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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도중의 『남사당 별곡男寺黨別曲』(지성찬 작)에 대한 평가

설정(일산) 2010. 5. 4. 12:08

『남사당 별곡男寺黨別曲』(지성찬 작)에 대한 평가

 

권 도 중

 

 

여름날 황혼빛을 끌고 오던 짚세기여

돌부리에 채이는 얼얼한 그 징소리

성황당 어깨너머로 쩔뚝이며 오더니.

 

이 저녁 어느 골에 그 깃발을 올릴거나

봇도랑 물 흐르듯이 울컥울컥 목이 메는

어머니 그 한 세월이 눈물처럼 무너질 때.

 

몇 번을 더 돌아야 그 매듭이 풀릴거나

몇 번을 두드려야 그 응어리 삭일거나

징소리 청산을 때리면 산새들만 아팠다.

 

자줏빛 실타래가 바람으로 풀려가는

남사당 한 마당이 황톳재를 울고 넘던

동짓달 꺽인 달빛이 몸져 누워 있구나.

 

(지성찬의『남사당 별곡男寺黨別曲』전문)

 

1. 남사당 놀이

 

명확하지는 않으나 구전으로 내려오는 남사당놀이는 신라 때부터 있었다고 전해진다. 조선 후기에는 자연 발생한 민중놀이 집단이 처음에는 사당패라 하여, 여자들이 술자리에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집단에서 출발하였으나 조선 말기 남자들만의 사당패가 생겨나 남사당패라 하였다. 유랑예인집단으로 구성되어 전국을 떠돌아다니며 민중오락을 제공하던 유랑예인 집단을 남사당패라 한다. 이들은 절에 시주도 하고, 절을 짓기도 하고, 절을 근거지로 삼기도 했다.

민중의식, 천대받은 한과 양반사회의 부도덕성을 놀이를 통해서 풀고 비판하였으며. 민중의식을 일깨우는 역할을 하였다. 남사당놀이는 중요무형문화재 제3호로 지정되어 있다.

 

 

2. 시 감상

 

사람마다 작품을 보는 눈과 취향이 다르겠지만, 이 글은 필자의 개인적인 감상을 적은 것을 전제한다.

지성찬 시인의『남사당 별곡男寺黨別曲』은 내재적 감동을 주는 작품류에 속한다. 소재나 표현기법에 있어서 다양한 작품류가 있겠지만, 이 작품은 진득한 피의 소리, 한의 숨결을 남성적 기질로 풀어내고 끌어가는 힘을 갖고 있다.

 

1)작은 것의 구체적이고 철저한 묘사로 얻어지는 아름다움, 소묘, 세세한 은유의 조용한 번짐등이 가져다 주는 마음빛과 그림자가 시적본질詩的本質에 가까워서 감동을 주는 시詩가 있는 반면, 2)이『남사당 별곡男寺黨別曲』같은 시도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다. 시의 종류도 다양한데 최근에 와서는 1)의 종류의 시가 선호되고 2)의 종류의 시는 호평되지 않거나 덜 호평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래서 오늘의 현실에서 이 작품을 음미하고 이야기해보고 싶어졌다.

 

art는 무엇인가? 시학詩學이란 무엇인가? beauty는 또 어느 부분에 머물러 있으며, 오늘날에는 그 기호가 어떤 뜻으로 해석되어지고는 있는가? 왜 그렇다고 생각되어지는가? 철학과 예술은 어떻게 다르고, 어떻게 같을 수 있는가? 여기서는 물음만 던진다.

 

시는 관념을 배제해야 좋고, 소리는 낮추어야 좋다. 구체성의 상실이라는 이유와 은유의 부족, 선언적이고 자기주장적이라는 이유로 관념적 요소가 있는 시는 천대 받거나 외면당하기 쉽다. 묘사와 표현을 위주로 하는 시가 나쁘다는 게 아니다. 다만 시에 있어서 관념이 중요하고 관념이 들어간 시가 사실은 큰 감동을 주는 점을 지적하고 싶어서다. 관념은 구체성을 뛰어넘을 때 획득된다. 메주로 간장을 만들어서 천년 묵은 간장이 되었다고 치자. 이때 천년 묵은 간장은 형상이다. 그리고 사진 찍듯이 정확하게 우리 앞에 있다. 그러나 그 천년의 세월과 그 천년의 세월 동안 숙성시키며 지나온 힘, 지금은 변하며 지나간 그것, 그것은 관념이 아니고 무엇인가. 질료인가. 형상인가. 물상인가. 우리 눈은 볼 수가 없다. 그래서 관념적이고, 관념은 시의 본질로 바로 진입한다. 김남조 시인의 “아름다운 겨울바다에 가 보았지. 인고의 물이 수심 속에 기둥을 이루고 있었네.” -겨울바다 -를 필자는 관념의 시라고 부른다. 아름다움은 무엇인가. 감동은 무엇인가. 그것들은 전부 관념적이다. 꽃이 아름다운 것은 꽃이 보는 사람의 눈으로 들어가서 가슴으로 머리로 현현되는 과정에서 의식과 무의식 그 너머 경험과 무경험의 경계에 까지 관념의 세계를 거치면서 아름다움이 되는 것이다. 관념의 세계를 지나오지 않으면 그 물상은 아름다움을 얻지 못한다. 깊고 훌륭한 시는 관념 곁으로 가서 관념 속에서 관념의 물속에서 살아나온다. 깊은 울림의 시는 관념적이다. 사랑하는 애인도 관념의 물속에서 푹 담겼다 나와야 더 아름다워진다.『남사당 별곡男寺黨別曲』은 관념적 요소가 많은 시라고 생각한다. 표현할 수 없는 관념의 표현, 이 시가 말해주고 있다. 요즘 인기 있는 그런 종류의 기법으로 쓰여진 작품도 좋지만 이런 작품도 좋다는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장강이 흘러가듯 유려한 흐름과, 장강이 흘러갈 때 갖는 강저의 물소리가, 우리의 생각을 밀고 간다. - 봇도랑 물 흐르듯이 울컥울컥 목이 메는 - 했지만, 그 민중의 비판의식과 천대 받고 기댈 곳 없던 왕국의 서민들은 그렇게 봇도랑 처럼 가고 이제는 없지만, 이 시 속에는 장강이 되어 역사의 페이지를 당당하게 그리고 있다.

 

지성찬 시인은 - 그 깃발을 어느 골에 올릴거나- 라고 이야기 한다. 사실 깃발은 없다. 깃발은 위정자나 기득권 세력이 갖고 있었다. 남사당패는 그들의 가슴 속에서나 깃발을 펄럭이고 있었다. 시인은 이 점을 예리하게 포착한다. 아마도 이 시를 쓸 때 이 시인의 가슴에는 남사당패의 찢어지고, 때 묻은 깃발을 어느 골에 올릴거나 라고 묻고 또 물었을 것이다. 남사당패의 그 깃발은 마음 속에 있어서 관념적이다. 관념적이어서 아름답고, 어느 골에 올릴거나 하는 고뇌에 필자는 전율한다.

 

- 징소리 청산을 때리면 산새들만 아팠다- 그렇다. 징소리는 골목을 때렸고, 양반의 면상을 때렸지만, 한의 민중의 공감대를 때렸지만, 그 징소리는 우리의 왕국과 또 다른 관념의 왕국까지 흔들기를 바랐겠지만, 웃음과 한 판의 한 풀림으로 마감되어 돌아가면, 징소리는 더 멀리 가서 정직한 청산만 때리고, 죄 없는 산새들만 아팠던 것이다. 민중의 마음의 징도 산새들만 아팠을 힘없는 징소리였다. 그리고 양반들은 문을 닫고 귀를 막고 징소리가 산 속으로 가서 없어질 때를 기다리며 문고리만 지켰을까. 산새들만 아프게 한 징소리는 들판을 건너 어느 골로 가다가 없어져 버렸을 것이다. 그래서 남사당만 남는 것. 남고 남은 무수한 남사당이 별곡의 징을 울렸던 것일까.

 

놀이를 하고 있지만, 그 놀이 속에 그 판 속에 울음 같은 깃발이 있고 그 깃발을 우리가 사는 지나온 지나갈 어느 골에 어떻게 올릴 것인가 하는 가슴 속 숨겨둔 것이 얼굴을 든다.

 

여기서 약간 빗나가는 이야기 한 마디를 하고 가자.

 

문화가 폭력, 물리적 힘으로부터 얼마나 벗어나 있으며, 있을 수 있나? 시대적 현실적 삶 안에서 욕망의 선택이 욕망의 초월을 이룰 수 있는 한 증거를 역사적 남사당패에서 말하려 하면 비약인가? 동학은 혁명이어서 실패했다. 실패했으니 지금 동학은 지금의 모습이다. 그런데 남사당놀이는 전승되어진다. 문화의 힘이 욕망의 선택에게 욕망을 초월시겼다고 필자가 이야기 하면 너무 비약적인가.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자.

 

- 황톳재를 울고 넘던/ 동짓달 꺾인 달빛이 몸져누워 있구나. -

 

몸져 누워있는 남사당별곡은 철학적이다. 이 작품엔 플라톤의 이데아적 요소가 아리스토텔레스에게 묻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현실의 아리스토텔레스가 결국은 플라톤의 이데아의 근원을 다시 보게 되는 것 같은 결구이다.

 

이 작품은 쉽게 읽힌다. 시인의 철학이 항아리를 빚는 찰진 흙이 되어 곡선으로 곡선으로 내재한 음악성을 획득했기 때문이다. 이미지의 축적과 계곡이 많은데도 잘 읽힌다. 이 시조는 또한 시조평의 지평을 확대해 줄 것을 남사당 별곡을 통해서 요구하고 있는 듯하다.

 

 

출처: 스토리문학 6월호, 201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