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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시조-김현의 시조 <한천 寒天>외

설정(일산) 2010. 1. 9. 16:00

한천 寒天

 

김 현

 

나뭇잎 떨어지고

계곡 물 말라 버렸다

 

비울 것 다 비운 자리

무엇이 또 남았을까

 

지녀온

세월을 꺼내

마음 한 벌

벗는다

 

..............................

 

-돌 I

 

김 현

 

돌을 줍는다는 것이

달을 주워 버렸다

 

아차,

실수였다

버리지 못한 돌

 

삼십년

달빛을 따라서

돌밭을 걷고 있다

 

 

 

 

 

 

 

 

 

-돌 II

 

돌밭에 묻혀 있는

돌은 말이 없습니다

 

목련이 하얀 잎을 남기고

어둠 속으로 사라져도

 

천년을

가슴에 묻은채

아무 말이 없습니다

 

강물이 넘치고

모래가 씻겨가고

 

바람이 별빛을 지우며

사라진 밤에도

 

한 송이

꽃을 피운 채

아무 말이 없습니다.

......................................

 

날개

-돌 III

 

김 현

 

돌밭엔 돌이 없고

날개만 있습니다

 

물새가 남기고 간

울음만

돌 속에 남아

 

뼈 시린

하늘을 묻으며

날아가고 있습니다.

 

 

영위營爲

 

김 현

 

밤이면 비틀대는 청진동 골목길을

도려 낸 웃음처럼 플라스틱 달이 뜨면

청동의 굴레밖으로 다시 솟는 이 멀미

 

단절된 눈빛들도 작위作爲로 풀어내고

마지막 꽃을 터는 시계탑을 밟고 가면

돌아선 내 어깨에는 견장 같은 또 하루

 

.......................................................

 

동해 남부선

 

김 현

 

저무는 수평선을

차창에 걸어 놓고

 

바다가 그려 놓은

해안을 따라 가면

 

열차는

앞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옛날로 가고 있다

 

지나는 정거장마다

한 세월이 스쳐 가고

 

갈매기

날개 속으로

어둠을 접는 포구

 

불빛은

멀어질수록

별이 되어 가고 있는데

 

초승달 시그널이

가리키는 별 하나

한 소절 노래로

거리를

재어 가면

 

열차는

옛날로 가는 것이 아니라

네게로 가고 있다

 

..........................................

완구점 달빛

 

김 현

 

잠적한 너의 손이 끌어낸 바다에는

깍지 낀 한 자 나한羅漢 사름파리 같은 눈빛이

정좌한

배경을 두고

골목길을 나선다

 

중천에 술래 소리 마른 수수깡만 부비고

굴렁쇠 따라가다 넘어진 하늘들이

삼십년

빈발 끝에다

그림자로 걸린다

 

돌아가자 돌아가자 이역을 앓아대는 바람

빗질 턴 만상 털고 적막도 그밖에 서면

어둠은

미간을 열고

허무의 비늘을 챙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