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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철 시조-자리젓 외 4편

설정(일산) 2010. 2. 4. 14:42

자리젓 외 4편


              오 승 철


이대로 끝장났다 아직은 말하지 마라

대가리에서 지느러미 또 탱탱 알밴 창자까지

한 소절 제주사투리 그마저 삭았다 해도


자리라면 보목리 자리 한 일년 푹 절어도

바다의 야성 같은 왕가시는 살아 있다

딱 한 번 내뱉지 않고 통째로는 못 삼킨다


그렇다, 자리가 녹아 물이 되지 못하고

온몸을 그냥 그대로 온전히 내놓는 것은

아직은 그리운 이름 못 빼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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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잠자리 14

 

    오 승 철


하늘 아래 화살기도 쏠일 전혀 없을 것 같은

그런 가을 그런 날 음력 팔월 초하루

오늘은, 첫 벌초하고 놓아줬네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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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양도 3

 

   오 승 철


길은 비양도에서 저 혼자 걸어온다

세월도 밀려왔다 이문이 없었는지

덩그렁 집게의 헌집 지고 가는 길이 있다.

지구의 하루가 24시간이라면

그보다 40분 길다는

지금은

화성의 시간

사십분, 섬을 돌아도 제 자리인 내 그리움.

화성에 물이 있다면

펄랑못 같을 게다

화산섬 밀썰물 따라 숨을 쉬는 바다연못

그 안엔 술일(戌日)에 찾는 할망당도 놓인다

사족이리

섬에 와 무릎 꿇는 하늘도

가을날 신목에 올린

지전도 사족이리

딱 한 번 고백하려고 왔다간다, 바다의 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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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쉰 미루나무

 

   오 승 철


서대문형무소 길은

살구나무 때죽나무

그 팻말 따라가면

벌레 먹은 나뭇잎 같은

반쯤은 헐린 세월이 짐승처럼 웅크렸다


“조선 사람과 명태는 두들겨 패야한다”는

고문실 고등계형사 잠시 자릴 떴는지

거꾸로 매달린 허공, 그 적막만 걸려 있다


한 세기 서울 땅은 낙첨된 복권처럼

저마다 팔도사투리 쓸쓸히 귀가할 무렵

동강난 반도의 그리움 내 몸에도 갇혀 있다


갇혀 있다 내 몸에도 아름드리 미루나무

사형장 가는 길목 붙들고 유언했다는

목이 쉰 나무 한 그루, 나도 한 번 안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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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당 쇠똥구리 2

 

   오 승 철


잠시 세상의 밥 안 먹겠단 뜻일 테다

용눈이 오름 자락 엎어놓은 막사발 같이

산 번지 난장 벌이듯

월동하는 저 무덤들


봄이면 부화하리 겨울잠 깬 쇠똥구리

나는 봤다 바윗돌로 봉해버린 어느 동굴을

무수한 4․3의 탄흔

그 세월을 나는 봤다


한 발의 탄환으로 한 발의 그리움으로

신갈나무 원목에 나도 총을 겨눠본다

숭숭숭 벌집을 낸다

버섯종균 쏘아댄다


아, 섬과 섬 사이 저 오름과 오름 사이

대명천지 이 봄날 누가 나를 격발하라

삘기꽃 낭자한 터에 소리라도 굴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