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을 스승으로, 생명을 귀중하게 - 김지연 소설가
초겨울 추위가 한풀 꺾인 2009년 11월 16일 오전 11시. 필자와 지성찬 주간 선생은 안국동 4번 출구에서 만나 서울 종로구 운니동에 있는 김지연 소설가가 회장으로 있는 한국여성문학인회 사무실을 찾았다. 사무실은 창덕궁 맞은편 골목에 있었다. 창덕궁에서 나오는 향그러운 낙엽 냄새와 신선한 공기, 하늘과 맞닿은 창덕궁 지붕이 가을의 운치를 더해준다.
김지연 소설가는 일찍 출근하여 우리 일행을 기다리고 계셨다. 평소에 정갈하신 외모에서 풍기는 이국적인 여인의 아름다움이 사무실에도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김지연 소설가와는 몇 년 전 은평문인협회 회장으로 계실 때 만났다. 평소 은평문인협회 행사에서 자주 뵙던 터라 더욱 정감이 가는 분이다. 지성찬 주간선생과 갑장이시라고 귀띔을 해드리니 두 분은 더욱 반갑게 인사를 나누신다. 손수 커피를 타며 과일을 깎아내시는 모습이 마치 유명 소설가라기보다는 이웃집 아주머니 같았다.
2년 전쯤 취재하려고 시도했었으나 김지연 소설가는 시골(산청)에 집을 지으러 자주 다니시는지라 시간이 나질 않는다며 시간을 좀 미루기로 했었다. 그러다가 선생은 최근에 장편소설『생명의 늪』上·下(정은출판) 두 권을 출간하신 계기로 제1회 은평문학상 수상자(2009년 10월)로 선정되시어 시상식을 갖게 되었는데, 그 자리에서 사진을 찍어드리며 자연스럽게 다시 선생의 문학세계를 조명하는 기회를 갖고 싶다고 말씀을 올리니 흔쾌히 승낙하신다.
김지연 소설가는 김해김씨 삼현파로 1942년 10월 22일 경남 진주에서 아버지 김영달金榮達 선생과 어머니 조또점악曺又点岳 여사 사이에서 2남 4녀의 막내딸로 출하였다. 로 이후 도동초등학교와 진주여중을 거처 1962년 진주여고를 졸업하고 서라벌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들어가 본격적으로 문학수업을 받는다. 한편 1964년 <여상>지에 단편소설 「바람」으로 제3회 여류신인문학상을 받는 것을 시작으로 1967년 매일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천태산 울녀」가 당선되었으며 1968년 <현대문학>에 단편「산영(山影)」이 추천되어 본격적인 문단활동을 전개한다. 그럼 이쯤해서 자연을 스승으로 알고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는 김지연 소설가의 문학세계를 취재형식으로 싣는다.
김순진 : 바쁘신데도 이렇게 저희 월간 스토리문학을 위하여 시간을 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오늘은 날씨가 확 풀린 것 같아요. 취위도 아름다움을 이기지는 못하나 봐요. 선생님이 저희 스토리문학에 출연하신다고 하니까 추위가 한풀 꺾였네요.
김지연 : 그러게요. 한결 따스해졌는걸요. 엊그제만 하더라도 바로 겨울이 오는가 싶더니 창덕궁 길옆 플라타너스 가로수는 아직도 여름인 줄 알더군요. 김순진 발행인의 플라타너스 같은 기상이 참 좋습니다. 지성찬 선생님 어서오세요. 말씀은 많이 들었습니다만 장르가 달라서 만나고 싶었는데 이제야 만나게 되었네요.
지성찬 : 네, 선생님! 반갑습니다. 지면을 통하여 자주 뵈었지만 한 번 꼭 만나 뵙고 싶었습니다.
김순진 : 연세에 비해 무척 건강하게 보이세요. 선생님! 무슨 비결이라도 있으신가요?
김지연 : 비결이라고 할 것까지는 없겠지만 저는 끊임없이 사색하고 글을 씁니다. 글을 쓰지 않는 시간은 사람이 넋이 나간 것 같아서 못 쓰겠더라구요. 그래서 책상에 앉으면 글을 쓰고, 책상을 떠나면 글 쓰는 생각을 하지요. 그리고 몇 년 전쯤에 산청에 작은 집을 하나 지었는데 얼마나 풀들이 많이 올라오는지 그곳에 가서 풀과 씨름을 하다보니 건강해지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무릎에 힘이 없어 무얼 잡고 일어나야 해요. 지 선생님께서는 저보다 훨씬 건강하신 것 같은 데 다리가 아프거나 그렇지는 않으시지요?
지성찬 : 네, 저는 아직 아프지는 않습니다. 자주 걸으시고 건강식품도 챙겨드셔야 합니다. 영지버섯이나 인삼 등이 건강에 도움을 주는 것 같아요.
김순진 : 부모님은 어떤 분이셨나요?
김지연 : 아버지는 시적 감각이 있는 분이라면 어머니는 소설적인 분이었던 것 같아요. 옛날 분들이고 시골분들이니까 특별히 글을 쓰거나 그렇지는 않았지만 아버지는 가끔 시를 읽으셨고, 어머니는 춘향전 같은 소설을 읽으시던 생각이 나네요.
지성찬 : 어떻게 해서 소설을 쓰시게 되었나요?
제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부터 말을 잘 지어냈다고 하네요. 친구들에게 말 할 때면 그렇게 이야기를 잘 했습니다. 설화에 대한 이야기, 해, 달 이야기 등을 잘 지어냈는데, 죽은 처녀가 남강에 떠내려 왔다던 이야기는 처녀골 이야기 같은 것은 지금도 생각이 납니다. 3학년 때 김영목 선생님이란 분이 계셨는데, “명자는 후재에 이야기쟁이 되겠네!”라고 하시던 말씀이 귀에 쟁쟁합니다. 중학교에 다니면서 음악반에 들어가고 싶었지요. 그런데 음악반에 떨어지고 문예반에 들면서 글쓰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어요. 고등학교 때에는 영남예술제(개천예술제 전신)에 참가하거나 영남문학회, 청천문인회 등에 들어 활동하였어요. 문예반장, 학예반장 등을 도맡아 했었지요. 그런데 고3때는 폐결핵과 신경쇠약으로 3개월간 휴학을 했었습니다. 당시 부산세계일보 학생문예란에 응모해서 실리기도 했구요. 정호경 수필가는 제가 고등학교 다닐 당시에 국어선생님이셨는데 ‘소질을 키워주셔야 한다’며 지도해주셨습니다.
김순진 : 그럼 정호경 수필가 선생님은 선생님이 글을 쓰실 수 있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신 분이군요. 선생님께 영향을 주신 다른 분은 없나요.
김지연 : 서라벌예술대학에 다닐 때 김동리, 박목월, 서정주 선생님이 교수로 계셨어요. 그 중에서 김동리 선생님은 저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신 스승님이시지요.
김순진 : 선생님은 이번에 은평문학상을 수상하셨잖아요. 그 수상작품집인 생명의 늪은 어떤 소설인가요?
김지연 : 생명을 다루는 병원가는 원천적인 인간의 본성이 가감 없이 투사되는 삶의 현장입니다. 다양한 욕망을 구사하는 바깥세상과는 달리 오로지 ‘질병을 치료하며 더 오래 살기’위한 목적과 생사生死의 기점을 만들기에 끌탕하는 또 하나의 세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인간이 존재하는 곳은 그 소명과 목적이 무엇이든 바깥세상과 다를 바 없는 일들도 발생하지만, 생명이 주체가 되는 사건에서는 몰골이 송연해지는 전율감을 동반하는 경우도 있어요. 생명은 하나뿐이기 때문이지요. 병원가를 누비는 20대 전문지 기자를 주인공으로 한 이 소설 생명의 늪 상하는 어떤 상황에서든 우리가 한 번은 거쳐야 할 그 독특한 별개의 세상에서 발생하는 갈등과 생명의 소중함을 탐색해보려 했습니다. 그렇지만 주인공의 치열한 삶과 세태적인 사랑이야기가 압권이 되어버린 것은 아닌가 싶은 아쉬움이 남습니다.
지성찬 : 그렇다면 이번 소설도 의료소설의 일종이군요.
김지연 : 네, 그렇습니다. 제 소설에 대하여 의료소설이란 말씀을 해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소설에 대한 관심이 많으신가 봐요. 지 선생님!
지성찬 : 쓰는 것이야 시조를 쓰고 있지만 소설을 읽는 것도 좋아하지요. 특히 70년대를 전후로 해서 선생님이 쓰신 산 소설은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김순진 : 선생님의 소설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을 것 같아요. 고향을 배경으로 한 소설과 의료분쟁을 다룬 소설로요. 우선 초기 소설인 『산영』, 『산정』, 『산울음』, 『산배암』, 『산 가시내』,『배꽃』등을 써서 ‘산의 작가’라는 별명을 얻으셨는데요. 그배경은 어디인가요? 그리고 어떻게 그렇게 산의 소설을 많이 쓰시게 되었나요?
김지연 : 네. 아버지는 진주농고 출신으로 과수원을 하셨습니다. 특히 과수묘목을 많이 심으셨지요. 몇 년 전에 자주 산청 지리산 자락에 집을 마련하고 매달 한 두 번씩 내려가고 있습니다. 어릴 적부터 산에서 자랐고, 나무 심는 것이라든지 산의 그림자, 산의 소리, 산의 뱀 등을 보고 듣고 자란 덕분에 그런 경험이 저에겐 아주 소중한 자산이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성찬 : 산촌소설에서 선생님이 쓰시려고 했던 주제는 인간의 본성과 자연의 순수성이었던 것 같습니다. 구체적으로 좀 설명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김지연 : 저의 산촌소설들은 산간벽촌의 순수한 인간형을 그리면서 현실의 부조리를 폭로하려고 했습니다. 향토적인 자연에의 간절한 동경이 때 묻지 않은 자연을 닮은 야성적인 인간을 형상화하고 그의 원천적인 삶을 자연 속에 승화시켜 드러냈다고나 할까요? 작고하신 윤병로 문학평론가는 부끄러운 말씀입니다만 제 소설에는 서정적 토속적인 문학성을 돋보인다고 말하던걸요.
김순진 : 선생님! 『산정山情』은 저도 읽었어요. 지리산 중턱에서 화전을 일구고 사는 강순과 그의 어머니, 그리고 뱀을 잡으러 다니는 땅꾼의 지극히 원시적인 삶이 전개되지요. 강순의 엄마는 벙어리인데 여인은 육체적 욕망으로 땅꾼을 찾아가고 땅꾼은 그녀의 딸 강순이까지 범하고 말잖아요. 강순의 어미인 벙어리는 땅꾼을 돌로 찧어 살해하구요.
김지연 : 출간된지 오래된 제 소설을 읽으셨다니 고맙고도 반갑네요. 사랑과 모성 사이에서 절규하는 무지한 여인의 원색적이고 야성적인 애정의 갈등을 비극으로 처리해서 문제시되긴 했어요. 이렇듯 저의 초기작품들은 산에서 일어나는 것을 주로 하고 있습니다. 산은 진솔한 인간 본성이고 그것이 바로 승화된 인간성이기 때문이라고나 할까요? 상실된 인간 순수성을 부각시켜보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할 수 있겠네요.
김순진 : 선생님은 요즘 산청에 집을 지어놓고 자주 내려가신다는 말씀을 들었어요. 서울에 사시다가 시골생활을 경험해보시니 어떠신가요?
김지연 : 흙과 숲이 좋아 지리산 발치에 황토움막 한 채를 지었습니다. 한 달이면 열흘 쯤 그곳에 내려가 머리를 비운 채 청량한 공기 먹고 별을 바라보곤 합니다. 그런데 봄이 시작되면 잡풀하고의 전쟁으로 허리가 휩니다. 질긴 잡초들이 무성하기 때문이다. 흙마당에 장맛비까지 연일 뿌려지면 이름도 알 수 없는 수십 가지 잡초들이 시퍼렇게 향연을 벌입니다. 잡초의 강인한 생명력에 새삼 놀라게 됩니다. 호미로 뿌리 채 뽑아내려면 흙속에 거미줄처럼 얽히고설킨 구근류가 깊숙이 뻗어있어 흙마당을 뒤집어야 될 형편이었고, 그나마 며칠 후면 놀리기라도 하듯 풀은 다시 솟구쳐 푸르릅니다. 문득 ‘달리는 아이들’ 이란 외화가 떠올랐습니다. 누구의 원작인지도 잊었지만 척박한 환경에서 혼자 세상을 헤쳐 나가는 소년의 강인한 의지력이 부상된 작품이었어요. 어른들의 횡포에도 당당하게 맞서 자신의 권리와 결백을 밝혀내며 철없는 어른을 조롱하고 무안주던 장면들이 겹쳐 스친 것이었습니다. 외압이 가해질수록 더욱 강건해지던 소년의 의지가 호미로 찍어 뽑아 올려도 다시 생명을 피워내는 잡초의 강인한 생성과 어우러지더니 급기야는 억척스럽게 살아가는 민초들의 생명력과 연계되는 현상이 일어납니다. 한낱 잡풀도 자신의 본분에 저렇게 충실한데 우리가 어찌 생명을 경시하며 인간본연을 망각하겠습니까? 저는 잡풀에게도 크게 배웁니다.
지성찬 : 조금 말씀하시다가 만 선생님의 죽반기 이후 의료소설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김지연 : 네, 제가 1970부터 1977년까지 <의사신문>사의 취재부에서 근무하게 됩니다. 그때 빈번하게 일어나는 의료분쟁과 의사와 환자간의 갈등, 안락사와 뇌사를 합법화하면서 빚어지는 생명의 경시풍조를 발견하게 되었고 그에 대하여 다루고 싶었지요. 그래서 의료분쟁 주제의 『살구나무 숲에 트는 바람』과 『흑색병동』을 쓰게 되었어요. 그리고 의사들과 빈번하게 접촉하면서 진정한 의술인은 어떤 사람일까에 대하여 생각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쓴 소설이 『돌바람』이구요. 뇌사문제를 다룬 『히포크라테스의 연가』는 상당한 반향을 일으키며 베스트셀러에 올랐던 것 같아요. 또 생명의 존엄함을 다룬 성의학 소설 『씨톨』(전3권)은 출간되자마자 화제를 모았으며 팔려나갔었지요. 저처럼 산 소설이라든지, 의학소설을 많이 쓴 사람도 드믈 것 같아요. 저는 한 가지를 생각하다보면 거기에 몰두하는 경향이 있거든요.
김순진 : 정말 그래요 선생님! 어떻게 여자의 신분으로 그렇게 많은 산 소설을 써내실 수가 있었는지 감탄하게 됩니다. 또, 의료분쟁 소설, 생명 소설, 성의학 소설 등은 현대인에게 꼭 필요한 이야기이면서 공감이 가는 소설이구요. 선생님! 요즘은 역사소설시대인 것 같아요. 이은성의 『동의보감』이 히트 한 이후 역사소설이 정말 많이 나왔어요. 그로 말미암아 TV드라마도 역사드라마가 더 많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잖아요. 선생님은 역사소설을 쓰실 생각은 없으신가요?
김지연 : 저도 역사소설을 썼답니다. 1997년부터 1999년까지 국제신문에 논개를 2년이나 연재했었지요. 연재 당시에 국제신문에서 책을 출간해주겠다는 걸 신문사에서 책을 내면 안 팔린다는 속설 때문에 거부했는데 지금까지 책이 되지 못했네요. 10년 째 정리하고 있습니다. 이제 출판사를 선정해서 출간할 작정입니다.
지성찬 : 정말 좋은 소설일 것 같아요. 선생님 말고 논개를 다룬 작가가 또 있나요?
김지연 : 월탄 박종화 선생도 논개를 쓰셨고 최근에 젊은 작가 김별아 소설가도 논개를 썼지요. 사람마다 보는 관점이 다르니까 누가 몇 번 썼던 저는 개의치 않습니다. 그런데 논개가 어디 출신이냐를 놓고 각자 자기고장 출신이라며 지방자치단체들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걸 보면서 문화 인물의 가치를 실감하기도 합니다.
김순진 : 선생님 요즘에 글을 잘 쓰는 작가나 마음에 드는 작가가 있으면 한 사람 소개해주세요.
김지연 : 저는 신경숙 소설가를 좋아합니다. 그 사람의 글이야 어찌되었든 사람을 배려하고 편안하게 해주는 심성이 너무 좋은 것 같아요. 2005년에 남북 작가들이 모여 백두산을 올랐어요. 그때 신경숙 소설가와 함께 가게 되었는데, 옆에서 얼마나 살갑고 심성 깊게 챙겨주는지 감동했습니다. 여고시절에 내 책을 보면서 작가의 꿈을 키웠다며 딸처럼 저를 시중하며 다닐 때 “베스트셀러 작가란 글만 잘 써서 되는 것이 아니로구나.”라고 그때 생각했습니다. 성공하는 사람은 분명히 다릅니다. 소설에서 캐릭터를 만들어 낼 때도 그 캐릭터가 마음에 들어야 하듯 작가는 사람의 마음을 잘 살펴야 한다는 게 저의 생각이에요.
지성찬 : 그때 이야기 좀 해주세요.
김지연 : 2005년 7월 23일 오전 5시. 민족작가대회가 사흘째 되는 날. 민족의 영산(靈山) 백두산 천지 기슭에서는 참으로 감동적인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분단된 후 60년 만에 남북의 문인 200여명이 손에 손을 잡고 “우리 먼저 마음 문을 열고 통일하자! 문학 먼저 통일하자!”를 함께 소리 높여 절규했지요. 원로 중진도 중견 신인도 남자도 여자도 남측도 북측도 구별 없는 한 덩어리 혈족들이 왜 반목하며 총칼을 마주하고 살아야 하느냐며, 백두 영산 천지를 발원으로 지맥도 혈맥도 한 탯줄이거늘 뭣 때문에 인맥만 60여년 돌아 앉아 살아야 했느냐며, 이제 그러지 말자며 서로 엉켜 울음 말을 토했습니다. 그곳에는 이념도 사상도 없었습니다. 주체사상의 집체문학도 없었고 개인이나 자연 위주의 순수문학도 없었습니다. 오로지 60년 만에 상봉한 첨예한 감성의 한 핏줄들만이 있었지요. 북측의 시인이 얼굴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며 천지신명이 우리의 합환을 축하하고 있다며 말끝을 잇지 못했습니다. 하늘에는 참으로 신기하게도 이제 막 운해(雲海)에서 솟구친 황금색 태양과 상긔(아직)도 두둥실 떠있는 열이렛날 큰 달, 그리고 장군봉을 비롯한 200여개의 웅장한 봉우리들과 천지의 청록색 시퍼런 물이 그야말로 핏줄들의 상봉을 어버이 품안으로 끌어안듯 굽어보듯 참으로 감동적이고 경이로운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문학에는 이념이 필요치 않습니다. 인간 본연의 진실만 필요로 하지요. 통일을 반대하는 사람도 많지만 형제는 함께 살아야 한다고 봅니다. 어서 빨리 자유로운 민주주의 통일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김순진 : 새로 글쓰기를 시작하는 신인들에게 해주실 말씀이라도 있나요?
김지연 : 부끄럽습니다. 선생님! 그렇지만 저는 기교보다는 진솔함이 우선할 것 같아요. 진솔하게 써야 합니다. 작위적인 것, 이론으로 완성된 글은 향기가 나지 않습니다. 테크닉만을 배우고 기교를 부리려 해서는 안 되지요. 이론만으로는 안 됩니다. 재주를 부리지 말아야 합니다. 인간 본연의 뜻이 무엇인가를 깊이 성찰하여야 합니다.
김순진 : 선생님 이렇게 오랜 시간 좋은 말씀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좋은 책 만들기에 더욱 힘쓰겠습니다.
김지연 : 갑장이신 지성찬 선생님도 찾아오셨는데, 대접도 변변치 않고 죄송스럽습니다. 제가 점심을 살 테니까 나가시지요?
지성찬 : 네, 오늘 말씀 감사했습니다.
취재는 여기서 마치고 독자들을 위하여 김지연 소설가의 꽁트 한 편을 싣는다
딸과 며느리
김지연
하늘이 유난히 상큼하게 높아 보이는 초추(初秋)의 어느 한낮이었다.
“아버님 저녁 찬거리가 마땅치 않아요…….”
강노인집 며느리가 물 묻은 손을 행주치마에 훔치며 주방에서 나와 건넌방을 향해 조심스럽게 말했다.
“오 그래, 알았다.”
밝은 음성과 함께 강노인이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고 이어 오랜만에 친정에 들린 딸이 심히 못마땅한 표정으로 올케인 며느리를 쏘아보듯 하며 마루로 나섰다.
봉당으로 내려선 강노인은 곧장 마당으로 나가 살찐 가지 다섯 개와 불긋불긋 물든 풋고추 열대여섯개, 깻잎 한웅큼, 호박 두개를 따서 며느리에게 건넸다.
“어멈아, 호박 고추 깻잎 썰어 넣고 얼큰한 호박 장떡 좀 부치려무나. 얘가 가져온 들쩍지근한 케잌을 먹다보니 느끼해서 장떡 생각이 난다야”
“예 아버님.”
며느리는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며 그것들을 받아 주방으로 가져갔다. 그러자 연신 굳은 낯으로 며느리를 쏘아보던 딸이 올케의 뒷등을 향해 소리쳤다.
“아니 언니는 손도 발도 없수? 칠순 아버지께서 봄내내 여름내내 애써 가꾸어 놓았으면 거두어 해먹는 것은 언니가 알아서 해야지, 그것까지 손수 따오시게 감히 아버지께 시켜요? 너무 하시는 거 아니에요?”
딸의 얼굴이 예상외로 붉게 충혈되고 음성이 날카로웠다.
강노인과 며느리가 놀라서 동시에 그녀를 돌아보았다. 강노인이 황급히 손을 내 저었다.
“얘, 너 그게 무슨 소리냐? 네 언니는 나처럼 채소를 솎아 뽑을 줄도 모르고 채익지도 않은 것도 곧잘 따곤해서 내가 손도 못대게 하고 있다.”
그러자 딸의 큰 눈에 물기가 어리치면서 강노인을 안쓰러운 듯 쳐다보았다.
“아버지는 며느리가 그렇게 어려우세요? 왜 당당하지 못하고 언제나 며느리를 감싸려고만 드세요. 청정채소 먹겠다고 정원의 잔디까지 파헤쳐 시아버지께 씨를 뿌리게 하고 가꾸는 노동을 시키고 대문 밖 청소며 지하실 청소며 집안의 온갖 궂은일을 노친께 다 떠맡기고 하물며 고추말리기까지 시어른께 시키는 며느리를 감싸려고만 드시냐구요.”
“아니, 아가씨…….”
“변명하려들지 말아요. 아버지가 무료하시지 않게 우정 일감을 주선해 드렸다고 말하고 싶은 거죠? 속 뵈는 억지소리 집어쳐요. 언니는 자연식이니 청정채소니 옛날부터 그런 것 참 좋아 합디다? 자기 취향 때문에 마치 효도하는 척 노인을 이용하시지 말란 말예요. 나는 여자인 우리 시어머니께도 감히 이런 심부름 시키지 못해요. 용돈 넉넉히 드려서 자주 여행케하고 공원이나 노인당에 매일 놀러나가시게 일당까지 드리고 있어요. 노인은 그렇게 편하게 지낼 권리가 있다구요―”
그때 강노인이 딸을 향해 어처구니없다는 얼굴을 하고 혀를 끌끌 찼다.
“허, 쯔쯔……. 저 애가 언제 철들려나? 너는 아직 노인들의 심리를 잘 모르고 있다. 형편이 넉넉타해서 용돈만 드리고 집안일 못하게 하는 것이 효도라 생각하면 큰 착각이다. 그것은 부모의 참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일이야. 무엇보다 노인은 집안의 일익을 담당하게, 참여케 해드려야 한다. 노인들은 부담스런 짐 덩어리로 가족들에게 소외되는 것보다 가족 구성에서 없어서는 안 될 꼭 필요한 인물이 되기를 원하며 그 역할에서 보람과 긍지를 느끼면서 나머지 여생을 보냈으면 하는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
“시끄럽다, 지난봄에 네 언니가 좁은 마당의 잔디를 파내고 나에게 소일거리를 만들어 준 것, 나는 지금도 감사하고 있다. 몇 년을 정성들여 가꿔놓은 아름다운 잔디를, 그 잔디정원이 집을 값지고 품위있게 하고 아이들의 정서적인 놀이터가 되고 있는데, 더욱이 네 오라범까지 반대하는 것을 네 언니가 몇 달을 설득시켜 기어이 만들어 주었다. 내 가슴이 다 쩌엉했다.”
“아버지, 그것은 올캐가 청정채소를…….”
“이것아 시끄러워―. 홀시아버지 신경써 잘 뫼시는 올케에게 감사는 못 할망정 중상을 하려들어? 청정채소를 평소에 주장하던 사람은 바로 나야. 허구헌 날 할일 없어 밖으로만 빙빙 돌다보니 더 외롭고, 눈 나빠 이제는 책도 신문도 읽기 힘들어서 가만히 드러누워 있자니 허리며 몸은 더 아프고, 그래서 햇빛 드는 마당구석에 손바닥만한 틈만 보이면 채소를 심는등 거의 매일 침울해있는 나를 보고 네 언니가 그런 용단을 내려준거야. 농약이나 화학비료 쓰지 않고 기른 자연식 청정채소 온가족 건강에 좋은 것이거늘, 그것 좋아한다고 나쁠게 있느냐? 이제 우리 집 뜰의 여섯 평 채소밭은 내 남은 삶의 터전이고 손자들의 실험재배 교육장이고 우리가족 건강을 돌보는 소중한 텃밭이다. 내가 밭주인이며 관리수확 모두 내 손으로 거치게 되어있다. 네가 뭘 안다고 콩콩이냐? 아버지를 원한다면 온김에 네 언니가 평생을 맡아하는 내 이불호청, 겉옷, 속옷 빨래나 좀 해주고 가련? 케잌하나 달랑 들고와서 못난 시뉘노릇 하려들지 말고 말이다”
“아버지…….”
“네 시어머님이나 잘 모셔라. 용돈이나 일당 몇 푼 드리고 위하는 척 하면서 실제는 집안에서 내쫓듯 밖으로만 돌게 하지 맑고 네 언니처럼 뭐든 의논드리고 집안일에 참여시켜 드려라. 나는 우리 텃밭이 작아서 그것을 가꾸면서도 시간이 남아돌아 네 언니가 아범 몫이라며 한사코 만류하는 것도 내가 쉬엄쉬엄 돌아가며 아침 골목청소도 하면서 건강관리도 한다. 동네 젊은이들에게 시범을 보이며 존경도 받는다. 너의 시어머님도 예전에 농사짓던 분이시니 너의 집 넓은 잔디 정원을 채마밭으로 일구게 해드리렴. 그리고 그 분이 가꾼 채소로 음식을 만들어 온가족이 맛있게 먹어드리렴. 그것이 바로 효도하는 거다.”
강노인의 음성은 점차 부드러워지면서 딸에게 오히려 간절하게 권유도 했다.
그러자 딸의 얼굴이 눈이 띄게 변했다.
“하이구 아버지, 그 좋은 금잔디 뜰을 다 늙은 노친 때문에 부스럼 상처를 내라구요? 집을 망치게요? 집값 폭락하게요? 저는 그렇게 못해요.”
“쯔쯔……. 저것 보라지? 제 속 저런 것이 누굴보고 어쩌고저쩌고 콩콩이야?”
그때 며느리가 두 손을 앞으로 모두어 쥔 채 당황스러워했다.
“아버님…….”
“신경 쓸 것 없다. 어멈은 어서 얼큰한 고추장떡이나 구어다오. 지난번처럼 깻잎도 넣어서 향긋하게 만들어라”
강노인은 호미를 찾아들고 다시 채마밭으로 나가고 딸과 며느리는 엉거주춤 마루에 그대로 서있었다. 강노인이 딸을 돌아보며 다시 소리쳤다.
“아 뭘 하고 섰냐? 내 방에 들어가 이불호청 뜯고 장속에 내 속옷 뭉쳐두었으니 꺼내서 씻어주고 가란 말이다. 세탁기에 바로 넣지 말고 첫물 빨래해서 넣어라. 그리고 햇살도 좋으니 이불도 일광욕 좀 쐬고 이왕이면 말린 호청을 다림질해서 꾸며주고 가면 더욱 좋고…….”
며느리가 계속 당황해하며 손을 내저었다.
“아, 아닙니다, 아버님. 그건 제가 할 일이예요. 오랜만에 친정에 온 아가씨인데 좀 쉬다가게 해주세요. 친정은 몸도 마음도 편안히 쉴 수 있는 곳이라야 아가씨가 아버님 뵈러 자주 들린다구요. 어머님도 안 계신데, 아버님까지 일을 시키시면 어떡해요.”
며느리의 끝말이 강노인의 가슴을 적셨는지 노인의 표정이 단번에 수긋해졌다.
딸의 표정까지 울먹거려 보였다.
“내가……. 공연히 그러하냐? 아비를 생각한다면 홀시아버지 섬기는 올캐에게 고맙다는 말은 못할망정 생트집을 잡으니까 하는 말이제…….”
그때였다. 딸이 주방으로 가더니 여벌의 앞치마를 허리에 두르고 나왔다. 그리고 조금은 꺽쉰 음성이었으나 곧 시원시원 말했다.
“아버지 말씀이 옳아요. 제가 잘 못했어요……. 언니 미안해요! 제가 오늘은 아버지와 언니를 위해서 봉사할게요, 서툴더라도 나무라지 마세요.”
딸은 그 말과 함께 강노인의 방문을 활짝 열고 방안으로 들어가 장속의 이불을 방바닥으로 쏟아냈다. 그녀의 몸짓에 싱그러운 바람이 이는 것 같았다.
며느리가 낭패스런 얼굴로 강노인을 바라보았다. 강노인이 미소와 함께 한쪽 눈을 찡긋하며 내버려두라는 손짓을 했다.
김지연金芝娟 소설가 연보
본명은 김명자金明子
1942년 10월 22일. 경남 진주에서 아버지 김영달金榮達 선생과 어머니 조또점악曺又点岳 여사 사이에서 2남 4녀의 막내딸로 출생.
1962년. 도동초등학교와 진주여중을 거처 진주여고를 졸업
1964년. <여상>지 제3회 여류신인문학상 수상. 단편소설 「바람」
1967년. 경남일보 문화부 차장
1967~1969년. 마산 제일여자고등학교 국어교사
1970~1977년. 의사신문 취재부 차장
1970년. 한국문인협회 감사, 한국소설가협회 운영위원, 펜클럽 펜문학지 편집위원
1971년. 서라벌예술대학 문예창작과 졸업
1967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단편「천태산 울녀」 당선
1968년. <현대문학>단편 「산영(山影)」 추천
1974년. 단편소설집『산 가시내』(범우사)
1978년. 단편소설집『산정山情』(청림각)
1979년. 장편소설『산울음』(문예원)
1979년. 중편소설집『산 배암』(문학예술사)
1980년. 장편소설『정녀情女』(여원문화사)
1980년. 장편전작소설『자매의 성』(성정출판사)
1980년. 장편소설『돌개바람』(세광공사)
1981년. 장편소설『양철지붕의 담쟁이』(금화출판사)
1982년. 꽁트집『사나이 대장부』(수상사출판부)
1983년. 장편소설『씨톨 1』(행림출판사)
1984년. 장편소설『야생의 숲』(행림출판사)
1984년. 제10회 한국소설문학상 수상
1985년. 장편소설『씨톨 2』(행림출판사)
1985년. 장편소설『촌 남자』(선일출판사)
1986년. 장편소설『고리』(해냄출판사)
1987년. 장편소설『흑색병동』(행림출판사)
1987년. 수필집『생의 부초가 되기 싫거든』(청탑출판사)
1988년. 장편소설『씨톨 3』(행림출판사)
1987년. 수필집『그대 내 영혼 되어』(선일출판사)
1989년. 중편소설집『아버지의 장기臟器』(삼진기획)
1989년. 수필집『배추뿌리』(선일출판사)
1990년. 장편소설『욕망의 늪』(자유문학사)
1990~1996년. 공무원연수원 및 중소기업연수원 강사
1991년. 장편소설『살구나무 숲에 트는 바람』(이의출판사)
1991년. 제3회 남명문학상 수상
1992년. 꽁트집 『잘난 남자』(답계출판사)
1992년. 단편소설집『내 절벽가슴』(책나라)
1993년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이사
1992년. 장편소설『히포크라테스의 연가戀歌』(뿌리출판사)
1994년. 제11회 펜문학상 수상
1995~1996년. 성신여자대학교 사회교육원 문예창작과 강사
1996년. 단편소설집『어머니의 고리』(신원문화사)
1996∼1997년. 한국여성문학인회 부회장
1996년.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이사
1996년. 제31회 월탄문학상 수상
1997년. 장편소설『두 여자』(신원문화사)
1997년. 은평문인협회 회장, 한국소설가협회 연구분과위원장(~1998)
1997년. 장편역사소설『논개』국제일보에 2년간 연재
1997년. 은평문화예술대상 수상
1998년. 은평문화원 부원장
1998년 한국소설가협회 이사, 복사전송권협회 이사
1999년. 사단법인 남북문화교류협회 부회장
2000년. 방송위원회 연예오락 제1심의위원회 위원
2001년. 경원대 문예창작과 겸임교수, 한국소설 편집위원장
2003년. 단편소설집『산막의 영물靈物』(정은출판)
2003년. 제40회 한국문학상 수상
2003~2008년. 민주평화통일 자문위원(13, 14기)
2004년. 제18회 예총예술문화대상 수상
2006년. 중편소설집『산죽山竹』(정은출판)
2006년. 제2회 류현주문학상 수상
2008년. 한국여성문학인회 회장 피선(현재)
2008년. 손소희문학상 수상
2009년. 장편소설『생명의 늪』上·下(정은출판)
2009년. 은평문학상 수상
2009년. 한국문예학술저작권협회 부이사장
수상
한국소설문학상(1984),남명문학상(1991),펜문학상(1995),월탄문학상(1996), 은평문화예술대상(1997), 한국문학상(2003), 예총예술문화대상(2004년), 류현주문학상(2006년), 손소희문학상(2008), 은평문학상(2009) 등 수상.
저서
단편소설집『산 가시내』, 『산정山情』, 『내 절벽가슴』, 『어머니의 고리』, 『산막의 영물靈物』등 5권
중편소설집『산 배암』, 『아버지의 장기臟器』, 『산죽山竹』등 3권
장편소설『산울음』,『정녀情女』,『자매의 성』,『돌개바람』,『양철지붕의 담쟁이』『씨톨 1』,『씨톨 2』,『씨톨 3』,『야생의 숲』,『촌 남자』, 『고리』, 『흑색병동』,『욕망의 늪』, 『살구나무 숲에 트는 바람』,『히포크라테스의 연가戀歌』, 『두 여자』『생명의 늪 上』『생명의 늪 下』등 18권
꽁트집『사나이 대장부』, 『잘난 남자』등 2권
수필집『생의 부초가 되기 싫거든』,『그대 내 영혼 되어』,『배추뿌리』등 3권
총 31권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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