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문학/나의 시론

품격있는 시의 세계를 향한 정용국 시인

설정(일산) 2009. 12. 4. 21:59

품격있는 시의 세계를 향한 정용국 시인

-秋史의 바다를 중심으로-

 

정용국 시인이 秋史의 글씨를 소재로 하여 발표한 품격 있는 시조 “秋史의 바다”에서 그가 장차 펼쳐나갈 시세계의 긍정적 변모의 징후를 보여주었다.

첫째는 그는 “秋史의 바다”를 통하여 새로운 이미지와 함께 시조의 가락을 잘 살려 보여 주었다는 점에서도 크게 주목한다.

파격을 밥 먹듯이 하고, 그 것이 오히려 새로운 시조를 창작하는 것이라고 믿는 시조시인들에게 좋은 모범을 보여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런 가운데서도 오히려 아름다운 시적표현을 통하여 자기의 생각을 유감없이 표출하였다.

“한 획이 천 리만큼씩 마음 밖에 서있다”라는 등의 귀절은 결코 쉽게 얻을 수 있는 시적표현이 아니다.

모든 예술은 작가의 삶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고, 작가의 삶과 생각의 질과 양이 작가의 예술세계를 절대적으로 지배하는 것이 보통이다. 예술작품은 결국 작가의 삶이 진솔하고 아름다울 때에 그 진가가 높이 평가되고 또 그 작품의 높은 품격으로 인하여 그 작가가 높이 추앙되는 것이 일반적인 경향이다.

秋史의 글씨는 명필중의 명필이어서 새삼 거론할 필요조차 느끼지 않지만, 안중근의 글씨는 이완용의 글씨에 결코 미칠 수 없어도 안중근의 글씨는 모든 사람이 사랑하여 소장하기를 원하지만 이완용의 글씨는 비록 아름답고 수려한 글씨지만 그의 삶이 반민족적 반국가적이었기에 아무도 소장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글씨 또한 이러하건대 하물며 시 창작을 함에 있어서는 말할 것도 없다.

삶은 생각으로부터 이루어지는 것이니, 삶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생각이다.

사람의 특성은 몸소 체험하지 아니하면 결코 변화하지 않는 특성이 있다. 지난 역사를 통하여 보면 하늘이 복을 주는 사람은 고난과 고통의 길을 가도록 하였음을 볼 수 있다. 왕자로 태어난 석가모니는 스스로 고난의 길을 택하였고, 예수는 젊은 나이에 치욕의 십자가의 형틀에서 세상을 마쳤지만 그에게 가장 아름다운 면류관이 주어졌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 사람은 자기의 존재를 다시 확인하고 성숙해져 간다. 다시 말하면 그런 고난과 역경을 극복한 후에 새로운 삶을 살게 되고, 보다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된다.

秋史가 벼슬길에 나아가 호사스럽게 살다가 정적들에게 밀려 유배지에서 무서운 고독과 싸웠을 것이고, 그런 가운데서 그의 예술의 경지가 성숙해져 갔을 것으로 짐작된다.

정 시인의 어려웠던 청소년기는 오늘의 정 시인을 탄생시킨 양약이었고, 그런 산 경험의 거울을 통하여 추사의 삶과 예술을 만날 수 있었을 것이다.

유방을 도와 통일천하를 이루었던 장량이 말하기를 “인생은 팔각기둥과 같아야 한다”고

비유적으로 말하였다. 인생은 원통기둥과 같으면 계속 굴러가기만 하고 멈출 줄을 모르게 되지만, 팔각기둥은 구르기도 하지만 때로는 멈추기도 한다는 의미다.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것 중의 하나가 멈출 때에 멈추어야 하는 것이다. 통일천하 후에 장량은 산에 숨어버렸지만 한신은 그 토사구팽이라는 말을 남기고 유방에게 희생되었다.

그런 인생의 원리를 알게 되는 것은 자기를 정확하게 알고, 세상사는 방법을 터득하게 될 때에 가능하다.

그런 후에 사람의 마음은 바다처럼 넓어질 수도 있고, 바다처럼 맑은 마음으로 세상을 투영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바다처럼 희망을 가질 수 있고, 바다 넘어 세계를 향한 소망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추사의 글씨가 “秋史의 바다” 셋째수 만큼 평가될 만한 수준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렇게 훌륭하다고 생각되는 작품을 바라보며 음미함으로써 한 스승으로 모시고 섬기는 좋은 계기를 갖는 것이니, 이러한 정 시인의 자세를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중국의 시인 유반(劉頒)의 시에 “비가 온 후에 연못의 물은 고요하고, 깨끗하게 갈고 닦은 맑은 거울에 처마기둥이 비쳐있네(一雨池塘水面平, 淡磨明鏡照檐楹)”라는 시가 있는데, 이 시에서 “비”가 상징하는 것은 인생의 고난과 역경이요, “께끗하게 갈고 닦은 맑은 거울”은 수양이 잘 된 인격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여진다. “秋史의 바다”셋째수 초장의 표현처럼(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가을 물을 닮은 글씨가-秋水文章不染塵), 그리고 유반의 시처럼, 정 시인의 마음도 맑고 깨끗한 거울과 같은 마음을 지키고 또 지향하는 삶을 살 것으로 기대한다.

중국의 시인의 노래처럼 풍랑이 이는 삶의 바다를 하나의 외로운 낙엽 같은 조각배를 타고 하늘로 돌아가는 인생(天際人歸一葉舟)은 아무 것도 가지고 가는 것이 없다.

단지 가지고 간다면 그 것은 자기의 이름인데, 정 시인이 그 이름을 아름답게 끝까지 잘 가꾸어 지켜서 아름다운 삶으로 인생의 성공을 이루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