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석 시조 평론 2010 년 시조세계 봄호
넉넉하고 아름다운 시의 높은 집을 짓다
-물 위에 짓는 집과 바위를 깎아 만든 터에 지은 집
지 성 찬
열대지방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것이 물 위에 지은 집들이다. 물 위에 지은 집은 그 수명이 짧게 한정되어 있기도 하지만 물이 범람하면 쉽게 파손되기도 하며 흐르는 물에 떠내려 갈 수 밖에 없다. 예술의 세계에서도 보면 시류에 따라, 유행에 따라 영합하고, 이에 쉽게 합승하여 이름을 쉽게 세상에 알리려는 사람들이 대다수라 하여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근자에 보면 예술을 위한 예술인지, 아니면 상을 타기 위한 예술인지 알 수가 없다. 상을 받는다하여 그의 예술이 좋아질 리는 없을 것이다. 오로지 예술은 예술성으로만 존재의 의미가 있고, 그것에 의해서 평가받기 마련이다.
임영석 시인은 문학의 척박한 터를 가지고 있었지만 좀처럼 깰 수 없는 바위를 깎아서 터를 만들고 그 위에 견고하고 아름다우면서도 높다란 시의 높은 집을 지었다고 생각한다.
임 시인은 좋은 시조와 더불어 좋은 현대시도 많이 발표하여 여러 권의 시조집과 시집을 상재하여 좋은 성과를 내놓고 있다.
임 시인이 시조에서도 다양한 주제를 가지고 다양한 형식과 표현으로 새로운 작품을 빚어내고자 노력하여 왔기에 한 마디로 그의 작품을 평하기는 어렵다. 그의 작품 세계에서 가장 핵심적인 언어중의 하나는 어둠과 별이라고 할 수 있다.
밤 아홉시 일기예보에는
밤에 눈이 온다는데
잠이 안 와 하늘을 보니
별빛이 총총하다
이런 밤, 눈이 올까나
정말, 정말, 눈이 올까.
(임영석의「小曲」의 둘째 수)
어둠의 문 앞에서 돌아서는 그대여,
그대가 불빛처럼 어둠 속에 몸을 묻고
스스로 몸을 녹여서 불꽃처럼 말해 보라.
어둠은 그대 몸이 불빛으로 타오를 때
그대가 가야 할 길, 그 길만 내어주고
나머지 길들은 항상 어둠 속에 묻어둔다.
(임영석의「어둠 속에서」의 둘째 수, 셋째 수)
임 시인의「小曲」과「어둠 속에서」와 같이 임 시인이 즐겨 사용하는 언어와 분위기는
‘어둠’이다.
임 시인이 즐겨 사용하는 ‘어둠’은 단순히 악의 세력을 상징하는 것이 아니라, 넓게는 이 세상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며 동시에 개인적으로 이 세상에서 경험한 모든 인간적 아픈 경험을 상징하고 있다. 노동의 현장에서 낙오되지 않기 위하여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노동의 땀을 인내로 닦으며 생존의 끈을 바짝 당겨 잡고 버텨왔다. 노동을 감당하기에는 좀 허약하게 보이는 그에게는 정말 힘든 세월이었을 것이며, 지금도 그 일을 감당하며 노동의 현장에 있다.
현실과 싸워서 이길 수 있었던 임 시인의 무기는 굳은 의지와 실천력, 그리고 이를 감내하는 인내력이다. 그가 비록 이 어둠의 세상에 발을 붙이고 살고 있지만 그의 이상과 염원은 변함없는 진리를 희구하며 이를 바라보며 현실을 극복하고자 하는 노력으로 현실에 맞서 싸워왔다.
그 결과 임 시인은 어둠 속에서 빛나는 하나의 별로, 보석으로 빛나고 있는 것이다. 보석은 본래 하나의 돌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 돌은 수많은 연마鍊磨를 통해서 하나의 빛나는 보석으로 빛을 발하고, 아름다운 빛을 발하기에 보석은 아름답고 값진 것이다.
그 아름답게 빛을 발하는 보석 같은 이름이 임영석 시인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임 시인은 몸 그 자체가 시詩요, 노동이요, 아픔이요, 눈물이다. 아마도 임 시인의 몸에는 바윗돌 같은 돌이 있고, 가시 풀로 덮여 있을 것이다.
몸에 있는 바윗돌에 대하여는 그의 작품「창궁蒼穹으로 가는 길」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한 해 동안 이齒를 악물고
틀니 같은 세상살이
씹지도 못하고서
삼켜버린 이야기가
항문에
못이 박히듯
담석으로 박혀 있다.
(임영석의「창궁蒼穹으로 가는 길」첫째 수)
삶의 아픔은 아직도 그의 몸에 남아서 임 시인을 괴롭히고 있다. 그 아픔이 그의 이름에 꽃을 피우는 거름이 되고 세상을 보는 눈을 밝게 그리고 정확하게 하면서, 경각심을 갖게 하고 있다.
또 한편으로 바윗돌 옆에 자리 잡고 자라면서 그 마음에 많은 상처를 주고 있는 가시 풀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고백하고 있다.
누구도 간섭 없이 세상을 살겠다고
척박한 땅 비집고서 뿌리를 내렸는데
허공에 숨겨온 말을 내 손등에 쏟아낸다.
스치는 인연만큼 허물은 다 있을 터
얼마나 더 껴안아야 푸른 독을 삼킬 건지
스스로 묻고 답하는 내 마음이 더 쓰리다.
꽃그늘 부럽다고 꼭꼭 숨긴 그 가시가
저 혼자 글썽이는 눈물이 아니기를
가시 풀 뽑지 못하고 돌아서는 내 맘이다.
(임영석의「가시 풀에게」중에서)
위의「가시 풀에게」를 보면 그의 환경을 간접적으로 표현한 것이 ‘척박한 땅 비집고서 뿌리를 내렸는데’이며,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의 가슴을 할퀴고 상처를 주었던 그 가시를 이 작품에서 ‘꽃그늘 부럽다고 꼭꼭 숨긴 그 가시가, 저 혼자 글썽이는 눈물이 아니기를, 가시 풀 뽑지 못하고 돌아서는 내 맘이다’로 표현하고 있다.
이 가시가 임 시인에게는 복福으로 바뀌어 아름다운 꽃을 피우게 하였다. 가슴을 항시 찔렀던 가시가 이상하게도 꽃으로 변형되어 복福이 된 것이다.
이를 잘 증명해주는 작품이 그의「국형사, 단청을 보며」이다.
꽃다운 꽃을 피우기가 얼마나 어려우면
껍질을 다 벗고서 목숨을 다 끊고서
부처님 마음에 들어 마음 꽃을 피워낼까.
뿌리도 못 내리는 주춧돌에 몸을 얹고
초연한 자세하나 바르게 배우려고
스스로 지붕을 이고 눈과 귀를 막고 산다.
(임영석의 「국형사, 단청을 보며」의 첫째 수와 둘째 수)
위의 작품에서 보면 아름다운 단청과 석가모니를 모신 불전을 대비하여 ‘진리의 아름다운 꽃’, ‘꽃다운 꽃’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여기서 ‘꽃다운 꽃’은 무엇일까. 이 꽃은 영원히 시들지 않고 피어있는 꽃으로 ‘석가모니’와 같은 아름다운 이름의 꽃을 상징한다. 임 시인이 바라고 소망하는 것은 절대자에 대한 믿음과 그 믿음을 의지해서 살아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결국 임 시인의 향유하는, 향유해야 할 가장 큰 자산이며 결과일 것이다. 결코 타인에게 빼앗길 수 없는 것, 변하지 않는 것, 영원한 것, 그것은 아름다운 그이 이름이 될 것이다.
그의 삶에서 지혜를 얻게 한 것은 ‘인내’였으며, 그 삶을 풍요롭게 하고 성장하게 한 원동력은 바로 ‘인내함’속에서 얻어진 것으로 보여 진다.
그의 작품「냄비가 부처 같다」에서를 보면 그가 바라보는 시각과 일치하는 것은 바로 부처의 가르침으로 보여 진다.
펄펄 끓는 물을 보니
냄비가 부처 같다
펄펄 끓는 물을 안고
움직이지 않는 저 힘,
부처가 연꽃에 앉아
번뇌하는 기도 같다
(임영석의「냄비가 부처 같다」전문)
펄펄 끓는 물을 안고 있는 냄비가 미동微動도 하지 않고 견디는 모습이 마치 부처의 마음과 같다고 표현한 것에서 임 시인의 마음가짐을 미루어 알 수 있다. 그의 삶은 수도자의 고행이며, 그 고행으로부터 얻어진 것이 찬란한 광채를 발하는 아름다운 시편들이다.
임 시인은 인생에서 가장 귀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것을 위하여 쉬지 않고 나아가고 있다. 그가 이미 아름다운 시의 집을 지었지만, 그 집을 더욱 확장하여 더 많은 시객들이 내방하는 품격 높은 집으로 완성될 수 있을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임영석 자선 시조 15편 ****
어둠 속에서
임영석
어둠은 눈이 없어 소리로만 앞을 본다.
아무리 먼 불빛도 어둠의 두 귀에는
소망을 빌고 있다는 소리로만 들린다.
어둠의 문 앞에서 돌아서는 그대여,
그대가 불빛처럼 어둠 속에 몸을 묻고
스스로 몸을 녹여서 불꽃처럼 말해보라.
어둠은 그대 몸이 불빛으로 타오를 때
그대가 가야 할 길, 그 길만 내어주고
나머지 길들은 항상 어둠 속에 묻어둔다.
그대여, 외롭고 서럽다고 울지 마라.
어둠 속의 불빛들은 어둠의 장식일 뿐,
그대가 불이 아니면 읽지 못할 글들이다.
국형사, 단청을 보며
꽃다운 꽃을 피우기가 얼마나 어려우면
껍질을 다 벗고서 목숨을 다 끊고서
부처님 마음에 들어 마음 꽃을 피워낼까.
뿌리도 못 내리는 주춧돌에 몸을 얹고
초연한 자세하나 바르게 배우려고
스스로 지붕을 이고 눈과 귀를 막고 산다.
그 마음 꽃과 같아 혼자 보기 아까운지
빙그르르 웃으시는 부처님 눈빛에서
마음의 색을 내리니 처마 끝이 꽃밭 같다.
아이의 두 볼에서 걸어 나온 웃음처럼
색색의 단청 무늬 손이 되고 발이 되어
바르게 눈 뜨지 못한 내 마음을 꾸짖는다.
*국형사: 원주 행구동 치악산 밑에 있는 절
스무 살, 그 스무 살은
이제는 알겠어요, 스무 살 그 스무 살은
바람같이 떠돌면서 애간장을 다 녹이다가
봄날의 꽃봉오리를 하룻밤에 피우는 걸.
이제는 알겠어요, 스무 살 그 스무 살은
허공을 잡다, 잡다 어둠에 가로막히면
하늘에 뜨는 별들이 기다림의 씨라는 걸.
이제는 알겠어요, 스무 살 그 스무 살은
빈 몸의 쭉정이가 물 위에 둥둥 떠서
아무리 싹을 틔워도 싹이 나지 않다는 걸.
가시 풀에게
누구도 간섭 없이 세상을 살겠다고
척박한 땅 비집고서 뿌리를 내렸는데
허공에 숨겨온 말을 내 손등에 쏟아낸다.
스치는 인연만큼 허물은 다 있을 터,
얼마나 더 껴안아야 푸른 독을 삼킬 건지
스스로 묻고 답하는 내 마음이 더 쓰리다.
너를 만나 나는 오늘 아픔을 배우지만
내 아픔이 사라지면 스쳐간 그 인연은
무엇을 움켜잡고서 이 세상을 살아갈까.
꽃그늘 부럽다고 꼭꼭 숨긴 그 가시가
저 혼자 글썽이는 눈물이 아니기를
가시 풀 뽑지 못하고 돌아서는 내 맘이다.
내 마음의 못 자국을 보며
한 방에서 가타부타
십 년을 살았으니,
불쏘시개 할 일들이
얼마나 많았겠는가.
차라리 명사십리가
아름답다 하여라.
냄비가 부처 같다
펄펄 끓는 물을 보니
냄비가 부처 같다
펄펄 끓는 물을 안고
움직이지 않는 저 힘,
부처가 연꽃에 앉아
번뇌하는 기도 같다
창궁蒼穹으로 가는 길
한 해 동안 이(齒) 악물고
틀니 같은 세상살이
씹지도 못하고서
삼켜버린 이야기가
항문에
못이 박히듯
담석으로 박혀 있다
솔잎 같은 다짐들은
허기로 채우지만
철모르는 개나리꽃이
눈물처럼 번지는 날
아, 너는
알고 있는가,
창궁(蒼穹)으로 가는 길을.
눈물이야 스며들면
핏빛으로 마르는 것,
참숯이 참숯으로
빨아들이는 갈증만큼
바람은
나무 끝에서
떠날 길을 찾고 있다
밑줄
혹시나 잊어버려
기억할 수 없을까 봐
살면서 아픔답고
슬픈 날 밑에다가
붉은색 밑줄을 친다
잊어버리지 말자고.
그 밑줄이 다 지나가면
한 해가 다 지나간다
웃었던 날 울었던 날
밑불 속에 다 감추고
사랑한 사람 가슴에
밑줄 하나를 더 그어본다.
날마다 그 밑줄 속에
그리움도 담아 두고
별빛 같은 精을 담아
끝없이 기다리면
밑줄 친 그 날들 지나
한 세월이 다 간다.
小曲
1.
어쩔까
나에게는 필요 없는 많은 휴일
애인아
나는 아직
할 일 없이 놀다보니
내일이 와 있는 오늘을
벽에 걸어 놓고 본다.
2.
밤 아홉시 일기예보에는
밤에 눈이 온다는데
잠이 안 와 하늘을 보니
별빛이 총총하다
이런 밤, 눈이 올까나
정말, 정말, 눈이 올까.
추심여정
1.
내 사색의 오솔길에
고운 벗도 다 떠나고
구절초 꽃대궁만
빈하늘을 지키는데
하얗게 가슴 허물고
날아오는 기러기여.
2.
가지 휜 가을볕을
받아든 가슴가슴
靑山에 넋을 풀어
百日을 앓고나니
이 밤도 생각이 깊어
단풍으로 물이 든다.
3.
시절도 半은 썩고
半만 남은 모서리에
더도 말고 덜도 말고
黃菊 피듯 고요하면
人間事 가지가지가
香氣로운 것 아닌가.
4.
물에 뜬 달을 동무하여
피어나는 들국화꽃,
속살까지 파고드는
바람과 눈 맞추어
이다음 백년 뒤라도
함께 살듯 다정하다.
손끝
담배를 피우다가 담뱃재가 뚝 떨어졌다
찰나가 사라지는 그 순간을 놓칠세라
손끝에 침을 발라서 습관처럼 잡았다
남에게 흉만 보고 코딱지나 파던 손끝,
찰나를 잡아 놓고 손가락질은 여전하다
힘으로 살 수 없음을 그 찰나에 가르친다
구린내 나는 밑을 가장 먼저 닦다 보니
이 세상 더러움에 손가락이 가는 것은
손끝만 깨달음 얻어 살아가기 때문이다
솟대
언제나
저 새들이
기다림을 완성하여
몸보다
긴 다리를
잘라내고 날아갈까
하! 세월,
가부좌 틀고
꿈쩍 않고 지켜본다
풍경이 운다
-생업(生業).1
홍단풍이 피고 나니 참새가 둥지를 튼다
얼마나 급했으면 연통 속에 둥지를 틀어
뜨거운 연탄불 대신 새소리를 피워 낼까
꽃샘추위 다 가도록 편지 한 장 없는 집에
손주 같은 참새 새끼 짹짹짹 지저 귄다
참새가 물어다주는 그 먹이가 안부였다
생업에 바쁜 아들 곡(哭)소리가 잦아드니
짹짹짹 참새 새끼 곡(哭)소리가 요란하다
문상 온 조문객 앞에 정신없이 울어 댄다
참새의 생업이란 제 새끼를 키우는 것,
그 생업 접으려니 연통 속의 새끼가 걱정
상주가 모이를 주어 어미 새를 달랜다
구름
구름은 하늘 속에
이미 깊은 강물이다
허물 벗은 물빛들이
강물을 이루는 건
상처가 허공 속에도
깊이 패어 있다는 것
눈 잣대
1.
누구나 마음속엔 눈 잣대가 하나 있다
비틀고 구부러진 마음을 바로 보라고
눈 잣대 눈금 속에는 삶의 날이 새겨 있다
2.
무거운 돌 속에는 무거운 돌의 힘이
반듯한 나무속엔 반듯한 그 자세가
이 세상 눈 잣대처럼 버팀목이 되어 있다
3.
갯벌의 구멍 마다 주인 없는 구멍 없고
모래알 하나 마다 사연 없는 모래 없어
햇볕에 반짝거리며 눈 잣대를 재고 있다
4.
꽃들의 등 뒤에는 꽃향기가 길이 되어
인적이 둑 끊겨도 벌 나비가 찾아온다
눈 잣대 하나만 갖고 첩첩산중 찾아온다
5.
살아서 백년이면 하품도 말이 된다
죽어서 천년이면 마음도 뜻이 된다
해와 달 눈 잣대 속은 말과 뜻만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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