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남시장 지느러미 없는 물고기 외 1편
강초선
뭉턱, 허리 아래 잘린 반 토막의 물고기
지느러미 대신 가녀린 꼬리
너덜거리는 시간으로 둘둘 감아 비린 저자거리를
흐느적거리는 물고기의 느린 걸음이
느리게 흘러나오는 슬픈 노랫가락이
좌판 위 언 칼치를 냉동 고등어를 탱탱 포도송이
복숭아 사과를 물컹거리며
시장 나온 아낙들의 발목을 잡는다
‘쯧쯧 우짜다 저리됐을꼬!’
천원 지폐 한 장에 물고기가 말을 한다
‘고맙습니다’ 꾸벅, 꾸벅
납작 엎드린 땅바닥에 이마를 박고
행인의 두발을 향해 몇 번이고 이마를 박는 물고기
한 번, 딱 한 번
바닥을 치고 세상 높이 솟구치고 싶었을는지 모른다
싱싱한 두 다리, 싱싱한 지느러미를 보면
수 십, 수 백 번이라도 이마 박고 입 맞추고 싶었는지 모른다
스스로 일어 설 수도, 걸음마를 할 수조차 없는
인간도 물고기도 아닌 불구의 몸,
세상으로부터 유린당한
반 토막의 生
다 내려놓는 그날까지
늘 목이 마르고, 늘 허기진
서남시장 지느러미 없는 물고기
슬픈 노래가락이 너덜거리는 시간을
둘둘 감아 느릿느릿 비린 저자거리를 헤엄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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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빛 단내
호박전을 굽는다
지글거리는 후라이팬 속으로 툭, 옥상의 호박이 굴러들고 윙윙 벌들을 미치게 하는 황금빛 단내, 벌거벗은 여인을 황금빛으로 그렸던 황금빛 유혹에 미친 구수타프 클림트* ‘키스’의 연인을 둘러싼 황금빛이 여자의 어깨에서 남자의 발목까지 옥상에서 후라이팬까지 황금빛을 둘러싼 황금빛 안개가 키운 황금빛 덩굴이 치렁치렁 매단 둥굴넙적한, 새끼를 잘 낳을 거 같은 엉덩이 떡 벌어진 호박이 달빛아래 숭덩, 새벽별 보고 숭덩, 낮달아래 숭덩, 해거름 땅거미에 숭덩, 숭덩 낳은 새끼들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이쁜 내새끼들이 후라이팬에서 지글지글, 된장찌개 맵싸한 식탁위에서 부글부글, 시원한 냉국수의 고명으로 오색 무지개빛 무지개떡으로 방앗간을 들락날락하는
가난한 흥부에게 복이었던 박
부자인 놀부에게 불행이었던 박
호박이 넝굴째 뒹굴고 있는 옥상은 지금 클림트의 연인들이 꿈꾸는 황금빛 화려한 꽃밭이다
*구수타프 클림트 : 1862년 오스트리아 출생, 황금빛 색채를 유난히 좋아했던 화가
심상 신인상 등단. 대구 불교문인협회사무국장 역임
문예지 <생각과 느낌>, <월간 골프레저> 편집주간 역임
현재 격월간 <아름다운인연> 대구경북지부장
시집 『구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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