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문학/나의 시와 시조

지성찬의 가을, 종로에 가면

설정(일산) 2010. 3. 30. 11:54

          가을, 종로鐘路에 가면


                     지 성 찬


            맑아서 서러운 가을, 종로鐘路 탑골 공원에 가면

            종소리는 끊긴지 이미 오래 되었고

            남루의 허름한 옷을 버리는 고목古木들도 만난다.


            철 지난 합죽선이 노점에서 잠을 잔다

            삼류三流 화백이 그린, 강가의 일엽편주一葉片舟는

            아직도 그  매인 자리에서 떠날 줄을 모른다.


            자동차가 고단한 삶을 실어 나르는데

            이제 노인들은 실어 나를 삶이 없는지

            돌담장 넘어 세상과는 끈이 떨어진 듯하다.


            세월의 때가 절어 조금은 맛이 간 사람

            바닥난 남은 인생을 잡기雜技에 모두 건 사람

            볼 것도 없는 거리의 사람들, 흑싸리 껍데기 같았다.


            시퍼런 풀기가 빠진 낙엽 같은 사람

            평생토록 찾지 못한 그 무엇이 있는 걸까

            바람도 노인들의 주머니를 흘끔 둘러보고 가는데



            어둠은 오늘 풍경을 하나씩 지워버린다.


            폐차 직전 자동차 타이어의 바람이 빠지듯이 그렇게 노인들은

            하나 둘 바람과 함께 어디론가 빠져나가고 공허空虛하고 쓸쓸한 

            그 빈자리에 풍성하게 남은 것은 오로지 태워버린 담배꽁초와

            잠시나마  목을 축였던 일회용 종이컵 쓰레기 뿐


            건널목 파란 불빛이 적색등赤色燈으로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