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집 외 1편
김연화
고샅길 초입 느티나무 숲이 있었다 작은 내를 끼고 가파른 언덕을 지나야 마중 나오는 늙은
집 나보다 두 살 위인 소몰이꾼이 무화과나무 잎에 몸을 숨긴 채 기타와 하모니카를 연주해
주던 뒤란 백작약 꽃을 뿌리째 뽑아 흙과 함께 비닐봉지에 싸서 열두 살 내 가슴에 안겨 주
던 날이 역마살 짙은 바람으로 떠돈다 새들이 흔들어 놓은 미루나무 숲길을 역류해 작약 뿌
리에 매달린 '매기의 추억'하모니카 소리가 내 무릎치마에 휘감길 때까지 걷는 미루나무 숲
서른 해나 지난 세월이 머리를 헤치고 흰사슴을 몰고 나에게로 올 거라는 생각을 했다 새벽
4시면 교회 종탑에서 잠 덜 깬 종소리가 쏟아져 내리고 성경책을 끼고 사립문을 여시던 엄마는 나의 바다빛깔 물방울무늬 그려진 원피스 마무리하지 못한 채 서둘러 별을 따라 떠나셨다 흔들리는 언덕 위 벽오동잎 무리지어 무너져 내리는 어스름이 오면 이슬 맺힌 풀잎마다 수리부엉이가 울었다 그 긴 세월 흔들리는 고샅길 휜 그림자 너머 상현달이 뜬다 달의 이마 위 새겨진 그리움 하나 빈집이다 빈집 가득 달빛이 남긴 그늘 두텁게 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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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모스
코스모스 꽃잎의 맨발을 만져보셨나요
코스모스 꽃잎의 흰 손을 잡아 보셨나요
코스모스 꽃잎 날개 빗물에 젖었습니다
내 물잔 속에 조각배 흘러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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