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개의 가족사 외 1편
하종오
형이 잠자리들을 손가락 새에 끼고 오면
어미는 한 마리씩 날개 잡아 뜯고
닭장에 던져 넣었다
동생이 메뚜기들을 풀줄기에 꿰어오면
어미는 한 마리씩 날개 잡아 뜯고
닭장에 던져 넣었다
못에서 멱감던 형은 형대로
잠자리들을 잡아서
들판을 쏘다니던 동생은 동생대로
메뚜기들을 잡아서
어미에게 드렸고
이걸 건네받아 잘 쪼아 먹은 닭들이
달걀을 많이 낳자
형제가 날마다 몰래 꺼내 먹었다
마침내 저마다 살아가야 했을 때
형은 겨드랑이에 잠자리날개가 돋아서
외지로 날아가 팔랑, 팔랑거렸고
동생은 겨드랑이에 메뚜기날개가 돋아서
고향에 머물러 퍼드덕, 퍼드덕거렸고
어미는 겨드랑이에 닭날개가 돋아서
집터서리를 맴돌며 홰홰, 홰를 쳤다
이부자리의 가족사
할아버지 할머니가 등 돌리고 누운 밤엔
품안에 어린 자식 하나씩 눕힐 수 있어서
피난 갈 적에 할아버지가 맨 먼저 싼 짐은
할머니가 시집 올 때 해온 이불과 요였고
아버지 어머니가 나란히 누운 밤엔
곁에 어린 자식 하나씩 눕힐 수 있어서
이사 다닐 적에 아버지가 맨 먼저 싼 짐은
어머니가 시집 올 때 해온 이불과 요였고
아들 며느리가 동품하고 누운 밤엔
등 뒤에 어린 자식 하나씩 눕힐 수 있어서
분가할 적에 아들이 맨 먼저 싼 짐은
며느리가 시집 올 때 해온 이불과 요였다
홑청을 더럽히던 자식들 다 커서 집 떠나고
이부자리마저 없다면
기침하여 고단하게 일할 낮도 없을 거고
취침하여 편히 쉴 밤도 없을 거라고 여기며
이 집안에 대를 이은 부부들은 제각각
이불과 요를 펴고 개는 아침저녁마다
하룻밤 잘 살았다고 입속말했다
*약력
1954년 경북 의성 출생
1975년 『현대문학』 추천으로 등단
시집 『벼는 벼끼리 피는 피끼리』 『사월에서 오월로』 『넋이야 넋이로다』 『분단동이 아비들하고 통일동이 아들들하고』 『꽃들은 우리를 봐서 핀다』 『쥐똥나무 울타리』 『사물의 운명』 『님 시편』 『님』 『님 시집』 『무언가 찾아올 적엔』 『반대쪽 천국』 『지옥처럼 낯선』 『국경 없는 공장』 『아시아계 한국인들』 『베드타운』 『입국자들』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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