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종로鐘路에 가면
지 성 찬
맑아서 서러운 가을, 종로鐘路 탑골 공원에 가면
종소리는 끊긴지 이미 오래 되었고
남루의 허름한 옷을 버리는 고목古木들도 만난다.
철 지난 합죽선이 노점에서 잠을 잔다
삼류三流 화백이 그린, 강가의 일엽편주一葉片舟는
아직도 그 매인 자리에서 떠날 줄을 모른다.
자동차가 고단한 삶을 실어 나르는데
이제 노인들은 실어 나를 삶이 없는지
돌담장 넘어 세상과는 끈이 떨어진 듯하다.
세월의 때가 절어 조금은 맛이 간 사람
바닥난 남은 인생을 잡기雜技에 모두 건 사람
볼 것도 없는 거리의 사람들, 흑싸리 껍데기 같았다.
시퍼런 풀기가 빠진 낙엽 같은 사람
평생토록 찾지 못한 그 무엇이 있는 걸까
바람도 노인들의 주머니를 흘끔 둘러보고 가는데
어둠은 오늘 풍경을 하나씩 지워버린다.
폐차 직전 자동차 타이어의 바람이 빠지듯이 그렇게 노인들은
하나 둘 바람과 함께 어디론가 빠져나가고 공허空虛하고 쓸쓸한
그 빈자리에 풍성하게 남은 것은 오로지 태워버린 담배꽁초와
잠시나마 목을 축였던 일회용 종이컵 쓰레기 뿐
건널목 파란 불빛이 적색등赤色燈으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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