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문학/새책 또는 글 소개

강초선의 서남시장 지느러미 없는 물고기 외 1편

설정(일산) 2009. 12. 25. 21:59

서남시장 지느러미 없는 물고기 외 1편


강초선


뭉턱, 허리 아래 잘린 반 토막의 물고기

지느러미 대신 가녀린 꼬리

너덜거리는 시간으로 둘둘 감아 비린 저자거리를

흐느적거리는 물고기의 느린 걸음이

느리게 흘러나오는 슬픈 노랫가락이

좌판 위 언 칼치를 냉동 고등어를 탱탱 포도송이

복숭아 사과를 물컹거리며

시장 나온 아낙들의 발목을 잡는다


‘쯧쯧 우짜다 저리됐을꼬!’

천원 지폐 한 장에 물고기가 말을 한다

 ‘고맙습니다’ 꾸벅, 꾸벅

납작 엎드린 땅바닥에 이마를 박고

행인의 두발을 향해 몇 번이고 이마를 박는 물고기

한 번, 딱 한 번

바닥을 치고 세상 높이 솟구치고 싶었을는지 모른다

싱싱한 두 다리, 싱싱한 지느러미를 보면

수 십, 수 백 번이라도 이마 박고 입 맞추고 싶었는지 모른다


스스로 일어 설 수도, 걸음마를 할 수조차 없는

인간도 물고기도 아닌 불구의 몸,

세상으로부터 유린당한

반 토막의 生  

다 내려놓는 그날까지

목이 마르고, 늘 허기진

서남시장 지느러미 없는 물고기

슬픈 노래가락이 너덜거리는 시간을

둘둘 감아 느릿느릿 비린 저자거리를 헤엄치고 있다



........................................................


황금빛 단내

 



호박전을 굽는다

지글거리는 후라이팬 속으로 툭, 옥상의 호박이 굴러들고 윙윙 벌들을 미치게 하는 황금빛 단내, 벌거벗은 여인을 황금빛으로 그렸던 황금빛 유혹에 미친 구수타프 클림트* ‘키스’의 연인을 둘러싼 황금빛이 여자의 어깨에서 남자의 발목까지 옥상에서 후라이팬까지 황금빛을 둘러싼 황금빛 안개가 키운 황금빛 덩굴이 치렁치렁 매단 둥굴넙적한, 새끼를 잘 낳을 거 같은 엉덩이 떡 벌어진 호박이 달빛아래 숭덩, 새벽별 보고 숭덩, 낮달아래 숭덩, 해거름 땅거미에 숭덩, 숭덩 낳은 새끼들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이쁜 내새끼들이 후라이팬에서 지글지글, 된장찌개 맵싸한 식탁위에서 부글부글, 시원한 냉국수의 고명으로 오색 무지개빛 무지개떡으로 방앗간을 들락날락하는  


가난한 흥부에게 복이었던 박

부자인 놀부에게 불행이었던 박


 호박이 넝굴째 뒹굴고 있는 옥상은 지금 클림트의 연인들이 꿈꾸는 황금빛 화려한 꽃밭이다




*구수타프 클림트 : 1862년 오스트리아 출생, 황금빛 색채를 유난히 좋아했던 화가


심상 신인상 등단. 대구 불교문인협회사무국장 역임

문예지 <생각과 느낌>, <월간 골프레저> 편집주간 역임

현재 격월간 <아름다운인연> 대구경북지부장

시집 『구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