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을 통한 균형과 조화의 시학 - 유승우 시인
유승우 시인을 만난 것은 지난 2006년 한국현대시인협회 하계세미나 장소인 우이동에서다. 시인은 그곳에서 주제발표자로 나오셨는데, 논리적이고 확실한 발음을 가지고 있었던 터라 더욱 기억에 남아있었다. 그러다가 한국시문학아카데미에서 자주 뵈면서 자연스럽게 스토리문학 메인스토리에 대하여 말씀드릴 기회가 생겼다. 그러던 중 평소 친분 있게 지내면서 스토리문학에 새 시리즈를 연재하고 있는 이오장 시인한테서 6월호에는 유승우 시인을 취재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제안이 있었다. 게다가 김해빈 시인까지 함께 만나자고 하니, 마음에 맞는 시인들끼리 만나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원로 시인으로부터 시론을 듣는 것은 더없이 기쁜 일이라 내심 쾌재를 부르며 이오장 시인에게 유승우 시인 댁 방문일정을 잡아달라고 했다. 이어 유승우 시인과의 일정은 5월 15일에 잡혔다.
강단에서 평생을 보낸 교수님과 스승의 날에 동행하면서 시론을 듣는다는 것은 맘설레는 일이다. 인천행전철을 타고 약속장소인 중동역에 내리니 약속시간보다 20분쯤 일찍 도착했다. 이오장 시인한테 전화를 하니 곧 가겠다며 김해빈 시인이 역사 안으로 올라오며 마중을 나왔다. 김 시인을 따라 계단을 내려가니 이오장 시인은 승용차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거의 매달 만나는 사람들이건만 코드가 같은 사람들이라 그런지 길가에 피는 풀꽃처럼 반갑다.
승용차로 유승우 시인께서 사시는 아파트에 도착하여 엘리베이터로 올라가 초인종을 누르니 시인이 문을 열어주며 반갑게 맞아주신다.
우리 일행은 사모님께서 내 주시는 음료수와 다과를 하며 활동하시던 사진과 이야기를 곁들어 들었다. 시인의 인생이야기를 듣고 있으려니 이오장 시인은 자꾸만 휴대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한다. 시간이 빠듯하여 점심장소인 파주로 가야한다는 것이다. 사모님도 함께 가자고 하니 외손자들을 보느라 꼼짝 못하신다며 다녀오라신다. 우리 일행을 태운 차는 일산대교를 건너 자유로를 달리는가 싶더니 이오장 시인은 파주의 한 농원식당인 장어집의 주차장에 차를 세운다. 수백평의 주차장과 식당 내부가 으리으리하다. 그 많던 테이블은 열두시가 좀 넘어서자 앉을 자리 없이 채워진다. 이곳은 재로비만 실비로 받으며 상주와 된장 마늘 정도만 제공하면서 김치에서부터 과일, 밥에 이르기까지 손님들이 직접 싸다가 먹는다고 하니 가족 나들이 삼아 오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점심을 푸짐히 먹고 강화도 역사박물관으로 향했다. 때마침 초등학교 아이들이 선생님과 함께 현장학습을 나와 있었다. 역사박물관을 나와 강화대교 우측으로 빠져 농로를 따라 조금 들어가자니 육필문학관이 나온다. 노희정 시인이 운영하는 문학관인데 5월 24일에는 전국 육필백일장이 열렸다고 한다. 노희정 시인은 영등포문인협회 회장과 인사동 시낭송회 등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시인이다. 우리는 노희정 시인이 끓여주는 차향과 육필 원고, 책에 마음을 빼앗겨 오래 머물고 말았다. 유승우 시인과 필자 등은 노희정 시인의 요청에 따라 원고지에 육필시 한 편씩을 써주고 나온 강화의 벌판은 모내기를 하고 있어 연둣빛 세상이다.
서울에서 부천, 파주, 그리고 강화를 들러 서울에 되돌아오기까지 일정이 빠듯해서 우리 일행은 이동하면서 취재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도 문명이 발달하여 녹음기를 가지고 다니니까 망정이지 그 많은 내용을 어떻게 받아 적어야할 지 막막한 상황이다. 소장파 시인 이오장, 김해빈, 그리고 필자는 돌아가면서 쉴 새 없이 질문을 하고, 유승우 시인께서는 신명나게 대답을 해주신다.
유승우 선생은 1939. 4. 17. 강원도 춘성군 남면 방하리에서 아버지 유제창柳濟創 선생과 어머니 공순이孔順伊 여사와의 사이에서 막내아들로 태어나 1967년 부인 신명자여사와 결혼하였으며 1966년~1969년까지 박목월朴木月 선생에 의해 <현대문학>으로 시 추천을 완료한다. 본명은 柳潤植으로 유승우柳承佑는 필명이다. 슬하에 큰딸 다미(1969년(1969년생), 둘째딸 유미(1971년생), 셋째딸 경아(1973년생), 막내딸 경남(1976년생) 등 네 딸이 있다. 1980년부터 인천대학교 전임강사로 부임하여 조교수, 부교수, 교수에 이르렀으며 정년퇴임하여 현재는 명예교수로 있다. 그럼 취재내용을 여과하여 시론에 관한 부분만 대화체 형식으로 실으며 독자를 예우하는 뜻에서 호칭은 생략한다.
김순진 : 선생님, 오늘 스승의 날이라 바쁘신 데도 이렇게 취재에 응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럼 여쭙겠습니다. 시란 어떤 예술인가요?
유승우 : 시는 언어예술입니다. 예藝자를 자전에서 찾아보면 ‘종야種也’라고 풀이하고, 종種義 뜻은 ‘씨앗’과 ‘심다’라고 했습니다. ‘씨앗’ 곧 ‘종자’란 무엇일까요? 생명의 씨눈이 잠들어 있는 집입니다. 이 씨앗을 심어서 그 속에 잠들어 있는 생명의 잠을 깨우고 자라게 하여,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게 하는 기술이 곧 예술입니다. 그래서 예술에는 반드시 그 열매인 ‘작품’이 있어야 합니다. 이 열매인 시작품에서, 언어는 시적 생명의 씨눈이 잠들어 있는 종자입니다. 그러면 언어에서 씨눈에 해당하는 부분은 무엇일까요? 그것이 바로 말씀[言]입니다. 이 말씀[言]은 마음을 들을 수 있게 한 것이며, 글[文]은 마음을 볼 수 있게 한 것입니다. 그런데 말씀[언]이 글[문]보다 먼저입니다. 이 말씀이 어떻게 쓰이느냐에 따라서 말이 되기도 하고 시가 되기도 하는 것이지요. 말씀[言]이 관청[寺]에 바쳐지면 시(詩 = 言 + 寺 = poetry)가 되고, 나[吾]를 위해 쓰게 되면 말(語 = 言 +吾 = language)이 됩니다. 관청에서 가장 높은 곳엔 천자 곧 하늘의 아들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제정일치 시대에는 관청이 곧 신전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말씀이 관청에 받쳐진다는 것은 신과 하나가 되는 것이며 원래의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이기 때문에 말씀과 시는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언어言語처럼 언시言詩라는 말을 쓰지 않는 것입니다.
이오장 : 그렇군요. 새로운 지식을 알게 되었습니다. 시 쓰는 일을 무엇이라 생각하시나요?
유승우 : 저는 시 쓰는 일을 마음의 옷을 벗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음의 옷을 종교적으로는 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죄는 허물이지요. 그런가하면 때[더러움 垢]는 때[시간 時]입니다. 사람이 이 세상에 타어난다는 것은 하늘[空]과 때 사이[時間]에 던져진다는 것입니다. 이 끝없는 하늘 사이[宇]와 때 사이[宙]가 바로 우주인 것입니다. 사람이 이우주 안에 던져졌을 때 먼저 느끼는 것은 공간입니다. 누구나 하늘과 하늘 사이인 공간 곧, 어느 하늘 아래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나 때 사이에 있다는 것은 모르지요. 이것을 상징하는 것이 에덴동산이며, 이것이 바로 인간의 원형입니다. 어느 정도 때가 묻은 다음에야 때 사이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면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게 되지요. 여기서 때를 안 다는 것은 곧 철을 안다는 것이며, 똑똑해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인간의 의식이 성장하면 에덴에서 쫓겨날 수밖에 없으며, 인간의 원형을 상실하게 됩니다. 그래서 사람은 누구나 향수를 가지게 되는 것이지요.
김해빈 : 네에. 어렵고도 재미있어요. 선생님! 선생님께서는 강원도가 고향이라고 들었습니다. 선생님께 고향은 어떤 의미입니까?
유승우 : 고향이란 공간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유년은 내 시간적인 고향이지요. 내 공간적인 고향인 춘천에는 서울에서 두 시간이면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시간적인 고향인 유년으로는 도저히 돌아갈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때가 너무 많이 묻어있기 때문입니다. 시간적인 고향에는 시를 통해서만 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시르 쓰는 일은 곧 마음의 옷을 벗는 일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시심은 동심이라고 했습니다. 마음의 옷을 벗어버리고, 위선의 옷을 벗어버리고 어린아이와 같이 등신等神이 되어야 합니다. 저런 등신, 그런 말이 있지요? 그건 그만큼 때가 안 묻어 신과 같은 존재라는 뜻도 됩니다. 곧 신과 같이 되어야 에덴동산의 아담과 이브처럼 신과 대화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나는 서정시를 신과의 대화라고 봅니다. 어린아이는 꽃과 대화하고, 물과도 대화하고, 바람과도 대화합니다. 이것은 그것들의 요정, 곧 그것들의 신과 대화하는 것입니다.
김순진 : 정말 새롭고 흥미롭습니다. 선생님! 공간과 시간에 대하여 좀 더 이야기해주세요.
유승우 : 육체는 벽과 벽 사이와 같은 공간에 갇히지만 마음은 때 사이 즉, 시간時間에 갇힙니다. 공간에 있는 물체는 눈에 보이지만 시간에 갇힌 마음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육체는 옷을 벗으면 알몸이 눈에 드러나지만 마음의 옷은 벗었는지 안 벗었는지 알 수가 없지요. 마음의 옷을 벗어야 신신을 볼 수 있고, 신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등신이 됩니다. 일용할 양식이 있고, 살만한 집이 있으며, 육신을 가릴만한 옷이 있으면 물욕을 벗어야 하고, 공간에 버티고 있어야할 육체가 비걱거리면 권력욕과 명예욕도 벗어야 합니다. 이것은 당연한 길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늙으면 다시 어린애가 된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그것이 말처럼 쉬운 것은 아지니요. 늙어가면서 육체는 솔직하게 나이를 인정하라고 통증을 호소하지만, 마음은 욕심의 속옷, 겉옷, 두루마기까지 껴입고 벗을 줄을 모릅니다.
이오장 : 그럼 시인이란 어떤 사람일까요?
유승우 : 시인은 시를 음악처럼 느끼게 하기 위해 청각적 이미지를 만들고, 미술처럼 느끼기 하기 위해 시각적 이미지를 만듭니다. 다시 말해서 시인은 이미지를 만드는 사람입니다. 시인poet이란 만드는 사람maker란 어원을 지녔습니다. 사람은 살면서 많은 체험을 하게 됩니다. 그 체험들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 기억의 창고에 차곡차곡 저장됩니다. 이것이 무의식입니다. 시인은 무의식 속에 묻힌 체험을 살려서 이미지를 만드는 것입니다. 일찍이 최재서는 과거의 체험과 현재의 지각이 결합하는 것이 이미지라고 했습니다. 결국 시인은 이미지를 만드는 사람입니다. 사실 신과의 대화라든지 신의 말씀이라는 것은 추상적 관념입니다. 자신만이 느끼고 있는 것이지요. 이석을 남에게도 느끼게 하기 위해 이미지를 만들게 됩니다. 마음의 느낌은 당사자인 시인에겐 생동하는 감각입니다. 이 생동하는 감각을 남에게 이해시킬 수는 없습니다. 보여줘야 하고 들려줘야 합니다. 그래서 이미지를 만들게 되는 것이지요. 이해시키는 언어는 과학적 언어이고 느끼게 하는 언어는 시적 언어입니다. 그러니까 이미지는 시적 언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지요.
김해빈 : 시를 잘 쓰려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나요?
유승우 : 사람과 자연이 다른 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그것은 두말할 나위 없이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상상력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상상력은 사람을 사람이게 하는 에너지며, 사람만의 특권이기도 하지요. 그런데 이 상상력을 주제하는 것이 마음입니다. 모든 생물은 목숨을 가지고 있지만 마음까지 가지고 있는 것은 사람뿐이지요. 그러니까 목숨은 생물의 조건이며, 사람이 되는 조건은 마음이라 할 수 있겠지요. 그런데 아무리 마음이 있어도 그 마음이 활동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이 마음의 활동이 곧 생각이며 생각은 마음의 움직임입니다. 상상, 공상, 사색, 사고 사유 명상들이 다 마음의 활동인 생각의 유형들입니다. 마음의 움직임인 생각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인데, 우리가 다 아는 知, 情, 意 세 방향이 있다고 합시다. 이 가운데 시를 쓰는 움직임은 情이며 우리말로는 느낌이라고 하고 한자어로는 情感이라고 하지요. 느낌이나 정감은 가슴을 통해 활동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가슴으로 느낀다고 합니다. 생각의 유형 중에 가장 생명과 가까운 것이 상상이며 이 상상을 통해 느낌이 움직입니다. 상상이란 실제로 이세상이 없는 어떤 모습을 생각하는 것이며 우리말로는 ‘그리다’라고 합니다. 고아는 엄마 아빠를 그리며, 이걸 볼 수 있게 그리면 그림이고 마음속으로 그리면 그리움이라 하는 겁니다. 따라서 시인은 다양한 상상을 통하여 다양한 그리움을 그려내야 하는 것이지요.
노희정 : 선생님 저희 육필문학관까지 찾아주셔서 너무나 고맙고 영광입니다. 저도 예술을 한다는 하고 있습니다만 아직 예술에 대하여 모르는 게 많습니다. 예술작품은 어떻게 만들어질까요?
유승우 : 사람이란 말은 ‘살다’에서 왔습니다. 이것의 어원을 캐보아 사람이 ‘살다’와 그 뿌리가 같다면 거기엔 ‘사람은 누구인가’에 대한 열쇠가 숨어있습니다. 곧 사람은 ‘살아있는 것’이며 ‘살아있어야 사람’입니다. 죽은 것은 사람이 아니라 주검이지요. 삶에는 두 가지의 삶이 있습니다. 하나는 ‘살의 삶’이고, 다른 하나는 ‘사람의 삶’이지요. 살아있는 것이 곧 ‘살의 삶’입니다. 유기체지요. ‘살’은 살아있지만 ‘숨 쉬는 것’에 그치면 ‘고깃덩어리’에 불과합니다. ‘살의 삶’이 ‘사람의 삶’이 되려면 ‘얼과 넋의 숨쉼’이 있어야 하지요. 예술작품은 사람이 빚은 것입니다. 그래서 예술작품에는 살의 냄새도 나고, 얼과 넋의 숨소리도 들려야 합니다. 살의 숨쉼과 냄새만 가지고 작품을 빚는다면 개나 돼지도 예술품을 빚을 수 있을 겁니다. 짐승들도 살의 아픔을 압니다. 그러나 사람은 살의 아픔과 얼과 넋의 아픔을 지닙니다. 예술작품은 곧 사람입니다. 사람은 가장 아름답고 거룩한 예술작품입니다. 그래서 사람이란 작품을 이 누리에 내세우는 이야기인 창세기가 가장 많이 읽히고 있는 것이지요. 시를 비롯하여 모든 예술작품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술가가 손수 빚어 놓은 것이지만, 그 모습만 빚어놓은 것으로 그치고 만다면 그것은 손장난에 지나지 않습니다. 거기에다 예술가의 얼과 넋을 불어넣어야 아름답고 거룩한 ‘살아있는 것’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예술작품은 살의 삶을 넘어서서 사람의 삼, 곧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이지요.
김순진 : 선생님 오늘 하루 종일 여행하며 다니다보니 벌써 시간이 다섯 시가 넘었네요. 제가 서울 충무로에서 책 만드는 일 때문에 가봐야 합니다. 저녁도 먹으면서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만 용서해주세요. 오늘 바쁘신 날, 기쁜 날에 특별히 저희 월간 스토리문학의 메인스토리 취재에 응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유승우 : 저도 아주 유익한 여행이었습니다. 다음에 또 기회가 되면 포천도 가고 이곳 강화도 다시 오고 했으면 좋겠습니다.
이오장 : 그럼요. 또 오고말고요. 제가 모시고 다니겠습니다.
오늘 이렇게 긴 시간을 내서 저희 메인스토리에 응해주신 유승우 선생님과 함께 여행해주신 이오장, 김해빈 시인, 그리고 우리 일행을 위해 멀리 영등포로부터 단숨에 달려온 노희정 시인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 이것으로 취재를 마치며 독자를 위하여 유승우 시인의 시 3편을 싣는다.
시간의 식성 외 2편
유승우
시간은 못 먹는 게 없다.
바위도 오래오래 씹으면
그 단단한 육질이 무너진다.
63빌딩이나 청와대도 아마
한 천년이나 이천년 쯤 씹으면
시간의 입 속에서 녹아버릴 것이다.
내가 생각하기엔 무엇보다도
시간이 가장 잘 먹어치우는 것은
여인과 꽃의 아름다움일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먹을 수 없는 게 있다.
삼킬 수도 없으며, 소화할 수도 없다.
2천년이 넘도록 씹었지만 씹으면 씹을수록
시간의 입 속에서 더욱 크게 불어나
빛과 향기로 온 세상을 덮는다.
공자나 석가나 예수의 이름이다.
그 사랑의 향기이다.
달빛의 혼
달빛의 혼은 달빛처럼 은은하고
푸르고 깊다.
물을 많이 마신 날이면
내 정신도 푸르고 깊다.
한강 상류의 여울목에서
물살에 찬란하게 빠져 죽은 달빛은
밤중의 강물처럼
푸르고 깊게 흘러온 달빛의 혼은
수도꼭지에서 흘러나오고,
물을 많이 마신 날이면
달빛의 혼에 취해, 술처럼 취해
달빛이 그리워 달밤이 그리워
파리한 내 정신은
달 밝은 들판에서 머리를 푼다.
속옷
하늘이 하늘하늘 내려앉는다.
바다가 받아 받아 품에 안는다.
알몸으로 섞이는
커다란 몸짓
철썩 철썩…
옷을 벗는다.
벗어서 발치께로 밀어 던지는
사랑 앓는 큰 가슴의 깨끗한 속옷
하이얀 물결이 뭍을 적신다.
유승우 시인 연보
본명은 유윤식柳潤植
1939. 4. 17. 강원도 춘성군 남면 방하리에서 아버지 유제창柳濟創 선생과 어머니 공순이孔順伊 여사와의 사이에서 막내아들로 태어남.
1959. 2. 가평가이사 고등학교 졸업.
1963. 2.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1966. 2. 한양대학교 대학원 졸업. 석사학위.
1966 ~ 1969. 현대문학지로 등단(박목월 추천)
1967. 10. 28. 신명자와 결혼. 다미, 유미, 경아, 경남의 네 딸을 낳음.
1966 ~ 1979. 한양중학교 교사.
1970 ~ 현재. 한국시인협회 회원, 중앙위원, 심의위원.
1970 ~ 1975. <한국시> 동인(오규원, 박제천, 노향림, 양채영, 정의홍, 홍신선)
1975 ~ 현재. 국제PEN클럽 한국본부 회원.
1976. 첫 시집 『바람변주곡』신라출판사.
1980 ~ 2005. 인천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전강, 조교수, 부교수, 교수 역임.
1979. 제2시집 『나비야 나비야』심상사.
1983. 시론집 『한글시론』민족문화사.
1985. 제3시집『그리움 반짝이는 등불 하나 켜 들고』민족문화사.
1986 ~ 현재 <진단시> 동인.
1988. 8. 한양대학교 대학원 박사과정 졸업. 문학박사.
1988. 제 4시집 『나 있던 그 자리에』종로서적.
1988. 경희문학상 수상.
1989. 연구저서 『시문학파 연구』민족문화사.
1993. 제 5시집. 『달빛연구』우리문학사.
1994. 후광문학상 수상.
1994. 한국기독교문인협회 회장.
1996. 시선집『하얀 모래섬』형설출판사.
1998. 연구저서『한국현대시인연구』국학자료원.
2000 ~ 현재 <좋은시문학회> 동인.
2003. 기독교문화예술대상 수상.
2004. 시집『살과 뼈는 정직하다』형설출판사.
2004. 인천대학교 시민대학 학장.
2005. 시론집『몸의 시학』새문사.
2005. 8. 인천대학교 교수 정년 퇴임. 현재 명예교수.
2009년 현재, 한국문인협회, 국제펜클럽한국본부, 한국문인협회 부천지부 회원
한국시인협회 심의위원, 한국시문학아카데미 학술회원.
수상경력
경희문학상, 후광문학상, 기독교문화예술대상 수상
시집
바람변주곡』신라출판사, 『나비야 나비야』심상사,『그리움 반짝이는 등불 하나 켜들고』민족문화사,『나 있던 그 자리에』종로서적,『달빛 연구』우리문학사,『하얀 모래섬』형설출판사, 제7시집 『살과 뼈는 정직하다』형설출판사.
기타 저서
『한글 시론』민족문화사,『시문학파 연구』민족문화사, 『한국 현대시인 연구』국학자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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