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문학/나의 시론

시조세계 계간평-2008 여름호

설정(일산) 2009. 12. 4. 22:04

예술 시조와 삶의 상관관계를 중심으로

지 성 찬

 

이 세상을 새롭게 변화시키면서 이끌어온 원동력은 예술과 과학이 아닐까한다.

예술과 과학은 그 속성과 본질이 각각 감성과 지성을 바탕으로 하여 생성 진화하기 때문에

서로 배치되는 것으로 보이지만 실질적으로 인간에게 유용한 형태로 변용되어 실용화되는 과정에서는 상호보완적 역할을 가지게 되는 것이 보통이다. 그만큼 예술이 인간에게는 매우중요한 부분이어서 사람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한 예술은 존재할 것이다.

예술의 한 부분인 시가 시인에게 돌아오는 반대급부가 신통치 않을지라도 시는 앞으로도 계속 창작되어질 것이다. 예술에서 표현하고자 하는 미학의 소재는 인생의 삶이며, 예술의 한 부분인 시의 내용도 이와 같다.

예술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삶의 내용은 작가가 어떤 자세로 인생을 조명하여 포착하였는가 하는 인생관과 인생에서 가장 귀한 것이 무엇인가를 가늠하는 가치관에 따라서 결정될 것이다. 다시 말하면 작가가 관심이 있는 곳에 시선을 집중하게 되어있고, 대상물에 가까이 다가갔을 때에 참 모습의 진실과 접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작가는 기쁨을 맛보고 긍지를 가지며 새로운 창작을 위한 재생산 작업에 임하게 된다.

시인들이 갖추어야 할 덕목은 낮은 자세로 인생을 살아가는 겸손이며, 대하는 모든 대상물을 따듯한 가슴으로 이해하는 사랑이다. 이런 인생관과 가치관이 만나는 것은 약하고 작은 대상물이다. 약하고 작은 것은 가까이 다가가지 않으면 볼 수 없고, 대화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창작에서 시적표현의 기교 보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인생관과 가치관의 정립이라고 할 수 있다.

현대시조의 역사가 100년을 맞이하였고 최근에 시조단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셨던

원로 중진 시인들이 타계하는 것을 보면서 (김상옥 이태극 이우종, 서벌 이은방 서우승

박용삼등 시인등이 타계) 앞으로 10년쯤 지나면 시조단에도 더 큰 변화가 도래할 것이 분명하다.

근자에 시조세계가 성장을 거듭하여왔고, 2008년 봄호의 시조식탁에 진수성찬이 가득하니 시조단의 큰 기쁨이요 보람이다. 그 많은 작품을 모두 언급할 수 없어 몇 작품만을 선하였으며, 전호에 언급하였던 시인의 작품은 제외하였음을 밝혀둔다.

 

원로시인 장순하, 송선영, 정소파, 김교한 선생님들이 고령임에도 건필하시니

후학들에게 큰 위안이 되고 있다.

 

10인 특집에 실린 작품을 살펴보았는데 모두 무게 있는 작품이었다.

평범함 속에 비범함을 감추고 구원과 실존의 문제를 표현한 박영교의 “섬촌 마을”이 눈을 멈추게 한다.

 

강물이 앞을 흐르고

다리도 한 개쯤 섰네

 

한 채 古家가 보이고 들판엔 아무도 없는데

 

물소리

바람소리에도

귀 기울이는 마을 사람들.

(박영교의 “섬촌 마을” 전문)

 

박영교 시인의 “섬촌 마을”은 꾸밈이 없는 자연스러운 표현이 호감이 간다. “앞으로 흐르는 강물”은 이승과 저승을 가로지르는 경계로 느껴지며, 놓여진 “다리”는 이승과 저승을 연결하는 구원의 다리는 아닐까. 물소리 바람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은 고독한 사람들로 여겨지며 가슴이 따듯한 순수한 사람들일 것이다.

사람들이 이 세상에 짓는 집은 古家로 남아 있다가 결국에는 없어지는 것이 아닌가.

이 세상에 짓는 집은 결국 허망한 허상일 뿐이다.

 

무려 5편(물, 입원실에서 1, 2, 가을 밤, 나무의 나이)을 발표한 민병도 시인의 작품은

모두 역작이었다.

 

꽃에 취해 향기에 취해 갈 길을 잃어버렸나

바람에 삶을 맡겨온 지난한 시간들이

고요한 잠 속에 돌아와 그도 하나 산이 되네

(민병도의 “입원실에서 1”의 셋째수)

 

민병도 시인의 “입원실에서 1”은 세상적 가치와 유혹에 현혹되어 시류에 휩쓸리게 되었고, 그로 인하여 많은 시행착오와 잘못을 저지르며 살아온 “이씨 노인의 삶”을 표현하였는데,

꽃에 취하고 향기에 취한 사람이 어디 이씨 노인 하나뿐이랴.

사람이 이 세상에 존재한 후 지금까지 그렇게 취해서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문명이 아무리 발달해도 사람의 본성은 발전, 발달하여 좋게 변화하지 않고 그대로 유전 보존되어 온 것이 신기하다. 단순한 한 노인의 얘기를 전한 것이 아니라 이를 시적표현으로 잘 엮어낸 솜씨가 민병도의 능력이다.

“물”은 용서와 화해를 담았고, “가을 밤”은 “가을의 촉촉이 젖은 고독한 정서”를 담고있다.

 

평시조와 사설시조(미궁, 닭 있는 풍경, 쥐, 엮음 수심가 3편)를 함께 발표한 박기섭 시인은 전국 각 지방의 방언으로 창작한 사설시조를 모아 “엮음수심가”를 출간하여 시조단에 큰 충격을 주고 있다. 삶의 진솔한 이야기가 방언의 끈끈한 정서로 잘 반죽된 사설시조의 시적표현들이 독자의 눈을 사로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오랜 시간동안 준비하여 창작한 끈기와 치밀함이 더욱 놀랍다. 사설시조 역사의 한 페이지에 기록해야 할 역작임이 분명하다.

 

한 번 빠져서는 빠져 나오지 못하는,

뼈도 안 남기고 다 발겨낸 독 안의 쥐

비어서 가득한 고요의, 텅 빈 독 안을 내닫는 쥐

(박기섭의 “쥐” 전문)

 

박기섭 시인의 "쥐"를 보면서 쥐의 속성과 그 능력을 생각해 보면, 쥐는 매우 영리하고, 민첩한 동물이며, 생활력이 매우 강하고, 환경에 적응을 잘하는 동물이다. 어쩌면 사람만큼 능력이 있다고 할까.

쥐가 “독”안에 살 때, 그 쥐는 독 안의 생활에 익숙하게 되고, 그 밖의 세상은 알 수가 없고 관심도 가질 수가 없다. 독에 들어가게 된 동기는 어떤 유혹이나 잘못된 판단에 연유할 수도 있을 것이다.

독 안에서 모든 것을 향유할 지라도 독 밖에 있는 귀한 것을 볼 수도 가질 수도 없을 것이다. 독 안에 갇히듯이 사람들도 자기가 만든 독 안에 사는 경우가 많으며 이런 경우는 스스로 선택한 결과로 빚어진 상황이다.

“미궁”은 제목처럼 그 내용이 미로처럼 언어들이 연결되어 있고, “닭 있는 풍경”은 신앙적 분위기에 닿아 있다.

 

3편의 작품을 발표한 이정환 시인의 작품은 각각 독특한 언어의 색채와 분위기를 표출하면서 그 형식 또한 다르게 표현하고 있다.

그의 작품에서는 강열한 신앙적 메시지가 담겨있어서 독자에게 실존적 각성을 촉구하는 면이 강하다.

 

살아서도 못 떠나고

죽어서도 못 떠나서

 

하늘 가까운 언덕에 비스듬히 누운 이들

 

살아서

빛나는 것들을

내려다보고 있다

 

아무것도 남긴 것이 없다고 말하랴

남긴 것이 하 많아 한이라고 말하랴

 

파도에

다 깎이기에는

그저 아득할 뿐인데

(이정환의 “우도의 詩-봉분들” 전문)

 

이정환 시인의 “우도의 詩-봉분들”을 읽으면서 숨이 멎을 듯한 큰 감동이 다가왔다. 마치 가슴이 날카로운 비수에 찔린 듯이 저려왔다. 한 많은 이 세상을 살아온 사람들에게서 터져나오는 절규라고 할 수 있고, 서릿발 같은 한이 서린 노래 같기도 하다. 특히 첫째 수 초장과 둘째 수 초장, 중장은 시조의 유연한 가락이 돋보이는 절창으로 이 작품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살아서 빛나는 것들”에서 하나님 앞에 바로 선 것이 “산 것”이며, 하나님 말씀 앞에 순종하는 것이 살아있는 것이니, 이정환 시인이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바로 살아서 빛나는 것이며, 이는 영생이며 구원이다.

이 작품에서 명징하게 표현된 내용들은 독자들이 새기며 판단하면서 음미할 것인즉 필자가 사족을 덧칠할 필요가 없다. 많은 독자들의 마음을 빼앗았으니 이정환 시인은 부자임이 확실하다. 이 작품은 하나님이 이정환 시인에게 선물로 주신 명작이다.

이정환 시인의 다른 작품 “너의 肖像”은 하나님 말씀의 거울에 비친 실존적 자아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는데, 그 만큼 聖化되어가는 그의 모습과 소망을 이 글을 통해서 알 수가 있다. 인생을 항해함에 있어 그 인생의 배가 기항할 항구가 없다면 그 것은 절망일 것이다. 하지만 자기 인생의 배가 기항할 항구가 있다면 그것은 그 인생에 희망이 있다는 말일 것이다.

 

문무학 시인의 다섯 작품(때문에, 벗, 나와 너, 느닷없다, 스미다)은 낱말을 소재로 하고 있는 특이한 작품이다. 시작노트에서 문무학 시인은 “2년째 해 오고 있는 낱말 새로 읽기”라는 이 작업을 나는 은근히 즐기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단지 낱말 풀이가 아니라 그 낱말을 통해서 인생을 조명하고, 삶의 이야기를 재치있게 펼치면서 시조로서 성공을 거두고 있다.

 

‘벗’이란 낱말은

‘벗다’에서 왔을 것이다

 

벗고 벗고 벗어서

더 벗을 게 없을 때

 

그때사

만날 수 있는 사람

그가 곧 벗 아니던가

(문무학의 “벗” 전문)

 

인생의 긴 여정에서 동반자로서의 참다운 벗은 참으로 중요하고 그래서 얻기 어렵다. 좋은 벗을 가진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유동 이우종 선생님의 작품에 “차 한 잔 나눌 친구가 어디 그리 흔한가”가 있듯이 사람들은 좋은 벗을 그리워하고 있다.

서로가 서로에게 모든 것을 보여주고 이해하고 감싸줄 수 있는 사람이 참으로 좋은 친구다. 새로운 형태의 시조를 보여준 문무학 시인의 창의적 표현과 노력이 돋보인다.

항시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성취하는 문무학 시인은 한 지점에 머물러 있지 않고 역동적으로 움직이며 새로운 지평을 향하여 미래로 전진하는 인물이다.

 

봄 시조단에 초대된 권도중 시인은 자기의 목소리를 그대로 지키고 있었다.

 

간절함 다스려 참아야 함을 압니다

억새꽃처럼 다 날려 보내고도

허물과 후회만 남긴 그 언덕 커져만 갑니다

 

항상 앞서 피어 생생한 세상에서 슬픈 꽃

이제 젊고 늙음이 다름없는 사이

이 죄업 그대 생각은 어이해야 하나요

(권도중의 “억새꽃처럼”중 일부)

 

권도중 시인의 “억새꽃처럼”에서는 억새꽃의 속성과 형상을 빌려 인생의 허망함을 그리고 있다. 봄 여름의 풋풋했던 억새가 가을이 되고 보니 풀기는 모두 빠지고 하얀 몸집에 하얀 머리칼만 바람에 휘날리는 언덕에서 먼 수평선을 바라보는 정경은 지난 과거를 회상하는 분위기로 다가온다. 인생은 하나의 슬픈꽃이라고 말하는 권 시인은 인생에서 세월의 길고 짧음의 차이가 없다고 말하고 있다. 시공을 초월한 존재의 의미를 간파한 인생의 노숙함이 나타나 있다.

다른 작품 “강은 바다로 가서”에서는 도도히 흐르는 강물처럼 흘러가는 세월 속에서 만났던

인생의 희로애락과 모든 만남과 이별의 생각들도 결국에는 바다에 이르는 종지부를 찍게 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권도중 시인의 따듯하고 끈끈한 감성의 필치로 풀어내는 시조의 맛과 운치는 그만이 가지는 하나의 영역을 확보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시조의 유연한 가락이 부족하게 여겨지는 부분이 있음을 첨언하고 싶다.

 

단시조 7인의 작품도 독자들의 눈을 끌기에 충분한 작품들이었다. 지면 관계상 이기라 시인의 작품만을 살펴보고자 한다.

 

무슨 능지처참할

죄인이나 찾아 내일 듯이

 

세상 구석구석을

샅샅이 뒤져댑니다

 

마침내 공범이 된 세상

흰옷 입고 나섭디다.

(이기라의 “눈발” 전문)

 

이기라 시인의 “눈발”을 보면서 눈이 내리는 모습을 이렇게도 그릴 수 있구나하는 놀라움을

갖게 한다. 이 작품이 단순히 눈이 내리는 모습을 그린 것이 아니라 그 이면에는 도처에 부패한 곳을 정화해야 하는 명제를 제시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이 세상을 확 바꾸어서 이 세상이 바로 세워져야 한다는 것이지요. 이기라 시인의 작품에서는 강경한 시적표현을 심심치 않게 보게 되는데 이것이 이기라 시인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시적표현 방법이기도 하다.

그는 언행이 신실한 깨끗한 시인이다.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그의 생각과 인생관이 항시

그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봄호부터 단시조를 연재하는 송진환 시인의 누드集 외 14편은 그 분량과 역량, 그리고 새로운 시조의 세계를 열고 있다는 점에서 높게 평가한다. 쉽게 한 번 스쳐서 읽어서 넘길 그런 작품이 아니라 천천히 새기면서 읽어야 시의 참 맛을 느낄 수 있다.

 

6

삶은

흘러가다

한 번쯤은 꺾인다

 

비스듬히 내려앉은 저 패인 그늘 앞에

 

아픔이

문득 배어난다

 

그 눈가를 보았다

 

7

네 속살

가는 떨림

은밀히 와 닿을 때

 

설렘은 먼 바다로 파도를 불러내고

 

가슴은

부풀어 올라

석양빛에 더 곱다

(송진환의 누드集 6, 7, 전문)

 

송진환 시인의 작품의 주제가 누드이면서도 시조의 품격을 높이고 있으며, 그 내용에는 삶의 깊은 의미를 담고 있어 그의 시적표현의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면서 그 표현력은 매우 날카로워서 근처에 손만 가도 베일 듯한 예리한 그림들을 그리고 있다. “삶은 흘러가다 한 번 쯤은 꺾인다”, “설렘은 먼 바다로 파도를 불러내고”등은 이를 반증하는 좋은 표현들이다. 시조의 형식을 철저하게 지키면서 앞으로도 좋은 시조를 보여줄 것으로 기대한다.

 

김현 시인의 “입춘, 남한강가에서”는 특히 역작이었으며, 이외에도 많은 시인들의 좋은 작품을 언급하지 못한 점을 매우 아쉽게 생각하며, 아울러 필자의 짧은 생각과 글로 인해 좋은 작품에 누가 되지 않았나 하는 두려움도 지울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