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 노도櫓島에서 서포西浦 김만중金萬重을 만나다
남해 노량 바다 건너 노도櫓島에 버려져서
도저히 풀릴 수 없는 절망의 섬에 앉아
목숨도 호롱불 같은 심지에 불을 붙여 밝혔나니
망나니 해풍으로 외등불도 꺼지던 날
사방이 절벽이구나 아득한 밤바다여
바람에 우는 잡목도 잠들 수가 없었으리
꿈 속에 구름 타고 선계仙界를 거닐던 서포西浦
눈으로는 볼 수 없어 마음에 그린 고향에
눈물을 먹으로 갈아 모친께 올린 편지
섬에 핀 풀꽃들도 서포西浦 같은 심사려니
한 마리 나비라도 봄소식을 싣고 오면
마음은 나래를 달고 천상天上에 올랐으리
참았던 눈물처럼 꽃잎으로 지던 세월
이 겨울 동백꽃은 왜 이리 뜨거운가
그대의 가슴 속에는 무슨 꽃이 피었는가
가슴에 시원한 물길 끊긴지 오래지만
돌 틈 사이 흐르는 석간수石間水를 마시면
초가草家에 발을 뻗어도 마음은 극락極樂이었으리
효자라 차마 눈을 감을 수가 없었으리
육신의 뼈와 살은 흔적없이 썩었지만
오늘도 그 이름 살아있어서 서포 선생을 뵙게 되네
서포西浦는 가고 없어도 그 때 솔나무 곁에 있네
증언할 말이 많은지 솔잎은 무성하다
오늘도 금金빛 노을이 만萬근처럼 중重하구나
(창조문예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