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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개척하는 시인-유홍준 (임영석)

설정(일산) 2009. 9. 6. 19:14

미래를 개척하는 시인(8월호 원고)


보편적이고 균형있는 삶의 믿음을 보여주는 시인

-유홍준 시인


    임 영 석


요즘 들어 많은 시가 솔직해지고 정직해지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한 생각을 하게 하는 것은 시라는 것은 시공(時空)을 뛰어넘어 흙은 흙으로, 나무는 나무로, 바람은 바람으로, 물은 물로, 존재한다고 믿는 것이 아니라, 그 모든 것이 하나의 조화로움을 간직했을 때, 생명이 살아갈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하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믿음을 갖게 하는 시들은 수없이 많다. 그러나 우리 시대에 자기 삶을 믿음처럼 믿고 살아가는 시인들은 흔치가 않다. 그러나 유홍준 시인은 자기 삶의 모든 부분이 믿음처럼 엮인 삶을 살아가는 시인이라 믿어진다. 삼베옷 한 필을 만들기 위해서는 수많은 과정의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하는 것은 베틀에 앉아 베틀가나 부르며 덜거덕거리는 손놀림만을 기억한다. 그러나 베틀에 앉아 베틀가를 부르는 아낙의 마음은 그 고된 삶의 흔적을 베틀가 속에 담아 날려버린다. 


요즘 세상은 노래를 부르는 사람 따로, 노동을 하는 사람 따로, 각기 전문적이고 세분화된 직업 꾼들이 있어, 삶의 역경을 보여주는 구전 가(口傳 歌)가 줄어들고 있다. 생산적인 노동에 뛰어들어 삶을 살며 시를 쓰는 시인들은 땀을 흘리는 노력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절실히 느껴 삶의 소중함을 누구보다 보편적이고 균형 있는 삶의 믿음을 보여줄 수 있다고 본다. 바로 유홍준 시인이 그러한 시인 중의 한 사람이다.


喪家에 모인 구두들


  유 홍 준


저녁 상가(喪家)에 구두들이 모인다

아무리 단정히 벗어놓아도

문상을 하고 나면 흐트러져 있는 신발들

젠장, 구두들이 구두들

짓밟는 게 삶이다

밟히지 않는 건 망자의 신발뿐이다

정리가 되지 않는 상가의 구두들이여

저건 네 구두고

저건 네 슬리퍼야

돼지고기 삶는 마당가에

어울리지 않는 화환 몇 개 세워놓고

봉투 받아라 봉투,

화투짝처럼 배를 까뒤집는 식구들

밤 깊어 헐렁한 구두 하나 아무렇게나 꿰신고

담장 가에 가서 오줌을 누면, 보인다

북천(北天)에 새로 생긴 신발자리 별 몇 개


(유흥준 시집 『상가에 모인 구두들』에서)


유홍준 시인이 삶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는 시다. 사람이 살아가는 삶이라는 건 서로 뒤엉켜 있는 상갓집 신발과도 같은 모습으로 비추어져 있지만, 그래도 망자 되어 있는 신발은 고이 모셔져 있다. 우리는 그렇게 누군가 소중한 사람들의 마음을 가슴에 담고 살아가고 있다. 본인 자신이 가장 소중한 모습이겠지만, 자신보다도 더 먼저 남을 위해 자신의 신발은 뒤엉켜 널브러진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믿는다. 그게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모습일 것이다. 「상가에 모인 구두』는 낯선 사람과 서로 다른 삶을 살면서도 고인에 대한 삶을 애도하면서 같은 삶의 믿음을 갖게 하는 시다.


  아교 


  유 홍 준


내 아버지의 종교는 아교,

하루도 아니고

연사흘 궂은비가 내리면

아버지는 선반 위의 아교를 내리고

불 피워 그것을 녹이셨네 세심하게

꼼꼼하게 느리게 낡은 런닝구 입고 마루 끝에 앉아

개다리소반 다리를 붙이셨다네

술 취해 돌아와 어머니랑 싸우다가

집어던진 개다리소반……

살점 떨어져나간 무릎이며 복사뼈며

어깻죽지를 감쪽같이 붙이시던 아버지, 감쪽같이

자신의 과오를 수습하던 아버지의 심정은 어땠을까

아, 내 아버지의 종교는 아교!

세심하게 꼼꼼하게 개다리소반을 수리하시던

아교의 교주 아버지 보고 싶네

내 뿔테안경 내 플라스틱 명찰 붙여주시던

아버지 만나 나도 이제 개종을 하고 싶다 말하고 싶네

아버지의 아교도가 되어

추적추적 비가 오는 아교도의 주일날

정확히 무언지도 모를 나의 무언가를 감쪽같이 붙이고 싶네


(유홍준 시집『나는, 웃는다 』에서)

 

유홍준 시인의 두번째 시집 『나는, 웃는다 』에서 삶의 믿음을 더 절실하게 보여주는 시다.

나무를 다루고 만지는 목공소에서는 한여름에도 아교를 녹이기 위하여 연탄불 위에 물을 올려놓고 다시 물속에 그릇을 담가 아교를 녹인다. 아교 그릇을 직접 불에 닿게 하면 불이 세면 다 타버린다. 은은한 물속에 아교가 굳지 않게 해야 한다. 이런 아교로 나무와 나무 사이에 풀처럼 발라 나무를 붙이고 그 위에 무거운 것으로 눌러 놓으면 일정 시간이 지나 뼈처럼 딱딱하게 굳는다. 유홍준 시인은 아버지가 작업하시던 아교를 보고 아버지에게서 떨어져 나온 자신의 마음을 붙이고 싶었던 모양이다. 우리 마음과 마음의 틈 사이에도 서로 떨어져 너덜너덜 소리 나는 것, 유홍준 시인은 아버지가 내리사랑으로 주신 그 사랑 같은 아교 칠로 마음을 다 붙여 조용한 세상을 꿈꾸는 듯하다. 아버지의 일생과도 같은 아교를 자신의 종교적 믿음으로 바라보고 있다고 생각한다.


유리창 위의 ×


 유 홍 준


신축빌라 출입구, 투명한 유리창에

붉은 페인트칠, ×字 몇 개가

커다랗게 그어져 있다

저 시뻘건 ×로 존재하는 유리!

마스크 쓰고 묵비권

행사하는 것 같다


아직 아무도 입주하지 않은 저 빌라

입구를 가로막고 있는 ×는

봅합일까

개복의 흔적일까


깨뜨리지 마라 조심하라 저 유리창에

시뻘겋게 그어놓은 ×字 같은

세상의 법칙들


십자가보다 더 붉은 ×字 그려진 유리창에

구름 몇 조각이 어른거린다 푸른

이파리들이 어른거린다


수건 눌러쓴 늙은 여자가 신나 묻힌 걸레로

구름과 나뭇잎과 ×를

싹 싹 지우고 있다


(유홍준 시집 『상가에 모인 구두들 』에서)


×라는 것은 아니다 틀렸다는 말로 통한다. 우리 세상에 마음은 늘 아니다, 틀렸다는 부정의 신호가 존재하기 때문에 아무리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손을 ×로 흔들면 마음의 신호처럼 알아듣는 게 ×字일 것이다. 유홍준 시인은 신축 건물 입구에 새로 끼워진 유리창의 유리들이 누군가의 시선을 집중하기 위하여 ‘유리다’라는 긍정의 신호를 ×字로 써 놓은 모습을 보고 이곳을 출입하지 말라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다. 유리창의 모습에서 세상을 향해 올곧은 소통을 이어가고 있다, 그 깨끗하고 투명한 세상이 잘 못 되었다는 뜻과도 같이 ×字는 쓰여 있다. 투명함이 때로는 더 얼굴 화끈 거리는 잘못을 용서하지 못할 때가 있다. 그러나 늙은 여자가 신너를 묻힌 걸레를 들고 ×字를 지우고 푸른 나뭇잎을 지우고 구름을 지우듯이 이 세상의 옳지 못하고 바르지 못한 마음을 지우는 자는 분명히 존재할 것이라 믿고 싶다. 아무리 이 세상을 향하여 말 못하게 힘으로 누르려는 권력이 있다고 해도 그 힘과 권력은 언제가 다시 신나 묻은 걸레로 유리창의 ×字를 지우듯이 그 힘과 권력을 지우는 사람이 나타난다는 것을 믿고 싶다는 의지도 함께 녹아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위 세 편의 시를 읽으면서 나는 베틀에 앉아 베틀가를 부르던 아낙의 마음을 생각해 보았다. 세상의 믿음이라는 것은 삶의 노동을 통해 땀으로 전달되는 결과들이 아니냐는 생각이다. 정직한 시라는 것은 땀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들이다. 무슨 일을 하든지 땀의 결과에 승복하고 그 과정들이 투명하고 아름다운 삶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한다. 시인은 삶은 종교와 같은 믿음을 갖지 않고는 정직한 시를 쓸 수 없다고 본다. 시인에게 좋은 시를 쓸 수 있다는 것은 자기 삶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가질 때 가능하다고 본다. 전자에 시공(時空)을 뛰어넘을 수 있는 시라는 것은 바로 어떠한 삶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만이 보여줄 수 있다고 본다. 유홍준 시인은 우리에게 보편적이고 균형 있는 삶의 힘이 무엇인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삶을 종교처럼 믿는 확고한 의지와 노력이 담보되었기에 가능하다고 믿어진다. 좋은 열매를 수확하기까지 농부는 하늘을 원망하거나 땅을 탓하지 않는다. 바로 자기 자신의 땀방울이 부족함을 탓한다고 한다. 정직한 시는 그 땀방울이 얼마나 아름답게 맺혀 있는지 읽는 독자가 눈길을 먼저 준다는 것이다. 필자도 유홍준 시인의 한 독자로서 그의 믿음과 같은 시에 눈길을 줄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정직한 믿음 속에 시공을 뛰어넘는 시가 있다는 것을 제시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유홍준

1962년 경남 산청에서 타어나 1998년 『시와 반시 』 신인상으로 문단 등단, 시집으로 『상가에 모인 구두들』,[실천문학사],『나는 ,웃는다 』,[창비]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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