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불
손 남 주
누가 던진 불씨인지 모르지만
지난 겨울, 들불은
밭둑을 태우고 논둑을 태우고
데모대처럼 들길을 행진했다.
산불로 크게 번질까 두려우면서도
덩달아 들뜬 마음으로
아이들과 함께 서서 바라보던
젊은 대열의 함성 같던 그 불길,
마른 풀섶과 잔디를 태우고
구불구불 열차처럼 불길이 지나간 들판,
이 봄에 다시
그 시커멓고 휑한 자리에 혼자 서 본다.
모든 게 다 타죽어버린 새카만 재 밑으로
봄 햇살을 한껏 빨아들이고
아, 파란 쑥들이 일제히 고개를 쳐들어
불길만큼이나 푸른 함성을 질러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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木蓮
손 남 주
치켜든 추녀 끝으로
저 수많은 붓끝들이 하늘 향해
무슨 말 또박또박, 아니
일필휘지(一筆揮之)하려는가,
부드러운 화선지에 뚝뚝
먹물 번져, 새 봄이 움틀 듯한데
문득 외마디 피리 소리 비끼더니
아, 추녀 끝으로 일제히 학이 날아 오른다
자주 끝동 흰 치마 치렁하게
댓돌을 내려서며 바라보는
女人의 하늘에 아스라이 봄의 미소가 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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