秋史의 바다
정용국
北靑* 칼바람이 할퀴고 보채는 밤엔
글씨도 힘에 겨워 일어서다 무너지고
한 획이 천 리만큼 씩
마음 밖에 서있다.
생각을 짓이기고 뛰쳐나간 글씨는
욕심을 끌어안고 긴 밤을 앓고 와선
오만도 다 내려놓고
舍利로 앉아 있네.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가을 물을 닮은 글씨가*
잔물결 잠이 들어 온 세상 다 비치는
海印의 장엄 속에서
새벽길을 나선다.
* 北靑 : 함경남도에 소재한 추사의 유배지.
* 秋水文章不染塵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