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바타 외 1편
성배순
수많은 형천*들이 삼삼오오 가게 문을 밀고 들어간다.
젖으로 눈을 삼고 배꼽으로 입을 삼아
주절주절 저희끼리 소란하다.
최신유행이라는 신형얼굴코너로 우르르 몰려간다.
흥정 없이 싹쓸이 한다.
목 위로 똑같은 얼굴들을 얹고 골목을 오고 간다.
머릿속 촉수를 스칠 때마다 서로의 촉수를 붙여보고 같은 종족임을 확인한다.
한밤중 문득 낯선 얼굴에 기겁을 하고
벗어놓은 자신의 얼굴을 거울 속에서 찾아본다.
양손에 얼굴들을 하나씩 번갈아 들며
목 위로 얹어보고 사지를 맞춰본다
젠장, 여러 아바타**를 거치는 동안
얼굴들이 희미해져 버렸다.
방안가득 낯선 얼굴들이 낯선 얼굴들을 바라본다.
천산에 사는 신 제강***이 내려다보고 재미가 있었는지
얼굴없는 어깨를 들썩거리며 웃고 있더라
*산해경에 나오는 얼굴 없는 인물.
** 산스크리트 '아바따라(avataara)'에서 유래한 말로 지상에 강림한 신의 화신, 또는 자신을 표현하는 사이버 캐릭터의 의미, 자신의 분신을 나타내는 말
***산해경에 나오는 신으로 가무를 이해할 줄 아는 얼굴 없는 신.
어리 호박벌
고마리 구멍가게
먼지 낀 꿀단지 뚜껑을 열어
킁킁 냄새를 맡아보고
손가락을 쿡 찔러 혀끝에 묻혀보고
호박꽃 편의점, 민들레 백화점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같은 짓을 반복하는
노란 줄무늬 스웨터를 입은 임산부
어리호박벌의 겁나게 쳐대는 작은 날갯짓
CCTV가 빠르게 좇고 있다
출처: 스토리문학 2010년 7.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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