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쓰는 편지>
만해 한용운 생각
―탄생 130주년, 작고 65주기를 맞아
이 승 하
승하!
오늘이 2009년 2월 5일이네. 용산 상가 참사와 연쇄살인 보도가 이어지는 흉흉한 날일세. 이 땅에서 목숨을 갖고 살아간다는 것이 치욕임을 새삼 일깨워주는 날이기도 하고. 날이 어느새 많이 풀려 있기에 달력을 보았더니 어제가 입춘이었더군.
이번 설 명절에 자네는 고향 김천에 다녀왔다고 했지. 2년 전 설날 다음날 자네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그래서 자네는 이번 설날 아침에 차례 상 앞에서 절을 했고 그날 밤에는 어머니 기일이라 또 차례 상 앞에서 절을 했지. 어머니가 천주교인이었음에도 아버지가 유교 관습을 철저히 지키는 분이라 자네는 그리 마음이 내키지 않았지만 어머니의 작은며느리인 자네 아내가 정성껏 마련해간 제수 앞에서 넙죽넙죽 절을 했지.
명절에는 인간의 생로병사에 대해 더욱 많은 것을, 더욱 강하게 생각하게 되지. 자네가 어머니 장례식을 치르고 와서 쓴 몇 편의 시가 자꾸만 생각나네. 그중 「어머니의 아랫배를 내려다보다」란 시가 있지?
음모를 본 적이 없었다 한때는 풍성했을까
지금은 듬성듬성 흰색과 갈색도 섞여 있는 음모
바퀴벌레 같은 희망과 토막 난 지렁이 같은 절망
기저귀 갈아드리며, 때때로 사타구니 닦아드리며……
내 몸이 언젠가 저 구멍에서 나왔다니
알몸을 본 적이 없었다
젖가슴 크기를, 유두 색깔을 알 도리 없었다
염하는 중늙은이와 조수인 젊은 친구
무표정한 얼굴로 어머니 몸을 염포로 싸고 있다
체중 줄이지 못해 늘 힘겨워했던 당신의 몸
암세포가 덮친 말년의 고통 말해주듯이
불룩했던 아랫배가 푹 꺼져 있다 쭈글쭈글하다
30년 장사일 하는 동안
체중을 지탱했던 튼실한 두 다리
젓가락이 되어 있다
염장이 중늙은이야 뭐 대수롭지 않겠지만
젊은 조수가 내려다보고 있는 어머니의 하체
내 치부를 드러낸 것보다 더 부끄러워
입 안 마른 염전이 되고
시선은 숨을 곳 찾아 자꾸 달아난다
곶감 같은 저 아랫배
언젠가는 홍시 같았을까
어머니도 아버지한테 이 말을 했을까
“이리 와서 이 배 좀 만져봐요.
태동이 대단한 걸 보니 사내앤가 봐요.”
저 아랫배 그 언젠가
내 아버지를 달뜨게 했을 것이다
무덤처럼 솟아올랐을 것이다
아랫배 속에서 나 한때 웅크리고 있었겠지만
모레면 배부를 일 다신 없을 세상으로
어머니 저 몸을 불태워 보내드려야 한다
상상력을 별다르게 발휘함이 없이, 거의 사실 그대로 자네의 경험을 녹여내 이 시가 내 마음을 쓸쓸하게 하네. 우리는 어제까지만 해도 즐겁게 얘기하고 함께 웃던 부모형제를, 일가친척을, 친구와 동료를, 선․후배를 장례식에 가서 영정 사진을 통해 재회하는 일이 종종 있지 않은가. 그 자리에서는 애통해하지만 며칠만 지나면 내 바쁜 일상에서 죽은 이는 그 존재가 점점 작아지게 마련이지. 할 일이 태산 같은데 늘 죽은 사람 생각만 하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그나마 부모형제, 혹은 자식은 기일이나 명절이 되면 새삼스레 생각이 나 다른 사람의 죽음보다 더 강하게 나를 압박하지. 그럼 나는 그를 추모하고 그리워하게 되지.
승하!
자네는 해가 바뀌어 이제 우리 나이로 쉰이 된다면서? 오십이면 공자 가라사대 ‘知天命’한다고 했는데 자네는 그런 경지에 다다랐다고 생각하는가? 자네는 게다가 시인이지.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었으니 지금까지 만 25년 동안 시인으로 살아온 셈이로군. 그리고 대학의 교수라고? 1999년 3월에 모교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의 교수가 된 이래 지금까지 만 10년 동안 교수로 살아왔다면서? 대학교수가 옛날에는 ‘철밥통’이었는데 지금은 계약제니 업적평가니 하면서 많이 조아서 하기 힘들다는 얘기를 듣고 있네. 시만 쓰며 살고 싶은데 학진 등재지와 등재후보지라는 데 논문을 1년에 2편 이상 발표해야 하고 청탁을 단호하게 거절하지 못해 잡문도 많이 쓰고 있다며? 참 딱하네. 왜냐구? 문예창작학과의 시 창작 강의 교수라면 시 열심히 쓰면 될 것을, 그런 일에 시달리고 있다니 딱하다는 얘기일세.
나는 오늘 자네에게 만해 한용운에 대해 얘기하고 싶네. 1879년생인 한용운은 47세 때인 1926년에 시집 ?님의 침묵?을 발간했고 49세 되던 해에 일제에 대항한 단체인 신간회를 결성, 주도적인 일을 했네. 그 전, 그가 41세 때에 3․1운동이 일어났지. 민족 대표 33인 중 불교계를 대표한 2인 중 한 사람인 한용운은 1920년에 만세사건의 주동자로 체포되어 3년 동안 옥살이를 했지. 3년간 옥살이를 했던 그가 어떻게 신간회를 결성할 용기를 낼 수 있었을까? 나는 한용운의 일거수일투족에서 범접할 수 없는 힘을 느낀다네.
자네는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 ?님의 침묵?에 나오는 역설의 절묘함에 대해 설명해주곤 했겠지만 대쪽 같았던 생애를 말해준 적이 있었던가? 그가 옥살이를 어떻게 했던가를 말일세. 자네가 열 번도 더 봤던 책, 김병익 씨가 쓴 책 ?韓國 文壇史?(일지사, 1973)에 나오는 아래의 글을 좔좔 외고 있다면서?
왜경에 끌려갈 때 그는 이른바 ‘옥중투쟁 삼대원칙’을 제시했으니 ①변호사를 대지 말 것, ②私食을 취하지 말 것, ③보석을 신청하지 말 것 등이 그것이다. 법정의 심문에서 “조선인이 조선의 독립운동을 하는데 왜 일인의 재판을 받느냐”고 대답을 거부, 그 대신에 쓴 것이 명논설 「三一獨立宣言理由書」였다. 같이 수감된 독립운동의 동료들이 극형을 받으리란 소식을 듣고 안색이 파래지자 “독립만세를 부르고도 살아날 생각들을 했단 말이야?”고 외치며 옆에 있던 변기를 던지기도 했다. 그들이 출옥할 때 얼싸안고 환호, 위로하는 영접 인사들에게 만해는 침을 뱉으며 일갈했다. “더러운 자식들, 오죽 못났으면 영접을 해? 너희들은 왜 영접을 받지 못하니!”
투옥 당시 한용운의 나이 42세, 출옥 시 45세……. 자네보다 더 젊었을 때 한용운은 자네보다 한참 어른이었네. 자네가 한용운이 옥중에서 쓴 9편의 한시를 갖고 쓴 글이 있던데 어떤 시가 그중 좋던가? 「침성(砧聲)」이란 시라고? ‘다듬이 소리’란 뜻일 테지. 자네의 번역 솜씨가 그리 신통치 않지만 이런 식으로 번역했던 것을 기억하네.
何處砧聲至 어디서 나는 다듬이 소리인가
滿獄自生寒 감옥 속을 냉기로 가득 채우네
莫道天衣煖 천자의 옷 따뜻하다 하나 도가 아니다
孰如徹骨寒 뼛속까지 냉기가 스며드는 것을
감옥에까지 들려온 다듬이 소리를 소재로 해서 쓴 시일 걸세. ‘천의(天衣)’는 천자(天子)의 옷, 선인(仙人)의 옷, 비천(飛天:신선이나 선녀)의 옷 중 어느 것을 택해도 무방하겠지만 일제 강점기라는 시대적 배경을 감안하여 “천자의 옷”으로 해석해볼 수 있겠지. 즉, 천자는 천황의 다른 말로 쓴 듯하네. 천의가 제아무리 따뜻하다고 한들 그것은 도가 아니며, 나는 지금 뼛속까지 냉기를 느끼고 있을 뿐이라며 일제의 침탈을 은근히 비판하고 있는 시라고 자네는 보았었지.
승하!
자네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이런 용기가 아닐까. 세속의 명리를 초개같이 여기고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가는 기개를 자네는 한용운 시인한테서 배워야 하네. 불의를 보고 맞서 싸울 수 있는 용기, 정의를 위해 몸을 불사를 수 있는 용기 같은 것 말일세. 자네가 서툰 솜씨로 번역한 시로 「설야」도 있지.
四山圍獄雪如海 감옥 둘레 사방으로 산뿐인데 해일처럼 눈은 오고
衾寒如鐵夢如灰 무쇠처럼 찬 이불 속에서 재가 되는 꿈을 꾸네
鐵窓猶有鎖不得 철창의 쇠사슬 풀릴 기미 보이지 않는데
夜聞鐵聲何處來 심야에 어디서 쇳소리는 자꾸 들려오는지
눈 내리는 밤의 감회를 읊조린 시일 걸세. “무쇠처럼 찬 이불 속”이니 그 겨울 한용운의 옥고는 인간 인내의 한계점에 다다를 정도였나 보네. “재가 되는 꿈”(아니면 재 같은 꿈?)은 자신이 죽는 장면을 꿈에서 보았기에 그렇게 표현했던 것이겠지. 하지만 철창의 쇠창살은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고 눈은 해일처럼 엄청나게 내리고 있다. 심야에 들려오는 쇳소리가 다른 방 옥문을 여는 소리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아무튼 눈에 보이는 것과 귀에 들리는 것 모두가 한용운을 비감한 심사에 휩싸이게 해 그는 눈 내리는 밤에 이런 시를 썼을 것이다.
승하!
기억하게. 만해의 민족운동은 석방 후에 본격적으로 전개되었음을. 일제의 극심한 탄압 속에서도 물산장려운동과 신간회 결성 운동에 참여하였고, 청년 법려(法侶) 비밀결사인 만당(卍黨)의 당수로 추대되었으며, 신채호의 묘비를 건립했었다. 창씨개명 반대운동과 조선인 학병 출정 반대운동을 목숨을 내놓고 전개하였고, 조선총독부와 마주보게 된다고 성북동에 집을 지을 때 북향으로 지었다고 한다. 일제가 창씨개명과 징병을 강요하면서 불교계를 대표하는 한용운의 찬성을 얻고자 회유책을 쓴 적이 있었다. 성북동 일대의 넓은 국유지를 한용운의 이름으로 불하하려 하자 그는 일언지하에 이를 거절했었지.
자네가 2007년 7월 중순부터 겪고 있는 어려움이 어디에서 기인한 것인지 잘 알고 있네. 이 세상의 험한 구설이 자네의 왼쪽 뺨을 때릴 때마다 오른쪽 뺨을 내밀면서 생각하게. 한용운을. 한평생 불의와 싸운 그의 용기를 생각하게나. 「불지르다」 같은 시를 쓴 자네이니 잘 극복해나갈 거라 믿네.
누가 일어나 불을 지른다 강한 빛과 열
내 차갑게 돌아앉은 등덜미에 이르도록
마른 풀, 마른 입술, 얼어붙은
이 땅에 누가 홀연히 일어나
불지른다 탑인 양 솟아오르는 불길
바람을 타고 칠흑의 하늘까지 번진다
지른다 불 그러나
그는 기진맥진하여 풀썩 쓰러지고
지상의 일부분은 여전히 어둠이다
차갑게 돌아앉은 나와 남의 등
멀다 너무나 멀리 떨어져 이해 못할 때
질러라 불 쓰러진
그의 단잠을 지키며
스스로를 태우다 숨거두는
또 한 사람의 작업, 저 소리
귀기울이는 이 없어도 이어지고
화드득, 어둠을 사르는 불의 발언
꺼지지 않는 불씨로 끝내 남아
사람의 일부분을 깨울 것이다
2009년 2월 5일
자네의 분신이 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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