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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림의 <오늘의 시에 대한 몇 가지 생각> 유심 2010년 3/4월호

설정(일산) 2010. 3. 3. 22:54

권두 논단

 

오늘의 시에 대한 몇 가지 생각

 

신 경 림

 

독자들로부터 무슨 소리가 무슨 소리인지 알 수 없는 시들이 너무 많다는 불평을 자주 듣는다. 또 젊은 시인들의 시가 서로 비슷비슷하다는 불평을 듣기도 한다. 한 평론가는 “저도 모르고 남도 모르는 시”라고 폄훼하고 “이 사람 저 사람 따라하고 저 사람이 이 사람 따라 한다.”고 혹평한 바 있지만, 이 두 서로 다른 불평의 내용은 어찌 보면 뿌리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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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책임의 상당 부분이 그릇된 시 교육에 있다고 생각한다. 우선 중고교의 시 교육부터가 그렇다. 제도적으로 학생들에게 시를 시로 읽게 가르치게 되어 있지 않은 점이 문제다. 시란 총체적으로 읽어야 제맛이 나는 법인데, 저명한 교수의 이론서에 의지해서 가닥가닥 작살을 내어 알레고리가 어떻고 상징이 어떻고 하다 보니 정작 시는 본체에서 멀어지제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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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의 시 교육은 더 문제다. 전부가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내가 겪은 경우 일차적인 표현의 기술을 가르치는 데 그치는 것이 보통이다. 학생들은 학점을 따야 하니 억지로라도 시를 쓸 수 밖에 없고, 선생은 가르칠 의무가 있으니 억지로 시를 쓰게 한다. 이 과정에서 가르칠 수 있는 게 표현의 기술 이상 무엇이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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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그와 같이는 못할망정 대학의 시 교육에서 적어도 시를 곰곰이 읽는 습관만은 길러줘야 할 것이다. 곰곰이 읽지 않고는 좋은 시를 찾아내지 못한다. 좋은 시를 알아보는 눈을 가진 사람이 좋은 시를 쓴다는 것은 내가 경험적으로 얻은 진실이다. 젊은이들을 대하면서 새삼스럽게 느끼는 것 중의 하나가 젊은이들이 너무 좋은 시를 읽는 눈이 없어 좋은 시를 찾아 읽지 못하고 결국 좋은 시를 쓸 동력을 얻지 못하는 것 아닌가 하는 것이었는데, 이것도 바로 대학의 시 교육에 그 원인이 있지 않은가 싶다. 시문학 사상 정말 좋은 시를 찾으려는 노력은 포기한 채 당장 학생들에게 호기심을 일으킬 동시대의 문제작만을 중심으로 가르칠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지만, 마침내 서로 비슷비슷한 닮은꼴의 시를 양산하는 결과로 이어지게 마련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저도 모르고 남도 모르는 시, 서로 비슷비슷한 시가 결국 모두 잘못된 대학의 문예 교육과 무관하지 않다는 얘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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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한 언어의 시만이 가장 훌륭한 것이 되고 오랫동안 살아남는다는 사실은 새삼 강조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가령 두보의 시가 그 시대의 삶을 담아낸 진실한 언어로 이루어지지 않았더라면 1,300면이 지난 오늘까지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