승하
 
  이전 맛 같지 않구마 
  소 팔러 우시장에 나온 아부지를 따라와
  승하야 니도 한 잔 묵거라
  뜨물 같은 탁배기 한두 잔 얻어 마시던
  그 술맛은 어데로 가삐맀는지
  씹다 더 달싹해졌는데 더 씹다
  어무이 치료비 마련할라꼬
  큰맘 묵고 끌고 나온 한우 암소
  하이고 나 원 참
  200만 원도 안 준대여
  또 소값 파동이래여?
  소고기, 비육우 무데기로 수입한 탓이래여?
  이번엔 우루과이라운드 때문이라네
  내도 84년 폭락 때 죽은 뒷집 박씨 아저씨처럼
  솔랑은 이 우시장에 두고 가까
  우시장에 소 내삐리고 와
  농약 묵고 탁 죽어삐리까
  소야, 니는 죽어 괴기 될 자격이 없고
  내는 살아 소 키울 자격이 없다 칸다
  소야, 내 손으로 널 잡아먹긴 싫었는데
  내가 널 백지 델꼬 왔다
  에라이 속이 씨려 속 달랠라꼬
  마시는 술맛이 왜 이 모양이고
  움메에 우는 소 눈을 쳐다보며
  우시장 한 켠에 앉아서 마시는 탁배기

 

 

                        

                                                          

 

어느 갓장이에게 들은 말 / 이승하
 
  뭐 부끄럽지 않소
  10년을 배와 재우 손에 익힌 것이
  밤일꺼지 해가민서 한 달에
  재우 두세 개 맨들어내는 것이
  뭐 부끄럽지 않소이다
  말총으로 날줄을, 쇠꼬리털로 씨줄을
  절이고 절인 걸 또 절이고 절여
  날줄 오백 열두 줄을 맨들기꺼지
  기양 맨드는 기 내 일이라
  눈 어둡어지는 것도 몰랐지만서도
  배우로 온 사람 장사하겠다고 가고 
  공장에 다니는 기 낫겠다고 떠나고
  이젠 늙은 마누라가 내 조수여
  그래 자석새끼들한테 안 가르쳐준 것이
  부끄럽다면 하냥 부끄럽소
  개명한 시상에서 갓을 누가 쓴다냐
  예를 누가 지킨다냐
  조선色을 누가 돌본다냐
  날 보로 왔으니 시인 양반
  노래나 한 곡조 불러줌세
  울 아배한테 배운 갓일 노래

 

      한 코 떠라
      두 코 떠라
      세 코 떠라
      속히 떠라
     
      양태 뜨는 소동들아 
      한 코 떠서 어머님 젖값 갚고
      두 코 떠서 아버님 술값 갚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