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사당별곡男寺黨別曲 외 4편
지성찬
여름날 황혼 빛을 끌고 오던 짚세기여
돌부리에 채이는 얼얼한 그 징소리
성황당 어깨 너머로 쩔뚝이며 오더니.
이 저녁 어느 골에 그 깃발을 올릴거나
봇도랑 물 흐르듯이 울컥 울컥 목이 메는
어머니 그 한 세월이 눈물처럼 무너질 때.
몇 번을 더 돌아야 그 매듭이 풀릴거나
몇 번을 두드려야 그 응어리 삭일거나
징 소리 청산을 때리면 산새들만 아팠다.
자주빛 실타래가 바람으로 풀려가는
남사당男寺黨 한 마당이 황톳재를 울고 넘던
동짓달 꺾인 달빛이 몸져 누워 있구나.
일산선유음一山仙遊吟
- 일산에서 부른 노래
봄꽃이 지고 나니 허전한 오후였다
맑은 호수라서 생각을 재울 수 없어
갈대를 밀어 올리고 하늘만 바라본다.
작은 물새 한 마리 오지 않는 호수가에
적막의 시간 한 끝을 매어 둘 곳이 없는
끊어진 가야금 줄처럼 누워있는 들풀이여
같은 햇볕 아래 나무는 키가 다르고
같은 물을 마시고도 꽃 빛은 사뭇 다르다
세월이 오는 소리를 바람이 먼저 안다
지난 밤 이야기는 한 점 이슬이구나
해맑은 바람에는 들풀들이 눈을 뜨고
가슴에 열리는 새 하늘을 귀를 세워 듣나니
영마루 넘는 해는 발걸음이 더디구나
돌아보는 지난날이 불꽃처럼 뜨거워라
모두 다 타버린 후에도 불씨는 남았구나.
비 맞은 풀잎들은 이미 가을을 생각하고
나무는 키가 커서 바람에 시달린다
이 밤에 벌레 소리는 이 호수를 다 덮느니
호수에 해가 지면 먼 데 불빛이 다가와서
조금은 서먹했던 그대의 손을 잡으면
막막한 밤하늘에도 수많은 별이 뜬다
낮이 가고 밤이 오면 호수는 혼란스럽다
가슴에 묻어야 할, 수많은 이야기여
그 누가 푸른 물빛을 곱다고만 하느냐
길을 따라 호수가를 한없이 걷다보면
시작은 어디이며 그 끝은 어디인가
다 못 쓴 엽서 한 장을 걸어두고 가느니.
아무리 풀은 자라도 나무가 되지 못한다
사철 푸른 나무는 꽃을 피우지 못하지만
생각은 외다리로 서서 힘겹게 땅을 짚네
가을 밤 한 자락이 무서리에 젖어오면
지난여름 푸른빛을 그 어디서 찾을 건가
기억의 오솔길에선 잎이 지고 있었다.
눈 내린 이 아침에 설록차가 따스하다
철새들 몇 마리가 이 호수에 날아올 때
소동파 시詩 한 구절을 입에 물고 오너라
다시 삼강주막三江酒幕에서
수많은 민초들이 밟고 간 삼강三江나루
그때 그 풀빛은 오늘도 푸르른데
역사는 흙에 묻힌 채 흰모래만 곱구나
님을 기다리며 낡아가는 세월 속에
빈 나루에 작은 배가 밧줄로 묶여 있네
가끔씩 먼지바람에 풍문風聞만 쌓여가고
비늘 고운 은어銀魚 떼가 물길 따라 올라오고
회룡포 돌아온 바람, 이 나루를 건널 즈음
끌리는 치맛자락에 연둣빛 물이 드네
회화나무 가지 사이 하늘은 한 없이 높고
긴 세월에 남은 것은 썩은 가지뿐이네
육중한 몸으로 하는 말, 눈빛으로 알겠네
봄은 꽃을 들고 문 밖에서 기다려도
회화나무 검은 가지는 내다보지 않는구나
한 줄금 비라도 와야 문을 열고 나오려나
칠흑 같이 어두운 밤, 등잔불도 약해지면
주모酒母는 열사흘 달을 가슴으로 퍼 담으며
그 밤에 홀로 떠난 님을 물 위에 그려 보네
그을린 부엌에는 무쇠솥이 걸터앉아
주인을 땅에 묻고 홀로 남아 무엇 하나
언제쯤 새 주모酒母를 만나 한 세상을 끓여보나
거덜 난 팔자 같은 타다 남은 숯검뎅이
인생은 타고 또 타는 기름 같은 장작 같은
모두가 타버리고도 아쉬움은 재가 되고
감히 인생을 안다고 말하지 마라
그대 가는 길을 안다고도 말하지 마라
술에나 취하지 않고는 이 강을 건널 수 없네
여기 삼강三江나루 쉬어가는 나그네여
사랑은 풀꽃 같은 것, 풀꽃처럼 떠나셔도
천여 필 옥색 비단을 끊고 갈 순 없겠네
안성예찬安城禮讚
비봉飛鳳에 올라서면 옥산들이 넉넉하고
항시 젊은 청용산靑龍山은 자리 걷고 일어선다
안성천安城川 생수生水로 흘러 마을마다 살아 있고
섬바위골 홍시처럼 열이틀 달이 뜨면
동문리東門里 미루나무 숲, 잠들 줄을 모르는데
초집의 올린 등불을 가릴 수는 없어라
선율이 굽이치는 청포도 넝쿨 따라
수많은 얼굴들이 떠오르는 포도알의
맺힌 그 이슬 속에서 한 세월을 보았느니
순박한 손끝으로 흙을 빚어 혼을 부어
가슴에 불을 질러 항아리를 구워내어
하늘도 천년千年 하늘을 불룩하게 채웠나니
서울의 강 ‧ 11
-황혼, 그 바다를 향하여
강물도 이쯤에선 발길이 더뎌진다
한 포기 들풀에게 무슨 말을 전해주랴
흙이여, 너는 알리라, 하류下流로 가는 길을
강 따라 길을 낸 후 물새마저 가버렸네
갈꽃만 홀로 남아 빈 하늘을 지키는데
세월의 푸른 물결은 잠들 수가 없으리
낡아가는 풍물風物들로 부침浮沈하는 포구에서
마지막 노을빛이 그 몇 번 붉었으랴
흘러서 강은 말한다, 흐른 후에 아는 것을
지성찬池聖讚 (시인, 화가) 약력
1942년 충북 충주 출생, 경기 안성에서 성장,
백성초등학교(6회), 안법중고등학교 졸업(안성)(9회), 안법고등학교 총학생회장
연세대 상경대학 경영학과 졸업(61), 연세대 경제대학원 최고위경제과정(1995)
1958년 교내백일장 현대시 장원(안법고등학교)
1959년 전국학생백일장 현대시부 차상(성균관대학교 주최)
1959년 전국학생문예현상모집 시조부 차상(국학대학 주최)
1959년 전국백일장과 1980년 <시조문학>추천으로 문단활동.
삼본물산(주)이사, 기영산업(주)대표이사, 미방기업(주) 대표이사 역임
한국현대시조시인협회 사무국장, 이사, 한국시조시인협회 이사, 감사 등을 역임
전국백일장 심사위원, 중앙일보 지상백일장 심사위원 등을 역임.
시조낭독회 50여회 서울에서 개최함
산문 “깨끗한 그릇”이 중학국어 1-2에 게재(7차 교육과정)
가곡, 성가곡, 합창곡 칸타타 등 200여편의 노랫말 작사(작곡가: 이문승, 이병욱, 김국진, 심진섭, 이종록, 강창식, 권태복, 황덕식, 홍요섭 등)
대표 노랫말 :작시 지성찬<백조>(이병욱 작곡 1978):한국가곡집 수록(세광출판사) <바다 송정포>(강창식 작곡, 박현재 노래), <청평 가는 길>(구본철 작곡, 이승묵 노래), <좌표>(심진섭 작곡), 별(박상훈 곡) 합창곡 <남사당 별곡>(심진섭 작곡) 등
1990년 시집 『서울에 사는 귀뚜리야』가 우수文學작품 創作지원도서로 選定됨(문화예술진흥원)
1999년 시집『가을 엽서』문예진흥기금 일천만원 지원받음(문화공보부)
2014 시집『인생의 지피에스』(세종도서 문학나눔 선정도서-문체부), 제1회 스토리문학대상, 자랑스런안법인상(안법고등학교 동문회)
2010년 KEPA 미술공모전 특선(사랑의 진실과 허구( 94.5 x 74.5cm, 한지, 수채화), 한국예술작가상(미술부문-열린시학)(2013),
2014. 2월 현대민화 일상으로의 접근전 출품 <천국지옥도>
2014. 4월 개인미술전시회(Funnel Art & Cafe),
2014 12월 대한민국기독교미술협회전 <특별상> 수상
2015. 5월-6월 지성찬 미술특별전시회(안성시 공도읍 안성마춤갤러리)
산문 현대시창작법 <시인들이 가르쳐주지 않는 시창작의 비밀>을 시조세계에 분재 문예지 월평, 계간평, 시집해설 등과 다수의 수필을 발표.
시집:『서울의 강』『서울에 사는 귀뚜리야』『하늘에서 보낸 편지』『가을엽서』『대화동일기』『인생의 지피에스』외 공동시집 다수.
시조선집:『백마에서 온 편지』(우리시대 우리시조 100인선)
산문집『깨끗한 그릇』
가곡집 『겨울 피리』(지성찬 작시, 이종록 작곡)
부활절 칸타타 『예수 그리스도 다시 사셨도다』(지성찬 작시, 심진섭 외 5명 작곡, 2010년 4월4일 꽃동산교회에서 오케스트라 반주로 연주회를 가졌음)
현재 한국음악저작권협회, 한국문인협회, 국제펜크럽 한국본부, 오늘의시조시인회의, 한국시조시인협회 회원, 가곡동인 시조창작교실 운영, 종합문예지 계간 <스토리문학> 주간, 백마문학회 고문, 백화문학회 고문
경기도 고양시 일산서구 장자길 118번길 27
덕이 동문3차아파트 303동 201호
전화: 010-3259-7996
메일: sungcji@hanmail.net
-------------------
배우고 따라야 할 귀감
- 지성찬 시인이 노년을 사는 법
김순진
스토리문학의 주간을 맞고 계신 지성찬 시인은 실질적인 스토리문학의 어른이자 멘토이시다. 그런 분의 작품을 평한다는 것이 어쩐지 건방진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이에 최근 10년 동안 지성찬 시인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모시고 따른 사람으로서 평소 시인께서 가지고 계신 생각이나 몸가짐, 그리고 예술적인 행동들에 대하여 부족한 글이지만 피력해보고자 한다.
최근 10여 년 동안 지성찬 시인께는 많은 일들이 오갔다. 우선 위암 수술을 받아 건강을 잃을 뻔 하다가 불굴의 의지로 회복하셨고, 기원을 차리셨다가 고생만 하고 닫으셨고, 성가곡 칸타타 가사를 써 꽃동산교회에서 백여 명의 오케스트라가 공연을 했고, 가곡 노랫말을 쓰는 작사에 매진하셔서 『겨울피리』라는 가곡집을 혼자 작시하시는 등 수많은 노랫말을 지으셨고, 그림에 매진하셔서 몇 번이나 개인전을 여셨고, 도자기나 부채 등에 시를 써 함께 전시하기도 했다. 그간 수많은 시집을 내신 시인께서 모처럼 수필집 『깨끗한 그릇』을 상재하셔서 그간 살아오신 인생관을 가족과 후학들에게 보여주시니 이 또한 귀감이 될 일이다. 이 모두가 스토리문학 주간으로 부임해 오신 이후에 일어난 일이니 건강을 회복하며 오히려 청년 같이 왕성한 활동을 해오고 있는 점은 모든 사람들의 배워야할 일이라 하겠다. 그런 왕성한 활동 과정에서도 글쓰기를 놓지 않으시니 그 또한 시인들의 본이 된다. 그럼 이쯤에서 지성찬 시인의 시조 몇 편을 읽어보면서 지성찬 시인이 노년을 사는 법과 그 시세계를 감상해보자.
비봉飛鳳에 올라서면 옥산들이 넉넉하고
항시 젊은 청용산靑龍山은 자리 걷고 일어선다
안성천安城川 생수生水로 흘러 마을마다 살아 있고
섬바위골 홍시처럼 열이틀 달이 뜨면
동문리東門里 미루나무 숲, 잠들 줄을 모르는데
초집의 올린 등불을 가릴 수는 없어라
선율이 굽이치는 청포도 넝쿨 따라
수많은 얼굴들이 떠오르는 포도알의
맺힌 그 이슬 속에서 한 세월을 보았느니
순박한 손끝으로 흙을 빚어 혼을 부어
가슴에 불을 질러 항아리를 구워내어
하늘도 천년千年 하늘을 불룩하게 채웠나니
-「안성예찬安城禮讚」 전문
지성찬 시인은 충청북도 충주에서 출생하여 안성에서 성장하였다. 안성은 그의 실질적인 고향이다. 그는 안성 백성초등학교와 안법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로 진학한다. 그런 그가 고향인 안성을 사랑하고 예찬하는 일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보통 사람들은 안성을 유기그릇의 산지로 알고 있다. 그래서 안성맞춤이란 말이 나왔다. 안성에 가서 유기그릇을 맞추면 최고의 유기그릇을 소장하고,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안성맞춤이 그렇게 유명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하여 아마도 안성이 살기가 좋아서 사람들이 성실하고 거짓이 없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왔다. 그런데 지성찬 시인의 시를 읽어보니 그 말에 더욱 확신이 간다. 안성 비봉飛鳳에 올라가보고 싶다. 그러면 지성찬 시인의 말처럼 안성의 시내가 모두 보일 것 같다. 물 맑은 안성천이 흐르니 우선 농사가 풍부했을 것이다. 게다가 여기 저기 울창한 숲이 있고 당도가 높은 안성포도가 생산되니 입이 즐거웠을 것 같다. 김치를 담그거나 술을 빚어 담을 수 있는 항아리를 굽는 사기막이가 있으니 안성은 아마도 자급자족이 충분했던 고장이었던 것 같다. 그런 안성을 그 고장 출신인 지성찬 시인이 「안성예찬安城禮讚」 시 한 수를 쓴다는 것은 지극히 타당하고 당연한 일이었을 것 같다.
여름날 황혼 빛을 끌고 오던 짚세기여
돌부리에 채이는 얼얼한 그 징소리
성황당 어깨 너머로 쩔뚝이며 오더니.
이 저녁 어느 골에 그 깃발을 올릴거나
봇도랑 물 흐르듯이 울컥 울컥 목이 메는
어머니 그 한 세월이 눈물처럼 무너질 때.
몇 번을 더 돌아야 그 매듭이 풀릴거나
몇 번을 두드려야 그 응어리 삭일거나
징 소리 청산을 때리면 산새들만 아팠다.
자주빛 실타래가 바람으로 풀려가는
남사당男寺黨 한 마당이 황톳재를 울고 넘던
동짓달 꺾인 달빛이 몸져 누워 있구나.
-「남사당별곡男寺黨別曲」전문
안성이 고향인 지성찬 시인이 안성에 기반을 둔 남사당을 시로 쓴다는 일은 지극히 당연한 일로 보인다. 남사당별곡은 무형문화제로 유명한 민속놀이공연이다. 옛날에는 각 지방마다 남사당놀이의 기술을 가진 공연단체가 많았으나 이젠 모두 사라지고 안성 남사당만이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으며, 안성에는 남사당공연장이 지어져 정기적인 공연을 하는 한 편,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남사당놀이는 ‘꼭두쇠(우두머리, 모갑이)’를 정점으로 풍물(농악) · 버나(대접돌리기) · 살판(땅재주) · 어름(줄타기) · 덧뵈기(탈놀음) · 덜미(꼭두각시놀음) 등 여섯 가지 재주를 보여주는 범 민속놀이이다. 지성찬 시인의 남사당별곡은 짧은 시 한 편으로 그 흥과 설움, 그리고 처량함까지 모두 내포하고 있는 수작이다. 여름날 황혼이 질 무렵 짚세기를 신고 징소리를 울리며 남사당패가 성황당을 넘어 들어오고 있다. 어느 집 앞마당에서 깃발을 올리고 한 바탕 놀아볼까 궁리하는 꼭두쇠의 고민이 깊어 보인다. 막걸리 한 사발 얻어먹고 싶어 목은 타는데, 이렇게 사는 자식을 어머니가 아들이라고 낳고 미역국을 잡수셨을까 생각하니 봇도랑 물처럼 울컥 목이 메인다. 징이 징징 울고 남사당패의 어깨는 접혔다 폈다가 계속된다. 그런 일들이 동짓달까지 계속 된다. 참으로 가슴이 아리고 쓰려서 눈물이 핑 도는 이야기다. 시인의 능력은 어디까지일까? 15행 시 한 편으로 남사당패의 모든 것을 가늠하게 할 수 있다니 과히 천리를 내다보는 혜안을 가지신 분이라고 하겠다.
봄꽃이 지고 나니 허전한 오후였다
맑은 호수라서 생각을 재울 수 없어
갈대를 밀어 올리고 하늘만 바라본다.
작은 물새 한 마리 오지 않는 호수가에
적막의 시간 한 끝을 매어 둘 곳이 없는
끊어진 가야금 줄처럼 누워있는 들풀이여
같은 햇볕 아래 나무는 키가 다르고
같은 물을 마시고도 꽃 빛은 사뭇 다르다
세월이 오는 소리를 바람이 먼저 안다
지난 밤 이야기는 한 점 이슬이구나
해맑은 바람에는 들풀들이 눈을 뜨고
가슴에 열리는 새 하늘을 귀를 세워 듣나니
영마루 넘는 해는 발걸음이 더디구나
돌아보는 지난날이 불꽃처럼 뜨거워라
모두 다 타버린 후에도 불씨는 남았구나.
비 맞은 풀잎들은 이미 가을을 생각하고
나무는 키가 커서 바람에 시달린다
이 밤에 벌레 소리는 이 호수를 다 덮느니
호수에 해가 지면 먼 데 불빛이 다가와서
조금은 서먹했던 그대의 손을 잡으면
막막한 밤하늘에도 수많은 별이 뜬다
낮이 가고 밤이 오면 호수는 혼란스럽다
가슴에 묻어야 할, 수많은 이야기여
그 누가 푸른 물빛을 곱다고만 하느냐
길을 따라 호숫가를 한없이 걷다보면
시작은 어디이며 그 끝은 어디인가
다 못 쓴 엽서 한 장을 걸어두고 가느니.
아무리 풀은 자라도 나무가 되지 못한다
사철 푸른 나무는 꽃을 피우지 못하지만
생각은 외다리로 서서 힘겹게 땅을 짚네
가을 밤 한 자락이 무서리에 젖어오면
지난여름 푸른빛을 그 어디서 찾을 건가
기억의 오솔길에선 잎이 지고 있었다.
눈 내린 이 아침에 설록차가 따스하다
철새들 몇 마리가 이 호수에 날아올 때
소동파 시詩 한 구절을 입에 물고 오너라
-「일산선유음一山仙遊吟」전문
지성찬 시인은 일산에 사신다. 그러니 당연히 일산에 관한 시 몇 수는 쓰셨을 것 같다. 지난번에 낸 시집이 『대화동 일기』였던 것을 보면 그는 지금 살고 있는 고장을 매우 사랑하신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은 모두 우연히 그곳에 정착해서 산다. 그리고 살다보니 정이 들어 떠나지 못하겠다고 말한다. 필자 역시 응암동에 들어와 살게 된 지 벌써 20년이 훨씬 넘었다. 처음에는 동서가 사는 동네라 이사를 왔는데 이젠 그 모퉁이를 돌아가면 나를 알아봐주는 빵집이 있고, 시장에 가면 덤을 하나 더 주는 과일가게가 있고, 언제라도 가면 반갑게 맞아주는 대폿집이 있어서 이제 새로운 고장에 가서 산다는 일이 엄두가 나지 않는다. 필자는 그런 이유로 응암동에 살지만 지성찬 시인은 사랑으로 일산에 사는 것 같다. 호수 위에 비치는 저녁노을이 너무 사랑스러워 그 호수를 사랑하고, 사람처럼 흔들리나 나무처럼 뿌리를 박고 변치 않는 그 풀꽃을 사랑하고, 사람은 서로 금을 긋고 네 땅 내 땅 싸우고 사나 철책 너머 한강 위를 자유롭게 날아가는 철새를 사랑해 일산을 떠날 수 없는 것 같다. 언젠가 한 번 “선생님 왜 일산에 사세요? 이제 고향 안성으로 이사를 가시지요.”하고 말씀드린 적이 있다. 그랬더니 노 시인은 그냥 웃기만 하셨다. 생각해보면 지성찬 시인께서 이제 친구 몇 남지 않은 고향에 가서 새롭게 사람을 사귀느니 늘 정답게 받아주는 호수와 저녁노을과 풀꽃과 새들의 대접을 받고 사는 편이 나은 것 같기도 하다.
수많은 민초들이 밟고 간 삼강三江나루
그때 그 풀빛은 오늘도 푸르른데
역사는 흙에 묻힌 채 흰모래만 곱구나
님을 기다리며 낡아가는 세월 속에
빈 나루에 작은 배가 밧줄로 묶여 있네
가끔씩 먼지바람에 풍문風聞만 쌓여가고
비늘 고운 은어銀魚 떼가 물길 따라 올라오고
회룡포 돌아온 바람, 이 나루를 건널 즈음
끌리는 치맛자락에 연둣빛 물이 드네
회화나무 가지 사이 하늘은 한 없이 높고
긴 세월에 남은 것은 썩은 가지뿐이네
육중한 몸으로 하는 말, 눈빛으로 알겠네
봄은 꽃을 들고 문 밖에서 기다려도
회화나무 검은 가지는 내다보지 않는구나
한 줄금 비라도 와야 문을 열고 나오려나
칠흑 같이 어두운 밤, 등잔불도 약해지면
주모酒母는 열사흘 달을 가슴으로 퍼 담으며
그 밤에 홀로 떠난 님을 물 위에 그려 보네
그을린 부엌에는 무쇠솥이 걸터앉아
주인을 땅에 묻고 홀로 남아 무엇 하나
언제쯤 새 주모酒母를 만나 한 세상을 끓여보나
거덜 난 팔자 같은 타다 남은 숯검뎅이
인생은 타고 또 타는 기름 같은 장작 같은
모두가 타버리고도 아쉬움은 재가 되고
감히 인생을 안다고 말하지 마라
그대 가는 길을 안다고도 말하지 마라
술에나 취하지 않고는 이 강을 건널 수 없네
여기 삼강三江나루 쉬어가는 나그네여
사랑은 풀꽃 같은 것, 풀꽃처럼 떠나셔도
천여 필 옥색 비단을 끊고 갈 순 없겠네
-『다시 삼강주막三江酒幕에서』
이 시는 삼강주막의 시의 후속편이다. 언젠가 지성찬 시인은 공광규 시인과 함께 지방의 문학행사에 다녀오다가 삼강주막에 들린 적이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돌아와 「삼강주막」이라는 시를 쓰고 흡족해하시는 걸 뵌 적이 있다. 시인은 그것을 자필로 써 직접 표구하시고 삼강주막에 보낸 걸로 알고 있다. 그래서 아마도 삼강주막 벽에는 에는 그 시가 붙어 있으리라는 생각을 해본다. 삼강주막은 어떤 곳인가? 삼강주막은 경상북도 예천군 풍양면 삼강리 166-1번지에 있는 우리 시대 마지막 주막이다. 1900년대 초에 지어진 것으로 알려진 삼강주막은 삼강나룻가에 위치해 있어서 서울로 과거를 보러 가는 유생들과 나들이객들의 허기를 채워주고 보부상들의 숙식처로, 시인과 묵객들의 쉼터로 각광을 받던 곳이다. 특별한 분위기도 특별한 안주도 없는데 그냥 사람 사는 것 같아서, 서민들의 애환이 녹아 있어서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지성찬 시인의 말처럼 “수많은 민초들이 밟고 간 삼강三江나루”는 “그때 그 풀빛은 오늘도 푸르른데” 세월만 흘러갔다. 그러나 여전히 삼강주막은 서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회화나무 한 그루가 지나온 역사를 제 몸에 새기고 서있는 삼강주막, 은어 떼가 물길 때라 오르내리고 등잔불의 심지가 가물가물해지는 밤이면 주모는 자신의 영화롭던 젊은 시절을 되돌아보며 어떻게 이렇게 홀로 된 여인의 몸으로 풍파 속에 휩쓸려 왔는지 회한에 싸인다. 떠나보내고 새로운 사람이 들어오는 삼강주막, 인생이란 끊임없이 만나고 헤어지는 것, “사랑은 풀꽃 같은 것”이니 막걸리나 한 잔 하면서 살자는 시인의 말은 어떤 성현의 말보다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강물도 이쯤에선 발길이 더뎌진다
한 포기 들풀에게 무슨 말을 전해주랴
흙이여, 너는 알리라, 하류下流로 가는 길을
강 따라 길을 낸 후 물새마저 가버렸네
갈꽃만 홀로 남아 빈 하늘을 지키는데
세월의 푸른 물결은 잠들 수가 없으리
낡아가는 풍물風物들로 부침浮沈하는 포구에서
마지막 노을빛이 그 몇 번 붉었으랴
흘러서 강은 말한다, 흐른 후에 아는 것을
- 「서울의 강 · 11 - 황혼, 그 바다를 향하여」전문
지성찬 시인이 이번에 발표하는 시들을 보면 모두가 대의적大義的이다. 안성을 예찬하고, 남사당패를 찬양하며, 지금 살고 있는 곳 일산의 환경을 노래하며, 삼강나루터를 오가는 사람들의 애환을 그린 다시 삼강주막에서와 막걸리를 마신다. 그러면서 서울살이에 대한 회한에 대하여 노래한다. 이 시는 지성찬 시인이 한 해 한 해 늙어가고 있는 허전한 마음을 대신하는 노래라는 생각이 든다. 들풀이라도 붙들고 말하고 싶은 심정이 숨겨져 있다. 그래서 흙에게 ‘하류로 가는 길을’ 물어본다. 강이 하류로 가는 길을 물어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인생하류로 가고 있는데 어떻게 해야 인생을 잘 마무리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라고 하겠다. 그리하여 자신이 자식들과 사회에 대한 길을 낸 것을 위안으로 삼으면서 자식들이 하나 둘 출가하여 떠나는 마음을 ‘물새마저 가버렸네’고 노래하는 것이다. 지금 자신은 갈꽃이다. 갈꽃은 곧 스러진다. 세월의 푸른 물결을 견딜 수가 없는 것이다. 지성찬 시인은 자신이 얼마 있으면 지고 말 꽃임을 알고 있다. 그래서 자신의 인생 포구浦口에 있는 소장품들이 낡아서 자신과 함께 침몰하고 있음을 안다. 이제 지성찬 시인의 강이 하류에 이르고 있다. 곧 바다가 된다는 뜻이다. 위에 발표하고 있는 시를 살펴보자면 지성찬 시인께서 흘러온 인생의 강이 이제 바다에 도착하고 있다.
열심히 시와 수필을 쓰고, 열심히 글씨를 써 도자기에 새기고, 그림을 그리는 일은 시서화 삼절三絶의 화담 서경덕徐敬德을 생각게 하는데 게다가 노랫말까지 열심히 쓰시니 지성찬 시인은 시서화음詩書畵音 사절四絶이다. 바다는 영생의 이미지를 가진다. 길고도 화려한 인생의 강을 흘러 마침내 바다에 도착하고 있는 지성찬 시인은 이제 죽지 않는다. 그는 이제 우리를 낳고 기르고 안아주는 바다가 된다. 암을 극복하고 노년기에 보여준 그의 귀감은 우리 시인들이 마땅히 따르고 배워야할 모범이다.
김순진
고려대 평생교육원 시창작과정 교수, 계간 스토리문학 발행인, 도서출판 문학공원 대표
시집 『광대이야기』, 『복어 화석』, 『박살이 나도 좋을 청춘이여』, 수필집 『리어카 한 대』, 『껌을 나눠주던 여인』, 장편소설『너, 별똥별 먹어봤니』, 장편동화『태양을 삼킨 고래』, 평론집『자아5, 희망5의 적절한 등식』, 시창작이론서『좋은 시를 쓰려면』,『효과적인 시창작법』
130-814 서울 동대문구 난계로 26길 17호 계간 스토리문학사
'나의 문학 > 문단의 평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지성찬의 고추잠자리 (0) | 2023.09.29 |
---|---|
지성찬의 목련꽃 밤은 (0) | 2022.07.19 |
안법의 자랑, 지성찬(9회) 동문 (0) | 2022.06.23 |
안법의 자랑. 지성찬 동문의 학교 방문 (0) | 2022.06.23 |
지성찬 선생님의 시조- 김순자 (0) | 2018.02.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