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리젓 외 4편
오 승 철
이대로 끝장났다 아직은 말하지 마라
대가리에서 지느러미 또 탱탱 알밴 창자까지
한 소절 제주사투리 그마저 삭았다 해도
자리라면 보목리 자리 한 일년 푹 절어도
바다의 야성 같은 왕가시는 살아 있다
딱 한 번 내뱉지 않고 통째로는 못 삼킨다
그렇다, 자리가 녹아 물이 되지 못하고
온몸을 그냥 그대로 온전히 내놓는 것은
아직은 그리운 이름 못 빼냈기 때문이다
..........................................
고추잠자리 14
오 승 철
하늘 아래 화살기도 쏠일 전혀 없을 것 같은
그런 가을 그런 날 음력 팔월 초하루
오늘은, 첫 벌초하고 놓아줬네
어머니…
..............................
비양도 3
오 승 철
길은 비양도에서 저 혼자 걸어온다
세월도 밀려왔다 이문이 없었는지
덩그렁 집게의 헌집 지고 가는 길이 있다.
지구의 하루가 24시간이라면
그보다 40분 길다는
지금은
화성의 시간
사십분, 섬을 돌아도 제 자리인 내 그리움.
화성에 물이 있다면
펄랑못 같을 게다
화산섬 밀썰물 따라 숨을 쉬는 바다연못
그 안엔 술일(戌日)에 찾는 할망당도 놓인다
사족이리
섬에 와 무릎 꿇는 하늘도
가을날 신목에 올린
지전도 사족이리
딱 한 번 고백하려고 왔다간다, 바다의 혀.
...........................
목쉰 미루나무
오 승 철
서대문형무소 길은
살구나무 때죽나무
그 팻말 따라가면
벌레 먹은 나뭇잎 같은
반쯤은 헐린 세월이 짐승처럼 웅크렸다
“조선 사람과 명태는 두들겨 패야한다”는
고문실 고등계형사 잠시 자릴 떴는지
거꾸로 매달린 허공, 그 적막만 걸려 있다
한 세기 서울 땅은 낙첨된 복권처럼
저마다 팔도사투리 쓸쓸히 귀가할 무렵
동강난 반도의 그리움 내 몸에도 갇혀 있다
갇혀 있다 내 몸에도 아름드리 미루나무
사형장 가는 길목 붙들고 유언했다는
목이 쉰 나무 한 그루, 나도 한 번 안아 본다.
...........................
송당 쇠똥구리 2
오 승 철
잠시 세상의 밥 안 먹겠단 뜻일 테다
용눈이 오름 자락 엎어놓은 막사발 같이
산 번지 난장 벌이듯
월동하는 저 무덤들
봄이면 부화하리 겨울잠 깬 쇠똥구리
나는 봤다 바윗돌로 봉해버린 어느 동굴을
무수한 4․3의 탄흔
그 세월을 나는 봤다
한 발의 탄환으로 한 발의 그리움으로
신갈나무 원목에 나도 총을 겨눠본다
숭숭숭 벌집을 낸다
버섯종균 쏘아댄다
아, 섬과 섬 사이 저 오름과 오름 사이
대명천지 이 봄날 누가 나를 격발하라
삘기꽃 낭자한 터에 소리라도 굴리고 싶다
'나의 문학 > 새책 또는 글 소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신중의 어머니가 감자를 캐시다 외 1편 (0) | 2010.02.04 |
---|---|
맹문재의 탱자나무 (0) | 2010.02.04 |
이송희의 시조 (0) | 2010.02.04 |
고철의 시 (0) | 2010.02.04 |
정연덕 시집 읽기-샤론의 꽃바람 외 5편 (0) | 2010.02.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