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앞에서 / 노동수첩 외 9편
장 문
못 볼 걸 본 것처럼
눈 가리고 싶었다
곳곳이 상처뿐인
이 몸이 내 것이라니
가슴 속
숱한 상처는
다행처럼 못 보고
...........................
선인장
살자니 몸 하나도
가누기가 힘이 든다
어쩌자고 제 생명에
바늘을 꽂았는지
그렇게 자해라도 해야
하루를 버텨내고
혹 하나 던져 줘도
원망 없이 정을 주고
혼자서 감당했던
세월들을 누가 알까
끝내는 토해낸 피로
꽃을 피워 환해지는
앨범
젊은 날의 일기(日記)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문명은 저를 버려
죽은 듯 잊었어도
그 많은 이야기들을
의리인 양 지켜 온
강 다시 흘러가고
꽃은 다시 피고 진다
여기 내가 온 줄
어떻게 알았을까
소문도 내지 않았건만
모두가 모여 있다
버스
가고 오는 길이 고단한 줄 아는가
자식 재워 놓듯 인부들을 품에 안고
05시 새벽길 달려 발품을 팔고 있는
그 큰 덩치로도 가끔은 힘이 없다
노년을 쉰다 해서 미워 할 이 없는데
노동의 새벽길 따라 하루 꿈을 싣고 가는
최고가 아니고는 관심 밖의 시대
묵묵히 제 길 달린 대가의 흔적처럼
겉과 속 멀쩡하던 곳마다 상처들이 깊었다
겨울 서정 / 사랑가
바람은 바람이네 그냥 가지 못하는
겉으로 웃는다고 웃는 줄 아는 건지
연못가 겨울 꽃들을 모두 다 건들인다
취미도 고약하다 밤만 되면 문 흔드는
문고리 잠겼거든 그냥 가면 될 것을
열리지 않을 줄 알면서도 끈질기게 버텨 섰다
마네킹
우울증에 걸렸는지
그녀는 말이 없다
철 지난 겨울옷을
새 봄 내내 걸쳐 입고
시장 길 한 모퉁이에
우두커니 서있는
그 누가 그녀에게
웃음 찾아 줄 것인가
저마다 사는 것이
혼자 몸도 힘이 드는데
이웃과 쇼 윈도우 거리가
천리千里처럼 멀었다
나무 의자
지그시 눈 감으면
그대 곁에 내가 있네
계곡 물 흘러가는
인적 드문 산 속에서
뚜렷한 이목구비에
키도 크고 가슴 깊은
귀를 기울이면
들을 수가 있겠네
새들의 사랑가를
바람의 휘파람소리
그대가 살던 고향의
못 잊을 소리들을
해금강 동백
부표 같은 섬 하나
쪽빛 위에 띄워 놓고
석별에 젖은 입술
증표로 찍어 보내는 길
고깃배 사라진 자리
수평선만 아득하다
오늘은 오시겠지
오매불망 그 자리
떠난 배 소식 없고
금이 가 있는 바다
기어이 피울음 쏟아
물들이는 사연들
섬/25시
조용히 살고 싶어 예까지 떠나 왔소
그런데 산다는 게 왜 이리 적막한가
밤이면 별빛마저도 혼자보기 두렵소
파도는 붙잡아도 뿌리치고 가더이다
그렇게 떠나기를 수많은 세월인데
님 소식 안고 돌아오는 파도는 아예 없소
님 오면 드리려고 약초도 심어 놓고
철 따라 고운 그림 섬 가득 그리면서
십 년을 하루 일인 양 뱃길만 바라보오
귀로 2004
전에도 그랬듯이 출항은 순조롭다
바다를 떠나서는 달리 길이 없던
천직을 사랑하면서 항로를 개척한다
언제 어디서건 복병伏兵들이 달려드는
종전(終戰)없는 싸움터, 생과 사의 바다에
그래도 우리는 간다 이기리라 믿기에
간밤의 꿈일 거라 위로해도 소용없다
표류하는 난파선에 가까스로 살아남은
엄연한 현실 앞에서 휘청이다 주저앉는
바다가 있는 한은 또다시 일어선다
만선의 꿈보다 큰 행복을 싣고 싶다
파도야 삼켜보아라 폭풍우여 덤벼라
장문 약력
계간 시조세계 제16회 신인상으로 등단
시집 『미완성 대동여지도』와 동인 사화집 16권이 있음
출처: 2010년 7.8월호 스토리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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