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문학/새책 또는 글 소개

들풀처럼 번지는 풀무동인지

설정(일산) 2010. 3. 5. 12:03

들풀처럼 번지는 풀무동인지

                                                                               양동숙


  대전은 풍광이 아름답다. 호반의 도시이다. 금강 본류를 가로막은 대청댐으로 인해 생긴 대청호가 있다. 금강 변 신탄진강에서 상류를 향해 걸으면 억새가 장관이다. 다시 대청댐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산책로를 걸으면 잔잔한 실비단 길이다. 대청호를 끼고 달리다 보면 추동이란 마을이 나온다. 가을이면 온통 국화향 나라가 된다. 우암 송시열 선생께서 제자를 양성한 남간정사 뒤로 계족산이 펼쳐져 있다. 대전 중심을 흐르는 대전천은 봄이면 유채꽃 향연이 꼬리를 문다. 험하지 않아 누구나 쉽게 오르는 보문산, 보문 산성까지 도착하면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야경 속에 ‘풀무’의 역사를 찾는다면 많은 불빛 속에 아주 작은 불씨랄까 하지만 풀무질로 활활 타오르게 하는 원동력이라 하겠다. 작고 소박하지만 인간미 넘치는 동인지다.  

  

               대청호                                    대전천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풀무동인지는 시를 향한 풀무질을 멈추지 않았다. 어김없이 해마다 들풀처럼 일어서는 여력을 보여주며 18집에 이르렀다. 각자의 삶을 들여다보면 내면이 훤히 드러난 빙어와 같다. 살아 갈 용기를 나누며 그늘진 시간 속에서도 온전히 시로 타오르도록 서로에게 격려와 배려를 아끼지 않는다. 화려한 수식보다 진실하게 사는 모습으로 내일이라는 희망을 적는다. ‘시는 진부한 뒷소리가 아니다. 시는 아름다움을 향한 인간 순연의 오롯한 마음이라고 할 때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좋은 양식으로서 다듬을 수 있는 가치 있는 생의 의미를 생각해 본다’는 이돈주 회장의 말처럼 유명한 시인이 목표가 아니라 훌륭한 시인이 되기 위한 조탁의 경주여야 함이 맞다. 풀무질이 꺼져가는 불씨를 살리는 것처럼 시가 그래야 한다. 삶이 그래야 한다.

  풀무동인지는 이돈주 회장을 비롯, 안현심, 이현옥, 김용철, 김사랑, 서훈정, 정미희, 양동숙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운 옛사람으로 홍수미, 김진성, 고운학, 황희순, 금기웅 시인과 풀무를 기억하는 사람으로 정바름, 윤시목, 임기원 시인 등이 참여와 성원으로 풀무를 눈여겨  보고 있다.



  

      동인지 18집                         참여한 시인


  지금까지 발행한 풀무동인지는 다음과 같다.


1992년 03월 시작  등대문학 창간호

1993년  등대문학 제2집

1994년  등대문학 제3집

1995년  등대문학 제4집

1996년  등대문학 제5집

1997년  등대문학 제6집

1998년  풀무 제7집

1999년 『내안의 꽃대하나』 8집

2000년 『풀무가 도는 마을』 9집

2001년 『다시 봄날에』 10집

2002년 『푸르름 속으로』 11집

2003년 『시와 꿈의 향기』 12집

2004년 『불붙은 것들은 끌어당긴다』 13집

2005년 『아버지의 자전거』 14집

2006년 『풀무는 바람을 만든다』 15집

2007년 『우주에 탯줄을 걸고』 16집

2008년 『꽃은 가슴을 베지 않는다』 17집

2009년 『밭 맬 때 논 맬 때 베 짤 때』 18집



  18집에 담긴 시를 보면 회색 도심에서 ‘저녁상에 들깻국이 올라와’ 깨꽃은 피어나고,/ 귀한 씨알까지 떨어뜨리고/ 무성한 잎까지 모두 날린 교정 뒤뜰/ 그늘진 은행나무에서/에서 ‘세상살이는 이런 것 / 다 버릴  줄 알고 / 절망마저 버릴 줄 알고 // 오래더라도 다시 기다려 희망을 만드는 것’이라고 삶을 관조한다. 비단물결을 보며 ‘지치고 넘어져도 수없이 일어나’라고 말하는 어머니를 만난다. 황무지에 버려진 막막함에도 ‘절망도 죽음도 오직 놀이일 뿐’이라고 적는다. 이제 ‘말도 덜고, 더 덜어내려고’ 도심을 벗어나 마음의 다이어트에 돌입한 시인도 있다. 한 시인은 늦은 시간까지 식당에서 일하는 아내를 향해 ‘구멍 난 세월에서 / 목숨 줄로 짜낸 거미집, 그물을 던지면 / 그리움 한 조각 건져내지 못하고 / 고독한 사랑만 키웠다’고 짭짜름한 바다를 건진다.


  지방단체에선 젊은 시인을 만나기 어렵다고 하소연한다. 손가락 숫자 안에 머문 작은 동인지이지만 젊으며 사람 향기가 넘친다. 더 크고 원대한 꿈을 꾸더라도 대전에 뿌리를 둔다. 타향도 십년이면 고향이라지 않던가. 그처럼 대전에 삶의 터전을 잡고 뿌리를 내리고 늦깎이 공부에 매진하여 열매를 맺으니 더 말할 게 없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대전의 다양한 표정이 담긴 대표동인지라 하겠다. 주름진 생을 건너는 사람들에게 시로서 호롱불이 되고, 텅 빈 나뭇가지에 푸르게 피어날 희망의 새눈이 되고, 곱게 우린 국화차가 되고, 조바심 내고 묵묵히 기다리지 못하는 삶인 현재 여기에 벼리를 세워야 하는 풀무여야 한다. 앞으로도 풀무는 다양한 존재의 마음과 표정을 담아 들풀처럼 견디고 살아나 춤추게끔 생명력 있고 열정이 담금질된 단련된 시로 대답할 것이다. 눈여겨보기 바란다.





























【동인 시】


  들깨꽃


                            김용철


  어머니는

  사흘만 자고 나면

  몸살 난 사람처럼

  안절부절못하신다.


  간밤 비바람에

  새벽잠 설치시고

  들깨밭 못미더워

  산마을로 돌아가야 한다며

  어린아이처럼 아들을 조른다.

 

  깨꽃은 지순한 새색시처럼

  곱게 피어 있는 걸,

  오늘 저녁상에 들깻국이 올라와

  김이 모락모락 오르고 있다

  어머니 사랑처럼.





  1954년 전북 정읍 출생/3인 공저시집『꽃과 마무』/시집 『馬夫』,『마부의 방울 소리』/1993년 계간 「해동문학」으로 등단/ 한국문협대전지회 회원




 










  은행나무가 있는 뒤뜰



                                 이돈주


  그늘이 깊어 위로만 큰

  교정 뒤뜰의 은행나무


  그 밑을 거닐면

  가까이 하기에 고약한

  은행냄새가 코를 찌른다.

  

  그래도 그 곳에 가면

  은행나무는

  이게 내 삶의 선택이라고

  침묵으로 꿈을 빚어


  용케도 잎 그늘 속

  다닥다닥 은행을 숨겨

  속에다 귀한 씨알을 담아

  너대로 살라고 떨어뜨린다.


  그리고

  찬바람 불어 비 오면

  무성하던 노란 잎까지

  남김없이 모두 날려 버린다.


  세상살이는 이런 것

  다 버릴 줄 알고

  절망마저 버릴 줄 알고

 

  오래더라도 다시 기다려

  희망을 만드는 것이라고


  교정 뒤뜰의 은행나무는

  서서 가르쳐 보여주고 있다.



 1954년 충남 공주 출생/「시와 의식」으로 등단/통일문예상, 한글유공상, 대전문학상/시집『고개를 넘으며』,『숲길에서』출간/한국문협대전지회, 한국문인협회 회원/현재, 대전용전중학교 국어교사

  어머니


                                양동숙

  유리병에 물을 담아

  얻어온 자주달개비와 아이비 줄기를 꽂았다

  옹기종기 모인 병 안으로 실뿌리가 자라고

  병 밖으로 싱그러운 옹알이 쏟아졌다

  맹물은 초록이의 모태 올망졸망 새끼 품은 어머니

  보름달이 뜬 장독에 물 길어 올리며

  정성으로 빌던 어머니 오롯이 스몄다


  꽉 막힌 세상을 벗어나 강가에 앉으면

  낮부터 꽹과리 소리 구슬픈 무녀의 목소리

  늦은 밤에서야 풀벌레에게 내주고

  콧대 높던 산꼭대기 산 그림자로 바짝 내려선다

  산 중턱을 밝히는 가로등

  팽팽한 칠흑 보자기에 비스듬히 길을 내고

  물비린내 따라 휘적휘적 오는 어머니


  모터 소리를 내며 배는 칼날이 되어 적막을 찢고

  가해진 상처만큼 펄떡펄떡 울고 뒤척거리는 강

  놀란 북이 둥둥 기억의 울림에 닿고

  지치고 넘어져도 수없이 일어나거라

  어머니의 당부가 출렁거렸다

  하나 둘 켜지는 불빛이 먼동을 깨운다

  어머니로 어머니를 껴안고

  아이들 품으러 세상을 향해 일어선다


  1967년 신탄진 출생/2001년 통일백일장 운문 장려/2002년 문학공모전 운문 가작(서귀포문협)/2003년 대덕시낭송대회 대상/1991년 3인 공저시집 『꽃과 마부』출간/대전충남여성문학회원








  남편이 집을 나갔다



                                                안현심


  남편이 집을 나갔다 복사꽃 어린 색시 데려다놓고 먹여 살리지 못하겠다고 산으로 숨어버렸다 두 번째 남편도 집을 나갔다 이야기책을 즐겨 읽는 아내와 살다간 굶어죽기 십상이라며 술집 골방으로 숨어들었다 세 번째 남편마저 집을 나갔다 달을 보자 조르는 아내 때문에 오래 살지 못할 거라고 황무지에 내팽개치고 달아나버렸다.


  이 봄, 또 남편이 나가려 한다

  꽃들의 손짓, 하염없는 손짓.













  1957년 전북 진안 출생/2004년 「불교문예」 봄호 시부문 신인상/2010년 「유심」 1․2월호 평론 추천완료/시집 『하늘 소리』 외/1998년 대전시 한글선양유공자상 수상/한국문인협회 회원















  마음의 다이어트를 위해




                              서훈정


  어둡습니다

  반갑습니다

  시간을 삽니다

  웃음으로 슬픔을 말리고

  웃음으로 눈물도 말립니다

  그냥 모두를 안고

  그냥 가만히 듣습니다

  시나브로 되어갑니다

  작은 자연이


  앉아 있습니다

  묵묵한 돌처럼

  나를 봅니다

  내 안에 있는 거울이 얼마나 혹독한지

  매일 참회懺悔합니다

  청량한 비움

  늦었지만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말을 덜고 덜어냅니다


  마음의 다이어트를 위해

  


  1970년 광주 출생/1986년 조선시조백일장 장려상/1992년 「설화민요연구회」창단/자료집 『하늘아, 소리야』 11집까지 발간












  내 여자의 바다 2



                       김사랑


  바다처럼

  한 여자가 들끓고 있다

  하얀 물거품을 그리움을 토해놓고

  섬 같은 남자 가슴을 베고 누워

  때로는 혼자 울던 그 바다는

  술을 마셔야 외로움을 달래는지

  노을처럼 취해 있었다

  한 남자는 술은 마시지 않아도

  그녀의 사랑에 취해

  온 몸을 들썩이며 혼자 울었다

  내 여자의 바다는

  다가가면 갈수록 앉으면

  어느새 내 곁에 밀려와

  내 육신을 혀끝으로 애무하는

  그 바다 같은 여자는

  구멍 난 세월에서

  목숨 줄로 짜낸 거미집 그물을 던지면

  그리움 한 조각 건져내지 못하고

  고독한 사랑만 키웠다







  1962년 전북 진안 출생/1999년 사이버 시집 『바람의 끝』/2000년 시집 『사랑을 꿈꾸는 나무』출간/2005년 3월 「문학저널」등단/한국문협대전지회 회원










 나이를 먹는다



                                이현옥


  나이를 먹는다

  내복약처럼 물을 마시지 않아도 먹어지고

  어금니로 와작 사탕처럼 깨물지 않아도

  세월이 저절로 배를 불린다


  세월을 먹으며 배가 불렀다

  나잇살까지 입힌

  세월에 버무린 양념들이 때론 시고 달고 짜고 쓰고

  갖가지 맛이지만

  그때마다 토하지 않고 먹어두었더니


  바람에 버무린 뛰는 심장도

  때론 콩알만해지던 간도

  세월은 곰삭게 했다

 

  좀 더 간격을 떼어놓고 바라볼 줄 알게 하고

  분나거나 조바심하거나

  울울하게 하지 않는다

  늘 그 자리 서 있는 괘종시계처럼

  간혹 뗑~ 하고 존재를 알리면서

  거기 서 있다


  앞으로 계속 살아 있는 한 나는 나이를 먹을 것이다


  나잇살이 얹어진 세월에

  마음 부르기를 바라면서





  1958년 충북 청원 출생/시집 『내 안에 그대가 있네』 외/방송글모음 『사람답게 산다는 것은』 출간/1995년 한국예총대전지회장상 수상/한국민인협회, 詩想文學 회원, 대덕문학, 대덕시낭송회 회원/현재 대전MBC 구성작가로 활동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