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시 풀 외 1편
한상길韓相吉
새파란 각시 풀 돋아난 가을 논두렁을
이슥 헤매이다
너는 각시되고
나는 신랑이 되었지
지켜 볼 이 없는 불무늬에 마주 앉아
된서리 맞은 잠자리 꽁무니엔
소꿉에 알린다며 오색실 꿰어 날려 보내고는
손님이 오실까
메뚜기 펄쩍 뛰어 오르는 논두렁에 가지런히
정성으로 빚어내던 흙 떡
샛노란 들국화 꽃 따다
꽃보다 더 예쁜 상 차리던 너의 고운 손길 보노라면
치렁치렁 곱게 땋아 올린 머리 위로
각시머리 풀
족두리가 얹히고
단풍잎 같은 손으로
초롱꽃이 등불이라며 환하게 웃던
내 여린 사랑아
흙으로 빚은 안주에 잣던 한 잔 술이
가을 빛 진하게 취해 오던 나는
볏짚 위로 곤한 잠 들곤 했는데
문득 깨어났을 즈음
각시는
알 수 없는 모래성으로 떠나버리고
각시풀엔 잉걸불만 찬란하게 타오르고 있었네
각시 풀 파아란 논두렁에 홀로 앉아 흙떡을 빚노라니
각시머리 풀 얹고 떠난 소꿉 친구는
초롱꽃 등 밝혀 언제 오시려나
돌아오라 이젠
돌아오라
머리 위에 얹고 떠난 각시머리 풀
족두리
언제 풀려 하는가
편지
-바람
1
퇴근 길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오! 수잔나, 아! 목동아, 들에 핀 장미화, 바위고개'가 연이어
아물히 잊혀진 추억들을 되살리고는 괜시리
콧잔등이 시큰하게 아려왔다
2
하이얀 교복에 이름마저 어여쁜 불현히 떠오른 숙이
몇번의 애린 편지 주고 받았던
연꽃처럼 밝그레 한 두 볼 가진 내 여린
사랑아
차마 부끄러워 마주하지 못 한 채
먼 발치서 물끄러미 쳐다만 보다
추풍령으로 달려가는 통학열차와
대전으로 내달리는 차창밖으로 마주 손 흔들며
애틋함에 가슴 졸이다 진정 한마디 말 꺼내지도 못했었지
언젠가 우연히 다방에서 만나 식어가는 찻 잔을 마주보며
사랑한다는 말 입 속에서 오물거려야만 했던
원피스 곱게 차려 입은 너를 보내며 이제사 시인되어
사랑했노라 고백의 편지 지천명에 쓰는구나
3
지금은 아스라히 멀어져간 세월 속에
영영 잃어버린 사람이지만
물밀듯 맴돌아오는 옛사랑 떠올리고는
바위고개 언덕으로 쏟아지는 그리움에 운율을 묶어
잊혀진 그이름 다시 불러본다
혜숙아!
출처: 스토리문학 2010년 7.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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