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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학의 시조 감상-지성찬의 고추잠자리(두레문학 10호)2009.11.

설정(일산) 2009. 11. 11. 07:56

<두레문학> 10호

 

 문무학의 시조 감상

 

 

(지성찬의 고추잠자리)

 

 

해질녘

고추잠자리

꽃잎 물고

잠들었다

 

그 넓은

하늘을 날다

마지막

고른 자리

 

가녀린

다리로 짚은

작은 꽃잎이었다.

시집 『대화동일기』에서

 

작품 감상

 

고추잠자리, 높은 가을 하늘을 유유히 날아다닌다. 가을의 전령처럼 나뭇잎에 단풍이 들고 가을바람 설렁 불면, 날아든다. 이 작품은 그런 고추잠자리를 소재로 하여 인간이 돌아가야 할 곳은 아주 보잘 것 없는 곳이라는 주제를 살려냈다. 얼핏 보면 좋은 작품으로 이해하기 힘들지 모른다. 그러나 꼼꼼히 살펴보라. 시적 화자가 첫머리에 내세운 낱말이 ‘해질녘’ 이다. 그 해질녘을 단순히 하루가 저무는 것으로만 읽으면 이 시는 풀리지 않는다. 이 해질녘에는 시적 화자가 차마 말하지 못하는 나이가 들어있다.

초장은 이른바 우리 사회 문제가 되고 있는 은퇴 노인쯤으로 읽어도 좋다. 고추잠자리가 잠든 ‘꽃잎’은 은퇴 전에 그렇게 살뜰히 살피지 않았던 가정일지도 모른다. 가정은 ‘꽃’처럼 아름다운 곳이지만 그것을 뒤늦게야 깨달았다는 말이 되기도 할 것이다. ‘잠든’ 이라는 조용한 것 같고 편안한 것 같은 이 단어에 묻힌 회한은 차마 말로 다 하기 어렵다.

중장에 와 보라, 크고 넓고 힘차다. 그 넓은 하늘은 시적 화자의 세상이다. 그야말로 세상은 넓다. ‘그’라는 낱말을 보라. 그냥 넓은 것이 아니지 않은가. 단순히 지시 대명사 ‘그’의 의미를 훨씬 초월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 속에는 ‘하늘’의 가리키는 처소가 있는 것이 아니라 시적 화자의 젊은 시절이라는 시간이 존재한다. 중장의 끝구는 기어이 초장으로 다시 연결되어 은퇴 후에 와 있는 가정이 된다.

종장에 와 보라. 눈물겹지 않은가! 은퇴한 노인의 불편함이 왈칵 밀려오지 않는가. ‘가녀린 다리’ 라니 세상을 휘젓고 다니던 그 다리는 이미 약해질 대로 약해져서 힘을 잃었다. 세상은 그에게 조그만 자리 하나 허용하지 않고 그가 기댈 곳은 ‘꽃잎’ 따스하기는 하지만 한없이 허약한 가정뿐인 것이다.

이만하면 어떤가? 난삽한 어구 하나 없이 그리고 시조의 원형인 단수에 이 정도의 삶을 담을 수 있다면 예사로 읽은 시였다면 다시 꼼꼼 살펴야 하지 않겠는가. 이 글을 쓰는 때가 고추잠자리 나는 가을이다. 사무실을 뛰쳐나가 고추잠자리 나는 들판에 나가서 아! 그 징그러울 노후를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문무학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