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밭에서 만난 가을/박칠근
아직은 따가운 가을 햇살이
눅진한 대지를 달래고 있는데
고추잠자리가 그리는 포물선은
달작지근한 여운을 담습니다
공란의 하늘가에 써 넣지 못한 답이
억수로 남아 있는데
포도밭에서 만난 가을이
포도송이처럼 해법 매달고 있습니다
학습 받은 계절과 땀 흘린 포도송이
구절초가 구획 짓는 가을은 단맛입니다
사방에서 부유하는 결실의 향기
터질듯이 엉킨 시월의 포즈
소리없이 일 내는 포도밭이 다정합니다
밭둑을 환하게 밝히는 해바라기꽃
노란 표정이 진지합니다
땅 비탈지고 비바람 위태롭지만
해답 알고 터전을 마련했는지
내려다보는 하늘도 편안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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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두리 小考/박칠근
희소식처럼 기습하는 파도소리에
갯그렁 고개 내미는 3월 신두리
수평선 아득하고 지평마저 바람에 떠밀려도
고혹의 품안은 푸른 외설로 울렁댄다
무람없는 바닷바람 숨결 가쁘고
다닥뜨린 달맞이꽃의 낯선 미소는
아득한 산기슭에서 왔다
애기젖소 울음 배어있는 신두리 사구
한 시절 뜯어내어 제 세상처럼 굴리며 살던
쇠똥구리도 재 너머로 떠났다
일체의 궁리는 개미귀신처럼 은신했고
바람이 쌓은 담담한 초록 언덕은
바람만이 허물 수 있다
언덕 뛰어다니는 화중신선(花中神仙)
모래밭엔 해당화 보폭이 유연하다
신두리*에 가면 잔멸(殘滅)된 감성도
체액 관통하는 갯그렁으로 돋는다
잔잔했던 지평에 물결이 인다
뭉게구름같이 호젓한 한 폭의 추상화
불현듯 生에 뛰어든 이른 봄의 푸른 예감.
*태안군 원북면 신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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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력>
1959년 경북 의성 출생
2003년 격월간지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로 등단
(현)대구동아손해사정 대표
(현)경북과학대학 외래교수
대구대학교 재활심리학과 겸임교수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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