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천 寒天
김 현
나뭇잎 떨어지고
계곡 물 말라 버렸다
비울 것 다 비운 자리
무엇이 또 남았을까
지녀온
세월을 꺼내
마음 한 벌
벗는다
..............................
달
-돌 I
김 현
돌을 줍는다는 것이
달을 주워 버렸다
아차,
실수였다
버리지 못한 돌
삼십년
달빛을 따라서
돌밭을 걷고 있다
꽃
-돌 II
돌밭에 묻혀 있는
돌은 말이 없습니다
목련이 하얀 잎을 남기고
어둠 속으로 사라져도
천년을
가슴에 묻은채
아무 말이 없습니다
강물이 넘치고
모래가 씻겨가고
바람이 별빛을 지우며
사라진 밤에도
한 송이
꽃을 피운 채
아무 말이 없습니다.
......................................
날개
-돌 III
김 현
돌밭엔 돌이 없고
날개만 있습니다
물새가 남기고 간
울음만
돌 속에 남아
뼈 시린
하늘을 묻으며
날아가고 있습니다.
영위營爲
김 현
밤이면 비틀대는 청진동 골목길을
도려 낸 웃음처럼 플라스틱 달이 뜨면
청동의 굴레밖으로 다시 솟는 이 멀미
단절된 눈빛들도 작위作爲로 풀어내고
마지막 꽃을 터는 시계탑을 밟고 가면
돌아선 내 어깨에는 견장 같은 또 하루
.......................................................
동해 남부선
김 현
저무는 수평선을
차창에 걸어 놓고
바다가 그려 놓은
해안을 따라 가면
열차는
앞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옛날로 가고 있다
지나는 정거장마다
한 세월이 스쳐 가고
갈매기
날개 속으로
어둠을 접는 포구
불빛은
멀어질수록
별이 되어 가고 있는데
초승달 시그널이
가리키는 별 하나
한 소절 노래로
거리를
재어 가면
열차는
옛날로 가는 것이 아니라
네게로 가고 있다
..........................................
완구점 달빛
김 현
잠적한 너의 손이 끌어낸 바다에는
깍지 낀 한 자 나한羅漢 사름파리 같은 눈빛이
정좌한
배경을 두고
골목길을 나선다
중천에 술래 소리 마른 수수깡만 부비고
굴렁쇠 따라가다 넘어진 하늘들이
삼십년
빈발 끝에다
그림자로 걸린다
돌아가자 돌아가자 이역을 앓아대는 바람
빗질 턴 만상 털고 적막도 그밖에 서면
어둠은
미간을 열고
허무의 비늘을 챙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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