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스토리문학 2009년 7월호 메인스토리
메인스토리 - 구중서
우리 시대의 문학적, 정신적 리더 - 구중서 문학평론가
어려서부터 문학을 좋아했던 나는 우연하게도 고등학교 재학시절에 구중서 선생의 비평집을 입수하게 되었고, 그때부터 평론에도 관심을 두게 되었다. 그러면서 구중서 선생을 만나고 싶은 마음을 품게 되었는데 선생은 내게서 너무 먼 당신이었다. 나는 시가 읽혀지는 행사장에 수시로 드난하였는데, 평론가인 선생은 행사장에 모습을 거의 드러내지 않으셨다. 시인들은 가깝게 만날 수 있었지만 평론가들은 거의 행사장에서 만날 수 없었기에 선생과의 조우는 늦어질 수밖에 없었다.
구중서 평론집과의 만남은 나의 문학을 키우는 한 방편이 되었다. 시창작활동을 하면서 많은 시인들이 나에게 시집의 작품해설을 부탁해왔는데, 그것은 아마도 어려서부터 구중서 선생의 비평집을 읽고 습작해온 결과가 아닐까 지금 와서 생각해본다.
그러던 중에 스토리문학 주간으로 계신 지성찬 시조시인께서 구중서 선생의 시조집 『불면의 좋은 시간 』출판기념회에 가자는 제안이 있었고, 쾌히 따라갔다. 사실 출판기념회장에서 선생이랑 사진을 찍고 싶었지만, 너무나 쟁쟁한 분들이 많이 오시고, 행사장의 형편상 그럴만한 게제가 못되어 선생을 만나고 싶었던 수십 년 간의 소원을 얼굴 뵙고 인사드리는 정도로 하여 소망을 접어야했다. 그리고 사무실로 돌아와 지성찬 선생께 구중서 선생을 취재하게 해달라고 졸랐다. 그리고 드디어 구중서 선생과 가까운 박시교 시인으로부터 네 사람이 함께 만나자는 전화가 왔다.
사진으로만 뵙던 선생은 여전히 건강하셨고 과묵하신 분이었다. 경운동의 한 식당 <낭만>에서 이루어진 선생과의 조우는 훗날 두고두고 자랑꺼리가 될 것이다. 그렇게도 오랫동안 흠모하며 뵙고 싶은 분이었는데 만나 뵈니 멀리 있던 분은 아버지처럼 자상하고 소탈하신 분이었다. 선생은 이곳에서 가끔 신경림, 임재경, 김용태 같은 인사들과 바둑을 두곤 하신단다. 선생은 가끔 친히 막걸리를 따라주셨고 우리일행은 특별히 메인스토리라는 형식에 얽매이지 말고 사는 이야기나 좀 해보자고 하시는 선생의 뜻에 따라 시조 이야기와 시국 이야기 등을 이어나갔다. 그래서 이번 메인스토리에는 얼마 전에 서울 코리아나호텔에서 있었던 구중서 선생의 출판기념회 소식과 문학세계를 엮는 것으로 대신할까 한다.
지난 4월 30일 서울 세종로 코리아나호텔 7층 글로리아 홀에서는 구중서 문학평론가의 첫 시조집 『불멸의 좋은 시간』출판기념회가 열렸다. 이날 행사장에는 신경림, 이근배 시인, 최일남 작가회의 이사장, 염무웅, 임헌영 평론가, 한분순 한국시조시인협회 이사장, 김영재 책만드는 집 대표, 강민, 민영, 이성부, 정희성, 신달자, 김윤희, 유자효, 지성찬, 박시교, 정용국, 이일향, 정수자, 홍성란, 백이운, 권도중, 이승은, 신필영, 황명걸, 신상웅, 이규희, 김순진, 김일연, 공광규 등의 문인들과 조광호 신부, 주재환 화백, 김명성 아라 대표 등 100여명의 문학 문화계 인사들이 참석하여 성황을 이루었다.
이날 행사는 정용국 시인의 사회로 진행되었는데, 개회사 없이 첫 축사로 나선 예술원 회원인 신경림 시인은 “ 역기 선수 같이 덩치가 큰 사람이 재주도 많아 글도 잘 쓰고, 글씨, 그림까지 잘 그립니다. 그동안 나보다 시와 바둑은 못 둔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그 하나인 시가 쑥 들어갔습니다. 정말 긴장됩니다. 이제 하나 남은 건 바둑뿐입니다. 구 시인은 유유히 흘러가는 장강과 같습니다. 지금처럼 평화롭고 올바르게 살아가기를 빕니다.”라고 덕담을 하였다.
이어 염무웅 평론가는 축사를 통해 “구선생의 시조집을 세 번 읽었습니다. 읽을 때마다 감탄했고 읽는 분들은 누구든지 축하하고 싶을 것입니다. 구 선생은 60년대 중반에 알았습니다. 얼굴이 대춧빛처럼 불그레해서 나와 비슷한 또래인줄 알았습니다. 구 선생을 장강에 비유하는데, 이는 선비가 천천히 걷는 걸음, 군자의 완보, 정도를 걷는다고 생각합니다. 더러는 답답하기도 하지만 존경스럽고 교훈적입니다. 튀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 모범적인 모습만 있습니다. 「하루」라는 시를 읽으며 하루에 살지 못하고 한 오전을 하루로 사는 모습을 느꼈습니다. 새벽 5시에 자명종이 울리며 시작하는 모습을 보며 자책하고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비오는 날」과 「안부」를 읽으며 ‘사람 대하는 것이 이렇듯 깊어 친구로 대하는구나’ 싶어 반성했습니다. 평범한 가운데 비범한 깨달음을 줍니다. 놋그릇을 닦으면 반짝반짝 빛나는 것과 같습니다. 초정 김상옥 시조집, 정완영 시조집, 조오현 스님의 시조를 읽으며 시조가 조선시대와는 다른 생명력을 얻어가는 시라는 것을 실감합니다. 살아있는 문학이 되느냐는 그 시대와 동시대를 공감하고 그 정신을 담아내느냐에 달려있다고 봅니다. 서양의 소네트나 발라드가 지금은 죽어있는 문학인데 비해 와카나 하이쿠는 살아있습니다. 구 선생의 시조는 형식이 살아나고 있음을 입증합니다. 앞으로 시조를 쓰며 군자완보의 사고가 아니라 젊은 감각에 맞는 생각이 나와야 합니다. 그러면 구 선생의 업적은 영원히 기록된다고 생각합니다.”라고 전했다.
한편 예술원인 회원 이근배 시인은 축사에서 “구 선생의 시조를 보고 느낀 것은 고희를 지나 한 권의 시조집을 엮은 것이 남들 10권, 20권을 내어 마무리한 것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사람들이 내게 시조시인이라 불러주면 어깨가 으쓱해집니다. 이 나라 말과 글로 시를 쓴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낍니다. 국민 누구나 시조라고 하는 악기에 시가 뛰어나오는 그런 가락을 느낄 수 있습니다. 박재삼 선생께서 살아계실 때 서정시집 10권하고 「내 사랑은」이라는 시조 한 수하고 바꾸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이만한 시가 없습니다. 가장 오묘하고 이상적인 경지의 시조를 자기 것으로 만들어 터뜨렸는지 불가사의합니다. 글자 수를 맞추는 것을 족쇄처럼 차고 끙끙대면서 날밤을 새곤 하는데 이 어른은 자유로운 날갯짓으로 맘대로 글을 쓰십니다. 가람, 조운 같은 이들이 했던 형식을 받아들이고, 버린 것입니다. 새로 벗어던지고도 시조에 어긋남이 없이 자기 리듬을 채득한 것이지요. 시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만들어지는 시와 둘째, 우러나는 시가 그것입니다. 우러나는 시가 오래 남습니다. 「까치밥」같은 시조는 물 흐르듯 가고 있고 독특한 형식이 나왔습니다. 구 선생의 시조는 쉽게 썼으며 허심탄회하게 다가옵니다. 그 자신을 쓰면서 그 시대, 사람냄새 물씬 풍기는 독특한 체취를 느끼게 합니다. 억지로 쓰거나 과대포장하지 않고 글을 쓴다는 것, 어떤 가르침을 주십니다.”라고 자연스럽게 말했다.
마지막 축사에 나선 한분순 한국시조시인협회 이사장은 “구중서 선생님은 평론가로 문학에 큰 업적을 남기셨는데, 시조에 관심을 두시어 문단발전에 여러모로 이끌고 계십니다. 시조를 머리나 손끝으로가 아닌 가슴으로 쓰시는 진정성이 동시대 독자와도 호흡하며 현대적 진화를 이루는 데 기여합니다. 앞으로 창작을 하시면서 보내실 불멸의 시간이 문학과 시조를 사랑하는 많은 분들에게 감상의 즐거움이 넘치는 좋은 시간을 안겨주리라 믿습니다.”라면서 겸손과 수줍음을 품은 어조로 말했다.
답사에 나선 구중서 선생은 “내 시조집 속에는 「염치」라는 시조가 있습니다. 내용을 말하기보다 시조를 쓰기 시작한 순간까지 수줍고 염치가 없습니다. 지조도 우리나라의 보배로움과 통하는 형식에 자질이 좋은 문학사조를 계속 쓸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많이 격려해주셔서 거듭 감사드리며 송구스럽습니다.”라고 전했다.
구중서 선생의 답사에 이어 시낭송이 있었는데 김일연 시인은 구 선생의 시조 「야채가게」를, 공광규 시인은 구선생의 시조 「초연」을 낭독하였다. (자료출처 네이버 : 한분순의 문학 블로그)
구중서 선생은 시조집의 작가의 말을 통해 “나는 지난 40여 년 동안 문학평론가로 지내왔다. 몇 해 전,어느 자리에서 나에게 이런 말을 하는 분이 있었다. ‘한국인으로서 문학을 하는 이는 지금 어느 장르에 속해 있던 시조 몇 편은 써야 한다’라는 것이었다. 바로 나에게 시조 쓰기를 권고하는 말이었다.”면서 시조를 쓰게 된 동기를 피력하고 있다.
그는 대학 강단에서 한국문학사를 강의하면서 “나는 문학사의 단절을 극복하는 대목에 구전문학이 있었다는 특성에 대해 이야기하곤 하였다. 고려속요와 초기의 시조와 가사가 그러하다. 신라의 향가는 음독과 훈독으로 한자를 차용한 향찰 표기법을 썼는데, 그 방법이 통하면서 한글이 창제되기 이전의 기간에 나타난 것이 구전문학이었다. 구전의 방식이었는데 시조는 발생초기부터 다듬어진 정형성을 띄고 있었던 것이 특이한 점이다 청구영언과 해동가요에 채록된 것을 보면 고려 말의 우탁과 이존오가 처음으로 시조를 지었다. 한글창제 이전 시대에 이방원(태종)이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료’라고 하자 정몽주가 ‘님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로 대응하면서 나라의 중심인물들이 목숨을 걸고 정치적 결전을 하는 방법으로 시조창이 쓰였다는 사실은 그 시대의 시조 소통 정도를 보여준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 선생는 시조의 세계적 가능성에 대하여 “생각해 보건데 시조의 오랜 전통은 민족 고유의 개성 있는 시 형식으로서 세계에 과시할 수 있다. 정연한 정형성은 원래 악센트와 두음․각운 등의 언어구조를 거의 가지고 있지 않은 한국어 시에 일정한 리듬효과를 주는 장점이 있다. 오히려 시조 시인은 안정되고 리듬효과가 있는 틀에 오늘의 생동하는 삶과 의미를 잘 다듬고 순화해서 대입함으로써 더욱 격조 높고 흥취 있는 시를 쓸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한국의 현대시조는 의식적으로 원래의 정형성을 충실히 살리는 노력을 확대해나갈 필요도 있을 것이다”라면서 시조의 세계성과 시조의 형식을 깨려는 일부 사람들에게 경고를 보내고 있다.
선생은 시조가 나아갈 방향에 대하여 “현대 한국 문학에서는 미래지향적 가치 창조와 건강한 아름다움이 요청되며, 이 일이 가능한 여건이기도 하다. 이러한 역사의식을 가지고 앞으로 나아가는 일을 시조가 감당하면 비로소 시조가 젊음과 활력을 지니게 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원래 체질에서 발생하는 리듬에 오늘의 진취적 정신을 담아 아름다운 시가 되는 것, 이것이 한국 시조의 모습이 될 수 있을 것이다.”라고 피력하면서 “이러한 생각을 하면서 나는 시조의 창작에 계속 노력할 수 있기를 스스로 바란다”며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고 있다.
한편 신경림 시인은 시집 뒷 페이지 글을 통하여 “ 그의 시조는 장강의 흐르는 물처럼 넉넉하다. 하늘을 나는 학의 날갯짓처럼 우아하고 기품이 있기도 하다. 그러면서도 공허하거나 탈속적이지 않고 오늘의 삶에 깊이 뿌리를 박고 있어서 더욱 큰 울림을 준다. 사람 사는 멋과 맛이, 그리고 그의 인격과 한 생애가 시 속에 녹아 있어, 시조란 이런 것이로구나 새삼스럽게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그는 문학평론과 국문학에도 큰 업적을 남겼지만, 시조에 와서 비로소 문학적으로 대 완성을 이루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준다.”면서 시조집을 내는데 의미를 크게 두었다.
또 최원식 문학평론가는 “구중서 대 선배의 묵희墨戱를 처음 뵀을 때 나는 적이 놀랐다. 서書를 모르는 눈에도 담담하기 물 같은 것이 군자의 풍모가 역연했다. 종이에 물 스미듯 그렇게 화畵로 번졌다. 솜씨와 격이 조찰히 아울렸다. 시는 어찌 나타날지 궁금하던 차, 시조가 흘러나왔다. 옛 선비로 복고한 것인가? 그렇다, 아니 그렇지 않다. 생활과 시가 순하게 아물린 그의 시조들은 또한 나라를 근심하는 높은 사회성이 순정한 의미의 서정과 따뜻하게 손잡은 그런 드문 경지를 보여준다. ‘작은 일을 함께 하는 자유’를 나날의 삶 속에서 궁행하는 광산廣山 선생의 첫 시조집 출간을 기쁜 마음으로 기다린다.”며 그의 시조에 대한 한껏 부푼 기대를 표현하고 있다.
박시교 시인은 ‘시조, 그 건강한 아름다움을 위하여’라는 작품해설을 통하여 “구중서 선생은 이 시조집 『불멸의 좋은 시간』을 상재함으로써 이제 시․서․화 삼절의 흔치 않은 문인이 되었다. 언전이 출간한 산문집 『면앙정에 올라서서』에서 이미 글씨와 그림을 곁들여 보여주었고, 또 그 무렵 인사동 <공>화랑에서 서예와 그림전시회를 통해 또 다른 진면목을 보여준 바 있다. 그의 성품처럼 담백한 글씨와 그림 못지않게 그의 시조도 분명 그만의 독특한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는 걸 이 시집을 통해 읽을 수 있었다.”며 다양한 예술장르에서 노력하고 있는 구 선생을 높이 평가한 바 있다.
지난 2월 16일 김수한 추기경이 선종하셨을 때, 온 국민은 애도하였으며 그의 마지막 가는 길을 보려고 길게 줄을 드리웠던 추모의 행렬을 본 적이 있다. 그리고 바로 구중서 선생이 집필한 김수한 추기경 평전 『사랑하고 또 사랑하고 용서하세요』가 3월 9일 <책 만드는 집>에서 출간되어 또 한 번 세상을 울리게 하였다. 어떻게 그렇게 빨리 책이 나올 수 있었을까? 그것은 구중서 선생이 그만큼 김수한 추기경을 가까이 모시고 사랑하고 존경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천주교 신자인 구중서(베네딕토) 선생이 『창조』의 편집주간을 맡고 있던 1971년 겨울, 그는 잡지의 발행인(가톨릭출판사)으로 있던 김수한 추기경으로부터 성탄 카드를 받았다. 그 카드에는 “저를 도와주시고……. 늘 선생님께 희생을 강요하고 있는 것 같은 죄책감이 큽니다. 모든 것을 용서하십시오.”라고 쓰여 있었다. 김 추기경은 30대 청년 구중서에게 꼬박꼬박 ‘선생님’이라 불렀고, 이는 두고두고 그에게 큰 울림으로 남았다. 훗날 구중서 선생은 “마치 퇴계 이황 선생과 남명 조식 선생이 사람에 대한 ‘공경’을 존중했던 것을 연상시킨다.”며 “추기경은 행여 누구에게 소홀할까, 겸허를 다해 사람을 대했다고”술회한다. 큰 나무를 하늘로 먼저 보내드린지 보름 남짓, 구 문학평론가가 김수한 추기경의 생애를 한 권의 책에 담은 평전『사랑하고 또 사랑하고 용서하세요』(책 만드는 집 ․ 12,000원)의 책 제목은 알려진 바와 같이 김수한 추기경의 마지막 유언이다. 구중서 선생은 “작년 10월 김 추기경이 한때 위중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간 수집했던 자료를 모아 평전을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39년 동안 지척에서 지켜본 제가 김 추기경의 삶과 철학, 신앙을 제대로 알려야겠다는 의무감에 책을 쓰게 됐습니다.”라며 평전을 쓰게 된 소감을 피력하였다.
구 선생은 『문학적 현실에 대한 전개』라는 비평집의 머리말을 통해 문학의 당위성에 대하여 “어떠한 상황악狀況惡도 문학의 존재 당위를 더욱 뚜렷이 해야 한다는 점에 우리는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창조의 문학은 단순한 본능적 충동이나 말초적 감각에 의존되어 해결될 수 없으며, 또 그렇게 해결되어서도 안 됩니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이 현실 상황에 대한 이성적 파악과 창조성의 절대화, 그리고 합리적인 사고의 바탕위에서 괄호 안에 감금당한 언어들을 구체적으로, 사실적으로 해방시켜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것은 짓밟힌 토착정신의 원형을 고분 속에서 발굴하고, 도둑맞은 민족의 얼을 끈기 있게 되찾는 고된 작업으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역사에 있어 숙명을 믿지 않습니다. 충분히 긴장된 의지로 오직 사태 - 그것에 충실할 따름입니다.”라고 역설한다.
또 “문학을 힘들게 하는 어떤 여건이 나타난다면 그럴수록 문학은 더 요청된다고 하겠습니다. 인간 본성과 자연법칙에 산소처럼 필요한 것이 문학이기 때문입니다. 문학적 현실극복 자체도 결국 현실의식의 구현입니다. 풍요한 상상력도 물론 문학의 긴요한 요소입니다. 그러나 최후의 가치척도는 ‘현실’입니다.”라면서 문학의 자생력과 현실에 대한 반영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
그러면서 그는 문학을 하는 이유에 대하여 2008년에 발행된 그의 비평서 『문학의 분출』에서 보편적 가치에 대하여 역설한다. “ 역사는 변하는데 변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변하지 않는 것은 보편성과 자연법적 질서입니다. 이것은 다른 말로 하면 보편적 가치입니다. 보편적 가치를 거론하는데 대해 어떤 이들은 보수적 관념이라고 거부감을 느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이야말로 뿌리 없고 부박한 배회가 될 수도 있습니다. 진보라든가 전망을 연다는 것은 억압을 받으면 몸을 던져 저항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독재의 억압이 끝나고 나면, 그 다음에 인간은 무엇을 할 것인가요. 자유를 빼앗기지 않을 책임이 있을 뿐입니다. 이 일은 누가 할까요. 남이 해주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해야 합니다. 자유와 책임으로 불변하는 본질적 가치를 발견하는 일, 이것이 바로 참된 진보이고 전방의 타개입니다. 가까스로 쟁취한 정의를 빼앗겼을 때 누구를 탓하겠습니까? 결과는 자업자득입니다. 다 나의 책임입니다. 더욱이 모든 것이 개방되고 세계화한다는 공간에서 나를 지켜내는 일은 얼마나 힘듭니까? 진지하고 또 진지한 삶만이 나를 자유케 할 것입니다. 이 일념으로 우리는 영원히 건강한 아름다움을 위해 문학을 하는 것입니다.”라면서 우리가 문학을 하는 이유에 대하여 밝히고 있다.
취재에 응해주신 구중서 선생님과 함께해주신 박시교 시인께 다시 한 번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독자를 위하여 이번 시조집 『불멸의 좋은 시간』에 들어있는 시조 3편을 싣는다.
끈 외 2편
구중서
공원에서 아기들이 공처럼 마구 튄다
내달리고 넘어지고 거위처럼 끼룩댄다
하지만 아기의 뒤에 안 보이는 끈이 있다
가지 마라 돌아와라 달려가서 데려오고
안았다가 다시 놓아 제멋대로 놀게 해도
풀었다 다시 당기네 신비로운 엄마의 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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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채가게
산책의 길목에 야채 가게 하나 있어
계절의 별미들을 골라서 들고 온다
검은색 비닐봉지를 들고 걷는 내 모습
그 누가 군자는 큰일만 하라 했나
작은 일 큰일을 함께 하는 자유여
조그만 겨자씨 안에 우주가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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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
나이 젊은 제자가 아깝게 병이 깊어
병석을 찾은 스승 제자의 절을 받네
스승님 앞서는 죄를 용서해주십시오
끌어안고 등 두드려 스승이 말을 한다
냇물과 강물과 바닷물이 이어지듯
한 시대 어울린 인연 영원히 함께 가지
칼로써 토막 낸 시간을 보았는가
앞뒤가 잘려 나간 순간도 없는 것을
아끼며 벅차는 때가 영생의 자리이다.
구중서 문학평론가 프로필
1936년 경기도 광주 출생.
문학평론가, 문학박사.
중앙대학교 국문과 동 대학원 졸업.
1936년 <신사조>에 「역사를 사는 작가의 책임」을 발표하며 비평 활동 시작.
수원대 국문과 교수 역임.
현재 수원대 국문과 명예교수.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회 이사장 역임.
요산문학상 수상.
한국문학평론상 수상.
팔봉피평문학상 수상.
저서로는 『대화집 - 김수한 추기경』, 『제3세계문학론』, 『신동엽 - 그 삶과 문학』, 『한국 근대문학 연구』, 『민족시인 신동엽』, 『신경림의 문학세계』, 『구도의 언어』, 『외로운 사라마리아 사람』, 『역사와 인간』, 『한국문학사론』, 『문학을 위하여』, 『민족문학의 길』, 『분단시대의 문학』, 『한국문학과 역사의식』, 『자연과 리얼리즘』, 『문학과 현대사상』, 『문학적 현실의 전개』, 『문학의 분출』, 수필집『면앙정에 올라서서』, 김수한 추기경 평전『사랑하고 또 사랑하고 용서하세요』 시조집『불멸의 좋은 시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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