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장 외 1편
김리영
1
텅 빈 좌판에 바람이 와 눕는 시각.
꽃, 새, 물고기와 개도 팔리고 소리마저 사라지는 장터.
동행 없는 상인들도
저마다 지고 갈 짐 그렁그렁 비끄러매면 자리를 뜬다.
바닥에 떨어져 굴러가는 농익은 방울토마토.
몇 번이고 길 떠났던가!
그대를 놔두고 이 땅을 뒤로 하고,
모질게 먹은 맘 한 자락이 끌려 밟히는 장 언덕.
제주에서 온 무와 산에서 움 틔운 새파란 두릅,
오리 알, 닭발, 앵무새도 팔리고
미워하지 말라고 아무도 원망해선 안 된다고,
장날 뿔뿔이 헤어지는 사람들 사이 바닥을 헤치고
단숨에 터질듯 내리막길 뛰어가는 방울토마토.
막창집 밖에 선 혼자인 팔자만 고칠 수 없을 뿐이라고
달아오른 얼굴들이 곧게 들여다보인다.
2
기운 없는 모기를 김치 이파리로 누르고
씁쓸한 곱창 꼭꼭 씹어 삼키며
참 잘하고 있어! 비열한 말 한마디 헷갈려 내뱉는 상인들
도타운 손으로 주고받던 정마저 갈 준비 하는 장터.
장 길 끝나는 길목이 나올 때 까지,
어머니는 나와 함께 조금 큰 신발을 끌며 걸으며
가슴 속 돌아오지 않는 아버지를 모질게 팔아 없앤다.
캘리포니아 롤, 운명
계란과 연둣빛 아보카도, 오이를 나란히 동그랗게 말아
날치알과 매콤한 소스 뿌려지면
나를 주문한 뒤 기다리는 당신의 눈빛은
더 이상 공허하지 않다.
김밥 아닌 다른 무엇이 되고 싶었던.......
몸 밖에 굳어진 밥풀들
공기에 닿아 휘청휘청 떨어져나가는
어설픈 표정으로 태어난 나는 오늘.
검은 안전벨트를 두르지 않고
겉에 나온 속살, 밥알을 뚝뚝 흘리며
운명의 소용돌이에서 빠져나오고 있다.
싱크대에서 기다란 접시를 꺼내며 부르는 저 노랫소리.
창 밖 교회 벽에 드리운 현수막 천처럼
바람에 휘날리는 살점.
어차피 보이지 않는 짧은 김 반 조각과
파묻힌 화려한 알갱이들의 진실을
당신이 고개 끄덕 끄덕
두 눈 크게 깜박이며 알아차릴 때까지,
새하얀 속 다 뒤집어 말아낸
하루를 철저히 즐길 것이다.
나를 만난 당신, 사소한 속마저 확 드러나도록........
입 다물지 못할 것이다.
출처: 스토리문학 2010년 7/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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