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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도연명의 <귀거래사>가 있다면 한국엔 지성찬의 <신귀거래사>가 있다

설정(일산) 2010. 3. 2. 16:46

**중국의 유명한 시인 도연명의 <귀거래사>가 있다면

    한국에는 지성찬의 <신귀거래사>가 있다.

 

불교문예 2010년 봄호

 

<시조집 서평>


신귀거래사(新歸去來辭)

—지성찬 ?대화동 일기?(문학공원)

 



오종문



1. 들어가면서

시의 쓰임새는 무엇일까? 한마디로 정의할 수는 없지만, 시를 읽고 난 후의 여운이 뭔가 생각의 시간을 갖게 해준다는 것은 분명하다. 때문에 바쁜 삶 중에도 시간을 쪼개 시를 읽는 이유는 어떤 위안을 얻고자 기대함이다. 결국 산다는 것은 내 이웃과 자연, 보다 넓은 세계와의 관계를 맺는 것으로 그 안에서 자신이 존재하는 의의를 찾는다. 그리고 시는 우리가 존재하는 삶의 공간 속에 흩어진 순간의 편린들을 하나로 모아 감성의 힘을 불어넣는 것이다. 이러한 순간들을 통하여 우리는 스스로를 하나로서 일체감의 존재로 의식하면서 이웃과 자신이 이어져 있음을 알고, 이것들과 소통을 시도한다.

시는 이러한 순간을 언어의 힘으로써 포착한 결과이다. 모든 시가 다 그러한 것은 아니지만, 어떤 시나 어느 정도는 이러한 계기를 가지고 창작되는 것이 사실이다. 시가 자신의 삶의 공간인 자연이나 도시에 조화되고, 그 안에서 체험하는 경험주의적 묘사는 시인에게 유일한 구원의 길인지도 모른다. 시인은 이렇게 묘사된 세부적 현실을 통하여 하나의 전체적인 질서에 접근한다. 하지만 그것은 전적으로 시인의 개인적인 삶에 달려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의 시 창작 작업은 더욱 깊은 고독에 빠지게 만든다. 그러면 어떻게 시는 보다 행복한 초월적 삶을 제시하고, 삶의 공간에서 이뤄지는 것들을 스스로 넘어서 시적 승화를 이룰 수 있을까? 지성찬의 ?대화동 일기?와 권갑하의 ?외등의 시간?에서 어느 정도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2. 자연과의 융화 속에서 형성된 인격의 산물—지성찬

지성찬의 시집 ?대화동 일기?에 담긴 진솔한 시는 ‘자연과의 융화 속에서 형성된 인격의 산물’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한때 회사를 경영하며 세계를 누비던 경영인의 바쁜 일상에서 한 걸음 뒤로 물러나 자연과 소통하면서 삶과 화해를 시도하고 있다. 특히 고희(古稀)를 눈앞에 두고 살아온 삶에 대한 반성과 무소유의 삶, 그리고 자아에 대한 솔직한 고백의 귀거래사라고 할 수 있다.

“돌아가자!(歸去來兮!)/ …정신이 육체의 노예가 되어버렸다 해도/ 또 어찌하여 혼자 걱정하고 슬퍼하고 있는가/ 지난 과거의 잘못을 탓해야 돌이킬 수 없고/ 미래의 일을 아직 쫓을 수 있음을 알았다/ 진정으로 길을 헤맸지만 아직 멀리 가진 않았다/ 이제야 오늘이 맞고 어제가 틀렸음을 깨달았다”로 시작되는 도연명의 「귀거래사」는 벼슬을 버리고 자연의 전원생활 속에서 인간성을 되찾는 기쁨을 나타낸 시다. 지성찬 시인 또한 서울을 떠나 도시도 농촌도 아닌 일산에 정착한 지 10년이 지났다고 시집 서문에 밝히고 있다. 그것이 자의든 타의든 간에 그 환경에 적응하면서 귀거래사를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일산에서 부른 노래’라는 부제를 단 「일산선유음(一山仙遊吟)」은 그의 귀거래사로, 총 12연의 연시조로 구성되어 있으며, 3연 단위로 일산의 사계(四季) 속에 시인의 마음을 담아 그려내고 있다.


같은 햇볕 아래 나무는 키가 다르고

같은 물을 마시고도 꽃빛은 사뭇 다르다

세월이 오는 소리를 바람이 먼저 안다  --<3연>


영마루를 넘는 해는 발걸음이 더디구나

돌아보는 지난날이 불꽃처럼 뜨거워라

모두 다 타버린 후에도 불씨는 남는구나   --<5연>


낮이 가고 밤이 오면 호수는 혼란스럽다

가슴에 묻어야 할, 수많은 이야기여

그 누가 푸른 물빛을 곱다고만 하느냐


길을 따라 호숫가를 한없이 걷다보면

시작은 어디이며 그 끝은 어디인가

다 못 쓴 엽서 한 장을 걸어두고 가느니  --<7, 8연>


눈 내린 이 아침에 설록차가 따스하다

철새들 몇 마리가 이 호수에 날아올 때

소동파 시(詩) 한 구절을 입에 물고 오너라 --<12연>


위의 인용 부분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을 표현하는 대표적인 부분으로, 시인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시이다. 그는 예리한 시각과 오감을 발동해 회한과 함께 희구하는 바를 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인용한 3연의 경우 똑같은 햇볕을 받았음에도 각기 키가 다르고, 똑같은 물을 섭취했음에도 꽃빛은 서로 다르다고 말하고 있다. 외형적으로는 봄을 노래하고 있지만, 사실은 ‘사람’이란 단어를 생략하고 있음이다. 즉 똑같은 환경 조건에서 살아가지만 사고방식이나 성공적인 삶의 가치 척도는 다를 수밖에 없으며, 지금까지 이뤄놓은 모든 것들이 시인의 눈높이에 아직 이르지 못함을 안타까워하고 있다. “세월이 오는 소리를 바람이 먼저 안다”고 느끼는 이유이다. 여름을 표현한 5연의 경우는, 여름날의 하루해는 더디게 서산으로 지는데 불꽃처럼 뜨겁게 산 자신의 삶은 너무도 빨리 흘러와버렸다고 느낀다. 살아온 세월에 대한 회한과 함께 부끄럼 없이 열심히 살아온 그 삶의 흔적을 남겼느냐고 자신에게 묻고 있는 것이다. 가을을 노래한 인용의 시 7, 8연 역시 삶에 대한 반성과 철학적 사유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는 왜 조용한 밤이 아닌 소란한 밤이라고 했을까. 번뇌로 인한 불면의 밤으로 가슴에 묻어야 할 이야기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을 달빛에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운 푸른 물빛이 그의 눈에는 다르게 보였을까. 호수는 낮 동안 세상의 온갖 소란스러움을 밤새 가슴에 담아내고 화해시키면서 어루만져주기에 소란한 밤이라는 사실을 발견한 시인의 눈은 이내 “시작은 어디이며 그 뜻은 어디인가”라고 반문한다. 이 구절은 지극히 평범하면서도 정의 내리기 어려운 화두이다. 그는 그 화두를 찾기 위해 자신에게 수많은 질문에 던진다. 하지만 엽서 한 장도 채울 수 없는 답을 찾지 못해 그냥 여백으로 남겨둘 수밖에 없다고 고백한다. 겨울을 이야기 하는 마지막 3연은 봄, 여름, 가을로 표현되는 화자의 마음을 아우르고 있다. 풀이 나무가 될 수 없고, 사철나무는 푸르지만 꽃을 피울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기에 젊은 날 또한 되돌아올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는 눈 내리는 아침 한 잔의 차를 마시면서 삶을 정리하고, 독자의 사랑을 받는 좋은 시 한편을 남기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월파정(月波亭)의 밤」 또한 전원생활을 통해 삶을 사유하는 시인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대표적인 시로,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쉽게 읽히고 있다. 그가 자주 찾는 “월파정에 바람이 불면 달빛도 흔들”리고, 간간히 바람결에 실려오는 “풀벌레 웃음소리”가 “흘러간 세월의 상처에 은침으로 꽂히고”, 어느 사이엔가 “소나무는 기다리며 추사체로 늙어가면서” “실어증을 앓고” 있으며, 이로 인해 자신의 마음 속은 온갖 “사념이 숲을 이루고” 온 몸에는 바늘이 돋는다고 자신의 심경을 토로하고 있다. 비록 눈 앞에 원하는 것(물)이 있음에도 삶에 대한 갈증을 풀지 못했는데”, “이제는 몸도 무거워” 모든 것이 짐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세월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아니 욕망을 삶을 벗어버리고 인생을 정리하고 싶어진다. 그리하여 적막한 밤, 비단처럼 감기는 결 고운 달빛 아래 “숨겨 둔 옥피리 하나를 꺼내보고 싶다”고 간절하게 희구한다. 그렇지만 현실은 마음처럼 이루어지지 않는다. “생각에 생각을 더해도 풀리지 않는” 삶은 물결 위에 떠밀리는 부초(浮草)일 수밖에 없다고 단언한다. 이 뿐 아니라 ?대화동 일기?에 수록된 「인생」, 「인생의 짐」, 「너무 멀리 떠나왔구나」 등의 작품은 시인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수작이다. 시인이 생각하는 “인생은/ 빈집 같더라, 바람만 서성이는”(「가을 들녘에서」) 삶이며, 그 삶은 “사람 사는 일,/ 고추보다 매”(「고추보다 매워라」)워 감당하기 힘들지라도 “마지막/ 쓰다 남은/ 참회의/ 눈물처럼”(들국화」) 후회 없는 삶을 살고자 한다. 그러나 “이 땅에 수많은 집,/ 짓고 또 짓는다 해도// 영원히/ 쉴 수 있는 집은/ 이 세상엔 없다”(「영원히 쉴 집」)고 결론을 내린다. 그래서 시인은 앞으로도 끊임없이 귀거래사를 쓰게 될 것이다. 영원히 쉴 집을 찾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