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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 당시 안성 시위는 안법고교 3년생이었던 지성찬 김종성이 주도했다

설정(일산) 2009. 9. 9. 20:05

최종편집 2009.9.9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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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 혁명 49돌, 안성의 4.19<br> 안성 학생과 시민들, 민주화위해 시위
4월 22일 200여명 시위, 7월 자유당 후보 낙선 운동 펼쳐
[2009-04-20 오후 7:35:00]
 
 

편집자주 - 지난 19일은 4.19 혁명 49돌이다. 1960년 4.19혁명은 이승만 독재정권의 12년 장기집권을 끝낸 직접적인 계기였고 우리나라의 민주주의에 있어 큰 전환을 이룬 혁명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안성에서 4.19혁명에 어떻게 참여했는지는 아직까지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1960년 4.19 혁명 당시 안성에서도 안법중·고 학생들을 중심으로 우리나라의 민주화를 위한 강렬한 시위를 벌였다는 것이 당시 기록과 증인들로부터 확인되고 있다. 이에 본지는 당시 기록을 통해 확인한 내용과 증인들을 찾아 당시의 생생했던 이야기를 싣는다.



1960년 4.19 혁명이 일어난지 49년이 흐르고 있다.


지금까지 안성에서는 4.19와 관련하여 7.29총선거와 관련한 자유당 후보 낙선운동만이 일부 알려져 있다.

 

당시 고려대 재학중이었던 박종권 전 안성여고 교장이 당시 치열했던 안성의 4.19 상황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본지에서 당시 기록들을 확인한 결과 서울에서 4.19혁명이 시작된 3일후인 4월 22일 안성에서도 시위가 있었음이 확인되었다.


당시 신문기사 등을 살펴본 결과 안성에서도 22일 11시에 민주당 군당부 앞에서 200여명이 각종 현수막을 들고 구호를 외치며 시장통으로 전진하던 중 200여명의 경찰이 트럭 등을 동원하여 도로를 차단하는 등 강력한 조치를 취하여 30여분 만에 해산되었다는 것이 확인됐다.


또 시위가 해산된 후에도 시내 요소요소에는 무장경찰이 배치되어 삼엄한 경비태세를 취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어 당시의 분위기를 전하고 있다. 


또 4.19혁명으로 인해 이승만 정권이 물러나고 허정을 수반으로 하는 과도정부 하에서 7.29 총선거가 실시되는데 전국적으로 자유당 입후보자에 대한 반대시위가 펼쳐지는 가운데 안성에서도 자유당으로 입후보한 당시 오재영씨에 대한 반대 시위가 펼쳐졌다.


『안성군지』(1990)와 당시 신문기사 등을 살펴보면 안성시민, 안법중·고등학생, 농업고등학교(현 한경대학교) 학생, 양성중학교 학생, 죽산시민 대표 등이 오재영씨 입후보 반대운동을 하거나 시위를 펼쳤다.


결국 오재영씨는 안성공원에서 안법중·고등학교 학생과 시민들 앞에서 ‘입후보 사퇴’의사를 밝혔으나 선거관리위원회에서 입후보자의 사퇴표명만으로는 입후보를 철회할 수 없으며, 더구나 상황이 자유로운 분위기가 아니므로 사퇴는 유효하지 않다고 밝혀 오재영씨는 계속해서 선거운동을 전개했다.


이에 분노한 안법중·고등학교 학생과 안청중학교 학생 등 850명의 학생들이 23일 안성을 출발하여 서울로 향했다.


이들은 공도초등학교에서 점심을 먹고 저녁 무렵 평택시 서정동에 위치한 효명중학교에 도착하여 현지 주민들의 환영을 받고 중학생들은 집으로 돌려보내고 기차를 통해 상경했다.


서울에 도착한 150여명의 학생들은 당시 내무부청사 앞에서 치안국장과 대통령 비서실장에게 상경한 뜻을 밝히고 비가 오는 가운데에서 연좌시위를 벌이는가 하면, 서울 시내를 행진하며 자신들의 의사를 밝혔다.


당시 이러한 안성학생들의 시위는 전국적으로 화제가 되었다고 하고, 당시 신문에 연일 보도되고 있었다. 이러한 학생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오재영씨는 7.29총선거에서 후보 사퇴를 하지 않았지만 결국 안성에서 큰 표 차로 낙선하고 말았다.


비록 안성시민과 학생들의 주장대로 오재영 후보가 사퇴하지는 않았지만 시위와 상경투쟁이 오재영 후보의 낙선에 큰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 7.29총선에서는 자유당 오재영 후보도, 민주당 강희갑 후보도 당선되지 않고 무소속 김갑수 후보가 당선됐다.


4.19당시인 4월 22일 시위부터 7.29총선 자유당 후보 입후보 반대투쟁에 이르기까지 안성시민들이 보여준 민주주의를 향한 열정과 싸움은 불의에 맞서 싸우는 안성사람들의 정신을 보여 준 또 하나의 역사적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사실관계 등도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것이 많으므로 보다 많은 기록과 자료를 발굴해내고 당시 참가했던 사람들의 증언을 토대로 안성의 4.19에 대한 총체적 사실을 규명하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


당시 고려대 학생으로 방학을 이용해 고향인 안성에 내려와 있던 박종권 전 안성여고 교장(1940년생. 안법고 졸업)은 “안성의 4.19는 교육과 종교(천주교)의 힘이 만나 민주주의 진전에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생각한다. 고등학교 재학시 교무실에 들어갈 때는 이승만 대통령 사진에 인사를 해야 하는 독재적인 분위기 였다. 특히, 4.19전후에는 안성에도 정치깡패들까지 동원된 살벌한 분위기에서 안성의 학생들이 민주주의를 위해 일어선 것이다”면서 “당시 안법고등학교 김종성 연대장 등이 안성의 4.19를 주도했다”고 말했다.


또 조태희 전 안법고등학교 교장은 “당시 안성의 4.19를 주도한 분들은 안법고 9회 졸업생들이었다. 특히, 7.19총선 때는 보름이상 시위가 계속되었다. 당시 안성의 시위는 김종성 연대장과 지성찬씨가 주도했는데 시위가 격렬해 중앙언론에도 상세히 보도된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봉원학 기자 bwh5722@kg21.net

 

신문은 1960년 4월 23일 동아일보 기사.

 

신문은 1960년 7월 24일

 

안성서도 「데모」 이백경관을 동원제지

22일 상오 11시 정각 안성민주당 군당부앞에 집결된 민주당 당원 2백여명이 각종 「프란카드」와 구호를 외치며 시장통으로 전진하던중 이 기미를 탐지한 안성서에서는 각 지서 순경 2백명을 비상소집하여 「추럭」등을 동원하여 전도로를 차단하는 등 강력한 조치로 인하여 「데모」가 시작된지 30분 후에 부득이 「데모」는 해산되었으며 오후 시내 요소요소에는 무장경찰이 배치되어 삼엄한 경비태세를 취하고 있다. (동아일보 1960년 4월 24일 기사 전문)

 



자치안성신문(news66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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